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과 한국장로교회의 교단별 성령론에 대한 비교
칼빈과 한국장로교회의 교단별 성령론에 대한 비교연구
조봉근 (광신대학교/조직신학)
논 평 유정선 (한국성서대학교/조직신학)
들어가는 말
미국 구-프린스톤 신학교의 변증신학자, 비 비 워필드 박사는 그의 책, '칼빈과 어거스틴'1)의 부록에서 이르기를, '존 칼빈'(John Calvin)이야말로 '성령의 신학자'라고 말했다. 그런데 칼빈의 신학을 표방하고 있는 한국교회의 장자교단, 이른바 '한국장로교회'의 각 교파의 신학자들은 정녕 칼빈주의 신학과 '칼빈의 성령론'을 어느 정도 수용하고 있으며, 활용하고 있는가? 이른바 4대 교단인 합동교단, 고신교단, 통합교단, 기장교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신학자들의 문헌을 중심으로 분석하려고 한다.
이미 출판된 총신대학교 서철원2) 교수의 '성령신학'3)과 차 영배 교수의 '성령론', 고신대학교 고 재수 교수의 '성령으로의 세례'와 안 영복 교수의 '성령론의 바른 이해'4)와 변 종길 교수의 '성령과 구속사'5)와 유 해무 교수의 '개혁교의학' 안에서의 '성령 하나님'6),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의 김 재성 교수의 '성령의 신학자, 존 칼빈'7)과 조 병수 교수의 '성령으로 사는 그리스도인'8), 백석대학교 최 갑종 교수의 '성령과 율법'(예수?교회?성령)과 유 태화 교수의 '삼위일체론적 성령론'9), 통합교단 두 칼빈주의자인 새문안교회 이 수영 목사의 '깔뱅의 성령론'10)와 장신대학교 최 윤배 교수의 '성령론 입문'을, 그리고 동교의 현 요한 교수의 '성령, 그 다양한 얼굴'과 성 종현 교수의 '신약의 성령론' 등을 다루려고 한다.
합동교단 총신대학교 출신인 광신대학교 조 봉근 교수의 '교의신학과 성령론 논의'11)와 '칼빈의 성령론'12)과 총신대학교 이 한수 교수의 '신약이 말하는 성령'(2009년) 등을 밝히고, 그리고 기장교단 한신대학교 오 영석 교수의 '칼빈의 성령론 이해'(2009년)13)와 연세대학교 김 균진 교수의 '기독교조직신학 III' 안에서의 '성령론'14), 호남신학대학교 황 승룡 교수의 '조직신학(하)' 안에서의 '성령론'15)와 '신학적 성령론', 개혁신학원 정 원태 교수의 '열정 칼빈주의'(정 원태 역, 로이드 존스의 성령세례) 등을 비교하여 다루려고 한다.
그리고 1984년 1월에, 서울 '사랑의 교회'의 옥 한흠 목사가 주관한 제5회 강남지역연합집회의 '신앙강좌의 주제'가 '성령운동'이었다. 여기에 나온 강사들은 손 봉호(성령 하나님), 이 종윤(성령과 기적), 박 윤선(성령과 예언), 김 명혁(성령과 악령), 홍 정길(성령과 성령세례), 옥 한흠(성령과 방언) 목사였다.
또 '월간목회'의 박 종구 발행인은 1994년 2월호에, '특집: 한국교회 성령론을 말한다.'라는 주제로 특집대담(패널토의)에 3인(권 성수, 이 영훈, 이용남)과 논문발표에 4인(현 요한, 박 형용, 이 상훈, 이 승구)을 세워 성령론을 다루었다.
그리고 1996년 4월에 제27차 '한국복음주의신학회'에서 '현대 성령론 평가'라는 주제 아래, 각 분과에서 '논문발표와 논평'이 있었다. 여기서 숭실대학교 김 영한 교수가 "개혁신학의 성령론"16)을 발표하였다.
김 영한 교수는 "바르트는 정통적인 성령론의 기반 위에 있으나 성령의 독특한 위격으로서의 사역을 인정하지 않는다."17)고 논평하면서, 또 가톨릭 신학자인 칼 라너(Karl Rahner)18)를 인용하여 그들은 동일하게 '성령의 인격성'을 부정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래서 "바르트는 성령의 제3위됨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바르트는 위격이라는 개념이 주체의식을 나타내기 때문에, 성령을 제3의 '존재방식'19)이요, 제3의 영적 주체가 아니라"20)고 기술하고 있음을 밝혔다.
또 그는 "존 칼빈의 은사론"21)을 설명하고 있다. 한편, 2010년, 장로회신학대학교 김 명용 교수는 '바르트의 성령 이해'22)라는 논문을 썼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는 '바르트의 성령론'을 깊이 연구하지 못했다. 오로지 추상적으로 '하나님의 나라'에만 초점을 맞추고 끝냈다.
이것은 필립 로사토의 '바르트의 성령론'23)과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필립 로사토는 '바르트의 성령론'을 세밀하게 분석하였다. 예를 들어, 필립 로사토는 3부로 구성된 그의 책에서, 특히 제2부 바르트의 '교회 교의학의 성령론'에서,
1. "성령과 삼위일체론과 경험"의 문제를 다루고 나서,
2. "성령과 예수 그리스도와 선택"의 문제를 다루었으며,
3. 성령과 인간의 실존과 윤리학"를 다루었고, 마지막으로
4. "성령과 교회(Church as Parousia)와 본체론"을 다루었다.
구 대신교단 안양대학교 이 은선 교수도 '칼빈의 성령론'24)을 썼으며,
이 논문에서 특별히 '성령과 성화'25)를 다루었고, 또 칼빈의 '성령과 은사'26)를 심도 있게 언급하였는데, 여기서 이 은선 교수는 "칼빈의 성령의 은사에 대한 논의는 로마 가톨릭과 재세례파 사이의 중도의 길로 모색되었다.
로마 가톨릭에서는 모든 성령의 역사와 은사를 교회의 제도에 묶어버렸고, 재세례파는 말씀과 분리된 성령의 독립적인 계시를 주장하였다."27)고 분석하였다.28) 그리고 숭실대학교 김 은수교수는 '성령의 사역'을 '구원론의 차원'을 넘어서 '성경의 영감론'에서도 다루었는데, 즉 '칼빈 신학에 있어 성경과 성령의 관계성에 관한 고찰'29)이라는 논문이다. 저자도 이미 '칼빈의 성령론'30)을 쓰면서 '성령의 사역'으로서 '성령의 영감론'(유기적 영감과 성령의 내적 증거)까지를 다룬바 있다.
1. 박형룡 학파의 성령론(A Pneumatology of Hyung-Nong Park's School)
박형룡 학파의 원조인 박형룡 박사는 그의 교의신학 구원론31)에서 약간의 성령론을 다루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이에 관한 단권으로 된 저술을 남기지 못했다. 총신대의 성령론 논쟁은 전 총신대의 교의신학자 차영배32) 교수와 서철원33) 교수 사이의 서로 다른 견해에서 심화되었다.
사실, 서철원 교수는 서울 청담동 개혁신학연구원 교수 시절부터 정원태 교수와의 견해 차이로 심각한 논쟁이 있었다. 개혁신학연구원의 정원태34) 교수는 영국의 로이드 존스와 존 스토트의 성령론을 매우 좋아하였다. 이로 인하여 광주중앙교회의 소강당에서 있었던 서철원 교수의 강의와 당시의 광주시 목회연구회의 목사회원들의 질의는 격렬했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그 토론회가 어제의 일같이 눈에 선하다. 필자의 판단은 당시에 서철원 교수의 견해35)가 개혁신학의 노선에서 조금도 이탈한 것이 없었으나 반대의 입장에 서 있는 '은사주의자들'을 바르게 가르치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바로 총신대학교에서 '개혁신학연구원'과 똑같은 사건이 재현된 것이다. 헬만 바빙크의 교의학을 서철원 교수와 차영배 교수는 화란에서 똑같이 연구하였으나 유감스럽게도 헬만 바빙크가 가지고 있었던 포용력이 둘 다 모두 부족하였다.
차영배 교수는 아브라함 카이퍼의 '성령의 역사'에 나오는 '성령의 논리'를 비판하면서 클라스 스킬더의 성령론의 입장을 따랐다. 이른바 오늘날도 '성령강림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으며, 기도하는 것은 죄가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그는 이른바 아브라함 카이퍼(화란)와 리차드 개핀(미국)36)과 존 스토트(영국)의 '성령강림의 단회성'(once for all)을 강하게 비판하였다. 그의 신학적 논리는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고, 재미가 있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개혁신학자들의 전통적인 주장과 다른 논리를 펴고 있었다.
1992년 10월 19일 광신대학교의 전신인 광주개혁신학연구원의 전체 교수단은 당시 개혁측 목포노회의 질의서에 대한 답변형식의 논문을 제출하였다. 이른바, "성령의 권능이 임할 때, 나타나는 현상들"에 대한 "개혁주의 입장에서의 고찰과 비판"이라는 논문이었다.
그 내용은
제1장 성경신학적 관점에서의 고찰과 비판,
제2장 조직신학적 관점에서의 고찰과 비판,
제3장 교회사적 관점에서의 고찰과 비판,
제4장 '입신'에 대한 개혁주의 입장에서의 요약적 결론이었다.
당시, 이 논문 작성에 참가한 교수는 초대 총장을 역임했던 정 규오 박사를 비롯하여 주 현철, 윤 종한, 고 광필, 문 영주, 정 준기 교수등 6인이었다. 그 때에, 조직신학의 조 봉근 교수는 영국에서 아직 귀국하지 아니했다.
한편, 광신대학교의 조 봉근37) 교수는 1995년 8월말에 귀국하여 '성령론'에 관한 박사학위논문 발표회를 채플에서 가졌고, 다시 '성령론'과 '구원론' 과목을 강의하였으며, 드디어 2007년 10월에 광주 ENM38)에서도 강사로 초청을 받아 강의한 '성령론' 강의록의 제1절에서 "성령의 은사란 무엇인가?39)"에 대한 질문에 답하기를,
첫째, 성령의 은혜는 성령의 일반적 은혜와 성령의 특별한 은혜가 있다.
둘째, 신자의 공통적 은혜(단수)와 신자의 개별적 은사들(복수)을 구별해야 한다. 구속의 은혜는 모든 성도가 일반적으로 받는 성령의 역사요, 은사들은 성도 개개인이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서 지체로서 받는 성령의 역사이다.
셋째, 성령의 은사는 3가지로 나눌 수가 있는데, 영구적 은사와 반영구적 은사와 임시적 은사가 있다.
넷째, 영적 은사는 한 사람이 모든 은사를 받지 않는다. 은사는 지체가 여럿이듯이 교회의 지체인 성도들이 서로 다른 은사를 나누어서 받는다. 이것을 은사들의 상이분배의 원리라고 한다. 그러나 한 사람이 반드시 하나의 은사만을 받는다는 원칙은 없다. 만일, 한 사람이 두 가지 이상의 은사를 받을 때, 동시에 두 가지 이상의 은사를 받을 수도 있으나 어떤 은사는 먼저 받고, 또 다른 은사는 나중에 받을 수도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은사만 받고 다른 은사를 받지 않는 사람이 있고, 또 다른 은사를 받는 사람이 있다. 이미 받은 은사가 계속될 수도 있고, 중지될 수도 있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두 가지 이상의 은사는 두 가지 이상의 성령세례가 아니라 한 성령세례 안에서 이루어지는 서로 다른 은사를 시간을 달리하여 수여받는 성령체험인 것이다.
다섯째, 은사를 주시는 분은 성령 하나님이시지만 은사를 소원하는 사람이 기도할 수 있다.40) 물론, 성령세례는 하나님께서 단독적으로 즉, 주권적 의지로 주시는 은혜이기 때문에 인간의 노력이나 인간의 소원과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조건적으로 거저 주시는 것이다. 은혜와 은사들을 주시는 목적은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한 것이다. 즉 다른 지체와 더불어 전체를 유익하게 하시려는 목적이 있다.
여섯째, 성령세례는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로 믿는 사람에게 예수님께서 베푸시는 세례이며, 이 세례를 받았다면 그리스도인이 되는 표지가 된다.
그러므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이요,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이라면 두 말할 필요 없이 그리스도인이다.
일곱째, 그렇다면 영적 은사들은 무엇인가? 성삼위 하나님께서 먼저 성령세례 받은 그리스도인에게 교회의 직임과 사역을 수행하라고 주시는 각양의 서로 다른 은사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고 각 사람에게 주시는 재능과 구별이 된다."라고 말한다.
조봉근 교수는 제2절에서 "은혜의 방편은 무엇인가?41)"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기를, "우리가 성삼위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는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성령의 은혜의 방편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허락하신 최상의 은혜로서의 방편(통로)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함으로 온다(케류그마). 즉,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말씀을 내용으로 교회에서 공적으로 전파되는 말씀을 말한다. 따라서 은혜의 수단이 되는 말씀 선포는 성경 말씀을 그 내용으로 선포되어져야 하며,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전달될 때, 영적 권위를 가질 수 있다. 우리가 마땅히 선포해야 할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핵심으로 준비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설교는 하나님의 임재의 표요 그리스도의 통치수단이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이 순수하고 신실하게 선포되는 곳이다. 첫째, 인간의 마음속에 죄를 상기시켜 회개를 일깨우는 몽학선생 같은 율법42)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와 부활을 믿는 구원에로의 복음43)을 누리게 한다. 둘째, 성례(성례와 성찬)를 통하여 우리에게 은혜를 허락하셨다. 먼저, 세례는 죄를 씻는 것과 그리스도의 신비적으로 영적으로 유기적으로 연합하는 것이요, 교회에 가입하는 것을 의미하는 그리스도인의 입교 예식이다. 그리스도께서 공적으로 친히 받으신 물세례를 우리도 받음으로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고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음 받은 표인 것이다. 다음으로, 성찬은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과 육체의 부활을 믿고 기념하고 영원한 생명에로의 참여하는 의미로 베푸는 예식이다"44)라고 말한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성령님께서는 어떤점은 죄인의 영혼을 단독적으로 직접 역사하시지만, 때에 따라서, 신적 은혜와 은사들을 베푸심에 있어서, 제2원인이 되는 방편들을 사용하시는 경우도 있다. 이것을 가리켜서 '방편적 사역' 혹은 '응답적 사역'이라고 한다.
성도가 기도하는 일은 이러한 측면에서 성령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에 반응하는 사역이며 우리가 기도하는 것도 성령의 역사이다(롬8:26-27)".
또, 그는 제3절에서 "신구약 성경에서의 방언은 무엇이며, 방언에 대한 용례는 어떤가?45)"에 대하여 대답하기를, "구약에서 언급되고 있는 방언들은 대략 29회에 걸쳐서 표현되고 있는데, 가장 많이 나오는 성경이 구약의 묵시록이라고 할 수 있는 다니엘서에 8회46)가 나오며, 이들은 모두 '다른 나라의 말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창세기(10:5, 20, 31)에 나오는 방언, 열왕기하(18:26, 28), 에스더(1:22, 8:9), 시편(114:1), 이사야(예외방언; 19:18, 28:11, 33:19와 일반적 방언; 36:11, 13)와 예레미야(5:15)와 에스겔(3:5, 6)과 스가랴(8:23)에 나오는 방언들도 모두 '다른 나라의 말들'을 가리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사야(19:18, 33:19)에 나오는 세 구절의 방언들은 아직 희미하게 계시되어 있지만 사도행전에 나오는 여덟 구절들의 방언들47)처럼 문법적인 구조를 가진 '다른 나라 말들'이라고 보이지 않고, 고린도 교회48)에 19번 나타난 '영적 은사로서의 방언들'처럼 보여 진다.
사도행전에도 10:46, 19:6의 말씀은 다분히 '영적 은사로서의 방언'으로 보여 지고 있다. 그러나 7차례 나오는 요한계시록에서는 모두 '다른 나라의 말들'49)로 보여 진다.
그러나 복음서에서는 딱 한번 나오는 마가복음(16:17)의 방언은 역시 '영적 은사로서의 방언'으로 해석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는 계속하여 제4절에서, "방언의 구속사적 의미는 무엇인가?50)"에 대하여 답하기를, "창세기 11장 1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하나의 언어(구음)를 주셨다.
그러나 인간은 창세기 3장에서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서 창세기 2:17절에서 금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고, 즉 일차적으로 말씀의 단절을 획책하였고, 창세기 6장2절에서는 경건한 하나님의 아들들이(셋의 자식들) 불경건한 사람의 딸들(가인의 여식들)과 잡혼(불신결혼)함으로서 하나님과의 영적 관계를 단절하기 시작했고(창6:3), 창세기 11장에서는 타락한 인간들이 대동단결하여 바벨탑을 쌓아 인간의 이름을 내려고 하나님께 도전하고 반역하다가 급기야 하나님의 심판으로 언어가 혼잡하게 되었다(창11:7, 9)
그러므로 사도행전 2:4절에서 일어났던 오순절의 성령 충만한 역사와 방언현상과 제자들이 설교할 때, 각 사람의 방언으로 알아듣게 된 것은 "말씀과 성령 안에서" 획기적으로 구속 사건이 일어난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말씀의 단절과 영적 단절이 회복되는 증표로서 그들이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한 것이다(행2:4).
사탄의 유혹하는 말과 악령의 역사는 우리를 하나님과의 관계로부터 단절시키지만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와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다시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를 회복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행전 2장 이하에 계속해서 나타나는 방언 현상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즉 이방인들에게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구속 사역과 영적 관계의 회복을 의미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의 방언 현상은 일반 언어였다. 다시 말해서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은 일반 문화에서 쓰고 있고 '문법적인 언어'였다.
이것은 '인간을 상대로 설교할 때, 나타나는 방언'이기 때문에 '진성방언'(眞性方言)51)인 것이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에 나타났던 '영적 은사로서의 방언'은 반드시 통역이 수반되어야만 방언으로서의 가치와 계시의 신적인 권위를 인정하게 되는 '간접방언'이기 때문에 '유사방언'(類似方言)52)이다. 그런데 고린도전서의 모든 영적 은사들은 계시의 신적인 성격을 가진은사들이다.
그런데 고린도전서 14장에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은 고린도교회의 방언은 '예언'과 같이 하나님의 '계시'를 가진 '설교방언'(통역을 겸한 방언)과 영음으로서 '하나님과 영적 교제'(기도의 기능)를 가지는 방언(對神方言) 즉, '방언기도'로 나눌 수 있다. 그러므로 신구약 성경이 완성된(정경이 확정된) 지금은 더 이상의 새로운 계시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53), '계시의 기능'으로서의 방언현상을 받아들일 수 없다.
우리는 신구약 성경 66권을 가지고 모든 족속과 나라와 방언이 하나로 통일되고 구원이 완성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각 나라의 방언으로 기도하고 있으니, 이와 같이 복잡하고 상호교통이 어려운 현상은 종말에 가서 끝이 날 것이
다. 즉 영원한 천국에 가서 '하늘나라의 방언'(영음)으로 통일될 것이나 지금은 전체적으로 모든 성도가 경험하는 것은 아직 아니다.
그러나 성령 안에서, 어떤 사람에게는 '은사로서의 방언기도'가 가능하다고 본다(고전14:2). 그러나 사도 바울은 고전 14:14에서 방언기도가 '열심히 기도하는 은사'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고전14:5, 18, 39), 또한 방언기도의 열매에 대해서 언급한다. 즉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14:14)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14장 15절에 이르기를, ‘효과적인 방언 기도의 방법’으로써 ‘영과 마음’을 함께하여 기도하라고 당부하고 있다. 즉 ‘...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14:15)는 것이다. 방언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종종 망각하는 것은 ‘영으로 기도하거나 영으로 찬미 할 때’ 자기가 기도하는 내용을 음미하지 못한 채, 중언부언할 때도 없지 않아 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교훈하는 것은 기도하는 사람은 ‘일반기도를 하는 사람이나 방언기도를 하는 사람이거나’ 동일한 준칙이 있는데, '무아지경'(無我之境)54)에 빠지지 말고, 정신을 차려 의식을 잃지 말고, ‘마음으로(중심으로)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 봉근 교수는 제5절에서 "오늘날 성령의 임재하심은 '단회적'(單回的)인가, 또는 계속적(繼續的)인가, 혹은 반복적인가?55)"에 대하여 대답하기를, "어떤 학생들은 성경을 읽을 때, 유감스럽게도 한 본문이나 어떤 기자의 기술에 집착하여, 성경을 전체적으로 연결하여 이해하고 해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성령의 임재하심'을 이해하는데 있어서도 어떤 신학도는 무조건 '단회성'으로만 보는가 하면 또 다른 신학도는 언제나 '계속성'이나 '반복성'으로 주장하여 한 측면만을 지나치게 강조한다. 이러한 현상은 연약한 인간의 연구와 견해가 시간성과 공간성을 초월할 수 없는 한계상황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마치 지구의 양쪽 끝에 반대로 서 있는 두 사람이 태양의 위치를 동쪽이라고 고집하거나 서쪽이라고 우기는 것과 같다. 태양은 아침에는 동쪽에 있지만 저녁에는 서쪽에 있는 것이다.
성령의 임재하심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성령세례에 있어서는 예수님의 속죄의 죽음과 사역이 단회적 사건이듯이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연합시키는 영적 세례는 단회적 사건이라고 해야 되지만(개인구원에 대한 성령의 사역),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교회 안에서) 거룩한 사역에 동참하기 위하여 필요한 '영적 은사'(성령의 은사)는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계속적이며 반복적인 사건이라고 해야 한다.
영적 은사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와 '복음사역'을 위하여 필요한 직분과 직임을 수행하기 위한 은사이기 때문에, 사모하고 기도하는 신자에게 계속될 수 있으나 인간의 연약성 때문에 태만하면 중지되거나 소멸될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상대적인 측면에서 점진적으로 계발될 수도 있고, 소멸될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상대적인 측면에서 점진적으로 계발될 수도 있고, 퇴보될 수도 있으며 상실한 은사를 다시 회복할 수 있으므로 영적으로 교만하지 말고 직임과 사역을 위해서 필요한 은사를 사모하고 기도해야 한다(눅11:13, 행1:14, 4:31).
그러나 대부분의 영적 은사는 항존적(영구적) 은사라기보다는 사역을 위한 임시적 은사이므로 영적인 긴장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성령님을 의지해야 한다. 필자는 이러한 교리를 이해시키기 위하여 성령론에 관한 조직신학적(통전적) 성경읽기와 해석을 가질 수 있기를 권장하는 바이다.
첫째, 성령세례의 '시여자'(施與者)는 누구인가? 성령의 세례의 '시여자'(施與者)는 성령님이 아니고, 예수님이시다.56) 성령의 활동도 삼위일체의 사역이지만, 성령의 인침은 하나님 아버지의 확인 사역이며(엡1:3-13), 영적 은사인 성령의 은사도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이지만 성령님께서 성도들의 심령 속에서 운전하시는 성령님의 주무사역이다. 그러나 '성령세례'를 시여하시는 분은 예수님이시다.
