나는 이미 가장 높은 곳에 있습니다(고린도전서 7:17~24)
우리는 모두 사다리 앞에 서 있습니다. 부의 사다리, 지위의 사다리, 명예의 사다리, 건강의 사다리. 한 칸을 오르려고 애를 쓰고, 한 칸이 밀릴까 봐 잠을 설칩니다. 승진 명단 앞에서, 동창회의 명함 앞에서, 학부모 모임의 비교 앞에서 마음이 자꾸 작아집니다. 사다리 한 칸, 한 칸에 울고 웃는 인생입니다. 2천 년 전, 가장 낮은 자리에 있던 사람들에게 건넨 사도 바울의 말이, 오늘 우리에게 그대로 건너옵니다.
1. 문제는 사다리가 아니라, 윗칸에 매달아 둔‘나의 값’입니다
먼저 분명히 해 둘 것이 있습니다. 사다리는 환상이 아닙니다. 사다리는 실재합니다. 바울도 사다리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21절에서 그는 자유를 얻을 기회가 있거든 그것을 잡으라고 말합니다. 오를 수 있거든, 올라도 좋습니다. 그러니 사다리 앞에서 느끼는 무력감을‘믿음이 약해서’라고 함부로 덮지 맙시다. 그 무력감은 진짜입니다.
문제는 사다리가 아닙니다. 문제는 그 사다리 윗칸에만‘ 나의 값’을 매달아 둔 마음입니다. 사다리가 도구로 있을 때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쓰고 나면 내려옵니다. 그런데 내가 몇 번째 칸에 서 있느냐로 내 값이 매겨진다고 믿는 순간, 사다리는 도구가 아니라 저울이 됩니다. 한 칸 오르면 안도하고, 한 칸 밀리면 무너집니다. 끝없이 흔들리는 저울 위에서, 우리는 평생 불안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다리를 부수는 일이 아닙니다. 사다리 꼭대기에 매달아 둔 ‘나의 값’을 거기서 떼어 내는 일입니다.
2. 예수님께서 값을 치르시고 나를 높은 곳에 올려 주셨습니다
23절은 오늘 설교의 심장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값을 치르고 사신 사람입니다.” 1세기 고린도 사람들은 이 말을 단번에 알아들었습니다. 노예가 신전 금고에 몸값을 맡기면 신이 그를 사들이는 절차를 밟고, 그는 사람에게서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이 그림을 가져옵니다. 그런데 다른 점이 하나 있습니다. 몸값을 치른 분이 노예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지불한 것은 돈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입니다.
세상은 묻습니다. “너는 얼마짜리냐.” 그리고 연봉으로, 직함으로, 평수로, 점수로 값을 매깁니다. 그러나 복음은 다른 답을 줍니다. 당신의 값은 사다리가 정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값은 갈보리 언덕에서 정해졌습니다. 하나님 아들의 생명, 그것이 당신에게 매겨진 값입니다. 이미 가장 비싼 값이 치러졌는데, 사다리 한 칸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야곱을 떠올려 봅니다. 장자의 상속권이라는 사다리에 오르려고 형을 속이고 집에서 쫓겨난 도망자, 사다리 맨 밑바닥에 떨어진 사람입니다. 그 밤, 그는 하늘까지 닿은 사다리를 봅니다. 그 사다리는 야곱이 만든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온 사다리였습니다. 훗날 예수님은‘ 내가 바로 그 사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1:51). 우리가 가장 높은 곳에 오른 것은 우리가 잘나서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사다리가 되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가장 낮은 곳까지 내려오셔서, 나를 업고 가장 높은 곳까지 올려 주셨습니다. 그러니 나는 이미, 가장 높은 곳에 있습니다.
3. 이제 우리는, 가장 높은 그 자리에서 그분과 함께 삽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24절이 답합니다. 부르심을 받은 그때의 처지에 그대로 있으면서,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라고 합니다. 비결은 사다리에 올라타 자리를 옮기는 것이 아닙니다. 비결은‘ 그분과 함께 있는가’입니다. 사다리는 위치이지만, 하나님의 임재는 관계입니다. 그래서 질문이 바뀝니다. “나는 지금 사다리 어디쯤 있는가?”에서 “지금 이 자리에 누가 나와 함께 계신가?”로 바뀝니다. 그 질문이 바뀌는 순간, 사다리는 심판대이기를 멈추고 다시 그저 도구가 됩니다.
1세기 초대교회의 식탁에는 세상에서는 결코 함께할 수 없던 주인과 노예, 로마 시민과 이방인, 가진 자와 부유하지 못한 자들이 한데 모였습니다. 그 안에서 세상의 계급장을 모두 떼어내고 서로 '형제와 자매'라고 불렀습니다. 복음 안에서 받은 환대와 존엄과 소속감이 가득한 사람들이 보여준 파워는, 로마 시민과 황제에게 큰 도전을 던져 주었습니다. 그리고 로마 제국 전체를 뒤흔드는 거대한 능력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1세기 그 오랜 식탁의 후예들입니다.
맺는 말: 세상은 평생 묻습니다. “너는 지금 사다리 몇 번째 칸에 있느냐.” 오늘 복음은 대답합니다. “나는 이미, 가장 높은 곳에 있습니다.” 우리는 바닥에서 꼭대기를 올려다보며 출발하지 않습니다. 이미 꼭대기에 서서 일상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식탁의 환대는 문밖으로 흘러넘쳐 곧 선교가 됩니다. 사다리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한 사람을 세상은 눈여겨봅니다. 그때 우리 삶이 곧 초대장이 됩니다. 사다리 앞에 설 때마다 기억합시다. 나는 값을 치르고 사신 바 된 사람입니다. 나는 이미, 가장 높은 곳에 있습니다.
적용 나눔) 요즘 나를 가장 불안하게 하거나 작아지게 만드는 ‘사다리’는 무엇입니까? (예: 직장·승진, 자녀·성적, 비교, 경제, 건강 등) 그 사다리 윗칸에 매달아 둔 ‘나의 값’을 떼어 내고, “나는 이미 갈보리에서 값이 치러진,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으로 살아간다면 - 그 자리에서 나의 말과 태도는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요? 구체적으로 한 가지를 나눠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