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증인 탈출기
1972년 8월 어느날 똑 똑 똑... 제가 대구 상고 2학년 재학 중에 어느 여호와의 증인으로 부터 전도를 받게 되었습니다. 1975년에 세상에 종말이 오며 참 종교인 여호와의 증인만 구원 받아 지상낙원에 살게 되기에 성경을 공부해야 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전도자와 더불어 여호와의 증인 진리 책을 6개월간 공부하기 시작 했고, 그러자 저도 모르게 이 종교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결국 1973년 8월에 정식으로 침례를 받아 제가 여호와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워치타워 협회(여호와의 증인 교육기관)에서는 그 당시 고등학교에서 시행하는 군사 훈련(교련)을 해서는 안 된다기에 전 어쩔 수 없이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고향인 성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학교를 중퇴 하자 저의 어머니는 나는 내 아들의 졸업장을 꼭 받고 싶었다며 눈물을 흘리셨고, 이어서 박해가 심각했기에 전 고향에 있지 못하고 객지인 대구에서 공장에 다니면서 종교 생활을 계속했습니다.
그러던 약 3개월 후. 저의 부모 형제도 여호와의 증인의 전도를 받아 신자가 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접하게 되었고 그래서 자연히 고향인 성주로 들어가 종교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성주 교회는 어느 가정집에서 시작했으나 저의 열정으로 나중에 신자가 불어나자 회관을 얻어 집회를 보게 되었습니다.
회관 운영비용도 제가 노동하여 번 돈으로 충당하기도 하는 등 협회로부터 능력을 인정받아 그 당시 18세에 불과한 저에게 교회 감독자 직책을 주면서 충성을 유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약 3년을 충성스럽고 즐겁게 종교 생활하였고, 그러다가 개인 사정으로 대구 신암 동 교회로 이사가 연합하게 되었습니다.
전 이곳에서도 열심히 전도 하였고 교회 생활에서도 남다르게 충성을 다하였습니다. 심지어 교회 건축일과 협회 신축공사장에도 봉사하면서 마치 교회일이 곧 나의 일처럼 그렇게 이 종교에 헌신하면서 전도도 열심히 했습니다. 이렇게 그동안 10년을 열심히 전도했지만 전도에 효과는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던 1982년 5월 9일 “효과적인 전도 봉사”라는 주제로 6개월간 연구한 논문을 써 협회로 보냈습니다. 다만 저는 이 논문이 채택되어 전도가 효과가 있어 여호와의 증인 종교가 부흥되길 바랐을 뿐 이였습니다.
이 논문이 협회에 전해지자 대구 대회 회관에서 협회를 대표하는 장로 세분과 심도 있는 토론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토론이 무려 3회에 걸쳐 있었고. 결국 마지막 결론을 내리면서
이때 장로들은 “신 형제! 신 형제의 동기와 아이디어는 참으로 휼륭합니다. 그러나 이 논문을 여호와의 증인들이 알게 되면 그동안 협회의 전도 방식이 잘못됨을 발견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불만이 표출되어 큰 소동이 발생됩니다. 그래서 협회에서는 신 형제를 어쩔 수 없이 제명처분 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참으로 저는 이 말에 어이가 없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청춘을 다 바쳐 이 종교에 온갖 방법으로 충성을 다 했건만 온다하던 지상 낙원은 고사하고 돌아온 건 제명 처분이라니 기가 막혔습니다. 결국 이 토론 끝에 저는 재명처분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전 부당하다며 이의 신청을 협회에 세 차례나 했지만 이제는 배교자라는 누명까지 씌어 재명처분을 공식화 하였습니다 그리고 모든 여호와의 증인인은 저와 어떤 대화도 금해야 한다고 지시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명되는 그날 교회 바닥에서 온종일 억울하고 서러워 통곡했습니다. 그동안 저는 이런 종교 단체라는 것을 전혀 몰랐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동안 저를 믿고 이 종교 신자가 된 부모 형제도 제가 사탄 마귀가 들었다면서 가까이 하지 않았을 때 그 서러움이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한없이 울면서 지난날 생각하니
마을 곳곳을 다니며 전도 하던 날. 학교를 중퇴 했다며 삼촌에게 하루 종일 폭행을 당했던 날. 형한테 맞아 코피를 흘리든 일, 집에서 쫓겨나 잘 곳이 없어 거리로 방황했던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지나갔습니다. 그동안 저는 종교에 충성하다 보니 세상친구도 없었고 유일한 친구란 여호와의 증인들 이였는데 이 모든 것이 한순간 사라져 이제 하늘아래에서 유일한 외톨이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이후 너무 외롭고 슬퍼 눈물로 세월을 보냈습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너무나 억울하였고, 과연 제가 이런 고난을 격어야 하는 큰 죄를 지은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돈벌이도 집어 치우고 이 모든 해답을 하나님에게 직접 얻기 위하여 대구 앞산 공원에 가서 기도로 답을 얻고자 했습니다. 기도 하고 성경 읽고, 기도 하고 성경 읽고 이렇게 몇 날을 그렇게 했습니다. 그리고 가끔 과거를 생각하다가 슬퍼 질 때는 실컷 울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늘에서 빛이 내려 왔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에서 재명된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축복된 일이라는 것을 하늘이 저를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할렐루야 ! 그리고 또 계속 빛이 내려 왔습니다. 그리고 이 빛을 논문으로 작성했습니다. 제목도 붙였습니다. “20세기 여호와의 증인의 보고서” 라고 말입니다
저는 이 논문으로 속고 있는 우리 여호와의 증인 형제들을 구해 내겠다고 단단히 마음먹었습니다. 저는 그 당시 젊고 미혼이라 영적 사업을 하다가 빈 털털이가 되어도 다시 제기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과감하게 살던 전세방을 털어 여호와의 증인 구제사업에 투자 했습니다.