둘째, 성령세례와 성령 충만은 동일한 사건인가? 한 세례 안에서 교차적으로 일어나는 동일한 사건이면서 구별해야 되는 현상이다. 성령세례는 씨(seed)에 비교할 수 있고, 성령 충만은 성장하는 열매에 비교할 수 있다. 그러나 식물의 경우에 뿌리나 줄기를 심는 고구마나 감자의 경우에 열매이면서 씨가 될 수 있는 것처럼 성령 충만의 경우에 두 가지 측면을 살필 수가 있는데, '본질적인 충만'과 '상태적인 충만'(현상적 충만)으로 구별할 수 있다. '본질적인 충만'은 '영적이며 도덕적인 성장'(엡4:13)을 의미하므로, 주님의 재림하실 때까지, 혹은 성도의 죽음(개인적 종말)까지 계속적으로 성장하면서 진행되지만, '현상적인 충만'은 외형적으로 일시적이며, 단번에 나타날 수 있다.57)
셋째, '간헐적인 충만'과 '습관적인 충만'은 구별되는가? 진정한 의미에서의 온전한 '성령 충만'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 즉 '성령 충만'은 다르게 표현하면 '하나님의 영의 충만'이요, '그리스도의 영의 충만'이다. 우리 성도는 '성령세례' 받은 이후에도 종말 때까지 우리 속에 있는 '죄의 성향'과 부단히 영적 전쟁을 하고 있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영적 사역'에 전심전력으로 집중할 때, 오로지 '성령 충만'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자들은 '영적 긴장과 능력'이 예수님처럼 항속적(영구적)으로 계속되지 않기 때문에 간헐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도덕적으로 연약하여 죄를 범하면 다시 영적으로 침체에 빠진다. 물론 영적으로 다시 회복한다. 결국 우리가 습관적으로 '성령 충만'을 지속적으로 경험하고 유지하려면 계속적으로 기도하며,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고, 또 '영적사역'에 열심히 주력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또, 그는 제6절에서 "오늘날도(오순절 이후에도) 성령의 '일반적 사역'(일반은총)이 계속되는가?58)"에 대하여 답하기를, "성령의 광의적이며 전-포괄적 사역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계속되는 사역으로서 우주 창조 이전부터 있었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작정과 예정 사역에도 동참하였으니 그것이 바로 이른바 본체론적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59)이다. 영원 전부터 계셨던 삼위일체 하나님은 존재(본체)는 한 분이시지만 내재적으로 위격을 구별하시고60),
또한 피조세계(우주, 역사)에서 경륜적으로 일하실 위격들을 자기본체 안에서 스스로 구별하시고61), 또한 하나님의 자기본체 속에서 스스로 계획하시고 삼위 간에 自約(self-covenant)하셨다. 그러므로 성령 하나님께서도 창조사역(창1:1)과 섭리사역(1:2)에 직접 관여하시고 동참하셨다. 여섯째 날에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창조하시고 인간에게 영적 형상을 주시며 하나님께서 주신 '영장권'에 의하여 만물을 다스리도록 명령하셨다(창1:28).
창세기 2:7절은 인간창조에 대한 구체적 사실을 계시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사람을 흙으로 지으시고 사람의 코에 생기를 부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고 증거를 한다. 즉 '하나님의 생기'는 '하나님의 형상'인데, 창조초기부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이 에덴의 동산으로 인도되어, 다른 모든 피조물들을 다스리며 지킬 수 있는 위치와 능력이 주어진 것이다. 즉, 하나님의 섭리사역에 수종하고 동참하는 계기가 '하나님의 형상'에 의하여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섭리사역은 광의적인 관점의 일반(통상) 섭리와 구속적인 관점의 특별(구원) 섭리로 구분할 수 있다. 특별섭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궁극적으로 구원받을 사람들을 위한 구원계획에 따라서 계속적으로 진행되는 과정을 보존하고 협력하며 통치하는 성 삼위 하나님의 사역인데, 구약시대에는 예표이며, 모형적인 모습으로 계시되다가 급기야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속죄의 죽음, 및 육체의 부활과 승천 그리고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구속사의 전 과정이 실현된다.
그러나 광의적인 하나님의 섭리사역은 섭리의 줄기와 핵심이 되는 특별섭리로만 모두 해석하고 설명할 수 없다. 즉 하나님의 섭리는 구원계획에서 유기된 사람들과 다른 피조물들에게 미치는 '일반(통상)적 사역'으로 부연해서 설명을 해야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통상섭리 사역에도 성령 하나님께서 동참하시고 도모하신다.
신학적으로 이와 같이 '성령의 일반적 사역'으로 미치는 은혜를 보통은혜(일반은총)이라고 한다. 보통은혜는 문자 그대로 일반적으로 모든 피조물들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은혜이다(마5:44-45, 히6:4-8). 그러나 이들은 특별은혜(특별은총)에서 얻게 되는 궁극적 구원은 누릴 수 없다.
공의로우신 성령 하나님께서는 궁극적으로 구원받을 사람들에게 영구적으로 임재하시며(요14:16), 성령세례(성령의 印침)로 인하여 성도의 심령에 내주(內住)하신다. 그러나 구원받지 못할 사람들과 모든 피조물에게도 성령의 일반적인 사역을 통해서 일반적인 은혜를 주신다. 그래서 그들도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일반은총에 의하여 도덕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도덕적인 죄를 억제하며, 불충분하지만 사회정의와 질서를 유지시키며, 비록 타락한 문화이지만 학문과 과학 및 예술 분야에서 상대적인 인간의 편리를 도모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궁극적 구원을 깨닫지 못하는 외부적 영향의 수준으로 끝나버리기 때문에 이것을 가리켜서 성령의 외부적 사역 혹은 피상적 사역(히4:4-6)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도 '성령의 차원'에서 두 부류로 분류해야 한다.
첫째는 성령의 항속적(영구적) 임재를 체험한 사람, 즉 성령세례를 받고 궁극적으로 구원받을 성도들이 있는가 하면,
둘째는 성령의 임시적(잠정적) 영향을 받아 잠시 동안 피상적으로 성령의 은혜를 맛 본 사람, 즉 성령의 외부적인 영향권에 있다가 구원받지 못하고 다시 배도할 자가 있다62)."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제7절에서, "성화와 성령 충만, 성령의 은사와 성령의 열매는 관계가 있는가?63)"에 대하여 대답하기를, "먼저, 성화의 경우에, 이제까지 고전적인 칼빈주의는 점진적 성화를 가르쳤고, 알미니안주의에 의하면, 이 세상에서도 완전 성화를 주장하였고, 웨슬리안주의는 양자의 절충안으로 상대적 완전 성화를 주장하였다.
그러나 최근에 보다 발전적이고 개진된 성화론64)에서 설명하는 것은 성화에 있어서도 성화의 양면성이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되고 있다. 즉 성화는 한쪽 측면만 보지 말고 '확정적 성화'와 '점진적 성화'를 조화롭게 설명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확정적 성화와 점진적 성화란 무엇인가? 확정적 성화는 성화의 씨와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확정적 성화는 중생 할 때, 단번에 이루어지는 성령의 단회적 역사이고, 점진적 성화는 중생 이후부터 성도가 죽을 때까지 점진적으로 상승하면서 이루어지는 성령의 계속적 역사이다.
마찬가지로 성령 충만의 경우에 있어서도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 이후에 보면 충만의 씨와 충만의 과정과 완성(열매)이 구별될 수 있다. 성령 충만의 씨는 영구적으로 임재한 성령 세례(직설법)라고 한다면, 동일한 한 세례 안에서 성령 충만(명령법)은 주님의 재림하실 때까지 계속적으로 성장해 가는 성령의 인도하시며 지배하시는 역사이다. 그러므로 성령 세례는 단번에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단회적 사역이며, 변질되지 않는 확정적 세례요, '항속적(영구적) 임재'라는 의미에서의 [성령의 씨(seed)와 성령의 印(seal)이 있는] '확정적 충만'이다. 그러나 성령 충만은 법적 신분의 의미로는 모두가 완전하게 설명되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성령 충만은 실질적 상태로써 완전한 질적 변화가 수반되어야 하는 것이다. 도덕적 윤리적인 측면에서 더 충만한 모습이 있어야 하고 영적인 삶과 사역적인(능력적인) 측면에서도 충만한 실상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진정으로 성령 충만한 분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성령의 본체이시며, 성령의 담지자로서) 밖에 없으므로 우리 성도는 종말 때까지(엡4:13), 점진적으로 변화되고 새롭게 승화되어야 마땅하다. 우리가 더 이상의 부족함이 없다고 인정될 때는 역시 종말 때까지 가야 하므로 사도 바울처럼 오로지 우리는 완전한 성령 충만을 바라보면서 전진해야 할 것이다(빌3:12-14, 엡 4:13, 빌 3:12~14).
셋째로, 영적 은사들에 있어서도 성령 하나님(God the Holy Spirit)께서 주시 는 선물이기 때문에 인간의 자력적인 노력에 의하여 수여되는 것이 아니요, 성령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에 의해서 주시는 단독적 사역이다(고전 12:11). 그런데 광의적 의미에서의 영적 은혜(은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회적이며, 단독적 사역으로 주시는 성령 세례까지를 포함하는 것이다. 성령세례는 인간의 노력이나 탄원에 의해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요, 성 삼위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와 결정에 의해서 수여되며, 인간의 저항과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소실될 수 없는 확정적 은사이다(고전12:13). 그러나 사도 바울은 역시 고린도전서 13장 8절에서 양면성을 증거하고 있다. 즉 영구적인 은사로서의 ‘사랑’을 말하면서, 반면에 임시적인 은사들로서의 ‘예언’과 ‘방언’과 ‘지식’도 겸하여 증거를 하는 것이다(...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다시 말해서 교회의 지체로서 주시는 영적 은사들은 교회를 온전하게 세우기 위한 직임(직분)과 사역을 위해서 주시는 방편으로서의 은사들이기 때문에 그 은사들을 계속적으로 사모하고 기도하며(눅11:13, 행 4:31, 행 8:15, 행 10:45, 고전 12:31), 계발할 수도 있고, 반면에 직분과 사역에 태만하고 이탈할 때, 소멸할 수도 있다(살전 5:19). 결국, 영적 은사들은 계속적으로 새롭게 계발함으로써 풍성히 받을 수 있는 것이다(딛 3:5-6).
넷째로, 성령의 열매에 있어서도 확정적인 측면과 계속적으로 성장하는 측면이 있다. 누구든지 성령 세례를 받은 사람은 열매로서의 성령의 씨(seed)가 단번에 주어진다. 그러나 이 씨는 우리의 심령 속에서 더 큰 열매로서 성장해 간다. 물론, 한 인격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령의 다양한 여러 가지 열매를 이루어 간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무엇보다도 사랑의 열매가 모든 열매를 인도하고 주도하는 역할을 감당함으로써 사랑의 열매와 은사로서의 사랑은 점진적으로 성장의 가도를 올라간다. 성령 충만한 성도는 '사랑의 충만'과 '사랑의 사도'로서의 높은 차원의 성화의 단계와 똑같은 수준의 그라프를 그리며 올라가게 될 것이다.
기독교에 입문하는 수준(중생)에서의 열매와 개인적 종말(성화의 절정: 성도의 죽음)에서의 열매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롬8:18, 23)."라고 말한다. 또, 그는 제8절에서, "중생의 역사와 성령세례는 한 세례 안에서 이루어지는가? 아니면 중생의 세례와 성령세례가 다른 2가지 단계의 세례인가? 그리고 오순절 이전이나 구약시대의 신자에게도 중생이나 회심 또는 믿음의 역사가 있었는가? 또 오순절 이후의 신약시대와 오늘날의 신자는 오직 성령세례를 받아야 중생이나 회심 또는 믿음의 역사가 나타나는가?65)"에 대하여 대답하기를, "결론적으로 말해서, 오순절 이후 신자는 하나의 성령세례 안에서 모든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진다. 즉 성령세례를 받으면 누구든지 회심하며 믿음을 가지게 된다. 왜냐하면 중생도 성령의 역사요 회심이나 믿음도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절대로 나타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령세례는 보다 더 큰 범주로서 모든 구원의 역사를 포함(포섭)하며 중생이나 회심 및 믿음은 그 안에 포섭(포함)된 작은 범주(category)에 속하는 것이다. 성령세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푸시는 유일무이한 세례이다. 한 마디로 성령세례는 '그리스도의 세례'(그리스도와의 연합)인 것이다.
구약의 신자들이 장차 성육신 하셔서 오실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소망의 믿음을 가졌던 것처럼 역시 구약의 신자들이나 오순절 이전의 신자들이 경험했던 하나님의 영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과 육체의 부활 등을 비롯한 구속사의 기나긴 장정 끝에 종말론적으로 이루실 그리스도의 세례 즉 성령세례를 바라보 면서 예비적이며 '모형'으로 있었던 ‘영적 역사의 서막’이었다.
그러나 ‘영적 역사의 서막’ 이라고 우리가 묘사한 ‘하나님의 영’의 광의적이고 전 포괄적인 사역은 실체적 사역(본 무대)에서 이루어진 '그리스도의 세례'(성령세례)와 무관한 역사가 아니요, 바로 연속적이고 연계된 역사인 것이다. 마치 빛이 프리즘의 초점에 맞출 때, 결정적 광채가 일어나지만 빛이 수렴되기 이전에도 빛은 여러 각도에서 비추고 모아져 한 초점을 향하여 수렴되어 오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비유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구약의 신자들(아브라함과 다윗 및 노아, 욥, 다니엘 등)은 '그리스도의 세례'(성령세례)의 대행(예행)사역인 광의적인 성령사역에 의해서 중생과 회심 및 믿음은 가질 수 있었고, 구원을 받아서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그리스도의 세례인 성령세례는 그야말로 수직적인 역사이기 때문에 우리의 노력이나 탄원과 상관없는 신적인 단독사역이며 우리의 의식과 관계없이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이다.
그러나 영적 은사들의 경우에는 우리의 심령 속에 이미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 역사함으로 나타나는 현상들이다. 우리가 전에는 하나님께 기도할 수 없었으나 이제는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탄식하시며 역사함으로 하나님과 영적 교제를 할 수 있으며, 언제 어디서나 무소부재(편재)하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다(롬 8:26-27).
성령 하나님은 초월하시면서 내재하실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에 초월적으로 계셔서 계속적으로 피조물인 우리의 내부로 침투하여 역사하실 수도 있지만 역시 우리 심령안에 내주하셔서 우리를 감동시켜 반응적으로 작용하실 수 있는데, 이것을 가리켜서 성령의 '반응적역사' 혹은 '응답적 역사'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세례인 성령세례를 받기 전에는 근원적인 '영적 은사'(성령의 은혜)를 사모하면서 기도할 수 없었지만 성령세례를 받은 후에는 우리 심령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의 소욕과 역사를 따라서 '영적 은사들'(성령의 은사들)을 사모하면서 기도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가 사모하고 기도하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인간의 육성이나 부패한 인간의 자의지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우리를 독려하여 사모하고 기도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세례인 성령세례를 받기 위하여 또 다시 기도하는 것은 무용한 태도이지만 '영적 은사들'(성령의 은사들)을 받기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당연한 처사인 것이다.
오순절 이후에 살고 있는 신자들은 마땅히 성령세례를 받아야 중생이나 회심 및 믿음이 나타나게 된다. 왜냐하면 성령세례인 그리스도의 세례를 받지 않은 사람은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은 구원받을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속죄와 부활)과 그리스도와의 연합(성령세례)이 이루기 이전과 이루어진 이후 즉 '오실 그리스도'와 '오신 그리스도'는 구원사(구속사)에 있어서, 본질적으로 해석의 차원이 다르다.
실체가 오시기 전에는 모형이 대리적으로 사역을 할 수 있으나 실체가 오신 후에는 모형이 계속적으로 대행사역을 할 수 없는 것이다. 구약시대의 여러 가지 제사의식이 '모형'으로 필요했으며,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예배를 대행하는 구실을 수행했으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속죄제를 완성하신 후에는 오로지 '영적 제사'인 예배만 있는 것이다.
구약시대에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예표'로 기름부음 받은 선지자나 제사상이나 왕이 영역을 나누어서 대행했지만 실체이신 그리스도가 오셔서 이 모든 삼직(三職)을 직접 수행하셨다. 구약시대에는 천사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였으나 신약시대에는 성육신하신 그리스도께서 직접 오셔서 그 하나님의 말씀들을 구체적으로 해석하셨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한 지도자가 하나님의 일을 수행했으나 신약시대에는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제자들과 교회를 세우시고 그들에게 직접 그리스도 영(성령)을 부으셔서 일하게 하신다.
사도바울은 갈4;1-7절까지의 말씀에서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후견인과 상속자의 관계로 비유했다(갈4:4, 갈 4:6). 이와 마찬가지로 성령세례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베풀어지기 전에는 ‘하나님의 영’에 의하여 잠정적으로 중생의 사역이나 회심의 사역 및 믿음의 사역이 '모형'으로(예표로) 있었으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구속사역을 이루시고 오순절 날 성령세례를 주신 이후에는 임시적인 방편들이 더이상 필요 없게 되었다. 물론 성령세례도 넓은 의미에서 성령(하나님의 영)의 사역이지만 본질적인 면에서 속죄사역을 완성하신 이 후에 그리스도께서 주신 세례라는 특별한 의미에서 분명히 구별해야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제9절에서, "우리가 받은 천부적 달란트와 영적 은사는 동일한 것인가? 혹은 구별해야 되는가? 영적 은사들은 몇 가지나 되는가? 또 한 사람이 받을 수 있는 은사는 몇 가지나 되는가? 그리고 우리가 이미 받은 은사는 영구적인가? 혹은 임시적인가?66)"에 대하여 답하기를, "우리가 천부적으로 받은 달란트(재능)는 개성이나 성격(천성)과 같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나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든지 간에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모두 주어진다.
그러나 영적 은사들은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만 주시는 특별한 은사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바로 세우고 복음사역을 위하여 직분(직임)을 수행하기 위해서 주시는 은사들 즉, 영적 사역을 위한 영적은사들인 것이다.
따라서 영적 은사들은 성도의 개인적 유익과 특권을 누리도록 하시기 위해서 주신 은사가 아니라 오로지 영적인 직분과 영적인 사역을 위해서 필요불가결하게 주신 영적사명과 영적 목적의식에서 부 여된 은사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적 은사들을 과도하게 남용하여 믿음이 연약한 신자들을 유혹하거나 오히려 유린하는 영적 무기로 오용하게 되면 종말론적 심판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다(고전 14:33). 은사를 사용할 때에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고전 14:40)고 사도 바울이 가르쳤다.
그러므로 달란트와 영적 은사는 분명하게 구별되지만 음악이나 미술 및 문학적 재능들이 성령으로 중생한 이후에 성별(성화)되고 승화되어 영적 은사로서의 구실을 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서 타고난 재능들이 영적 은사들로 변화될 수 있다. 그러면 영적은사들의 종류는 얼마나 될까? 로마서 12:6-8절과 고린도전서 12:4-11, 28-31과 에베소서 4:11과 베드로전서 4:10-11절 등에서 은사들의 종류를 찾을 수 있으나 사도 바울이 문자적으로 소개한 은사들은 초대교회의 은사들이다.
초대교회는 유년기 교회의 필요한 직분과 은사들을 열거해 놓았다. 그러나 현대교회는 장년기 교회나 노년기 교회라고 가정할 수 있다. 따라서 더 발전한 현대교회는 더 많은 직분과 은사들이 필요하고 계발되어야 한다. 즉 영적 은사들의 종류를 한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왜냐하면 교회봉사에 필요한 직분과 직임은 그 시대와 문화적 환경에 따라 추가될 수 있는 성격에 속한다.
구약시대의 직분과 신약시대의 직분이 다르고 현대교회의 직분들 중에는 구약시대나 신약시대에 없는 것들이 새롭게 창안되어 교회발전과 부흥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모세시대의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 등이 수많은 군중을 효과적으로 통솔하기 위하여 창안된 그 시대의 산물이었다고 믿는다면 오늘날 성령님의 지혜를 통하여 새로운 직분(직임)과 은사들이 창안되고 계발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오늘날 한 사람이 받을 수 있는 은사는 얼마나 될까? 원래,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낸 서신의 가르침에서 깨달을 수 있듯이 모든 은사는 상이분배의 은사들이므로 한 사람이 모든 은사를 소유할 수 없다. 모든 신자가 저마다 모든 은사를 경험하고 사용하려는 영적 욕심을 부린다면 은사가 가지고 있는 지체로서의
특성을 저버리게 되고, 각기 받은 은사대로 겸손히 교회를 봉사할 수 없으며 자주 영적 불만과 영적무질서(혼란)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은사를 받았든지 우리는 그 은혜를 감사하면서 섬기는 자세로 그 은사를 선용해야 된다. 영적 은사는 교회의 공동체를 유익하게 하며, 또 다른 지체들을 유익하게 하는데 선용할 때, 아름답고 선한 은사로서 빛이 나게 된다. 여기서 한 가지 숙고해야 할 사항은 영적 은사가 일인당 반드시 한 가지 은사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직분과 직임이 상승하고 책임분량이 많아질수록 더 많은 은사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행 6-9장 참조).
초대교회 일곱집사 중 스데반은 공궤와 구제를 위하여 임직을 받았지만 나중에 권능의 은사까지도 받고, 설교하다가 순교를 했고 빌립 집사는 타지에 가서 선교사역 및 성경해석과 세례의식도 시행하였다.
다시 말해서 스데반 집사는 지혜의 은사와 믿음의 은사만 아니라 권능의 은사가 첨가되어 큰 권능을 행했다.
또 빌립 집사는 선교사역으로 사마리아 성에 가서 복음을 전파했고, 사도행전 8장 5절에 보면, 에디오피아의 내시(행8:27)에게 이사야서 53장 7-8절 이하를 해석하여 가르치고 물세례까지 베풀었다(행 8;38). 그렇다면 우리가 보편적으로 모든 영적 은사들을 받을 수는 없지만 복음 사역을 위해서 사모하고 기도하면 사람에 따라서 새로운 은사를 또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받은 영적 은사는 영구적인가? 영적 은사의 포괄적인 개념 속에는 영적 은사의 뿌리가 되는 성령세례가 있다.
성령세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중생한 성도에게는 필연적으로 수여되는 보편적 은사요 성령의 특별한 은혜이다. 즉, 성령세례와 같은 영적 은사는 영구적인 은사이다. 또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아가페(사랑)의 은사도 영구적인 은사이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12:28-29절이 시사하고 있는 바와 같이 ‘사도’ 나 ‘선지자’와 같은 직분 은사는 성경을 기록하던 시대에 필요했던 특수한 은사이기 때문에 오늘날 어느 종파나 교파에도 그런 은사는 없다. 만일 오늘날도 사도나 선지자를 호칭하며, 그런 성직자의 명칭을 사용하는 종파가 있다면 그것은 이단일 것이다. 또 자신에게 그러한 명칭을 사용한다면 이단의 교주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나 선지자의 은사는 중지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리고 종말론적 예언이나 방언이나 지식의 은사가 폐하게 될 것을 성경은 명확히 증거하고 있다(고전 13:8). 그러므로 이러한 은사들은 반(半)영구적 은사이든지 직분과 사역을 위하여 임시로 사용되는 은사가 되는 것이다. 다만 방언의 은사에 있어서, 현대적인 방언은 '기도의 기능'으로서의 방언의 역할만을 계속적으로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계시의 기능'으로서의 방언은 중지되었다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
왜냐하면 오늘날도 방언이 계시의 기능으로 유효하다면 신구약 성경은 아직도 정경이 되었 다(완성 되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방언의 은사를 받아 '방언기도'를 열심히 수행하는 성도는 공동체로서의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도고기도'하기를 힘쓰고, 교회의 덕을 세우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리고 방언만이 유일한 영적 은사로 오해하지 말고 또 고차원적 특별한 은사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교만심을 가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14:39절에서 말씀한 것처럼, 방언의 은사를 받지 못한 사람은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는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방언의 은사를 받은 자는 다른 은사를 받은 자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영적 삶에 풍성함이 넘치도록 항상 기도에 힘쓰며, 결코 교만하지 말고 역시 다른 은사를 받은 사람도 존중하여 공동체 안에서 지체로서의 상호 공동유익을 도모하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라고 가르친다.
그래서 제10절에서, "성령세례와 성령의 은사들을 받은 사람은 마땅히 다른 지체를 위하여 기도와 봉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67). 한편,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의 이한수 교수의 '신약이 말하는 성령'68)은 신약분야에서는 그야말로 괄목할 만큼의 걸작을 펴내게 되었다. 사실 이 책은 그의 초기의 저술들69)을 재정리한 것이지만 이전 작품들보다 더 체계적으로 구성시켰다.
그는 조직신학적인 방법론을 상당히 부정적인 시각에서 보았지만 실제로 그 자신이 석의적인방법과 더불어 조직신학적 구성을 채택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는 '신약이 말하는 성령'을 3부로 나누어서, 제1부에서는 "구약과 유대교는 성령을 어떻게 이해했는가?"를 먼저, "구약과 유대교에 나타난 성령 이해의 패러다임들" 안에서, "예언의 영, 새 언약의 영, 창조의 영"으로 분석하였고, 다음에, "예언의 영의 다른 차원의 사역들" 안에서, "예언의 영과 이스라엘의 구원, 능력의 행위들, 윤리적 변화"를 다루었다. 제2부에서는"신약저자들은 성령을 어떻게 이해했는가?"를 "바울은 성령을 어떻게 이해했는가?,
누가는 성령을 어떻게 이해했는가?, 요한은 성령을 어떻게 이해했는가?"로 나누어 그 특징들을 구별하고 있다. 제3부에서는 총체적으로 "신약저자들은 성령을 어떻게 이해했는가?"라는 제목하에, "전망의 차이를 뛰어넘는 공동구조, 삼위일체 신론에서 본 성령, 신약의 전망에서 본 은사중지론, 균형적 시각에서 본 신약의 영성, 목회서신이 말하는 경건"으로 나누어 세밀하게 다루었다.
