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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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진합태산 작성시간11.05.12 이런류의 해석을 자주 봅니다.
그런데 이 해석을 하시는 분들의 실수는 늘 문맥을 살핀다는 핑계로 말라기 1장1절 부터 살피면서 해당 성구까지는 잘 오시는데,
정작 해당 성구의 다음 구절11절과 12절은 간과하시는 경향이 두드러집니다.
이 성구는 지나가버리고 여러가지 생각을 같이 첨부해서 십일조하기를 흐리는 방향으로 몰아갑니다.
10절에서 12절을 자세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 구절에 제사장이 끼어들 여지가 있는지, 그 구절을 통해서 제사장의 그릇됨을 지적하는 것이 성립이 되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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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진합태산 작성시간11.05.12 그 구절에는 [너희 온 나라가...]가 기록되어 있고,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하고...] 등을 기록하여 그 대상자가 온 이스라엘 백성임을 분명하게 하셨고,11절에서 토지소산과 밭의 포도나무를 기록해서 제사장이 아닌 일반 백성을 더 확실하게 밝히셨습니다.
12절에서는 그 혜택이 땅의 아름다움으로 열방에게 부러움을 받게 하신다고 더 증거하셨는데...
이 정도를 읽는다면 말라기 1장에서 3장 앞부분까지 억지로 끌어들여 해석을 흐리게 하실 이유가 없어 보입니다.
죄짓는 사람의 층층은 제사장에서 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골고루 있는 것이고, -
답댓글 작성자 진합태산 작성시간11.05.12 특히나,
십일조의 기원은 창세기 2장에서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에서 시작하신다면 십일조를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하는 문제는 내 주머니에 있는 돈을 내어놓나 안내어놓나 하는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알게 하시려는 하나의 배려라는 것을 충분히 읽을 수 있다고 봅니다.
일주일의 십일조로 주일을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으로 온전히 드리듯이, 나의 전부에서 십일조를 겨우 물질로 표시해 드리는 것이라면, 하나님을 상관하지 않고 전부 자기 것으로 생각하여 움켜쥐고 자기 주장대로 주관대로 사는 생활이 결국은 선악과를 탐한 그 심보라는 것을 생각해봐야합니다. -
작성자 미소22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1.05.16 진합태산님 말씀 감사합니다. 저는 이런 견해도 있다고 글을 올린것이고... 논쟁을 벌이자는 의도는 아닙니다 ^^ 또한 목회자를 비판하기위해 올린글도 아닙니다.
글전체의 일부분을 발췌 해서 오해의 소지가 있을수도 있다고 봅니다.
십일조를 형식에 얽메여 하는 것이 중요치 않다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운전을 하면서 신호나 규칙 교통법을 지키는 것은 당연하지만
교통법규를 지키기 위해 운전을 하는 바보는 되지 말자는.. 그런 말을 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비슷해보여도 엄연히 다른거니까요..... -
작성자 강릉예명 작성시간11.05.13 맥아더목사의 글을 정확히 옮겨썼는지는 몰라도 다른 것도 의아스럽지만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의 일을 드린 것에 대해서는 성경적인 해석이 아니라 자의적인 해석임이 분명하군요. 히브리서가 그 일을 신약교회에 여전히 교훈이 되는 일로 십일조가 레위적이기보다는 멜기세덱에게 속한 일이며 그것이 메시야 사역에 감사하여 드리는 것임을 설명하고 하나님이 메시야를 통해 주신 축복을 감사하여 드리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그의 저런 해석은 성경적이지도 신약적이지도 않은 자의적 해석이 아닌가요. 맥아더의 다른 책에서도 가끔 잘난 척하는 자의적 해석이 엿보여서 아쉽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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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미소22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1.05.16 네... 위에서 말씀하신것처럼 조성기님 십일조 부인하셔서 목사안수 거부되셨다합니다. 조성기님께서 조누가란 이름으로 쓰신 십일조를 넘어서라는 글을 우주현 목사님께서 요약하신것을 전체가 아니라 부분 발췌한 것이고요.. 저의견해는 집사님의 예화부분 입니다. 강릉 예명님이 말씀하신것처럼 십일조를 부인하려는 저의를깔고... 이거 아닙니다.
대부분의 목사님들께서 십일조를 강조하시지만 안티 십일조 주의의 목사님들도 많습니다. 저는 일반 평신도들도 이런 관점이 있다는 걸 알기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올린것임니 다.
일반교회에서 똑 같이 헌금 십일조 신앙 생활하는 평신도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