그래서 1984년 6월 한국일보와 경향신문에 광고를 내고 논문 8,000부를 인쇄를 하여 제가 쓴 논문을 여호와의 증인들이 읽어 보도록 유도 했습니다 약 200명의 사람으로부터 편지가 와 저의 논문을 보냈습니다. 이때 워치타워 협회도 이 논문을 신청하여 우송했습니다.
그러자 협회는 난리가 났고 완전히 초상집 분위기 였습니다. 이 논문을 읽은 여호와의 증인들이 속속 탈퇴를 하면서 그동안 속았다고 항의가 대단히 거세였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이 논문을 읽은 서울 노량진 교회 감독자는 집회 도중에 우리가 속았다고 실토하여 그 교회가 나중에 폐쇄되기도 했습니다. 이 사태에 대하여 어쩔 줄 모른 한국 협회는 이러다가 이 논문이 전 한국에 신자들이 읽게 되면 하루아침에 이 종교가 무너질 것 같아 이 사태를 수습코자 이 논문을 영어로 번역 미국 본부로 그해 긴급 보냈습니다.
결국 미국 본부에 있는 17명의 통치 체 성원(전 세계 여호와의 증인 최고 책임자들)들도 이 논문을 읽고는 “대항할 수 없음”이라는 결론을 내렸고 전 세계 여호와의 종교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이 논문을 읽지 못하게 하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1985년 5월 전 세계 210개국으로 매월 2회 출판되는 파수대에서 2회 연속 특별 기사화 하여 이 논문을 여호와의 증인들이 읽지 말 것을 강력히 지시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도 불안해서 그 해 10월 미국 워치타워 협회 본부에서는 최고 책임자가 직접 한국에 와서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약 만 명의 신도들과 특별 집회를 가지면서 이 논문을 절대로 보지 말 것을 독려 했습니다
그 당시 한국에 여호와의 증인들은 이구동성으로 도대체 어떤 논문 이길래 전 세계가 벌벌 떠는지 궁금하다고 했어나 협회에서는 워낙 철저히 이 논문이 여호와의 증인들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막고자 혈안이 되다 보니 이 논문이 그 당시 여호와의 증인 전부에게 알리지는 못했습니다. 그 래서 저는 이 논문을 대구 체육관에서, 대전 충무 체육관에서, 서울 잠실 체육관에서, 이 종교 집회를 하는 도중에 뿌리고자 시도 했지만 몇 부 전하지도 못하고 모두 강탈당하였습니다. 이 강탈에 가담했던 어떤 장로는 우연히 이 논문을 읽고 이 종교에서 탈퇴 했다는 후문도 있었습니다.
아무쪼록 그 당시 이 논문으로 여호와의 증인 종교에 지진이 일어난 것은 사실 이였기에 협회에서는 여호와의 증인 역사 120년 동안 전례가 없는 일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처음에 대구에서 이 사업을 시작했으나 이 논문을 읽은 어느 독자의 도움으로 서울에서 사업을 3개월 더했고, 그 당시 고(故)탁명환 교수와 더불어 많은 교회에 가서 여호와의 증인의 독성에 대하여 강의를 하면서 여호와의 증인 구제사업을 하였습니다.
약 3개월 후 워치타워 협회를 국제 종교 범죄 단체임을 서울 검찰청에 1083명의 동의를 받아 고발을 하고 고향으로 내려 왔습니다.(조선일보 1985년 7월 17일) 그리고 1994년에 여호와의 증인 교리의 허구성을 더 많이 깨닫아"워치타워 비밀"이라는 소 책자를 만들어 수년동안 신문 광고와 인터넷으로 운동을 더 하였습니다 그동안 저의 운동으로 지금도 인터넷에 저의 논문이 돌아 다니는 것을 봤을때 진실은 승리하고 언제 까지나 살아 있음이 증명되었습니다
그리고 현재 언젠가 하늘이 허락한다면 죽기 전에 다시 한 번 이런 영적 운동을 하여 워치타워 협회에 속고 있는 우리형제 자매들을 구해 내고 싶습니다. 어디까지나 하늘이 지혜와 능력을 주신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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