이 한수는 특히, 제8장에서 '은사중지론'을 5가지로 분석하여 비교하였는데, 여기서 "초기 한국교회의 은사중지론 논쟁, 워필드의 은사중지론에 대한 평가, 칼빈은 은사중지론자인가?, 신약은 은사중지론을 말하지 않는다, 표적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세심하게 분석하였다.
결국, 이 한수의 주장은 한국장로교회에 큰 영향을 준 프린스톤 신학교의 워필드의 은사중지론의 잘못된 해석을 5가지로 지적(첫째, 워필드가 추종하는 상식철학과 실재론적 인식론은 허상에 불과하다. 둘째, 기적들은 정경계시가 주어지던 시대에만 나타났다는 주장도 논증되기 어려운 명제이다. 셋째, 기적들은 물론 사도들의 메시지를 증언해주는 기능을 한다. 하지만 그것만이 기적들의 배타적인 목적이라고 할 수 없다. 넷째, 은사중지론의 또 다른 논거는 초자연적은사들과 기적들이 사도들에 의해서만 행해졌고 그들이 안수하여 권한을 위임한 몇 사람들에 의해서만 행해졌다는 주장에 기초해 있다. 그러나 신약 성경에는 기적을 행할 권능을 다른 사람에게 수여하기 위해 사도들이 안수했다는 증거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다섯째, 은사중지론자들은 기적들이 복음을 확증하려는 목적으로 사도 그룹을 통해서만 나타났다고 본다.)70)하면서, 칼빈은 로마 가톨릭 교회를 대항하여 논쟁할 때를 제외하고는 결코 은사중지론을 주장하지 않았다71)고 논술하였고, 오히려 신약은 은사중지론을 말하지 않는 다72)고 주장한다.
여기서 저자는 이 한수 교수가 워필드의 은사중지론을 비판한 대목에서 많은 부분을 인정하면서도 하지만 넷째로 지적한 "기적을 행할 권능을 다른 사람에게 수여하기 위해 사도들이 안수했다는 증거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73)는 해석에 대해서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이 한수 교수는 이 부분에서 사도행전 6장 6절로 8절의 내용을 다시 살펴서 주석하고 논증해야 할 것이다.
2. 박윤선 학파의 성령론(A Pneumatology of Yune-Sun Park's School)
고신대학교의 성령론의 논쟁은 안 영복 교수와 화란계 출신, 고 재수74) 교수 사이에 발생하였다. 여기에 찬조하고 후원한 교수가 바로 고려신학교 출신인 총신대학교의 차 영배 교수였다. 그러나 결론은 안 영복 교수의 패배로 종결되었다. 안 영복 교수의 이론은 그야말로 오순절 신학에서 주장하고 있는 "중생 이후의 성령세례"75)를 끝까지 고집한 것이다. "기독교연합신문"에서 1992년 9월부터 1993년 2월까지 약 6개월에 걸쳐, 최 갑종 교수와 당시 총신대학 학장이며, 신학대학원 교의학 교수인 차 영배 교수와 고려신학대학원 교의학 교수인 유 해무 교수 사이에 '성령에 관한 토론'이 있었다.
특별히 '성령세례'가 그리스도인의 신분을 결정하는 '중생' 혹은 '칭의'와 동일한 사건인가,76) 아니면 중생 이후 신자가 받아야 할 이차적인 은총(축복 내지 세례)인가77)하는 문제에 관한 공개토론이 있었다. 한편, 한국교회에서, '성령론'에 대한 논문78)이 가장 많이 발표된 신학교가 합동신학대학원이라고 볼 수 있다. 합동신학대학원은 개혁파와 은사파와 중도파가 공존하였으나 전체적으로 중도파가 지도력을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성령론 논쟁이 한창일 때, 합동신학대학원의 대다수의 교수79)들이 중도적 위치에서 말하는 경향이 우세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합동신학대학원의 개혁파의 선두주자는 전 총장이었던 박 형용80) 박사였다. 그 후 합동신학대학원에서 '칼빈의 성령론'81)의 대가는 조직신학자 김 재성 박사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는 합동신학대학원을 떠나 지금 미국에서 목회하고 있다.
김 재성82) 박사는 '성령의 신학자, 존 칼빈'이란 그의 책에서 각장에서 '성령의 신학자?', '그리스도와 의 연합과 성령의 사역', '하나님의 영광과 경건한 삶', '성경과 성령',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율법과 복음', '역동적으로 전진하는 교회', '성례와 그리스도의 영적 임재', '기도와 언약, 성령의 도우심', '설교와 성령의 기름 부음'으로 나누어 세밀하게 기독교 강요를 비롯한 칼빈의 저술들을 분석하고 재해석하였다.
한편, 동교의 신약학자 조 병수 교수는 '성령으로 사는 그리스도인'(1996)83)이란 책에서 '성령으로 세례', '성령으로 충만', '성령의 은사'를 주석학적으로 세밀하게 분석하였고, 또 그는 개혁신학적인 입장을 유지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리고 고려신학교 출신인 차 영배 교수와 백석대학교의 최갑종 교수의 공개토론은 차 영배 교수의 일방적인 답변과 문제제기 때문에, 최 갑종 교수가 토론을 일단 유보함으로써 사실상 뚜렷한 결말 없이 중단되고 말았다.
답변을 유보한 최 갑종 교수는 '성령세례' 논쟁의 근본적인 해결을 보기 위하여, '일반적인 논쟁'보다 성경본문의 주경신학적인 연구의 교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최 갑종은 일면, '신약의 성령론'을 다루고 있는 그의 학위논문의 완성을 위해서, 또 다른 면은 '한국교회 성령론의 정립'에 공헌하기 위해서, '신약의 성령론'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1992년 9월과 1993년 9월 두 차례에 걸쳐 고려신학대학원 교수들에 의한 "성령론연구보고서"가 고신교단의 총회에 제출되었으며, 1993년 11월에는 합동신학교에서 '성령론 강좌'84)를 통하여 여러 교수들이 논문을 발표하였으며, 1993년 12월 14일부터 16일까지 차 영배 교수가 대표로 있는 '기독교학술원'에서 "성령사역의 지속성"(The Continuity of Baptism in Holy Spirit)"85)이라는 주제로 제8차 '국제학술심포지엄'을 개최하였으며, 1994년 3월에는 두란노서원에서 발간하는 월간지, "목회와 신학" 제57권 3월호에, "성령세례의 쟁점과 전망"이라는 특집이 마련되어 여섯 분의 글이 수록되었다.
그리고 1994년 5월 10일에는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학우회에서 개최한 "성령론 심포지엄"에서 서 철원, 차 영배, 이 한수 교수의 논문발표와 고 영민 목사의 논평이 있었으며, 김 세윤, 차영배, 서 철원, 이 한수86), 정 훈택, 김 정우, 박 용규 교수 사이에 성령론에 관한 패널토의가 있었다.
이들 중에서 1993년 12월 기독교학술원에서 주최한 행사가 '한국 신학계'의 '성령론 논의'에 있어서 중요한 획을 그었다고 볼 수 있다. 사실상, 이 학술대회에서는 이례적으로 국내
외로부터 열세분의 전공교수와 목회자들이 초청되어 성령론에 관한 논문들을 발표하였다.
첫째 날, 14일에는 전 고려신학대학원 교수인 안 영복 교수가 "구약의 성령론"을 발표했고, 또 화란의 Utrecht대학교의 교리사 교수인 반 오트(Van Oort)교수가 "교부들의 성령론"을 발표하였으며, 숭실대학교 교수이며 기독교학술원의 원장인 김 영한 교수가 "개혁신학의 성령론"을, 전 총신대학교 교수였으며 당시 충현교회담임목사였던 신 성종 박사가 "목회와 성령의 역사"를 발표하였으며,
둘째 날, 15일에는 차 영배 교수가 "한국신학의 성령세례론"을, 당시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인 이 수영 교수가 "깔뱅(칼빈)의 성령론"을, 당시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의 김 영재 교수가 "한국교회의 성령론(1970년 이후)의 개관과 오순절 성령강림과 성령세례에 대한 재해석"을, 당시 '탄포리'교회의 담임목사인 정 근두 목사가 "청교도 신학과 로이드 존스의 성령론"을, 창신교회 담임목사인 신 세원목사가 "성령사역의 결과"를 발표하였으며,
마지막 날인 16일에는 교회성장연구원장인 이 재범 교수가 "오순절주의의 성령세례"를, 장신대학교의 오 성춘 교수가 "신유은사와 영적 치유의 연관성"을, 한국성경신학연구소 소장인 안 봉호교수가 "성령세례의 성경적 의미"를, 그리고 장로회신학대학교의 성 종현교수가 "신약의 성령론"을 각각 발표하였다87).
그러나 고려신학대학교의 성령론을 바르게 정립한 학자는 단연 신약학의 변 종길 교수를 꼽을 수 있다. 변 종길 박사는 3장으로 구성된 그의 책을 '1장에서 교부들의 견해', 2장에서 '개혁신학자들의 견해', 3장에서 '요한복음 7:37-39에서의 이해'를 다루었다. 특히 '개혁신학자들의 견해'를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존 칼빈'을 비롯하여 '아브라함 카이퍼', '헤르만 바빙크', '흐로쉐이드', '헤르만 리델보스'와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신약학 교수였던 '리차드 개핀'(고전12:13, 15;45)의 입장을 비교하면서 요한복음 7장 39절의 주석학적 차이점과 신학적 동질성을 분석하여 논술하고 있다.
변 종길 교수는 워필드를 비롯하여 판 데르 린더와 펠러마, 퀴스토르프를 인용하여 성령의 신학자로서 칼빈을 동일하게 언급하였으나 여태까지 칼빈의 연구가들이 "구약에서의 성령의 사역과 신약에서의 성령의 사역 사이의 관계"에 대한 연구가 빈약했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성경신학적인 성령론'을 기술하였다. 고려신학대학교의 성령론을 바르게 정립한 학자는 단연 신약학의 변종길 교수를 꼽을 수 있다. 변 종길 박사는 3장으로 구성된 그의 책을 '1장에서 교부들의 견해', 2장에서 '개혁신학자들의 견해', 3장에서 '요한복음 7:37-39에서의 이해'를 다루었다.
특히 '개혁신학자들의 견해'를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존 칼빈'을 비롯하여 '아브라함 카이퍼', '헤르만 바빙크', '흐로쉐이드', '헤르만 리델보스'와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신약학 교수였던 '리차드 개핀'(고전12:13, 15;45)의 입장을 비교하면서 요한복음 7장 39절의 주석학적 차이점과 신학적 동질성을 분석하여 논술하고 있다. 변 종길 교수는 워필드를 비롯하여 판 데르 린더와 펠러마, 퀴스토르프를 인용하여 성령의 신학자로서 칼빈을 동일하게 언급하였으나 여태까지 칼빈의 연구가들이 "구약에서의 성령의 사역과 신약에서의 성령의 사역 사이의 관계"에 대한 연구가 빈약했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성경신학적인 성령론'을 기술하였다.
3. 이종성 학파의 성령론(A Pneumatology of Jong-Sung Rhee's School)
장로회신학대학교의 특수성은 장기간 학장으로 시무한 이 종성 박사의 통전적이고 포용적인 성령론덕분에 신학교나 교단에 크게 문제될 것이 없었다. 다시 말해서 이 종성 박사의 '성령론'88)은 아주 다양하고 포용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오직 칼빈이나 칼빈주의 신학만을 고집하는 주장이 없다. 오히려 현대주의 신학자들의 이론을 보다 폭넓게 수용하고 있다. 한 가지 실례를 직접 든다면, '칼빈의 성령론'89)이거나 '바르트의 성령론'90)이거나 혹은 '몰트만의 성령론'91)이든지 '틸리히의 성령론'92)이든지 모든 성령론이 상호간 수용적 태도를 가지고 있어서, 신학대학교 내에서나 교단 내에서 크게 이슈가 될 일이 없었다.
그들은 서로 비판하거나 폄하하여 혹평하지 않는다. 장로회신학대학교의 김 명용93) 교수가 번역한 브룬너(F. D. Bruner)의 '성령신학'(A Theology of the Holy Spirit, 1970)은 사실은 '오순절과 은사주의 운동의 사전'(100면)에 나오는 오순절파의 책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이것은 부제가 말해주듯이 '오순절의 경험과 신약의 증거'를 다룬 책이다. 뿐만 아니라 그의 논문은 '종교다원주의'94)에 대하여 약간의 논평은 첨가했으나 상당히 포용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한편, 김 명용 교수는 바르트의 신학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있는 신학자이지만 정작 그의 책, '칼 바르트의 신학'95)에서는 바르트의 '성령론'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96) 물론 2010년에 '바르트의 성령 이해'97)란 논문을 썼다.
칼 바르트는 '삼위일체론'98)의 경우에 '양태론'에 가까운 논리를 펴고 있으나 필립 로사토(Rosato)에 의하면, '성령론'에 있어서 여러 가지 고무적인 대목들이 많다.99) 김 명용 교수가 서평한 벨커(M. Welker)의 ?하나님의 영, 1992?은 1995년 대한기독교서회에서 신 준호에 의하여 번역되어 출판된 책인데, 김 명용 교수가 호평한 것처럼 독일에서 출간된 학문적인 '성령론'의 책이란 사실에는 동의하지만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라는 격찬에 대해서는 공감이 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책은 '해방신학과 여성신학' 뿐만 아니라 '종교다원주의와 포스트모던이즘'에 대해서도 상당히 포용주의적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인 이 수영(새문안교회)목사가 "깔뱅(칼빈)의 성령론"100)이란 논문을 썼다. 또 그의 제자인 최 윤배 박사가 "성령론 입문'101)이란 책(제2부에서, 최윤배는 "개혁?장로교회의 성령론"이라는 제목 하에, "마르틴 부처와 장 깔뱅의 성령론102)"을 진술하였는데, 그는 여기서 "깔뱅의 성령론"을 다루면서, 주로 "그리스도론과의 관계에서 성령론"을 다루겠다고 전제하고,
1. 성령과 성령의 담지자로서 그리스도103),
2. 성령과 성령의 파송자로서 예수 그리스도104)"를 보다 세밀하게 기술하였다. 이어서 그는객관적인 측면에서 "헨드리쿠스 베르꼬프와 칼 바르트의 성령론"을 다루었다. 또, 최근에, "칼빈의 성령 이해"105)란 논문을 새로운 각도에서 썼다. 즉, 최 윤배는 "
1. 창조주와 섭리주 및 구속주 성령 하나님의 위격,
2. 창조주와 섭리주 및 구속주 성령 하나님의 사역(창조주와 섭리주 성령 하나님의 일반사역과 구속주 하나님 성령의 특별사역)106)으로 요약하여, 칼빈의 성령론을 조직신학적으로 기술하였다.
한편, 장로회신학대학교 성 종현 교수의 '신약의 성령론'이라는 논문은 총신대학교의 이 한수교수의 두 명저('신약의 성령론'과 ''신약이 말하는 성령')107)와 더불어 아주 좋은 논문이다. 이들은 칼빈대학교 오 성종108) 교수의 "성령세례의 이해: 교회사적, 주석적 및 신약 신학적 연구"와 백석대학교의 최 갑종 교수의 "성령과 율법"과 더불어 '신약분야의 성령 이해'를 총체적으로 연구한 글들로 평가된다.
현 요한 교수의 두 책, '성령, 그 다양한 얼굴'109)과 '생명의 영으로 충만한 삶'110)과 "생명의 근원인 생명의 영"111)이란 논문에서, 또 다시 "1. 성령과 생명, 2. 생명의 근원인 성령(본체론),예배(성례전)와 생명의 영, 4. 인격적 생명"이란 내용과 더불어, 그의 주저인『성령, 그 다양한 얼굴』의 본론에서처럼 '1. 본체론적 성령 이해, 2. 성례주의적 성령 이해, 3. 주지주의적 성령 이해, 4.주의주의적 성령 이해, 5. 감정주의적 성령 이해, 6. 권능주의적 성령 이해, 7. 공동체론적 성령 이해,8. 종말론적 성령 이해"112)로서 다양하게 성령을 이해해야 한다고 설파하고 있다. 또, "성령에 대한 편협된 이해들을 극복해야 한다."113)라는 논문을 통해서도 "서로에 대한 배타적 비난의 목소리를 낮추고, 하나의 조화로운 이해"를 도모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는 미국 프린스톤 신학교에서 박사학위논문을 "본훼퍼의 초기신학의 성령론"114)을 다루었다. 그러나 그의 다른 논문115)은 역시 그의 사상도 칼 바르트의 포용주의에 빠져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논문에서 바르트 신학의 문제점을 과감하게 지적하였고, 존 칼빈의 기독교 강요 제IV권을 여러 곳에서 인용하여 그의 성령론을 부각시켰다.
그리고 오 성춘 교수의 "신유은사와 영적치유의 연관성"116)은 '오순절 운동과 은사주의 운동'에 대하여 긍정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다. 한편, 호남신학대학교의 전 총장이신 황 승룡117) 박사의 성령론은 통합교단 광주전남지역 안에서 거의 독보적인 위치에 서 있다. 그는 그의 책,'조직신학(하)'118)와 '신학적 성령론'119)에서 가장 이상적인 성령론의 순서를 다루고 있다.
즉, '기독론-성령론-구원론'을 체계화시켰다. 그는 '성령론의 중요성'을 비롯하여 '성령은 어떤 분이신가?', '성령에 관한 제 설명', '성령과 제 관계', '성령의 기능', '성령과 은사', '성령의 열매', '성령과 악령', '성령세례에 관하여', '성령충만', '성령과 인간의 책임', '개혁교회와 성령운동 방향'등을 아주 심도 있게 다루었다.
황 승룡 박사는 오히려 장신대학교의 이 종성 박사보다 '개혁교회의 성령운동의 방향'을 명확히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옥의 티라고 여길만한 유감스러운 점은 존 칼빈과 칼빈주의자 아브라함 카이퍼는 각주에 두 번 정도 밖에 인용되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신학의 입장에 서 있는 신학자들의 참고문헌들이 도처에 인용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 승룡 박사의 성령론에 관하여 분석한 이론들과 가르침은 광주와 호남교계에 고무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이 종성 박사와 마찬 가지로 황 승룡 박사도 성령론에 있어서, 존 칼빈과 칼 바르트 및 기타 현대 신학자들의 신학적 입장을 교호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황 승룡 박사는 그의 책, 조직신학(하)의 제5편 '성령론'의 제1장에서는 먼저, 네 가지120) 로 "성령론의 중요성"121)을 논하고, 제2장에서, "성령은 어떤 분이신가?"라는 질문에 답하기를, "첫째,성령은 인격체이시다. 둘째, 성령은 하나님이시다."122)라고 말하면서, "성부 하나님께서 한 인격이시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 인격이신 것처럼 성령께서도 한 인격이라는 사실은 성경의 근본적 계시이다."123)라고 설명하였다. 또, "성령의 신성은 처음부터 기독교 신앙의 중요한 교리였다.
주후 4세기 아타나시우스와 아리우스의 논쟁은 성령의 '인격성과 신성'에 대한 영원한 정통적 교리를 확정했다."고 교리사적인 조명을 하고 있다. 그리고 제3장에서는 "성령에 관한 제 설명"을 성경적으로 다섯 가지(거듭나게 하시는 성령, 보혜사 성령, 생명의 성령, 진리의 성령, 사랑의 성령)를 증거하고 있다.
또, 제4장에서는 "성령과 제 관계"라는 제목 하에, 네 가지( 그리스도와 성령, 성령과 말씀, 성령과 교회, 성령과 구원)의 관계들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제5장에서는 "성령의 기능"에 대해서 세 가지(성령은 세상의 죄를 책망하고, 의에 대하여 깨닫게 하시며, 성령은 사람들에게 심판을 알게 한다.)로 분석했다.
그리고 제6장의 "성령과 은사"에서는 '은사의 의미'를 네 가지(첫째, 고전 12:1의 '퓨뉴마티코이'는 '신령한 것'이며, 둘째, 고전12:4의 '카리스마타'는 '은혜의 선물'이요, 셋째, 고전12:5의 '디아코니아'는 '직임' 또는 '봉사'로 '집사직무'를 묘사하고, 넷째, 고전 12:6의 '에네르게마'는 '역사'로 번역된다.)로 설명하고 있다.
또, 제7장에서는 갈라디아서 5:22-23의 "성령의 열매"들을 세 가지(첫째, 경험의 영역으로서 사랑, 희락, 화평인데, 이것은 하나님이 부여하신 최고, 최선의 축복이며, 둘째, 행동의 영역으로서 오래 참음, 자비, 양선인데, 이것은 사람과 맺는 관계에서 나타나고, 셋째, 인격의 영역으로서 충성, 온유, 절제의 행동은 인격의 표현인데, 이러한 성령의 열매는 완전히 거룩한 인격 속에 이루어진다.)를 분석하여 설명했다. 그런데 제8장에서 특이하게 "사단론, 귀신론, 성령과 악령"의 문제를 함께 거론했는데, '성령'의 항목에서 '악령'을 다룬 것은 저자가 영적으로 혼란한 현실교회를 바르게 지도하기 위해서 언급한 것으로 충분히 이해되고, 또 꼭 필요한 대목이지만 자칫 성령하나님(하나님의 영 또는 그리스도의 영)과 타락한 피조물인 천사(악한 천사)를 대등하게 취급한 느낌을 준다. 대체로 대부분의 개혁신학자들은 '신론'의 '천사론'에서 '악령'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제9장에서 오늘날 논쟁이 되고 있는 "성령세례에 관하여" 첫째, 오순절파가 주장하는 입장에서의 '성령세례의 의미'를 정확히 지적했고, 둘째, 그들이 '성령세례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한 마디로 '능력을 얻기 위해서'이라고 규명했으나 오순절주의자들이 단지 '능력'만을 강조한다고 단정을 짓기는 어렵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황 승룡 박사는 그들이 제시하는 '성령세례를 받는 방법' 일곱 가지를 명쾌하게 파헤치면서, 마지막으로 '성경의 교훈'대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성령세례'가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 "오직 한 번의 세례만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천명하였다.124)
또, 저자는 제10장의 "성령 충만"에서는 '성령 충만의 이해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세 가지로 성령 충만의 의미, 방법, 순종을 말한다. 즉 첫째, 성령 충만의 의미인데, 그것은 부여받은 임무를 행하고 그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는다는 뜻이며, 둘째, 성령 충만의 방법125)은 인간에게서 비롯되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기에 하나님이 원하시면 언제, 어디서나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든지 성령은 자유롭게 역사하시고, 셋째, 그리스도인의 성령 충만은 성령에 의해서 하나님의 은총과 명령에 신앙과 순종으로 응답하는 사람이 모든 믿는 자에게 살아계시고 다양한 방법으로126) 성령 충만케 할 수도 있다(엡4:13)127)는 것이다.
또, 저자는 제11장에서, "성령과 인간의 책임"이란 제목 하에, 성령을 받은 사람의 특징적인 삶을 세 가지(성령을 소멸하지 말아야 하고, 성령을 근심케 하지 말아야 하며, 성령을 좇아 행하여야 한다.)128)를 말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제12장에서, "개혁교회와 성령운동 방향"에 대해서 다섯가지(성령은 교회의 주인이시며, 성령은 인격적 존재이시요, 또, 성령은 은혜의 수단을 통해서 역사하시고, 성령의 은사를 인정하되 은사의 다양성과 은사의 원리를 분명히 깨달아야 하며, 성령은 새세계를 이루어 공동체를 형성한다.)129)를 제시하고 있다. 여하간 황 승룡 박사가 오랜 세월 동안 '성령론에 관한 지속적 연구와 발표'를 통하여, 광주전남의 통합교단 산하에 있는 교회들과 목회자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을 거듭 다시 확인할 수 있다.
4. 김재준 학파의 성령론(A Pneumatology of Chai-Choon Kim's School)
김 재준 학파의 원조인 김 재준 박사는 성령론을 비롯한 조직신학 전반에 걸쳐 뚜렷한 신학작품이 거의 없다. 한신대학은 종전까지 그야말로 신학활동의 완전 자유화로 인하여 어떠한 이론이라 할지라도 상관이 없었다. 실제로 기장교단의 어떤 한 교회는 보수적인 장로교의 성령론을 아직도 그대로 유지하는 교회도 있는가 하면 또 다른 교회는 오히려 완전히 다른 오순절 운동이 만연되어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130).
놀라운 사실은 한신대학교의 전 총장이었던 오 영석 박사가 금번 칼빈의 탄생 500주년을 기해서, '칼빈의 성령론'(2009)을 썼다는 사실이다. 한신대학의 초대 학장이었던 김 재준 박사는 사실상 바르트 신학을 한국교회에 소개한 분이었다.131) 그래서 한신대에서는 그야말로 칼빈의 신학보다 바르트의 신학이 선호되었고 우세하였으며, 칼빈은 거의 잊혀져갔다. 기장교단 출신으로 탁월한 신학자는 연세대학교 신과대학의 김 균진 박사를 꼽을 수 있다.
연세대학교 신과대학은 초창기에 아예 성령론에 대한 관심이 없어서 이렇다 할 저작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김 균진 교수의 '기독교조직신학'의 전체 5권 중에서, 제II권에 보면, '성령론'132)이 비교적 길게 논술되고 있다.
김 균진박사는 그의 책에서, '성령론의 조직신학적 위치와 중요성'을 '그리스도론과 성령론의 관계'에서 설명한 다음에, '하나님의 능력으로서의 성령'을 다루었고, 또 '신적 인격으로서의 성령'과 '성령의 활동'을 '예정-창조-유지-화해-구원'의 틀에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성령 활동의 창조적이며 세계사적지평'에서 '전통적 문제점과 히브리적 성령이해과 생태학적 위기와 창조 안에 계신 하나님의 영'을 보다 세밀하게 분석하였다.
끝으로 그는 '성령과 인간의 영'의 접촉점을 언급하면서, 오늘날 크게 문제시되는 '성령의 은사'에 대한 신학적 해석과 더불어 '성령의 축복에 대하여' '수용'해야 할 점과 시정하고 우선적으로 '추구'해야 할 점을 균형 있게 언급하였으며, 마찬가지로 '성령운동과 신비체험의 관계'에 있어서, '부정적인 요소인 위험성'과 긍정적 요소'를 똑같이 다룸으로써 역시 조화롭게 아주 좋은 지도노선을 제시했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김 균진은 한국적 자유주의 신학의 대명사인 '민중신학'의 문헌을 다량으로 인용함으로써 제7차 캔버라 WCC 총회의 정 현경 교수를 연상케 한다. 천안에 있는 고려신학대학원대학교의 최 덕성 교수는 "현대주의 에큐메니칼 운동의 중심에 있는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신학적 정체성은 이 단체의 '꽃'으로 극찬을 받은 한국인 여성 신학자 정 현경 박사가 캔버라 총회(제7차, 1991)에서 보여준 '초혼제'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133)고 논평한다.
한신대학교의 김 경재 교수는 "정 현경의 초혼제와 그러한 류의 성령론을 극찬했다. 초혼제는 "영원하신 그리스도는 역사적 인간의 몸을 입고 유대 땅에 화육(化肉)하셨지만, 영원한 그리스도로서 연민의 사랑과 지혜의 영으로서 모든 문화 속에, 우리 조상들 속에 현존하셨다는 신앙고백이다"고 말했다. "기독교전래 이전에 불교와 유교를 믿고 살다 간 우리 조상들은 지옥 갈 우상숭배를 하고 간 것이 아니라, 형태만 다르게 또는 그림자처럼 우리 가운데서 창조와 구원과 속량의 일을 행하려 오셨다고 믿고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 정 현경 교수의 신앙고백이다.
필자는 그의 신앙고백에 동의한다."134)고 했다. 이와 같이 기가 막히는 신학적 태도를 가지고 있는 한신대학교에서 전 총장이었던 오 영석 박사에 의해서 "칼빈의 성령론 이해"135)라는 획기적인 논문이 발표되었다.
오 영석 교수는 이 논문에서 I.서론 II.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서 성령'라는 표제 하에서 1. 성령의 본질과 신격, 2. 하나님의 인식과 성령의 조명, III. '성령과 성경의 관계' 1. 성경의 권위와 성령의 내증, 2. 말씀과 성령의 상관관계, IV.성령의 신비로운 역사, 1. 그리스도와 신자를 연합시켜주는 역사, 2. 믿음과 성령의 역사, 3. 믿음과 회개의 관계, 결론으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강조하는 내용을 고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그야말로 오 영석 교수는 칼빈의 노선에서 구사일생(九死一生)의 명작을 금번에 발표했다고 여겨진다.
끝맺는 말
이상에서 살펴본 대로 한국장로교회의 각 교단들은 교단이 분열된 이후 각기 새로운 신학사조를 선택하여 나름대로의 특색을 이루어 갔다. 물론 초기에는 모두 칼빈의 신학에서 출발하였으나 지금은 상당히 거리가 먼 길을 가게 되었다. 이것은 비단 '성령론' 뿐만 아니라 '삼위일체론'이나 '기독론'에서도 존 칼빈보다는 오히려 칼 바르트나 루돌프 불트만과 폴 틸리히, 그리고 윌겐 몰트만를 비롯한 현대주의 신학자들의 신학사조를 더 좋아하는 경향이 사실상 여러 교단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여기서 필자는 학문의 자유와 신학적 입장을 선택하는 것은 각자의 자유의지에 따라서 선택하는 것이라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러나 장로교회의 간판 아래
다른 신학을 따라가는 것은 분명히 본질을 이탈한 탈선행위가 아닐까 사뭇 우려된다.
특히, 기독교장로회 측의 '민중신학'은 급기야 전 이화여자대학교의 정현경 교수와 같은 '무당종교가'를 배출하여 영계를 어지럽히게 되었다. 정 현경은 보수신학계가 자신을 마녀신학자, 무당신학자로 일컫는 데 대하여 오히려 "무당이라는 비난은 내겐 최고로 영광스런 찬사"136)라고 말하면서, 넉살좋게 응수하기를 "무당처럼 신명나는 여성해방운동을 하는 것이 꿈이라"137)고 토로한다.
우리 한국장로교회의 신학자들은 칼빈 선생님의 탄생 500주년을 기념하면서, 복음의 올바른 나팔수로서의 사명을 다하지 못한 불충함을 하나님과 교계 앞에 머리 숙여 참회하고, 진정으로 겸허하게 회개해야 할 것이다.
저자부터 교수로서 열렬하게 바르게 가르치지 못하여, 이와 같이 무당종교의 '쓴 뿌리'가 나오게 된 것과 일본제국시대에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총회에서 가결하고, 신사에 참배한 죄를 한국교회 앞에 철저하게 통회하고 회개하는 바이다.
본론에서도 언급했듯이 고려신학교 출신인 차 영배 교수와 최 갑종 교수의 공개토론은 차 영배 교수의 계속적이고 일방적인 답변과 문제제기로 인해서, 토론이 원만하게 진행되지 못하고 말았다. 결국, 최 갑종 교수가 답변을 일단 유보함으로써 사실상 뚜렷한 결말 없이 중단되고 말았다. 답변을 유보한 최 갑종 교수는 '성령세례' 논쟁의 근본적인 해결을 보기 위하여 '일반적인 논쟁'보다 성경본문의 주경신학적인 연구의 교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그동안 국내외에서, 한편으로 '신약의 성령론'을 다루고 있는 그의 학위논문의 완성을 위해서, 또 다른 면은 '한국교회 성령론의 정립'에 공헌하기 위해서, '신약의 성령론'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내심을 밝히고 있다.
그런데, 1992년 9월과 1993년 9월 두 차례에 걸쳐 고려신학대학원 교수들에 의한 "성령론 연구보고서"가 고신교단의 총회에 제출되었으며, 1993년 11월에는 합동신학교에서 '성령론의 강좌'138)를 통하여 여러 교수들이 논문을 발표하였으며, 1993년 12월 14일부터 16일까지 차 영배 교수가 대표로 있는 '기독교학술원'에서 "성령사역의 지속성"(The Continuity of Baptism in Holy Spirit)"`이라는 주제로 제8차 '국제학술심포지엄'을 개최하였으며, 1994년 3월에는 두란노서원에서 발간하는 월간지, "목회와 신학" 제57권 3월호에, "성령세례의 쟁점과 전망"이라는 특집이 마련되어 여섯 분의 글이 수록되었으며, 그리고 보다 최근인 1994년 5월 10일에는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학우회에서 개최한 "성령론 심포지엄"에서 서 철원, 차 영배, 이 한수 교수의 논문발표와 고 영민 목사의 논평이 있었으며, 김 세윤, 차 영배, 서 철원, 이 한수140), 정 훈택, 김 정우, 박 용규 교수 사이에 성령론에 관한 패널토의가 있었다. 이들 중에서 1993년 12월 기독교학술원에서 주최한 행사가 '한국 신학계'의 '성령론 논의'에 있어서 중요한 획을 그었다고 볼 수 있다.
사실상, 이 학술대회에서는 이례적으로 국내외로부터 열세 분의 전공교수와 목회자들이 초청되어 성령론에 관한 논문들을 발표하였다. 첫째 날, 14일에는 전 고려신학대학원교수인 안 영복 교수가 "구약의 성령론"을 발표했고, 또 화란의 Utrecht대학교의 교리사 교수인 반오트(Van Oort)교수가 "교부들의 성령론"을 발표하였으며, 숭실대학교 교수이며 기독교학술원의 원장인 김 영한 교수가 "개혁신학의 성령론"을, 전 총신대학교 교수였으며 당시 충현교회 담임목사였던 신 성종 박사가 "목회와 성령의 역사"를 발표하였으며, 둘째 날, 15일에는 차 영배 교수가 "한국신학의 성령세례론"을, 당시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인 이 수영 교수가 "깔뱅(칼빈)의 성령론"을, 당시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의 김 영재 교수가 "한국교회의 성령론(1970년 이후)의 개관과 오순절 성령강림과 성령세례에 대한 재해석"을, 당시 '탄포리'교회의 담임목사인 정 근두 목사가 "청교도 신학과 로이드 존스의 성령론"을, 창신교회 담임목사인 신 세원목사가 "성령사역의 결과"를 발표하였으며, 마지막 날인 16일에는 교회성장연구원장인 이 재범 교수가 "오순절주의의 성령세례"를, 장신대학교의 오성춘 교수가 "신유은사와 영적 치유의 연관성"을, 한국성경신학연구소 소장인 안 봉호 교수가 "성령세례의 성경적 의미"를, 그리고 장로회신학대학교의 성 종현교수가 "신약의 성령론"을 각각 발표하였다141).
그러나 고려신학대학교의 성령론을 바르게 정립한 학자는 단연 신약학의 변 종길 교수를 꼽
을 수 있다. 변 종길 박사는 3장으로 구성된 그의 책을 '1장에서 교부들의 견해', 2장에서 '개혁신학자들의 견해', 3장에서 '요한복음 7:37-39에서의 이해'를 다루었다. 특히 '개혁신학자들의 견해'를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존 칼빈'을 비롯하여 '아브라함 카이퍼', '헤르만 바빙크', '흐로쉐이드', '헤르만 리델보스'와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신약학 교수였던 '리차드 개핀'(고전12:13, 15;45)의 입장을 비교하면서 요한복음 7장 39절의 주석학적 차이점과 신학적 동질성을 분석하여 논술하고 있다.
변 종길 교수는 워필드를 비롯하여 판 데르 린더와 펠러마, 퀴스토르프를 인용하여 성령의 신학자로서 칼빈을 동일하게 언급하였으나 여태까지 칼빈의 연구가들이 "구약에서의 성령의 사역과 신약에서의 성령의 사역 사이의 관계"에 대한 연구가 빈약했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성경신학적인 성령론'을 기술하였다. 한 철하 박사가 총장과 명예총장으로서 지도력을 가지고 있을 때는 '장로교 신학과 웨슬리 신학'이 조화롭게 병행되었다.
그러나 칼빈의 신학에 있어서, 이미 '칼빈의 신론'(서울: 이컴비즈넷, 2005)과 '칼빈의 기독론'(서울: 도서출판 로고스, 1999)을 집필한 박 해경 교수는 '칼빈과 기독교강요요약'(아가페문화사)과 '칼빈의 신학과 복음주의'(아가페문화사)에서 '칼빈의 성령론'을 소개하고 있다.
물론 그는 '신론'과 '기독론'처럼 구체적인 '성령론'에 관한 연구서를 아직 펴내지 못하고 있다. 한편 ACTS의 교회사가 원 종천 교수는 2009년 4월 25일(토)에, 총신대학교 양지 캠퍼스에서 있었던 제53차 한국복음주의신학회 논문발표회의 주제142) 발표에서 '성화 진작(振作)을 위한 칼빈의 신학적 진보'(성령론)을 강의하여 모든 학회 회원들로부터 열화(熱火)와 같은 좋은 호응을 받았다.
백석대학교는 여러 입장의 신학자들이 자유롭게 모인 대학이지만 대체로 개혁신학에 분명히 서 있다. 예를 들어서 부총장이며 신약학 교수인 최 갑종 교수는 일관성 있는 개혁교회의 성령론을 주장하고 있다. 최 갑종 교수는 말하기를 "1980년 이후 한국장로교회 안에서, 특별히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을 표방하고 있는 예수교장로회의 고신교단 및 합동교단 산하 신학대학과 교회 안에서 신학대학 교수들, 목회자들 그리고 신학생들 사이에 성령세례 문제에 관한 활발한 연구와 토론이 계속되어 왔다143).
그러다가 최근에 예장 고신교단 신문이라고 볼 수 있는 "기독교보"가 한국 교회 성령세례 논쟁과 관련하여 1986년 고신대학교의 교수연구위원회가 마련하고 동교수회에서 추인된 "성령세례에 대하여"라는 논문을 전면 게재하고(92년 7월 11일자), 곧 이어 같은 신학대학의 구약학 담당교수인 안 영복목사가 "종전의 성령론은 왜 잘못되었는가?"라는 논문을 통하여, 그리고 전 총신대학 학장이며, 신학대학원 교의학 담당교수인 차 영배 교수가 "성령세례에 관한 연구논문의 문제점"이란 논문을 통하여, 고신대학원 '교수연구보고서'에 대하여 강한 반대와 비판을 제기함으로써, 그리고 이 사실이 교계 신문에 크게 보도됨으로써, "성령세례 논쟁"은 전체 한국교회의 관심사로 부각되었다.
최 갑종 교수는 한국교회의 '성령세례 논쟁'은 3가지 영향 때문에 심화되었고, 계속 확산되어 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데, 첫째, 성령세례와 성령은사(특히 방언과 신유)를 모든 그리스도인이 지향해야 할 필수적인 경험적 요소임을 주장하는 오순절파, 특히 순복음교회의 급성장 때문에 많은 장로교회 목회자와 신학생들이 교회성장이란 문제와 관련하여 오순절교회 주장을 개혁주의 신학 입장에 의한 충분한 신학적 사유나 비판 없이 목회현장에 서서히 도입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요,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것이 한국인들의 심성과 관련하여 실제적으로 교회성장의 효력을 보여주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둘째, 한국의 가장 큰 장로교단의 직영 신학대학교인 총신대학교에서 오랫동안 교의학을 담
당하고 있는 차 영배 교수가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성령강림과 중생과 성령세례'에 대한 문제와 관련하여, 전통적인 해석보다 오히려 오순절 신학에서 강조되고 있는 해석과 유사한 주장을 학생들에게 계속해서 가르쳤을 뿐만 아니라, 무게 있는 논문발표와 저서 및 강연을 통하여 자신의 주장을 학계와 교계에 널리 보급하였기 때문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그는 그동안 고신대학교의 안 영복 교수,개혁신학연구원의 정 원태 교수, 자신이 대표로 있는 기독교학술원 등으로부터 지지를 얻게 되었으며, 동시에 고신대학교의 고 재수 교수, 총신대학교의 서 철원 교수, 전 ACTS 교수인 정 규남 박사144),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리차드 B. 개핀(R. B. Caffin) 교수 등으로부터 공개적인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그래서 급기야 1991년 가을학기에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학우회에서 차 영배, 서철원, 권 성수, 박 형용, 박 정렬 교수 등을 모시고 '공개토론회'를 가졌고, 고신교단에서는 젊은 목회자들을 중심으로 지난 1992년 8월 24일 부산에서 '성령세례 문제'를 주제로 '공개토론회'를 개최했다.
그러나 최갑종 교수에 의하면, 가장 중요한 문제인 차영배 교수의 주장이 참으로 화란의 개혁주의 신학자, 헬만 바빙크의 입장을 충실하게 대변하고 있는지, 또 그의 '성령에 대한 가르침'이 신약성경 자체의 가르침과 참으로 일치하고 있는지에 관하여 그동안 교의학자들과 신약학자들 사이에 충분한 연구평가가 이루어지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최 갑종 교수에 의하면, 셋째로는 1980년대 후반이후 20세기 영국의 가장 유명한 강해설교가로 알려져 있는 로이드 존스 목사의 성령론에 대한 책들이 번역되어 널리 보급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로이드 존스의 2차적 능력세례는 '중생과 성령세례'를 동일시하던 이제까지의 한국장로교회의 전통적 입장에 문제를 제기하였다. 한편, 백석대학교의 유 태화 교수의『삼위일체론적 성령론』145)도 동일하게 개혁신학적 노선에 분명히 서 있다.
백석대학교의 최 갑종 교수는 그의 책,『예수??교회?성령』146)에서 "누가와 바울"의 성령론을 다루었다. 또 그는 다른 책,『성령과 율법』147)에서 "누가와 바울과 요한"의 성령에 대한 증거들을 상호 비교하여 '先-중생과 後-성령세례설'의 주장을 주도면밀하게 분석하고 비평하였다. 한편, 신약학 분야에서 ‘성령’에 관한 걸작으로 평가되는 책은 총신대학교의 이 한수 교수의『신약이 말하는 성령』이다.
각 주
1. 고재수(N. H. Gootjes), ?성령으로의 세례? (서울: 개혁주의 신행협회, 1987).
2. 권성수역, ?성령은사론(Richard B. Gaffin Jr, Perspectives on Pentecost)? (서울: 기독 교문서선교회, 1983).
3. 김경재, "생명의 신학 위한 성령론의 복귀", ?기독교 연합신문? (1991, 3, 31), 7.
4. 김균진, "성령론", ?기독교조직신학 III? (서울: 연세대학교출판부, 1987).
5. 김동수,『방언은 고귀한 하늘의 언어』(서울: 도서출판 이레서원, 2008).
6. 김명용 역,『성령신학』F. D. Bruner, A Theology of The Holy Spirit (서울: 도서출판 나눔사, 1989).
7. 김명용,『열린신학 바른 교회론』(서울: 장로회신학대학교 출판부, 1997), 262-273.
8. ______,『현대의 도전과 오늘의 조직신학』(서울: 장로회신학대학교 출판부, 1997/2007), 40-61.
9. ______,『이 시대의 바른 기독교 사상』(서울: 장로회신학대학교 출판부, 2001/2008), 72-101.
10. ______, "다른 종교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신학적 입장들과 이에 대한 평가", ?敎會와 神學 제25집? (서울:
장로회신학대학교출판부, 1993), 323-346. 131)
11. _____, ?칼 바르트의 신학? (서울: 도서출판 이레서원, 2007).
12. 김명용 교수는 그의 논문, "바르트의 성령 이해"에서, 분명히 바르트와 '헤겔철학'의 관련성을 언급한다
(188). 바르트는 실제로 '변증법적 신학'(Dialektische Theologie)의 사고를 가지고 있다(184). 그리고 바
르트가 '구원론과 교회론 등이 상당히 문제'(필자의 논평)가 된 가톨릭 신학자인 칼 라너에게 영향을 주
었다(181-182)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자유주의 신학자인 아돌프 하르낙과 빌헤름 헤르만에게 직접 배
웠고(185), '칼 바르트의 성령론'과 '윌겐 몰트만의 성령론'이 매우 유사하다는 점을 주장한다(195). 김명
용, "바르트의 성령 이해"『성령과 기독교 신학』(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0), 181-182, 184, 185, 186,
188, 195. 뿐만 아니라 칼 바르트는 WCC (1948년에 개최된 제1차 암스텔담 총회)의 개회 강연을 했다
는 역사적 사실을 인정했다(185). 결국, 바르트는 오늘의 범종교적 혼합운동의 기수가 된 것이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김명용은 칼 바르트를 가리켜서, '칼빈주의자'(186)라고 거짓증거를 하고 있다.
13. ______, "바르트의 성령 이해"『성령과 기독교 신학』(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0), 181-197.
14. 김영한, "개혁신학의 성령론", [한국복음주의신학회 논문집 제20권: 현대 성령론 평가], ?聖經과 神學? (서울:
한국복음주의신학회, 1996년 4월), 625-669.
15. ______, "개혁신학의 성령론", ?한국복음주의신학회 논문집 제20권(聖經과 神學)? (서울: 도서출판 횃불,
1996), 642.
16. 김은수, "칼빈신학에 있어 성경과 성령의 관계성에 관한 고찰",「칼빈신학 2009」(서울: 성광문화사, 2009),
454-494. 이 논문은 「성경과 신학」제45권 (2008.5), 72-111에 이미 발표된 것이다. 여기서 특히, 김은수는 '성령의 자증적 권위와 성령의 내적증거의 관계성'을 깊이 다루었다.
17. 김재성, ?성령의 신학자, 존 칼빈? (서울: 생명의 말씀사, 2004).
18. ______,『성령』Sinclair B. Ferguson, The Holy Spirit, trans. by IVP, 1996, (서울: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1999).
19. 박윤희, "주목받는 세계적인 신학자 현경", ?여성동아? (2004,7.12), donga.com.
20. 박종구,『월간목회』(서울: 월간목회사, 1994. 2).
21. 박해경, "칼빈의 중생론",「칼빈신학 2009」(서울: 성광문화사, 2009), 411-453. ACTS의 박해경 교수는 '칼빈의 중생론'을 썼는데, 여기서 박해경 교수는 "칼빈은 중생을 회개로 보고, 성화까지 포함하여 우리의 삶의 경험계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어가는 평생 동안의 영적인 투쟁과정으로 묘사하고 있다. 신앙과 회개, 회개와 죄사함, 칭의와 성화가 따로 떨어진 교리가 아니고 함께 유기적으로 묶여 있으며, 특히 중생은 회개에 초점을 두면서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는 총체적 틀 안에서의 교리로 다루고 있다"고 해석한다.
22. 박형룡,『敎義神學?救援論』(서울: 朴亨龍博士著作全集刊行委員會, 1995).
23. 박형용,『교회와 성령』(수원: 합동신학대학원 출판부,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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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과 한국장로교회의 교단별 성령론에 대한 비교 연구”에 대한 논평
논 평 유정선 (한국성서대학교/조직신학)
5월에 평택대학교에서 개최된 제 20차 한국복음주의 조직신학회에서 조봉근 박사님은 “칼빈과 한국교회의 인간론 비교 연구”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하신데 이어 본 복음주의 학회에서는 “칼빈과 한국장로교회의 교단별 성령론에 대한 비교 연구”라는 논문을 발표해 주셨습니다.
아마도 박사님의 남은 생애는 조직신학 전 분야를 칼빈과 관련하여 비교 연구하시는 것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잠깐 제머리 속을 스쳐 지나가면서 학자의 아름다운 인생의 마무리 작업으로 꽃 피울 학문의 열매가 한국교계와 학계에 미칠 영향력을 한 번 상상해 보았습니다.
논평의 시간을 통하여 후배 학자들에게 학자적, 그리고 학문적 자극을 갖게 해주신 조봉근 박사님에게 감사드리며 특히 조직신학계에 큰 어른이신 조봉근 박사님의 글을 감히 이제 막 학자의 길에 들어 선 논평자가 논평을 하게 되어 영광으로 생각하며 동시에 논평의 기회를 주신 복음주의 조직신학회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논평의 순서는 논문의 간단한 내용 요약과 논평 순으로 하겠습니다.
1. 내용 요약
들어가는 말에서 연구자는 비 비 워필드(B. B. Warfield)의 말을 인용하여 존 칼빈(John Calvin) 을 성령의 신학자로 소개하면서 한국 장로교회는 성령의 신학자인 칼빈의 신학을 따르고 있음을 확언한다. 그리고 바로 이 성령의 신학자 칼빈의 신학을 표방하고 있는 한국장로교회가 칼빈의 신학과 그의 성령론을 어느 정도 수용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본 연구자는 한국장로교회를 크게 합동교단, 고신교단, 통합교단, 기장교단, 즉 4대 교단으로 분류하고 각각의 교단에 속해 있는 학자들의 성령론 문헌을 비교 분석하고자 한다고 논문의 목적과 방법을 밝히고 있다.
먼저 서철원과 차영배, 이한수를 비롯한 총신대학교의 교수들의 성령론에 관한 저서들, 고재수,안영복, 변종길, 유해무를 비롯한 고신대학교의 교수들의 저서들, 김재성과 조병수를 비롯한 합동신학대학교 교수들의 저서들과 최갑종과 유태화를 비롯한 백석대학교의 교수들의 저서들, 이수영과 차윤배, 현요한, 성종현을 비롯한 장신대학교의 교수들의 저서들, 그리고 기장을 대표하는 한신대 오영석 교수와 연세대 김균진 교수읫 어령론 저서 및 발표 논문 자료와, 호남신학대학교의 황승룡 교수와 개혁신학원의 정원태 교수들의 성령론 저서를 소개하였다.
이어 성령 운동을 주제로 한 신앙 강좌와 대담, 논문 발표 등을 소개하면서 “개혁신학의 성령론”을 발표한 김영한 교수, “바르트의 성령론 연구”를 쓴 김명용 교수를 연구자와 같은 맥락에 있는 필립 로사토의 “바르트 성령론”을 목차 언급 정도로 간단하게 비교하고 있다. 그 외에 칼빈의 성령론을 다루고 있는 교수들, 즉 이은선, 김은수, 그리고 본 연구자의 연구가 있었음을 간단히 소개하면서 연구자는 한국장로교회를 앞서 구분한 4개 교단을 4개의 학파로 분류하고 박형룡 학파(총신대학교),박윤선 학파(고신대학교), 이종성 학파(장신대학교), 그리고 김재준 학파로 나누어 그들의 성령론 저서를 중심으로 구체적으로 열거하였다.
“1. 박형룡 학파의 성령론” 부분에서는 서철원 교수와 정원태 교수, 서철원 교수와 차영배 교수와의 논쟁 사건 등을 소개하였고 성령강림에 있어서 차영배 교수가 개혁신학자들의 전통과 다른 주장을 펼치고 있었음을 지적하면서(1-3) 본 연구자의 성령론 강의록을 중심으로 은사와 성령세례, 방언, 일반은총과 특별 은총, 성령 충만 등에 관하여 본 연구자의 입장을 나열한 후(3-14), 다음으로 이한수의 “신약이 말하는 성령론”을 목차 중심으로 소개하고 있다(14-15).
“2 박윤선 학파의 성령론”에서는 안영복, 고재수, 그리고 차영배 교수 사이의 논쟁과 성령세례에 관한 차영배, 유해무 교수와의 논쟁, 그리고 1994년 기독교 학술원에서 주최되어 발표된 논문 발제자와 논문 제목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16-17).
“3 이종성 학파의 성령론”에서는 장로회신학대학교는 이종성 박사의 통전적이고 포용적인 성향때문에 교단과 신학계에 커다란 문제가 없음을 언급하면서 신정통주의자들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김명용 교수의 성령론과 번역서를 소개하고 이수영 교수와 최윤배 교수가 보여준 칼빈의 성령론에 대한 관심은 이례적인 일이었으나 반가운 일이었음을 아울러 지적하면서 성종현, 현요한, 그리고 오성춘의 성령론을 간단히 소개하였다. 반면 황승룡 교수의 성령론은 chapter를 중심으로 비교적 자세하게 소개하면서 목회자와 교회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고 평가한다(19-21).
“4 김재준 학파의 성령론”에서 김재준, 오영석, 김균진, 그리고 김경재 교수의 성령 이해를 소개하고 있다(21-22).
“끝맺는 말”에서 본 연구자는 칼빈의 신학을 표방하고 있는 한국장로교회는 교단으로 분열되면서 칼빈의 신학과 거리가 멀어졌다고 결론 맺으면서 장로교의 본질에서 벗어나고 있는 한국장로교회의 일부 교단에 대하여 우려를 표명하였다. 이어 본 연구자는 한철하, 원종천, 유태화, 최갑종 교수의 성령론 저서를 언급하면서 그들이 지니고 있는 성령 이해에 대해 간단하게 비평하면서 논문을 맺고 있다.
2. 논평
이 논문의 가장 큰 기여도는 무엇보다 방대한 성령론 자료들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한국교회사에서 중요했던 성령론 논쟁들과 이에 참여했던 학자들, 그리고 현재 한국 신학대교 교수들이 출판한 성령에 관한 저서와 논문들, 특히 한국 신학자인 경우 82종의 저서와 외국 신학자인 경우 100여 종의 저서와 논문을 소개함으로써 성령론에 관한 자료를 정리해 놓았다는 점을 비롯하여 한국에서의 성령론 논쟁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기여도에도 불구하고 논평의 자리이기에 굳이 아쉬웠던 점을 언급하자면
1. 논문 형식에 있어서 논문 전체가 각주 처리는 되어 있으나 결정적으로 각주 내용이 빠져 있다. 따라서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사항들을 참고 또는 확인 할 수 없었다.
2. 논문 작법에 있어서 “들어가는 말, 1, 2, 3, 4, 결론”으로 구분되어 있을 뿐 들여쓰기를 비롯하여 단락의 구분이 전혀 되어 있지 않으며 문장이 너무 길었다. 심지어 한 문장이 무려 14줄이 되는 경우도 있다.(17페이지 2줄부터 16줄까지가 한 문장으로 되어 있다).
3. 논문 분량에 있어서 통상적으로는 15페이지 내외로 하고 있는데 비하여 2배 이상이다. 따라서 논문 완성도를 위하여 충분히 교정하여 반복되는 부분은 삭제하고 내용은 과감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실제적으로 본 논문의 반복 부분을 제시하자면 p. 17의 “고려신학대학교의 성령론을 바르게 정립한 학자는 단연 신약학의 .........”과 이어 “고려신학대학교의 성령론을 바르게 정립한 학자는 단연 신약학의....” 부분이며 결론 부분에서도 역시 차영배 교수와 최갑종 교수와의 논쟁을 비롯하여 변종길 박사의 성령론, 기독교학술대회 논문 발표 건 등을 굳이 반복(23-24)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또한 각 교단별 이해를 위한 부분들이 한 쪽으로 편중된 면이 없지 않음을 볼 수 있다(박형룡 학파는 14페이지, 박윤선 학파는 3페이지, 이종성 학파는 4페이지, 김재준 학파는 2페이지). 따라서 본 논평자는 장로교회 전체보다는 보수 노선에 있는 교단을 선택하고 그 중에서 대표적인 학자의 성령론을 중심으로 비교 분석하였다면 “비교연구”라는 제목에 보다 충실한 논문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제안해 본다.
4. 논문 내용에 있어서 한국에서 출판된 신학대학교수들의 성령론 내용을 목차 중심으로 소개하고 있다. 따라서 성령론 자료를 파악하는 데에는 적지 않은 도움이 되겠으나 “칼빈과 한국장로교회의 교단별 성령론에 대한 비교 연구”라는 제목에 있어서는 다소 미흡한 점이 없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5. “1”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한수 교수는 이 부분에서 사도행전 6:6절로 8절의 내용을 다시 살펴서 주석하고 논증해야 할 것이다”라고 지적하고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한 연구자의 논증과 주석도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6. “끝맺는 말” 부분에서 또 다시 교수들의 성령론 저서 및 발표 자료들을 언급하면서 “마지막으로 신약학 분야에서 ‘성령’에 관한 걸작으로 평가되는 책은 총신대학교의 이한수 교수의 신약이 말하는 성령이다”로 마무리되고 있는 것과 성령의 신학자 칼빈의 신학 사상 수용도를 가늠해 보기 위한 한국장로교회의 교단별 성령론에 대한 비교연구와 어떠한 상관관계를 갖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의 성령론을 바르게 정립하고자 본 논문을 연구하시고 기꺼이 발표해 주신 조봉근 박사님께 박수를 보낸다.
연구
조봉근 (광신대학교/조직신학)
논 평 유정선 (한국성서대학교/조직신학)
들어가는 말
미국 구-프린스톤 신학교의 변증신학자, 비 비 워필드 박사는 그의 책, '칼빈과 어거스틴'1)의 부록에서 이르기를, '존 칼빈'(John Calvin)이야말로 '성령의 신학자'라고 말했다. 그런데 칼빈의 신학을 표방하고 있는 한국교회의 장자교단, 이른바 '한국장로교회'의 각 교파의 신학자들은 정녕 칼빈주의 신학과 '칼빈의 성령론'을 어느 정도 수용하고 있으며, 활용하고 있는가? 이른바 4대 교단인 합동교단, 고신교단, 통합교단, 기장교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신학자들의 문헌을 중심으로 분석하려고 한다.
이미 출판된 총신대학교 서철원2) 교수의 '성령신학'3)과 차 영배 교수의 '성령론', 고신대학교 고 재수 교수의 '성령으로의 세례'와 안 영복 교수의 '성령론의 바른 이해'4)와 변 종길 교수의 '성령과 구속사'5)와 유 해무 교수의 '개혁교의학' 안에서의 '성령 하나님'6),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의 김 재성 교수의 '성령의 신학자, 존 칼빈'7)과 조 병수 교수의 '성령으로 사는 그리스도인'8), 백석대학교 최 갑종 교수의 '성령과 율법'(예수?교회?성령)과 유 태화 교수의 '삼위일체론적 성령론'9), 통합교단 두 칼빈주의자인 새문안교회 이 수영 목사의 '깔뱅의 성령론'10)와 장신대학교 최 윤배 교수의 '성령론 입문'을, 그리고 동교의 현 요한 교수의 '성령, 그 다양한 얼굴'과 성 종현 교수의 '신약의 성령론' 등을 다루려고 한다.
합동교단 총신대학교 출신인 광신대학교 조 봉근 교수의 '교의신학과 성령론 논의'11)와 '칼빈의 성령론'12)과 총신대학교 이 한수 교수의 '신약이 말하는 성령'(2009년) 등을 밝히고, 그리고 기장교단 한신대학교 오 영석 교수의 '칼빈의 성령론 이해'(2009년)13)와 연세대학교 김 균진 교수의 '기독교조직신학 III' 안에서의 '성령론'14), 호남신학대학교 황 승룡 교수의 '조직신학(하)' 안에서의 '성령론'15)와 '신학적 성령론', 개혁신학원 정 원태 교수의 '열정 칼빈주의'(정 원태 역, 로이드 존스의 성령세례) 등을 비교하여 다루려고 한다.
그리고 1984년 1월에, 서울 '사랑의 교회'의 옥 한흠 목사가 주관한 제5회 강남지역연합집회의 '신앙강좌의 주제'가 '성령운동'이었다. 여기에 나온 강사들은 손 봉호(성령 하나님), 이 종윤(성령과 기적), 박 윤선(성령과 예언), 김 명혁(성령과 악령), 홍 정길(성령과 성령세례), 옥 한흠(성령과 방언) 목사였다.
또 '월간목회'의 박 종구 발행인은 1994년 2월호에, '특집: 한국교회 성령론을 말한다.'라는 주제로 특집대담(패널토의)에 3인(권 성수, 이 영훈, 이용남)과 논문발표에 4인(현 요한, 박 형용, 이 상훈, 이 승구)을 세워 성령론을 다루었다.
그리고 1996년 4월에 제27차 '한국복음주의신학회'에서 '현대 성령론 평가'라는 주제 아래, 각 분과에서 '논문발표와 논평'이 있었다. 여기서 숭실대학교 김 영한 교수가 "개혁신학의 성령론"16)을 발표하였다.
김 영한 교수는 "바르트는 정통적인 성령론의 기반 위에 있으나 성령의 독특한 위격으로서의 사역을 인정하지 않는다."17)고 논평하면서, 또 가톨릭 신학자인 칼 라너(Karl Rahner)18)를 인용하여 그들은 동일하게 '성령의 인격성'을 부정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래서 "바르트는 성령의 제3위됨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바르트는 위격이라는 개념이 주체의식을 나타내기 때문에, 성령을 제3의 '존재방식'19)이요, 제3의 영적 주체가 아니라"20)고 기술하고 있음을 밝혔다.
또 그는 "존 칼빈의 은사론"21)을 설명하고 있다. 한편, 2010년, 장로회신학대학교 김 명용 교수는 '바르트의 성령 이해'22)라는 논문을 썼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는 '바르트의 성령론'을 깊이 연구하지 못했다. 오로지 추상적으로 '하나님의 나라'에만 초점을 맞추고 끝냈다.
이것은 필립 로사토의 '바르트의 성령론'23)과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필립 로사토는 '바르트의 성령론'을 세밀하게 분석하였다. 예를 들어, 필립 로사토는 3부로 구성된 그의 책에서, 특히 제2부 바르트의 '교회 교의학의 성령론'에서,
1. "성령과 삼위일체론과 경험"의 문제를 다루고 나서,
2. "성령과 예수 그리스도와 선택"의 문제를 다루었으며,
3. 성령과 인간의 실존과 윤리학"를 다루었고, 마지막으로
4. "성령과 교회(Church as Parousia)와 본체론"을 다루었다.
구 대신교단 안양대학교 이 은선 교수도 '칼빈의 성령론'24)을 썼으며,
이 논문에서 특별히 '성령과 성화'25)를 다루었고, 또 칼빈의 '성령과 은사'26)를 심도 있게 언급하였는데, 여기서 이 은선 교수는 "칼빈의 성령의 은사에 대한 논의는 로마 가톨릭과 재세례파 사이의 중도의 길로 모색되었다.
로마 가톨릭에서는 모든 성령의 역사와 은사를 교회의 제도에 묶어버렸고, 재세례파는 말씀과 분리된 성령의 독립적인 계시를 주장하였다."27)고 분석하였다.28) 그리고 숭실대학교 김 은수교수는 '성령의 사역'을 '구원론의 차원'을 넘어서 '성경의 영감론'에서도 다루었는데, 즉 '칼빈 신학에 있어 성경과 성령의 관계성에 관한 고찰'29)이라는 논문이다. 저자도 이미 '칼빈의 성령론'30)을 쓰면서 '성령의 사역'으로서 '성령의 영감론'(유기적 영감과 성령의 내적 증거)까지를 다룬바 있다.
1. 박형룡 학파의 성령론(A Pneumatology of Hyung-Nong Park's School)
박형룡 학파의 원조인 박형룡 박사는 그의 교의신학 구원론31)에서 약간의 성령론을 다루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이에 관한 단권으로 된 저술을 남기지 못했다. 총신대의 성령론 논쟁은 전 총신대의 교의신학자 차영배32) 교수와 서철원33) 교수 사이의 서로 다른 견해에서 심화되었다.
사실, 서철원 교수는 서울 청담동 개혁신학연구원 교수 시절부터 정원태 교수와의 견해 차이로 심각한 논쟁이 있었다. 개혁신학연구원의 정원태34) 교수는 영국의 로이드 존스와 존 스토트의 성령론을 매우 좋아하였다. 이로 인하여 광주중앙교회의 소강당에서 있었던 서철원 교수의 강의와 당시의 광주시 목회연구회의 목사회원들의 질의는 격렬했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그 토론회가 어제의 일같이 눈에 선하다. 필자의 판단은 당시에 서철원 교수의 견해35)가 개혁신학의 노선에서 조금도 이탈한 것이 없었으나 반대의 입장에 서 있는 '은사주의자들'을 바르게 가르치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바로 총신대학교에서 '개혁신학연구원'과 똑같은 사건이 재현된 것이다. 헬만 바빙크의 교의학을 서철원 교수와 차영배 교수는 화란에서 똑같이 연구하였으나 유감스럽게도 헬만 바빙크가 가지고 있었던 포용력이 둘 다 모두 부족하였다.
차영배 교수는 아브라함 카이퍼의 '성령의 역사'에 나오는 '성령의 논리'를 비판하면서 클라스 스킬더의 성령론의 입장을 따랐다. 이른바 오늘날도 '성령강림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으며, 기도하는 것은 죄가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그는 이른바 아브라함 카이퍼(화란)와 리차드 개핀(미국)36)과 존 스토트(영국)의 '성령강림의 단회성'(once for all)을 강하게 비판하였다. 그의 신학적 논리는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고, 재미가 있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개혁신학자들의 전통적인 주장과 다른 논리를 펴고 있었다.
1992년 10월 19일 광신대학교의 전신인 광주개혁신학연구원의 전체 교수단은 당시 개혁측 목포노회의 질의서에 대한 답변형식의 논문을 제출하였다. 이른바, "성령의 권능이 임할 때, 나타나는 현상들"에 대한 "개혁주의 입장에서의 고찰과 비판"이라는 논문이었다.
그 내용은
제1장 성경신학적 관점에서의 고찰과 비판,
제2장 조직신학적 관점에서의 고찰과 비판,
제3장 교회사적 관점에서의 고찰과 비판,
제4장 '입신'에 대한 개혁주의 입장에서의 요약적 결론이었다.
당시, 이 논문 작성에 참가한 교수는 초대 총장을 역임했던 정 규오 박사를 비롯하여 주 현철, 윤 종한, 고 광필, 문 영주, 정 준기 교수등 6인이었다. 그 때에, 조직신학의 조 봉근 교수는 영국에서 아직 귀국하지 아니했다.
한편, 광신대학교의 조 봉근37) 교수는 1995년 8월말에 귀국하여 '성령론'에 관한 박사학위논문 발표회를 채플에서 가졌고, 다시 '성령론'과 '구원론' 과목을 강의하였으며, 드디어 2007년 10월에 광주 ENM38)에서도 강사로 초청을 받아 강의한 '성령론' 강의록의 제1절에서 "성령의 은사란 무엇인가?39)"에 대한 질문에 답하기를,
첫째, 성령의 은혜는 성령의 일반적 은혜와 성령의 특별한 은혜가 있다.
둘째, 신자의 공통적 은혜(단수)와 신자의 개별적 은사들(복수)을 구별해야 한다. 구속의 은혜는 모든 성도가 일반적으로 받는 성령의 역사요, 은사들은 성도 개개인이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서 지체로서 받는 성령의 역사이다.
셋째, 성령의 은사는 3가지로 나눌 수가 있는데, 영구적 은사와 반영구적 은사와 임시적 은사가 있다.
넷째, 영적 은사는 한 사람이 모든 은사를 받지 않는다. 은사는 지체가 여럿이듯이 교회의 지체인 성도들이 서로 다른 은사를 나누어서 받는다. 이것을 은사들의 상이분배의 원리라고 한다. 그러나 한 사람이 반드시 하나의 은사만을 받는다는 원칙은 없다. 만일, 한 사람이 두 가지 이상의 은사를 받을 때, 동시에 두 가지 이상의 은사를 받을 수도 있으나 어떤 은사는 먼저 받고, 또 다른 은사는 나중에 받을 수도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은사만 받고 다른 은사를 받지 않는 사람이 있고, 또 다른 은사를 받는 사람이 있다. 이미 받은 은사가 계속될 수도 있고, 중지될 수도 있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두 가지 이상의 은사는 두 가지 이상의 성령세례가 아니라 한 성령세례 안에서 이루어지는 서로 다른 은사를 시간을 달리하여 수여받는 성령체험인 것이다.
다섯째, 은사를 주시는 분은 성령 하나님이시지만 은사를 소원하는 사람이 기도할 수 있다.40) 물론, 성령세례는 하나님께서 단독적으로 즉, 주권적 의지로 주시는 은혜이기 때문에 인간의 노력이나 인간의 소원과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조건적으로 거저 주시는 것이다. 은혜와 은사들을 주시는 목적은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한 것이다. 즉 다른 지체와 더불어 전체를 유익하게 하시려는 목적이 있다.
여섯째, 성령세례는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로 믿는 사람에게 예수님께서 베푸시는 세례이며, 이 세례를 받았다면 그리스도인이 되는 표지가 된다.
그러므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이요,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이라면 두 말할 필요 없이 그리스도인이다.
일곱째, 그렇다면 영적 은사들은 무엇인가? 성삼위 하나님께서 먼저 성령세례 받은 그리스도인에게 교회의 직임과 사역을 수행하라고 주시는 각양의 서로 다른 은사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고 각 사람에게 주시는 재능과 구별이 된다."라고 말한다.
조봉근 교수는 제2절에서 "은혜의 방편은 무엇인가?41)"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기를, "우리가 성삼위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는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성령의 은혜의 방편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허락하신 최상의 은혜로서의 방편(통로)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함으로 온다(케류그마). 즉,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말씀을 내용으로 교회에서 공적으로 전파되는 말씀을 말한다. 따라서 은혜의 수단이 되는 말씀 선포는 성경 말씀을 그 내용으로 선포되어져야 하며,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전달될 때, 영적 권위를 가질 수 있다. 우리가 마땅히 선포해야 할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핵심으로 준비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설교는 하나님의 임재의 표요 그리스도의 통치수단이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이 순수하고 신실하게 선포되는 곳이다. 첫째, 인간의 마음속에 죄를 상기시켜 회개를 일깨우는 몽학선생 같은 율법42)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와 부활을 믿는 구원에로의 복음43)을 누리게 한다. 둘째, 성례(성례와 성찬)를 통하여 우리에게 은혜를 허락하셨다. 먼저, 세례는 죄를 씻는 것과 그리스도의 신비적으로 영적으로 유기적으로 연합하는 것이요, 교회에 가입하는 것을 의미하는 그리스도인의 입교 예식이다. 그리스도께서 공적으로 친히 받으신 물세례를 우리도 받음으로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고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음 받은 표인 것이다. 다음으로, 성찬은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과 육체의 부활을 믿고 기념하고 영원한 생명에로의 참여하는 의미로 베푸는 예식이다"44)라고 말한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성령님께서는 어떤점은 죄인의 영혼을 단독적으로 직접 역사하시지만, 때에 따라서, 신적 은혜와 은사들을 베푸심에 있어서, 제2원인이 되는 방편들을 사용하시는 경우도 있다. 이것을 가리켜서 '방편적 사역' 혹은 '응답적 사역'이라고 한다.
성도가 기도하는 일은 이러한 측면에서 성령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에 반응하는 사역이며 우리가 기도하는 것도 성령의 역사이다(롬8:26-27)".
또, 그는 제3절에서 "신구약 성경에서의 방언은 무엇이며, 방언에 대한 용례는 어떤가?45)"에 대하여 대답하기를, "구약에서 언급되고 있는 방언들은 대략 29회에 걸쳐서 표현되고 있는데, 가장 많이 나오는 성경이 구약의 묵시록이라고 할 수 있는 다니엘서에 8회46)가 나오며, 이들은 모두 '다른 나라의 말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창세기(10:5, 20, 31)에 나오는 방언, 열왕기하(18:26, 28), 에스더(1:22, 8:9), 시편(114:1), 이사야(예외방언; 19:18, 28:11, 33:19와 일반적 방언; 36:11, 13)와 예레미야(5:15)와 에스겔(3:5, 6)과 스가랴(8:23)에 나오는 방언들도 모두 '다른 나라의 말들'을 가리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사야(19:18, 33:19)에 나오는 세 구절의 방언들은 아직 희미하게 계시되어 있지만 사도행전에 나오는 여덟 구절들의 방언들47)처럼 문법적인 구조를 가진 '다른 나라 말들'이라고 보이지 않고, 고린도 교회48)에 19번 나타난 '영적 은사로서의 방언들'처럼 보여 진다.
사도행전에도 10:46, 19:6의 말씀은 다분히 '영적 은사로서의 방언'으로 보여 지고 있다. 그러나 7차례 나오는 요한계시록에서는 모두 '다른 나라의 말들'49)로 보여 진다.
그러나 복음서에서는 딱 한번 나오는 마가복음(16:17)의 방언은 역시 '영적 은사로서의 방언'으로 해석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는 계속하여 제4절에서, "방언의 구속사적 의미는 무엇인가?50)"에 대하여 답하기를, "창세기 11장 1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하나의 언어(구음)를 주셨다.
그러나 인간은 창세기 3장에서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서 창세기 2:17절에서 금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고, 즉 일차적으로 말씀의 단절을 획책하였고, 창세기 6장2절에서는 경건한 하나님의 아들들이(셋의 자식들) 불경건한 사람의 딸들(가인의 여식들)과 잡혼(불신결혼)함으로서 하나님과의 영적 관계를 단절하기 시작했고(창6:3), 창세기 11장에서는 타락한 인간들이 대동단결하여 바벨탑을 쌓아 인간의 이름을 내려고 하나님께 도전하고 반역하다가 급기야 하나님의 심판으로 언어가 혼잡하게 되었다(창11:7, 9)
그러므로 사도행전 2:4절에서 일어났던 오순절의 성령 충만한 역사와 방언현상과 제자들이 설교할 때, 각 사람의 방언으로 알아듣게 된 것은 "말씀과 성령 안에서" 획기적으로 구속 사건이 일어난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말씀의 단절과 영적 단절이 회복되는 증표로서 그들이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한 것이다(행2:4).
사탄의 유혹하는 말과 악령의 역사는 우리를 하나님과의 관계로부터 단절시키지만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와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다시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를 회복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행전 2장 이하에 계속해서 나타나는 방언 현상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즉 이방인들에게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구속 사역과 영적 관계의 회복을 의미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의 방언 현상은 일반 언어였다. 다시 말해서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은 일반 문화에서 쓰고 있고 '문법적인 언어'였다.
이것은 '인간을 상대로 설교할 때, 나타나는 방언'이기 때문에 '진성방언'(眞性方言)51)인 것이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에 나타났던 '영적 은사로서의 방언'은 반드시 통역이 수반되어야만 방언으로서의 가치와 계시의 신적인 권위를 인정하게 되는 '간접방언'이기 때문에 '유사방언'(類似方言)52)이다. 그런데 고린도전서의 모든 영적 은사들은 계시의 신적인 성격을 가진은사들이다.
그런데 고린도전서 14장에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은 고린도교회의 방언은 '예언'과 같이 하나님의 '계시'를 가진 '설교방언'(통역을 겸한 방언)과 영음으로서 '하나님과 영적 교제'(기도의 기능)를 가지는 방언(對神方言) 즉, '방언기도'로 나눌 수 있다. 그러므로 신구약 성경이 완성된(정경이 확정된) 지금은 더 이상의 새로운 계시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53), '계시의 기능'으로서의 방언현상을 받아들일 수 없다.
우리는 신구약 성경 66권을 가지고 모든 족속과 나라와 방언이 하나로 통일되고 구원이 완성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각 나라의 방언으로 기도하고 있으니, 이와 같이 복잡하고 상호교통이 어려운 현상은 종말에 가서 끝이 날 것이
다. 즉 영원한 천국에 가서 '하늘나라의 방언'(영음)으로 통일될 것이나 지금은 전체적으로 모든 성도가 경험하는 것은 아직 아니다.
그러나 성령 안에서, 어떤 사람에게는 '은사로서의 방언기도'가 가능하다고 본다(고전14:2). 그러나 사도 바울은 고전 14:14에서 방언기도가 '열심히 기도하는 은사'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고전14:5, 18, 39), 또한 방언기도의 열매에 대해서 언급한다. 즉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14:14)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14장 15절에 이르기를, ‘효과적인 방언 기도의 방법’으로써 ‘영과 마음’을 함께하여 기도하라고 당부하고 있다. 즉 ‘...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14:15)는 것이다. 방언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종종 망각하는 것은 ‘영으로 기도하거나 영으로 찬미 할 때’ 자기가 기도하는 내용을 음미하지 못한 채, 중언부언할 때도 없지 않아 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교훈하는 것은 기도하는 사람은 ‘일반기도를 하는 사람이나 방언기도를 하는 사람이거나’ 동일한 준칙이 있는데, '무아지경'(無我之境)54)에 빠지지 말고, 정신을 차려 의식을 잃지 말고, ‘마음으로(중심으로)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 봉근 교수는 제5절에서 "오늘날 성령의 임재하심은 '단회적'(單回的)인가, 또는 계속적(繼續的)인가, 혹은 반복적인가?55)"에 대하여 대답하기를, "어떤 학생들은 성경을 읽을 때, 유감스럽게도 한 본문이나 어떤 기자의 기술에 집착하여, 성경을 전체적으로 연결하여 이해하고 해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성령의 임재하심'을 이해하는데 있어서도 어떤 신학도는 무조건 '단회성'으로만 보는가 하면 또 다른 신학도는 언제나 '계속성'이나 '반복성'으로 주장하여 한 측면만을 지나치게 강조한다. 이러한 현상은 연약한 인간의 연구와 견해가 시간성과 공간성을 초월할 수 없는 한계상황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마치 지구의 양쪽 끝에 반대로 서 있는 두 사람이 태양의 위치를 동쪽이라고 고집하거나 서쪽이라고 우기는 것과 같다. 태양은 아침에는 동쪽에 있지만 저녁에는 서쪽에 있는 것이다.
성령의 임재하심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성령세례에 있어서는 예수님의 속죄의 죽음과 사역이 단회적 사건이듯이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연합시키는 영적 세례는 단회적 사건이라고 해야 되지만(개인구원에 대한 성령의 사역),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교회 안에서) 거룩한 사역에 동참하기 위하여 필요한 '영적 은사'(성령의 은사)는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계속적이며 반복적인 사건이라고 해야 한다.
영적 은사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와 '복음사역'을 위하여 필요한 직분과 직임을 수행하기 위한 은사이기 때문에, 사모하고 기도하는 신자에게 계속될 수 있으나 인간의 연약성 때문에 태만하면 중지되거나 소멸될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상대적인 측면에서 점진적으로 계발될 수도 있고, 소멸될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상대적인 측면에서 점진적으로 계발될 수도 있고, 퇴보될 수도 있으며 상실한 은사를 다시 회복할 수 있으므로 영적으로 교만하지 말고 직임과 사역을 위해서 필요한 은사를 사모하고 기도해야 한다(눅11:13, 행1:14, 4:31).
그러나 대부분의 영적 은사는 항존적(영구적) 은사라기보다는 사역을 위한 임시적 은사이므로 영적인 긴장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성령님을 의지해야 한다. 필자는 이러한 교리를 이해시키기 위하여 성령론에 관한 조직신학적(통전적) 성경읽기와 해석을 가질 수 있기를 권장하는 바이다.
첫째, 성령세례의 '시여자'(施與者)는 누구인가? 성령의 세례의 '시여자'(施與者)는 성령님이 아니고, 예수님이시다.56) 성령의 활동도 삼위일체의 사역이지만, 성령의 인침은 하나님 아버지의 확인 사역이며(엡1:3-13), 영적 은사인 성령의 은사도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이지만 성령님께서 성도들의 심령 속에서 운전하시는 성령님의 주무사역이다. 그러나 '성령세례'를 시여하시는 분은 예수님이시다.
둘째, 성령세례와 성령 충만은 동일한 사건인가? 한 세례 안에서 교차적으로 일어나는 동일한 사건이면서 구별해야 되는 현상이다. 성령세례는 씨(seed)에 비교할 수 있고, 성령 충만은 성장하는 열매에 비교할 수 있다. 그러나 식물의 경우에 뿌리나 줄기를 심는 고구마나 감자의 경우에 열매이면서 씨가 될 수 있는 것처럼 성령 충만의 경우에 두 가지 측면을 살필 수가 있는데, '본질적인 충만'과 '상태적인 충만'(현상적 충만)으로 구별할 수 있다. '본질적인 충만'은 '영적이며 도덕적인 성장'(엡4:13)을 의미하므로, 주님의 재림하실 때까지, 혹은 성도의 죽음(개인적 종말)까지 계속적으로 성장하면서 진행되지만, '현상적인 충만'은 외형적으로 일시적이며, 단번에 나타날 수 있다.57)
셋째, '간헐적인 충만'과 '습관적인 충만'은 구별되는가? 진정한 의미에서의 온전한 '성령 충만'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 즉 '성령 충만'은 다르게 표현하면 '하나님의 영의 충만'이요, '그리스도의 영의 충만'이다. 우리 성도는 '성령세례' 받은 이후에도 종말 때까지 우리 속에 있는 '죄의 성향'과 부단히 영적 전쟁을 하고 있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영적 사역'에 전심전력으로 집중할 때, 오로지 '성령 충만'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자들은 '영적 긴장과 능력'이 예수님처럼 항속적(영구적)으로 계속되지 않기 때문에 간헐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도덕적으로 연약하여 죄를 범하면 다시 영적으로 침체에 빠진다. 물론 영적으로 다시 회복한다. 결국 우리가 습관적으로 '성령 충만'을 지속적으로 경험하고 유지하려면 계속적으로 기도하며,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고, 또 '영적사역'에 열심히 주력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또, 그는 제6절에서 "오늘날도(오순절 이후에도) 성령의 '일반적 사역'(일반은총)이 계속되는가?58)"에 대하여 답하기를, "성령의 광의적이며 전-포괄적 사역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계속되는 사역으로서 우주 창조 이전부터 있었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작정과 예정 사역에도 동참하였으니 그것이 바로 이른바 본체론적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59)이다. 영원 전부터 계셨던 삼위일체 하나님은 존재(본체)는 한 분이시지만 내재적으로 위격을 구별하시고60),
또한 피조세계(우주, 역사)에서 경륜적으로 일하실 위격들을 자기본체 안에서 스스로 구별하시고61), 또한 하나님의 자기본체 속에서 스스로 계획하시고 삼위 간에 自約(self-covenant)하셨다. 그러므로 성령 하나님께서도 창조사역(창1:1)과 섭리사역(1:2)에 직접 관여하시고 동참하셨다. 여섯째 날에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창조하시고 인간에게 영적 형상을 주시며 하나님께서 주신 '영장권'에 의하여 만물을 다스리도록 명령하셨다(창1:28).
창세기 2:7절은 인간창조에 대한 구체적 사실을 계시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사람을 흙으로 지으시고 사람의 코에 생기를 부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고 증거를 한다. 즉 '하나님의 생기'는 '하나님의 형상'인데, 창조초기부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이 에덴의 동산으로 인도되어, 다른 모든 피조물들을 다스리며 지킬 수 있는 위치와 능력이 주어진 것이다. 즉, 하나님의 섭리사역에 수종하고 동참하는 계기가 '하나님의 형상'에 의하여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섭리사역은 광의적인 관점의 일반(통상) 섭리와 구속적인 관점의 특별(구원) 섭리로 구분할 수 있다. 특별섭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궁극적으로 구원받을 사람들을 위한 구원계획에 따라서 계속적으로 진행되는 과정을 보존하고 협력하며 통치하는 성 삼위 하나님의 사역인데, 구약시대에는 예표이며, 모형적인 모습으로 계시되다가 급기야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속죄의 죽음, 및 육체의 부활과 승천 그리고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구속사의 전 과정이 실현된다.
그러나 광의적인 하나님의 섭리사역은 섭리의 줄기와 핵심이 되는 특별섭리로만 모두 해석하고 설명할 수 없다. 즉 하나님의 섭리는 구원계획에서 유기된 사람들과 다른 피조물들에게 미치는 '일반(통상)적 사역'으로 부연해서 설명을 해야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통상섭리 사역에도 성령 하나님께서 동참하시고 도모하신다.
신학적으로 이와 같이 '성령의 일반적 사역'으로 미치는 은혜를 보통은혜(일반은총)이라고 한다. 보통은혜는 문자 그대로 일반적으로 모든 피조물들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은혜이다(마5:44-45, 히6:4-8). 그러나 이들은 특별은혜(특별은총)에서 얻게 되는 궁극적 구원은 누릴 수 없다.
공의로우신 성령 하나님께서는 궁극적으로 구원받을 사람들에게 영구적으로 임재하시며(요14:16), 성령세례(성령의 印침)로 인하여 성도의 심령에 내주(內住)하신다. 그러나 구원받지 못할 사람들과 모든 피조물에게도 성령의 일반적인 사역을 통해서 일반적인 은혜를 주신다. 그래서 그들도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일반은총에 의하여 도덕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도덕적인 죄를 억제하며, 불충분하지만 사회정의와 질서를 유지시키며, 비록 타락한 문화이지만 학문과 과학 및 예술 분야에서 상대적인 인간의 편리를 도모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궁극적 구원을 깨닫지 못하는 외부적 영향의 수준으로 끝나버리기 때문에 이것을 가리켜서 성령의 외부적 사역 혹은 피상적 사역(히4:4-6)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도 '성령의 차원'에서 두 부류로 분류해야 한다.
첫째는 성령의 항속적(영구적) 임재를 체험한 사람, 즉 성령세례를 받고 궁극적으로 구원받을 성도들이 있는가 하면,
둘째는 성령의 임시적(잠정적) 영향을 받아 잠시 동안 피상적으로 성령의 은혜를 맛 본 사람, 즉 성령의 외부적인 영향권에 있다가 구원받지 못하고 다시 배도할 자가 있다62)."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제7절에서, "성화와 성령 충만, 성령의 은사와 성령의 열매는 관계가 있는가?63)"에 대하여 대답하기를, "먼저, 성화의 경우에, 이제까지 고전적인 칼빈주의는 점진적 성화를 가르쳤고, 알미니안주의에 의하면, 이 세상에서도 완전 성화를 주장하였고, 웨슬리안주의는 양자의 절충안으로 상대적 완전 성화를 주장하였다.
그러나 최근에 보다 발전적이고 개진된 성화론64)에서 설명하는 것은 성화에 있어서도 성화의 양면성이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되고 있다. 즉 성화는 한쪽 측면만 보지 말고 '확정적 성화'와 '점진적 성화'를 조화롭게 설명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확정적 성화와 점진적 성화란 무엇인가? 확정적 성화는 성화의 씨와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확정적 성화는 중생 할 때, 단번에 이루어지는 성령의 단회적 역사이고, 점진적 성화는 중생 이후부터 성도가 죽을 때까지 점진적으로 상승하면서 이루어지는 성령의 계속적 역사이다.
마찬가지로 성령 충만의 경우에 있어서도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 이후에 보면 충만의 씨와 충만의 과정과 완성(열매)이 구별될 수 있다. 성령 충만의 씨는 영구적으로 임재한 성령 세례(직설법)라고 한다면, 동일한 한 세례 안에서 성령 충만(명령법)은 주님의 재림하실 때까지 계속적으로 성장해 가는 성령의 인도하시며 지배하시는 역사이다. 그러므로 성령 세례는 단번에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단회적 사역이며, 변질되지 않는 확정적 세례요, '항속적(영구적) 임재'라는 의미에서의 [성령의 씨(seed)와 성령의 印(seal)이 있는] '확정적 충만'이다. 그러나 성령 충만은 법적 신분의 의미로는 모두가 완전하게 설명되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성령 충만은 실질적 상태로써 완전한 질적 변화가 수반되어야 하는 것이다. 도덕적 윤리적인 측면에서 더 충만한 모습이 있어야 하고 영적인 삶과 사역적인(능력적인) 측면에서도 충만한 실상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진정으로 성령 충만한 분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성령의 본체이시며, 성령의 담지자로서) 밖에 없으므로 우리 성도는 종말 때까지(엡4:13), 점진적으로 변화되고 새롭게 승화되어야 마땅하다. 우리가 더 이상의 부족함이 없다고 인정될 때는 역시 종말 때까지 가야 하므로 사도 바울처럼 오로지 우리는 완전한 성령 충만을 바라보면서 전진해야 할 것이다(빌3:12-14, 엡 4:13, 빌 3:12~14).
셋째로, 영적 은사들에 있어서도 성령 하나님(God the Holy Spirit)께서 주시 는 선물이기 때문에 인간의 자력적인 노력에 의하여 수여되는 것이 아니요, 성령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에 의해서 주시는 단독적 사역이다(고전 12:11). 그런데 광의적 의미에서의 영적 은혜(은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회적이며, 단독적 사역으로 주시는 성령 세례까지를 포함하는 것이다. 성령세례는 인간의 노력이나 탄원에 의해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요, 성 삼위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와 결정에 의해서 수여되며, 인간의 저항과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소실될 수 없는 확정적 은사이다(고전12:13). 그러나 사도 바울은 역시 고린도전서 13장 8절에서 양면성을 증거하고 있다. 즉 영구적인 은사로서의 ‘사랑’을 말하면서, 반면에 임시적인 은사들로서의 ‘예언’과 ‘방언’과 ‘지식’도 겸하여 증거를 하는 것이다(...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다시 말해서 교회의 지체로서 주시는 영적 은사들은 교회를 온전하게 세우기 위한 직임(직분)과 사역을 위해서 주시는 방편으로서의 은사들이기 때문에 그 은사들을 계속적으로 사모하고 기도하며(눅11:13, 행 4:31, 행 8:15, 행 10:45, 고전 12:31), 계발할 수도 있고, 반면에 직분과 사역에 태만하고 이탈할 때, 소멸할 수도 있다(살전 5:19). 결국, 영적 은사들은 계속적으로 새롭게 계발함으로써 풍성히 받을 수 있는 것이다(딛 3:5-6).
넷째로, 성령의 열매에 있어서도 확정적인 측면과 계속적으로 성장하는 측면이 있다. 누구든지 성령 세례를 받은 사람은 열매로서의 성령의 씨(seed)가 단번에 주어진다. 그러나 이 씨는 우리의 심령 속에서 더 큰 열매로서 성장해 간다. 물론, 한 인격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령의 다양한 여러 가지 열매를 이루어 간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무엇보다도 사랑의 열매가 모든 열매를 인도하고 주도하는 역할을 감당함으로써 사랑의 열매와 은사로서의 사랑은 점진적으로 성장의 가도를 올라간다. 성령 충만한 성도는 '사랑의 충만'과 '사랑의 사도'로서의 높은 차원의 성화의 단계와 똑같은 수준의 그라프를 그리며 올라가게 될 것이다.
기독교에 입문하는 수준(중생)에서의 열매와 개인적 종말(성화의 절정: 성도의 죽음)에서의 열매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롬8:18, 23)."라고 말한다. 또, 그는 제8절에서, "중생의 역사와 성령세례는 한 세례 안에서 이루어지는가? 아니면 중생의 세례와 성령세례가 다른 2가지 단계의 세례인가? 그리고 오순절 이전이나 구약시대의 신자에게도 중생이나 회심 또는 믿음의 역사가 있었는가? 또 오순절 이후의 신약시대와 오늘날의 신자는 오직 성령세례를 받아야 중생이나 회심 또는 믿음의 역사가 나타나는가?65)"에 대하여 대답하기를, "결론적으로 말해서, 오순절 이후 신자는 하나의 성령세례 안에서 모든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진다. 즉 성령세례를 받으면 누구든지 회심하며 믿음을 가지게 된다. 왜냐하면 중생도 성령의 역사요 회심이나 믿음도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절대로 나타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령세례는 보다 더 큰 범주로서 모든 구원의 역사를 포함(포섭)하며 중생이나 회심 및 믿음은 그 안에 포섭(포함)된 작은 범주(category)에 속하는 것이다. 성령세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푸시는 유일무이한 세례이다. 한 마디로 성령세례는 '그리스도의 세례'(그리스도와의 연합)인 것이다.
구약의 신자들이 장차 성육신 하셔서 오실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소망의 믿음을 가졌던 것처럼 역시 구약의 신자들이나 오순절 이전의 신자들이 경험했던 하나님의 영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과 육체의 부활 등을 비롯한 구속사의 기나긴 장정 끝에 종말론적으로 이루실 그리스도의 세례 즉 성령세례를 바라보 면서 예비적이며 '모형'으로 있었던 ‘영적 역사의 서막’이었다.
그러나 ‘영적 역사의 서막’ 이라고 우리가 묘사한 ‘하나님의 영’의 광의적이고 전 포괄적인 사역은 실체적 사역(본 무대)에서 이루어진 '그리스도의 세례'(성령세례)와 무관한 역사가 아니요, 바로 연속적이고 연계된 역사인 것이다. 마치 빛이 프리즘의 초점에 맞출 때, 결정적 광채가 일어나지만 빛이 수렴되기 이전에도 빛은 여러 각도에서 비추고 모아져 한 초점을 향하여 수렴되어 오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비유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구약의 신자들(아브라함과 다윗 및 노아, 욥, 다니엘 등)은 '그리스도의 세례'(성령세례)의 대행(예행)사역인 광의적인 성령사역에 의해서 중생과 회심 및 믿음은 가질 수 있었고, 구원을 받아서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그리스도의 세례인 성령세례는 그야말로 수직적인 역사이기 때문에 우리의 노력이나 탄원과 상관없는 신적인 단독사역이며 우리의 의식과 관계없이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이다.
그러나 영적 은사들의 경우에는 우리의 심령 속에 이미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 역사함으로 나타나는 현상들이다. 우리가 전에는 하나님께 기도할 수 없었으나 이제는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탄식하시며 역사함으로 하나님과 영적 교제를 할 수 있으며, 언제 어디서나 무소부재(편재)하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다(롬 8:26-27).
성령 하나님은 초월하시면서 내재하실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에 초월적으로 계셔서 계속적으로 피조물인 우리의 내부로 침투하여 역사하실 수도 있지만 역시 우리 심령안에 내주하셔서 우리를 감동시켜 반응적으로 작용하실 수 있는데, 이것을 가리켜서 성령의 '반응적역사' 혹은 '응답적 역사'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세례인 성령세례를 받기 전에는 근원적인 '영적 은사'(성령의 은혜)를 사모하면서 기도할 수 없었지만 성령세례를 받은 후에는 우리 심령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의 소욕과 역사를 따라서 '영적 은사들'(성령의 은사들)을 사모하면서 기도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가 사모하고 기도하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인간의 육성이나 부패한 인간의 자의지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우리를 독려하여 사모하고 기도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세례인 성령세례를 받기 위하여 또 다시 기도하는 것은 무용한 태도이지만 '영적 은사들'(성령의 은사들)을 받기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당연한 처사인 것이다.
오순절 이후에 살고 있는 신자들은 마땅히 성령세례를 받아야 중생이나 회심 및 믿음이 나타나게 된다. 왜냐하면 성령세례인 그리스도의 세례를 받지 않은 사람은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은 구원받을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속죄와 부활)과 그리스도와의 연합(성령세례)이 이루기 이전과 이루어진 이후 즉 '오실 그리스도'와 '오신 그리스도'는 구원사(구속사)에 있어서, 본질적으로 해석의 차원이 다르다.
실체가 오시기 전에는 모형이 대리적으로 사역을 할 수 있으나 실체가 오신 후에는 모형이 계속적으로 대행사역을 할 수 없는 것이다. 구약시대의 여러 가지 제사의식이 '모형'으로 필요했으며,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예배를 대행하는 구실을 수행했으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속죄제를 완성하신 후에는 오로지 '영적 제사'인 예배만 있는 것이다.
구약시대에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예표'로 기름부음 받은 선지자나 제사상이나 왕이 영역을 나누어서 대행했지만 실체이신 그리스도가 오셔서 이 모든 삼직(三職)을 직접 수행하셨다. 구약시대에는 천사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였으나 신약시대에는 성육신하신 그리스도께서 직접 오셔서 그 하나님의 말씀들을 구체적으로 해석하셨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한 지도자가 하나님의 일을 수행했으나 신약시대에는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제자들과 교회를 세우시고 그들에게 직접 그리스도 영(성령)을 부으셔서 일하게 하신다.
사도바울은 갈4;1-7절까지의 말씀에서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후견인과 상속자의 관계로 비유했다(갈4:4, 갈 4:6). 이와 마찬가지로 성령세례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베풀어지기 전에는 ‘하나님의 영’에 의하여 잠정적으로 중생의 사역이나 회심의 사역 및 믿음의 사역이 '모형'으로(예표로) 있었으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구속사역을 이루시고 오순절 날 성령세례를 주신 이후에는 임시적인 방편들이 더이상 필요 없게 되었다. 물론 성령세례도 넓은 의미에서 성령(하나님의 영)의 사역이지만 본질적인 면에서 속죄사역을 완성하신 이 후에 그리스도께서 주신 세례라는 특별한 의미에서 분명히 구별해야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제9절에서, "우리가 받은 천부적 달란트와 영적 은사는 동일한 것인가? 혹은 구별해야 되는가? 영적 은사들은 몇 가지나 되는가? 또 한 사람이 받을 수 있는 은사는 몇 가지나 되는가? 그리고 우리가 이미 받은 은사는 영구적인가? 혹은 임시적인가?66)"에 대하여 답하기를, "우리가 천부적으로 받은 달란트(재능)는 개성이나 성격(천성)과 같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나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든지 간에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모두 주어진다.
그러나 영적 은사들은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만 주시는 특별한 은사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바로 세우고 복음사역을 위하여 직분(직임)을 수행하기 위해서 주시는 은사들 즉, 영적 사역을 위한 영적은사들인 것이다.
따라서 영적 은사들은 성도의 개인적 유익과 특권을 누리도록 하시기 위해서 주신 은사가 아니라 오로지 영적인 직분과 영적인 사역을 위해서 필요불가결하게 주신 영적사명과 영적 목적의식에서 부 여된 은사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적 은사들을 과도하게 남용하여 믿음이 연약한 신자들을 유혹하거나 오히려 유린하는 영적 무기로 오용하게 되면 종말론적 심판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다(고전 14:33). 은사를 사용할 때에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고전 14:40)고 사도 바울이 가르쳤다.
그러므로 달란트와 영적 은사는 분명하게 구별되지만 음악이나 미술 및 문학적 재능들이 성령으로 중생한 이후에 성별(성화)되고 승화되어 영적 은사로서의 구실을 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서 타고난 재능들이 영적 은사들로 변화될 수 있다. 그러면 영적은사들의 종류는 얼마나 될까? 로마서 12:6-8절과 고린도전서 12:4-11, 28-31과 에베소서 4:11과 베드로전서 4:10-11절 등에서 은사들의 종류를 찾을 수 있으나 사도 바울이 문자적으로 소개한 은사들은 초대교회의 은사들이다.
초대교회는 유년기 교회의 필요한 직분과 은사들을 열거해 놓았다. 그러나 현대교회는 장년기 교회나 노년기 교회라고 가정할 수 있다. 따라서 더 발전한 현대교회는 더 많은 직분과 은사들이 필요하고 계발되어야 한다. 즉 영적 은사들의 종류를 한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왜냐하면 교회봉사에 필요한 직분과 직임은 그 시대와 문화적 환경에 따라 추가될 수 있는 성격에 속한다.
구약시대의 직분과 신약시대의 직분이 다르고 현대교회의 직분들 중에는 구약시대나 신약시대에 없는 것들이 새롭게 창안되어 교회발전과 부흥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모세시대의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 등이 수많은 군중을 효과적으로 통솔하기 위하여 창안된 그 시대의 산물이었다고 믿는다면 오늘날 성령님의 지혜를 통하여 새로운 직분(직임)과 은사들이 창안되고 계발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오늘날 한 사람이 받을 수 있는 은사는 얼마나 될까? 원래,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낸 서신의 가르침에서 깨달을 수 있듯이 모든 은사는 상이분배의 은사들이므로 한 사람이 모든 은사를 소유할 수 없다. 모든 신자가 저마다 모든 은사를 경험하고 사용하려는 영적 욕심을 부린다면 은사가 가지고 있는 지체로서의
특성을 저버리게 되고, 각기 받은 은사대로 겸손히 교회를 봉사할 수 없으며 자주 영적 불만과 영적무질서(혼란)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은사를 받았든지 우리는 그 은혜를 감사하면서 섬기는 자세로 그 은사를 선용해야 된다. 영적 은사는 교회의 공동체를 유익하게 하며, 또 다른 지체들을 유익하게 하는데 선용할 때, 아름답고 선한 은사로서 빛이 나게 된다. 여기서 한 가지 숙고해야 할 사항은 영적 은사가 일인당 반드시 한 가지 은사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직분과 직임이 상승하고 책임분량이 많아질수록 더 많은 은사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행 6-9장 참조).
초대교회 일곱집사 중 스데반은 공궤와 구제를 위하여 임직을 받았지만 나중에 권능의 은사까지도 받고, 설교하다가 순교를 했고 빌립 집사는 타지에 가서 선교사역 및 성경해석과 세례의식도 시행하였다.
다시 말해서 스데반 집사는 지혜의 은사와 믿음의 은사만 아니라 권능의 은사가 첨가되어 큰 권능을 행했다.
또 빌립 집사는 선교사역으로 사마리아 성에 가서 복음을 전파했고, 사도행전 8장 5절에 보면, 에디오피아의 내시(행8:27)에게 이사야서 53장 7-8절 이하를 해석하여 가르치고 물세례까지 베풀었다(행 8;38). 그렇다면 우리가 보편적으로 모든 영적 은사들을 받을 수는 없지만 복음 사역을 위해서 사모하고 기도하면 사람에 따라서 새로운 은사를 또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받은 영적 은사는 영구적인가? 영적 은사의 포괄적인 개념 속에는 영적 은사의 뿌리가 되는 성령세례가 있다.
성령세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중생한 성도에게는 필연적으로 수여되는 보편적 은사요 성령의 특별한 은혜이다. 즉, 성령세례와 같은 영적 은사는 영구적인 은사이다. 또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아가페(사랑)의 은사도 영구적인 은사이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12:28-29절이 시사하고 있는 바와 같이 ‘사도’ 나 ‘선지자’와 같은 직분 은사는 성경을 기록하던 시대에 필요했던 특수한 은사이기 때문에 오늘날 어느 종파나 교파에도 그런 은사는 없다. 만일 오늘날도 사도나 선지자를 호칭하며, 그런 성직자의 명칭을 사용하는 종파가 있다면 그것은 이단일 것이다. 또 자신에게 그러한 명칭을 사용한다면 이단의 교주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나 선지자의 은사는 중지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리고 종말론적 예언이나 방언이나 지식의 은사가 폐하게 될 것을 성경은 명확히 증거하고 있다(고전 13:8). 그러므로 이러한 은사들은 반(半)영구적 은사이든지 직분과 사역을 위하여 임시로 사용되는 은사가 되는 것이다. 다만 방언의 은사에 있어서, 현대적인 방언은 '기도의 기능'으로서의 방언의 역할만을 계속적으로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계시의 기능'으로서의 방언은 중지되었다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
왜냐하면 오늘날도 방언이 계시의 기능으로 유효하다면 신구약 성경은 아직도 정경이 되었 다(완성 되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방언의 은사를 받아 '방언기도'를 열심히 수행하는 성도는 공동체로서의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도고기도'하기를 힘쓰고, 교회의 덕을 세우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리고 방언만이 유일한 영적 은사로 오해하지 말고 또 고차원적 특별한 은사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교만심을 가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14:39절에서 말씀한 것처럼, 방언의 은사를 받지 못한 사람은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는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방언의 은사를 받은 자는 다른 은사를 받은 자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영적 삶에 풍성함이 넘치도록 항상 기도에 힘쓰며, 결코 교만하지 말고 역시 다른 은사를 받은 사람도 존중하여 공동체 안에서 지체로서의 상호 공동유익을 도모하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라고 가르친다.
그래서 제10절에서, "성령세례와 성령의 은사들을 받은 사람은 마땅히 다른 지체를 위하여 기도와 봉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67). 한편,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의 이한수 교수의 '신약이 말하는 성령'68)은 신약분야에서는 그야말로 괄목할 만큼의 걸작을 펴내게 되었다. 사실 이 책은 그의 초기의 저술들69)을 재정리한 것이지만 이전 작품들보다 더 체계적으로 구성시켰다.
그는 조직신학적인 방법론을 상당히 부정적인 시각에서 보았지만 실제로 그 자신이 석의적인방법과 더불어 조직신학적 구성을 채택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는 '신약이 말하는 성령'을 3부로 나누어서, 제1부에서는 "구약과 유대교는 성령을 어떻게 이해했는가?"를 먼저, "구약과 유대교에 나타난 성령 이해의 패러다임들" 안에서, "예언의 영, 새 언약의 영, 창조의 영"으로 분석하였고, 다음에, "예언의 영의 다른 차원의 사역들" 안에서, "예언의 영과 이스라엘의 구원, 능력의 행위들, 윤리적 변화"를 다루었다. 제2부에서는"신약저자들은 성령을 어떻게 이해했는가?"를 "바울은 성령을 어떻게 이해했는가?,
누가는 성령을 어떻게 이해했는가?, 요한은 성령을 어떻게 이해했는가?"로 나누어 그 특징들을 구별하고 있다. 제3부에서는 총체적으로 "신약저자들은 성령을 어떻게 이해했는가?"라는 제목하에, "전망의 차이를 뛰어넘는 공동구조, 삼위일체 신론에서 본 성령, 신약의 전망에서 본 은사중지론, 균형적 시각에서 본 신약의 영성, 목회서신이 말하는 경건"으로 나누어 세밀하게 다루었다.
이 한수는 특히, 제8장에서 '은사중지론'을 5가지로 분석하여 비교하였는데, 여기서 "초기 한국교회의 은사중지론 논쟁, 워필드의 은사중지론에 대한 평가, 칼빈은 은사중지론자인가?, 신약은 은사중지론을 말하지 않는다, 표적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세심하게 분석하였다.
결국, 이 한수의 주장은 한국장로교회에 큰 영향을 준 프린스톤 신학교의 워필드의 은사중지론의 잘못된 해석을 5가지로 지적(첫째, 워필드가 추종하는 상식철학과 실재론적 인식론은 허상에 불과하다. 둘째, 기적들은 정경계시가 주어지던 시대에만 나타났다는 주장도 논증되기 어려운 명제이다. 셋째, 기적들은 물론 사도들의 메시지를 증언해주는 기능을 한다. 하지만 그것만이 기적들의 배타적인 목적이라고 할 수 없다. 넷째, 은사중지론의 또 다른 논거는 초자연적은사들과 기적들이 사도들에 의해서만 행해졌고 그들이 안수하여 권한을 위임한 몇 사람들에 의해서만 행해졌다는 주장에 기초해 있다. 그러나 신약 성경에는 기적을 행할 권능을 다른 사람에게 수여하기 위해 사도들이 안수했다는 증거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다섯째, 은사중지론자들은 기적들이 복음을 확증하려는 목적으로 사도 그룹을 통해서만 나타났다고 본다.)70)하면서, 칼빈은 로마 가톨릭 교회를 대항하여 논쟁할 때를 제외하고는 결코 은사중지론을 주장하지 않았다71)고 논술하였고, 오히려 신약은 은사중지론을 말하지 않는 다72)고 주장한다.
여기서 저자는 이 한수 교수가 워필드의 은사중지론을 비판한 대목에서 많은 부분을 인정하면서도 하지만 넷째로 지적한 "기적을 행할 권능을 다른 사람에게 수여하기 위해 사도들이 안수했다는 증거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73)는 해석에 대해서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이 한수 교수는 이 부분에서 사도행전 6장 6절로 8절의 내용을 다시 살펴서 주석하고 논증해야 할 것이다.
2. 박윤선 학파의 성령론(A Pneumatology of Yune-Sun Park's School)
고신대학교의 성령론의 논쟁은 안 영복 교수와 화란계 출신, 고 재수74) 교수 사이에 발생하였다. 여기에 찬조하고 후원한 교수가 바로 고려신학교 출신인 총신대학교의 차 영배 교수였다. 그러나 결론은 안 영복 교수의 패배로 종결되었다. 안 영복 교수의 이론은 그야말로 오순절 신학에서 주장하고 있는 "중생 이후의 성령세례"75)를 끝까지 고집한 것이다. "기독교연합신문"에서 1992년 9월부터 1993년 2월까지 약 6개월에 걸쳐, 최 갑종 교수와 당시 총신대학 학장이며, 신학대학원 교의학 교수인 차 영배 교수와 고려신학대학원 교의학 교수인 유 해무 교수 사이에 '성령에 관한 토론'이 있었다.
특별히 '성령세례'가 그리스도인의 신분을 결정하는 '중생' 혹은 '칭의'와 동일한 사건인가,76) 아니면 중생 이후 신자가 받아야 할 이차적인 은총(축복 내지 세례)인가77)하는 문제에 관한 공개토론이 있었다. 한편, 한국교회에서, '성령론'에 대한 논문78)이 가장 많이 발표된 신학교가 합동신학대학원이라고 볼 수 있다. 합동신학대학원은 개혁파와 은사파와 중도파가 공존하였으나 전체적으로 중도파가 지도력을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성령론 논쟁이 한창일 때, 합동신학대학원의 대다수의 교수79)들이 중도적 위치에서 말하는 경향이 우세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합동신학대학원의 개혁파의 선두주자는 전 총장이었던 박 형용80) 박사였다. 그 후 합동신학대학원에서 '칼빈의 성령론'81)의 대가는 조직신학자 김 재성 박사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는 합동신학대학원을 떠나 지금 미국에서 목회하고 있다.
김 재성82) 박사는 '성령의 신학자, 존 칼빈'이란 그의 책에서 각장에서 '성령의 신학자?', '그리스도와 의 연합과 성령의 사역', '하나님의 영광과 경건한 삶', '성경과 성령',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율법과 복음', '역동적으로 전진하는 교회', '성례와 그리스도의 영적 임재', '기도와 언약, 성령의 도우심', '설교와 성령의 기름 부음'으로 나누어 세밀하게 기독교 강요를 비롯한 칼빈의 저술들을 분석하고 재해석하였다.
한편, 동교의 신약학자 조 병수 교수는 '성령으로 사는 그리스도인'(1996)83)이란 책에서 '성령으로 세례', '성령으로 충만', '성령의 은사'를 주석학적으로 세밀하게 분석하였고, 또 그는 개혁신학적인 입장을 유지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리고 고려신학교 출신인 차 영배 교수와 백석대학교의 최갑종 교수의 공개토론은 차 영배 교수의 일방적인 답변과 문제제기 때문에, 최 갑종 교수가 토론을 일단 유보함으로써 사실상 뚜렷한 결말 없이 중단되고 말았다.
답변을 유보한 최 갑종 교수는 '성령세례' 논쟁의 근본적인 해결을 보기 위하여, '일반적인 논쟁'보다 성경본문의 주경신학적인 연구의 교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최 갑종은 일면, '신약의 성령론'을 다루고 있는 그의 학위논문의 완성을 위해서, 또 다른 면은 '한국교회 성령론의 정립'에 공헌하기 위해서, '신약의 성령론'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1992년 9월과 1993년 9월 두 차례에 걸쳐 고려신학대학원 교수들에 의한 "성령론연구보고서"가 고신교단의 총회에 제출되었으며, 1993년 11월에는 합동신학교에서 '성령론 강좌'84)를 통하여 여러 교수들이 논문을 발표하였으며, 1993년 12월 14일부터 16일까지 차 영배 교수가 대표로 있는 '기독교학술원'에서 "성령사역의 지속성"(The Continuity of Baptism in Holy Spirit)"85)이라는 주제로 제8차 '국제학술심포지엄'을 개최하였으며, 1994년 3월에는 두란노서원에서 발간하는 월간지, "목회와 신학" 제57권 3월호에, "성령세례의 쟁점과 전망"이라는 특집이 마련되어 여섯 분의 글이 수록되었다.
그리고 1994년 5월 10일에는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학우회에서 개최한 "성령론 심포지엄"에서 서 철원, 차 영배, 이 한수 교수의 논문발표와 고 영민 목사의 논평이 있었으며, 김 세윤, 차영배, 서 철원, 이 한수86), 정 훈택, 김 정우, 박 용규 교수 사이에 성령론에 관한 패널토의가 있었다.
이들 중에서 1993년 12월 기독교학술원에서 주최한 행사가 '한국 신학계'의 '성령론 논의'에 있어서 중요한 획을 그었다고 볼 수 있다. 사실상, 이 학술대회에서는 이례적으로 국내
외로부터 열세분의 전공교수와 목회자들이 초청되어 성령론에 관한 논문들을 발표하였다.
첫째 날, 14일에는 전 고려신학대학원 교수인 안 영복 교수가 "구약의 성령론"을 발표했고, 또 화란의 Utrecht대학교의 교리사 교수인 반 오트(Van Oort)교수가 "교부들의 성령론"을 발표하였으며, 숭실대학교 교수이며 기독교학술원의 원장인 김 영한 교수가 "개혁신학의 성령론"을, 전 총신대학교 교수였으며 당시 충현교회담임목사였던 신 성종 박사가 "목회와 성령의 역사"를 발표하였으며,
둘째 날, 15일에는 차 영배 교수가 "한국신학의 성령세례론"을, 당시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인 이 수영 교수가 "깔뱅(칼빈)의 성령론"을, 당시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의 김 영재 교수가 "한국교회의 성령론(1970년 이후)의 개관과 오순절 성령강림과 성령세례에 대한 재해석"을, 당시 '탄포리'교회의 담임목사인 정 근두 목사가 "청교도 신학과 로이드 존스의 성령론"을, 창신교회 담임목사인 신 세원목사가 "성령사역의 결과"를 발표하였으며,
마지막 날인 16일에는 교회성장연구원장인 이 재범 교수가 "오순절주의의 성령세례"를, 장신대학교의 오 성춘 교수가 "신유은사와 영적 치유의 연관성"을, 한국성경신학연구소 소장인 안 봉호교수가 "성령세례의 성경적 의미"를, 그리고 장로회신학대학교의 성 종현교수가 "신약의 성령론"을 각각 발표하였다87).
그러나 고려신학대학교의 성령론을 바르게 정립한 학자는 단연 신약학의 변 종길 교수를 꼽을 수 있다. 변 종길 박사는 3장으로 구성된 그의 책을 '1장에서 교부들의 견해', 2장에서 '개혁신학자들의 견해', 3장에서 '요한복음 7:37-39에서의 이해'를 다루었다. 특히 '개혁신학자들의 견해'를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존 칼빈'을 비롯하여 '아브라함 카이퍼', '헤르만 바빙크', '흐로쉐이드', '헤르만 리델보스'와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신약학 교수였던 '리차드 개핀'(고전12:13, 15;45)의 입장을 비교하면서 요한복음 7장 39절의 주석학적 차이점과 신학적 동질성을 분석하여 논술하고 있다.
변 종길 교수는 워필드를 비롯하여 판 데르 린더와 펠러마, 퀴스토르프를 인용하여 성령의 신학자로서 칼빈을 동일하게 언급하였으나 여태까지 칼빈의 연구가들이 "구약에서의 성령의 사역과 신약에서의 성령의 사역 사이의 관계"에 대한 연구가 빈약했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성경신학적인 성령론'을 기술하였다. 고려신학대학교의 성령론을 바르게 정립한 학자는 단연 신약학의 변종길 교수를 꼽을 수 있다. 변 종길 박사는 3장으로 구성된 그의 책을 '1장에서 교부들의 견해', 2장에서 '개혁신학자들의 견해', 3장에서 '요한복음 7:37-39에서의 이해'를 다루었다.
특히 '개혁신학자들의 견해'를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존 칼빈'을 비롯하여 '아브라함 카이퍼', '헤르만 바빙크', '흐로쉐이드', '헤르만 리델보스'와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신약학 교수였던 '리차드 개핀'(고전12:13, 15;45)의 입장을 비교하면서 요한복음 7장 39절의 주석학적 차이점과 신학적 동질성을 분석하여 논술하고 있다. 변 종길 교수는 워필드를 비롯하여 판 데르 린더와 펠러마, 퀴스토르프를 인용하여 성령의 신학자로서 칼빈을 동일하게 언급하였으나 여태까지 칼빈의 연구가들이 "구약에서의 성령의 사역과 신약에서의 성령의 사역 사이의 관계"에 대한 연구가 빈약했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성경신학적인 성령론'을 기술하였다.
3. 이종성 학파의 성령론(A Pneumatology of Jong-Sung Rhee's School)
장로회신학대학교의 특수성은 장기간 학장으로 시무한 이 종성 박사의 통전적이고 포용적인 성령론덕분에 신학교나 교단에 크게 문제될 것이 없었다. 다시 말해서 이 종성 박사의 '성령론'88)은 아주 다양하고 포용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오직 칼빈이나 칼빈주의 신학만을 고집하는 주장이 없다. 오히려 현대주의 신학자들의 이론을 보다 폭넓게 수용하고 있다. 한 가지 실례를 직접 든다면, '칼빈의 성령론'89)이거나 '바르트의 성령론'90)이거나 혹은 '몰트만의 성령론'91)이든지 '틸리히의 성령론'92)이든지 모든 성령론이 상호간 수용적 태도를 가지고 있어서, 신학대학교 내에서나 교단 내에서 크게 이슈가 될 일이 없었다.
그들은 서로 비판하거나 폄하하여 혹평하지 않는다. 장로회신학대학교의 김 명용93) 교수가 번역한 브룬너(F. D. Bruner)의 '성령신학'(A Theology of the Holy Spirit, 1970)은 사실은 '오순절과 은사주의 운동의 사전'(100면)에 나오는 오순절파의 책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이것은 부제가 말해주듯이 '오순절의 경험과 신약의 증거'를 다룬 책이다. 뿐만 아니라 그의 논문은 '종교다원주의'94)에 대하여 약간의 논평은 첨가했으나 상당히 포용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한편, 김 명용 교수는 바르트의 신학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있는 신학자이지만 정작 그의 책, '칼 바르트의 신학'95)에서는 바르트의 '성령론'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96) 물론 2010년에 '바르트의 성령 이해'97)란 논문을 썼다.
칼 바르트는 '삼위일체론'98)의 경우에 '양태론'에 가까운 논리를 펴고 있으나 필립 로사토(Rosato)에 의하면, '성령론'에 있어서 여러 가지 고무적인 대목들이 많다.99) 김 명용 교수가 서평한 벨커(M. Welker)의 ?하나님의 영, 1992?은 1995년 대한기독교서회에서 신 준호에 의하여 번역되어 출판된 책인데, 김 명용 교수가 호평한 것처럼 독일에서 출간된 학문적인 '성령론'의 책이란 사실에는 동의하지만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라는 격찬에 대해서는 공감이 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책은 '해방신학과 여성신학' 뿐만 아니라 '종교다원주의와 포스트모던이즘'에 대해서도 상당히 포용주의적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인 이 수영(새문안교회)목사가 "깔뱅(칼빈)의 성령론"100)이란 논문을 썼다. 또 그의 제자인 최 윤배 박사가 "성령론 입문'101)이란 책(제2부에서, 최윤배는 "개혁?장로교회의 성령론"이라는 제목 하에, "마르틴 부처와 장 깔뱅의 성령론102)"을 진술하였는데, 그는 여기서 "깔뱅의 성령론"을 다루면서, 주로 "그리스도론과의 관계에서 성령론"을 다루겠다고 전제하고,
1. 성령과 성령의 담지자로서 그리스도103),
2. 성령과 성령의 파송자로서 예수 그리스도104)"를 보다 세밀하게 기술하였다. 이어서 그는객관적인 측면에서 "헨드리쿠스 베르꼬프와 칼 바르트의 성령론"을 다루었다. 또, 최근에, "칼빈의 성령 이해"105)란 논문을 새로운 각도에서 썼다. 즉, 최 윤배는 "
1. 창조주와 섭리주 및 구속주 성령 하나님의 위격,
2. 창조주와 섭리주 및 구속주 성령 하나님의 사역(창조주와 섭리주 성령 하나님의 일반사역과 구속주 하나님 성령의 특별사역)106)으로 요약하여, 칼빈의 성령론을 조직신학적으로 기술하였다.
한편, 장로회신학대학교 성 종현 교수의 '신약의 성령론'이라는 논문은 총신대학교의 이 한수교수의 두 명저('신약의 성령론'과 ''신약이 말하는 성령')107)와 더불어 아주 좋은 논문이다. 이들은 칼빈대학교 오 성종108) 교수의 "성령세례의 이해: 교회사적, 주석적 및 신약 신학적 연구"와 백석대학교의 최 갑종 교수의 "성령과 율법"과 더불어 '신약분야의 성령 이해'를 총체적으로 연구한 글들로 평가된다.
현 요한 교수의 두 책, '성령, 그 다양한 얼굴'109)과 '생명의 영으로 충만한 삶'110)과 "생명의 근원인 생명의 영"111)이란 논문에서, 또 다시 "1. 성령과 생명, 2. 생명의 근원인 성령(본체론),예배(성례전)와 생명의 영, 4. 인격적 생명"이란 내용과 더불어, 그의 주저인『성령, 그 다양한 얼굴』의 본론에서처럼 '1. 본체론적 성령 이해, 2. 성례주의적 성령 이해, 3. 주지주의적 성령 이해, 4.주의주의적 성령 이해, 5. 감정주의적 성령 이해, 6. 권능주의적 성령 이해, 7. 공동체론적 성령 이해,8. 종말론적 성령 이해"112)로서 다양하게 성령을 이해해야 한다고 설파하고 있다. 또, "성령에 대한 편협된 이해들을 극복해야 한다."113)라는 논문을 통해서도 "서로에 대한 배타적 비난의 목소리를 낮추고, 하나의 조화로운 이해"를 도모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는 미국 프린스톤 신학교에서 박사학위논문을 "본훼퍼의 초기신학의 성령론"114)을 다루었다. 그러나 그의 다른 논문115)은 역시 그의 사상도 칼 바르트의 포용주의에 빠져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논문에서 바르트 신학의 문제점을 과감하게 지적하였고, 존 칼빈의 기독교 강요 제IV권을 여러 곳에서 인용하여 그의 성령론을 부각시켰다.
그리고 오 성춘 교수의 "신유은사와 영적치유의 연관성"116)은 '오순절 운동과 은사주의 운동'에 대하여 긍정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다. 한편, 호남신학대학교의 전 총장이신 황 승룡117) 박사의 성령론은 통합교단 광주전남지역 안에서 거의 독보적인 위치에 서 있다. 그는 그의 책,'조직신학(하)'118)와 '신학적 성령론'119)에서 가장 이상적인 성령론의 순서를 다루고 있다.
즉, '기독론-성령론-구원론'을 체계화시켰다. 그는 '성령론의 중요성'을 비롯하여 '성령은 어떤 분이신가?', '성령에 관한 제 설명', '성령과 제 관계', '성령의 기능', '성령과 은사', '성령의 열매', '성령과 악령', '성령세례에 관하여', '성령충만', '성령과 인간의 책임', '개혁교회와 성령운동 방향'등을 아주 심도 있게 다루었다.
황 승룡 박사는 오히려 장신대학교의 이 종성 박사보다 '개혁교회의 성령운동의 방향'을 명확히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옥의 티라고 여길만한 유감스러운 점은 존 칼빈과 칼빈주의자 아브라함 카이퍼는 각주에 두 번 정도 밖에 인용되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신학의 입장에 서 있는 신학자들의 참고문헌들이 도처에 인용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 승룡 박사의 성령론에 관하여 분석한 이론들과 가르침은 광주와 호남교계에 고무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이 종성 박사와 마찬 가지로 황 승룡 박사도 성령론에 있어서, 존 칼빈과 칼 바르트 및 기타 현대 신학자들의 신학적 입장을 교호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황 승룡 박사는 그의 책, 조직신학(하)의 제5편 '성령론'의 제1장에서는 먼저, 네 가지120) 로 "성령론의 중요성"121)을 논하고, 제2장에서, "성령은 어떤 분이신가?"라는 질문에 답하기를, "첫째,성령은 인격체이시다. 둘째, 성령은 하나님이시다."122)라고 말하면서, "성부 하나님께서 한 인격이시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 인격이신 것처럼 성령께서도 한 인격이라는 사실은 성경의 근본적 계시이다."123)라고 설명하였다. 또, "성령의 신성은 처음부터 기독교 신앙의 중요한 교리였다.
주후 4세기 아타나시우스와 아리우스의 논쟁은 성령의 '인격성과 신성'에 대한 영원한 정통적 교리를 확정했다."고 교리사적인 조명을 하고 있다. 그리고 제3장에서는 "성령에 관한 제 설명"을 성경적으로 다섯 가지(거듭나게 하시는 성령, 보혜사 성령, 생명의 성령, 진리의 성령, 사랑의 성령)를 증거하고 있다.
또, 제4장에서는 "성령과 제 관계"라는 제목 하에, 네 가지( 그리스도와 성령, 성령과 말씀, 성령과 교회, 성령과 구원)의 관계들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제5장에서는 "성령의 기능"에 대해서 세 가지(성령은 세상의 죄를 책망하고, 의에 대하여 깨닫게 하시며, 성령은 사람들에게 심판을 알게 한다.)로 분석했다.
그리고 제6장의 "성령과 은사"에서는 '은사의 의미'를 네 가지(첫째, 고전 12:1의 '퓨뉴마티코이'는 '신령한 것'이며, 둘째, 고전12:4의 '카리스마타'는 '은혜의 선물'이요, 셋째, 고전12:5의 '디아코니아'는 '직임' 또는 '봉사'로 '집사직무'를 묘사하고, 넷째, 고전 12:6의 '에네르게마'는 '역사'로 번역된다.)로 설명하고 있다.
또, 제7장에서는 갈라디아서 5:22-23의 "성령의 열매"들을 세 가지(첫째, 경험의 영역으로서 사랑, 희락, 화평인데, 이것은 하나님이 부여하신 최고, 최선의 축복이며, 둘째, 행동의 영역으로서 오래 참음, 자비, 양선인데, 이것은 사람과 맺는 관계에서 나타나고, 셋째, 인격의 영역으로서 충성, 온유, 절제의 행동은 인격의 표현인데, 이러한 성령의 열매는 완전히 거룩한 인격 속에 이루어진다.)를 분석하여 설명했다. 그런데 제8장에서 특이하게 "사단론, 귀신론, 성령과 악령"의 문제를 함께 거론했는데, '성령'의 항목에서 '악령'을 다룬 것은 저자가 영적으로 혼란한 현실교회를 바르게 지도하기 위해서 언급한 것으로 충분히 이해되고, 또 꼭 필요한 대목이지만 자칫 성령하나님(하나님의 영 또는 그리스도의 영)과 타락한 피조물인 천사(악한 천사)를 대등하게 취급한 느낌을 준다. 대체로 대부분의 개혁신학자들은 '신론'의 '천사론'에서 '악령'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제9장에서 오늘날 논쟁이 되고 있는 "성령세례에 관하여" 첫째, 오순절파가 주장하는 입장에서의 '성령세례의 의미'를 정확히 지적했고, 둘째, 그들이 '성령세례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한 마디로 '능력을 얻기 위해서'이라고 규명했으나 오순절주의자들이 단지 '능력'만을 강조한다고 단정을 짓기는 어렵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황 승룡 박사는 그들이 제시하는 '성령세례를 받는 방법' 일곱 가지를 명쾌하게 파헤치면서, 마지막으로 '성경의 교훈'대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성령세례'가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 "오직 한 번의 세례만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천명하였다.124)
또, 저자는 제10장의 "성령 충만"에서는 '성령 충만의 이해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세 가지로 성령 충만의 의미, 방법, 순종을 말한다. 즉 첫째, 성령 충만의 의미인데, 그것은 부여받은 임무를 행하고 그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는다는 뜻이며, 둘째, 성령 충만의 방법125)은 인간에게서 비롯되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기에 하나님이 원하시면 언제, 어디서나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든지 성령은 자유롭게 역사하시고, 셋째, 그리스도인의 성령 충만은 성령에 의해서 하나님의 은총과 명령에 신앙과 순종으로 응답하는 사람이 모든 믿는 자에게 살아계시고 다양한 방법으로126) 성령 충만케 할 수도 있다(엡4:13)127)는 것이다.
또, 저자는 제11장에서, "성령과 인간의 책임"이란 제목 하에, 성령을 받은 사람의 특징적인 삶을 세 가지(성령을 소멸하지 말아야 하고, 성령을 근심케 하지 말아야 하며, 성령을 좇아 행하여야 한다.)128)를 말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제12장에서, "개혁교회와 성령운동 방향"에 대해서 다섯가지(성령은 교회의 주인이시며, 성령은 인격적 존재이시요, 또, 성령은 은혜의 수단을 통해서 역사하시고, 성령의 은사를 인정하되 은사의 다양성과 은사의 원리를 분명히 깨달아야 하며, 성령은 새세계를 이루어 공동체를 형성한다.)129)를 제시하고 있다. 여하간 황 승룡 박사가 오랜 세월 동안 '성령론에 관한 지속적 연구와 발표'를 통하여, 광주전남의 통합교단 산하에 있는 교회들과 목회자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을 거듭 다시 확인할 수 있다.
4. 김재준 학파의 성령론(A Pneumatology of Chai-Choon Kim's School)
김 재준 학파의 원조인 김 재준 박사는 성령론을 비롯한 조직신학 전반에 걸쳐 뚜렷한 신학작품이 거의 없다. 한신대학은 종전까지 그야말로 신학활동의 완전 자유화로 인하여 어떠한 이론이라 할지라도 상관이 없었다. 실제로 기장교단의 어떤 한 교회는 보수적인 장로교의 성령론을 아직도 그대로 유지하는 교회도 있는가 하면 또 다른 교회는 오히려 완전히 다른 오순절 운동이 만연되어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130).
놀라운 사실은 한신대학교의 전 총장이었던 오 영석 박사가 금번 칼빈의 탄생 500주년을 기해서, '칼빈의 성령론'(2009)을 썼다는 사실이다. 한신대학의 초대 학장이었던 김 재준 박사는 사실상 바르트 신학을 한국교회에 소개한 분이었다.131) 그래서 한신대에서는 그야말로 칼빈의 신학보다 바르트의 신학이 선호되었고 우세하였으며, 칼빈은 거의 잊혀져갔다. 기장교단 출신으로 탁월한 신학자는 연세대학교 신과대학의 김 균진 박사를 꼽을 수 있다.
연세대학교 신과대학은 초창기에 아예 성령론에 대한 관심이 없어서 이렇다 할 저작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김 균진 교수의 '기독교조직신학'의 전체 5권 중에서, 제II권에 보면, '성령론'132)이 비교적 길게 논술되고 있다.
김 균진박사는 그의 책에서, '성령론의 조직신학적 위치와 중요성'을 '그리스도론과 성령론의 관계'에서 설명한 다음에, '하나님의 능력으로서의 성령'을 다루었고, 또 '신적 인격으로서의 성령'과 '성령의 활동'을 '예정-창조-유지-화해-구원'의 틀에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성령 활동의 창조적이며 세계사적지평'에서 '전통적 문제점과 히브리적 성령이해과 생태학적 위기와 창조 안에 계신 하나님의 영'을 보다 세밀하게 분석하였다.
끝으로 그는 '성령과 인간의 영'의 접촉점을 언급하면서, 오늘날 크게 문제시되는 '성령의 은사'에 대한 신학적 해석과 더불어 '성령의 축복에 대하여' '수용'해야 할 점과 시정하고 우선적으로 '추구'해야 할 점을 균형 있게 언급하였으며, 마찬가지로 '성령운동과 신비체험의 관계'에 있어서, '부정적인 요소인 위험성'과 긍정적 요소'를 똑같이 다룸으로써 역시 조화롭게 아주 좋은 지도노선을 제시했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김 균진은 한국적 자유주의 신학의 대명사인 '민중신학'의 문헌을 다량으로 인용함으로써 제7차 캔버라 WCC 총회의 정 현경 교수를 연상케 한다. 천안에 있는 고려신학대학원대학교의 최 덕성 교수는 "현대주의 에큐메니칼 운동의 중심에 있는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신학적 정체성은 이 단체의 '꽃'으로 극찬을 받은 한국인 여성 신학자 정 현경 박사가 캔버라 총회(제7차, 1991)에서 보여준 '초혼제'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133)고 논평한다.
한신대학교의 김 경재 교수는 "정 현경의 초혼제와 그러한 류의 성령론을 극찬했다. 초혼제는 "영원하신 그리스도는 역사적 인간의 몸을 입고 유대 땅에 화육(化肉)하셨지만, 영원한 그리스도로서 연민의 사랑과 지혜의 영으로서 모든 문화 속에, 우리 조상들 속에 현존하셨다는 신앙고백이다"고 말했다. "기독교전래 이전에 불교와 유교를 믿고 살다 간 우리 조상들은 지옥 갈 우상숭배를 하고 간 것이 아니라, 형태만 다르게 또는 그림자처럼 우리 가운데서 창조와 구원과 속량의 일을 행하려 오셨다고 믿고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 정 현경 교수의 신앙고백이다.
필자는 그의 신앙고백에 동의한다."134)고 했다. 이와 같이 기가 막히는 신학적 태도를 가지고 있는 한신대학교에서 전 총장이었던 오 영석 박사에 의해서 "칼빈의 성령론 이해"135)라는 획기적인 논문이 발표되었다.
오 영석 교수는 이 논문에서 I.서론 II.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서 성령'라는 표제 하에서 1. 성령의 본질과 신격, 2. 하나님의 인식과 성령의 조명, III. '성령과 성경의 관계' 1. 성경의 권위와 성령의 내증, 2. 말씀과 성령의 상관관계, IV.성령의 신비로운 역사, 1. 그리스도와 신자를 연합시켜주는 역사, 2. 믿음과 성령의 역사, 3. 믿음과 회개의 관계, 결론으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강조하는 내용을 고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그야말로 오 영석 교수는 칼빈의 노선에서 구사일생(九死一生)의 명작을 금번에 발표했다고 여겨진다.
끝맺는 말
이상에서 살펴본 대로 한국장로교회의 각 교단들은 교단이 분열된 이후 각기 새로운 신학사조를 선택하여 나름대로의 특색을 이루어 갔다. 물론 초기에는 모두 칼빈의 신학에서 출발하였으나 지금은 상당히 거리가 먼 길을 가게 되었다. 이것은 비단 '성령론' 뿐만 아니라 '삼위일체론'이나 '기독론'에서도 존 칼빈보다는 오히려 칼 바르트나 루돌프 불트만과 폴 틸리히, 그리고 윌겐 몰트만를 비롯한 현대주의 신학자들의 신학사조를 더 좋아하는 경향이 사실상 여러 교단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여기서 필자는 학문의 자유와 신학적 입장을 선택하는 것은 각자의 자유의지에 따라서 선택하는 것이라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러나 장로교회의 간판 아래
다른 신학을 따라가는 것은 분명히 본질을 이탈한 탈선행위가 아닐까 사뭇 우려된다.
특히, 기독교장로회 측의 '민중신학'은 급기야 전 이화여자대학교의 정현경 교수와 같은 '무당종교가'를 배출하여 영계를 어지럽히게 되었다. 정 현경은 보수신학계가 자신을 마녀신학자, 무당신학자로 일컫는 데 대하여 오히려 "무당이라는 비난은 내겐 최고로 영광스런 찬사"136)라고 말하면서, 넉살좋게 응수하기를 "무당처럼 신명나는 여성해방운동을 하는 것이 꿈이라"137)고 토로한다.
우리 한국장로교회의 신학자들은 칼빈 선생님의 탄생 500주년을 기념하면서, 복음의 올바른 나팔수로서의 사명을 다하지 못한 불충함을 하나님과 교계 앞에 머리 숙여 참회하고, 진정으로 겸허하게 회개해야 할 것이다.
저자부터 교수로서 열렬하게 바르게 가르치지 못하여, 이와 같이 무당종교의 '쓴 뿌리'가 나오게 된 것과 일본제국시대에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총회에서 가결하고, 신사에 참배한 죄를 한국교회 앞에 철저하게 통회하고 회개하는 바이다.
본론에서도 언급했듯이 고려신학교 출신인 차 영배 교수와 최 갑종 교수의 공개토론은 차 영배 교수의 계속적이고 일방적인 답변과 문제제기로 인해서, 토론이 원만하게 진행되지 못하고 말았다. 결국, 최 갑종 교수가 답변을 일단 유보함으로써 사실상 뚜렷한 결말 없이 중단되고 말았다. 답변을 유보한 최 갑종 교수는 '성령세례' 논쟁의 근본적인 해결을 보기 위하여 '일반적인 논쟁'보다 성경본문의 주경신학적인 연구의 교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그동안 국내외에서, 한편으로 '신약의 성령론'을 다루고 있는 그의 학위논문의 완성을 위해서, 또 다른 면은 '한국교회 성령론의 정립'에 공헌하기 위해서, '신약의 성령론'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내심을 밝히고 있다.
그런데, 1992년 9월과 1993년 9월 두 차례에 걸쳐 고려신학대학원 교수들에 의한 "성령론 연구보고서"가 고신교단의 총회에 제출되었으며, 1993년 11월에는 합동신학교에서 '성령론의 강좌'138)를 통하여 여러 교수들이 논문을 발표하였으며, 1993년 12월 14일부터 16일까지 차 영배 교수가 대표로 있는 '기독교학술원'에서 "성령사역의 지속성"(The Continuity of Baptism in Holy Spirit)"`이라는 주제로 제8차 '국제학술심포지엄'을 개최하였으며, 1994년 3월에는 두란노서원에서 발간하는 월간지, "목회와 신학" 제57권 3월호에, "성령세례의 쟁점과 전망"이라는 특집이 마련되어 여섯 분의 글이 수록되었으며, 그리고 보다 최근인 1994년 5월 10일에는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학우회에서 개최한 "성령론 심포지엄"에서 서 철원, 차 영배, 이 한수 교수의 논문발표와 고 영민 목사의 논평이 있었으며, 김 세윤, 차 영배, 서 철원, 이 한수140), 정 훈택, 김 정우, 박 용규 교수 사이에 성령론에 관한 패널토의가 있었다. 이들 중에서 1993년 12월 기독교학술원에서 주최한 행사가 '한국 신학계'의 '성령론 논의'에 있어서 중요한 획을 그었다고 볼 수 있다.
사실상, 이 학술대회에서는 이례적으로 국내외로부터 열세 분의 전공교수와 목회자들이 초청되어 성령론에 관한 논문들을 발표하였다. 첫째 날, 14일에는 전 고려신학대학원교수인 안 영복 교수가 "구약의 성령론"을 발표했고, 또 화란의 Utrecht대학교의 교리사 교수인 반오트(Van Oort)교수가 "교부들의 성령론"을 발표하였으며, 숭실대학교 교수이며 기독교학술원의 원장인 김 영한 교수가 "개혁신학의 성령론"을, 전 총신대학교 교수였으며 당시 충현교회 담임목사였던 신 성종 박사가 "목회와 성령의 역사"를 발표하였으며, 둘째 날, 15일에는 차 영배 교수가 "한국신학의 성령세례론"을, 당시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인 이 수영 교수가 "깔뱅(칼빈)의 성령론"을, 당시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의 김 영재 교수가 "한국교회의 성령론(1970년 이후)의 개관과 오순절 성령강림과 성령세례에 대한 재해석"을, 당시 '탄포리'교회의 담임목사인 정 근두 목사가 "청교도 신학과 로이드 존스의 성령론"을, 창신교회 담임목사인 신 세원목사가 "성령사역의 결과"를 발표하였으며, 마지막 날인 16일에는 교회성장연구원장인 이 재범 교수가 "오순절주의의 성령세례"를, 장신대학교의 오성춘 교수가 "신유은사와 영적 치유의 연관성"을, 한국성경신학연구소 소장인 안 봉호 교수가 "성령세례의 성경적 의미"를, 그리고 장로회신학대학교의 성 종현교수가 "신약의 성령론"을 각각 발표하였다141).
그러나 고려신학대학교의 성령론을 바르게 정립한 학자는 단연 신약학의 변 종길 교수를 꼽
을 수 있다. 변 종길 박사는 3장으로 구성된 그의 책을 '1장에서 교부들의 견해', 2장에서 '개혁신학자들의 견해', 3장에서 '요한복음 7:37-39에서의 이해'를 다루었다. 특히 '개혁신학자들의 견해'를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존 칼빈'을 비롯하여 '아브라함 카이퍼', '헤르만 바빙크', '흐로쉐이드', '헤르만 리델보스'와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신약학 교수였던 '리차드 개핀'(고전12:13, 15;45)의 입장을 비교하면서 요한복음 7장 39절의 주석학적 차이점과 신학적 동질성을 분석하여 논술하고 있다.
변 종길 교수는 워필드를 비롯하여 판 데르 린더와 펠러마, 퀴스토르프를 인용하여 성령의 신학자로서 칼빈을 동일하게 언급하였으나 여태까지 칼빈의 연구가들이 "구약에서의 성령의 사역과 신약에서의 성령의 사역 사이의 관계"에 대한 연구가 빈약했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성경신학적인 성령론'을 기술하였다. 한 철하 박사가 총장과 명예총장으로서 지도력을 가지고 있을 때는 '장로교 신학과 웨슬리 신학'이 조화롭게 병행되었다.
그러나 칼빈의 신학에 있어서, 이미 '칼빈의 신론'(서울: 이컴비즈넷, 2005)과 '칼빈의 기독론'(서울: 도서출판 로고스, 1999)을 집필한 박 해경 교수는 '칼빈과 기독교강요요약'(아가페문화사)과 '칼빈의 신학과 복음주의'(아가페문화사)에서 '칼빈의 성령론'을 소개하고 있다.
물론 그는 '신론'과 '기독론'처럼 구체적인 '성령론'에 관한 연구서를 아직 펴내지 못하고 있다. 한편 ACTS의 교회사가 원 종천 교수는 2009년 4월 25일(토)에, 총신대학교 양지 캠퍼스에서 있었던 제53차 한국복음주의신학회 논문발표회의 주제142) 발표에서 '성화 진작(振作)을 위한 칼빈의 신학적 진보'(성령론)을 강의하여 모든 학회 회원들로부터 열화(熱火)와 같은 좋은 호응을 받았다.
백석대학교는 여러 입장의 신학자들이 자유롭게 모인 대학이지만 대체로 개혁신학에 분명히 서 있다. 예를 들어서 부총장이며 신약학 교수인 최 갑종 교수는 일관성 있는 개혁교회의 성령론을 주장하고 있다. 최 갑종 교수는 말하기를 "1980년 이후 한국장로교회 안에서, 특별히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을 표방하고 있는 예수교장로회의 고신교단 및 합동교단 산하 신학대학과 교회 안에서 신학대학 교수들, 목회자들 그리고 신학생들 사이에 성령세례 문제에 관한 활발한 연구와 토론이 계속되어 왔다143).
그러다가 최근에 예장 고신교단 신문이라고 볼 수 있는 "기독교보"가 한국 교회 성령세례 논쟁과 관련하여 1986년 고신대학교의 교수연구위원회가 마련하고 동교수회에서 추인된 "성령세례에 대하여"라는 논문을 전면 게재하고(92년 7월 11일자), 곧 이어 같은 신학대학의 구약학 담당교수인 안 영복목사가 "종전의 성령론은 왜 잘못되었는가?"라는 논문을 통하여, 그리고 전 총신대학 학장이며, 신학대학원 교의학 담당교수인 차 영배 교수가 "성령세례에 관한 연구논문의 문제점"이란 논문을 통하여, 고신대학원 '교수연구보고서'에 대하여 강한 반대와 비판을 제기함으로써, 그리고 이 사실이 교계 신문에 크게 보도됨으로써, "성령세례 논쟁"은 전체 한국교회의 관심사로 부각되었다.
최 갑종 교수는 한국교회의 '성령세례 논쟁'은 3가지 영향 때문에 심화되었고, 계속 확산되어 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데, 첫째, 성령세례와 성령은사(특히 방언과 신유)를 모든 그리스도인이 지향해야 할 필수적인 경험적 요소임을 주장하는 오순절파, 특히 순복음교회의 급성장 때문에 많은 장로교회 목회자와 신학생들이 교회성장이란 문제와 관련하여 오순절교회 주장을 개혁주의 신학 입장에 의한 충분한 신학적 사유나 비판 없이 목회현장에 서서히 도입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요,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것이 한국인들의 심성과 관련하여 실제적으로 교회성장의 효력을 보여주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둘째, 한국의 가장 큰 장로교단의 직영 신학대학교인 총신대학교에서 오랫동안 교의학을 담
당하고 있는 차 영배 교수가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성령강림과 중생과 성령세례'에 대한 문제와 관련하여, 전통적인 해석보다 오히려 오순절 신학에서 강조되고 있는 해석과 유사한 주장을 학생들에게 계속해서 가르쳤을 뿐만 아니라, 무게 있는 논문발표와 저서 및 강연을 통하여 자신의 주장을 학계와 교계에 널리 보급하였기 때문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그는 그동안 고신대학교의 안 영복 교수,개혁신학연구원의 정 원태 교수, 자신이 대표로 있는 기독교학술원 등으로부터 지지를 얻게 되었으며, 동시에 고신대학교의 고 재수 교수, 총신대학교의 서 철원 교수, 전 ACTS 교수인 정 규남 박사144),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리차드 B. 개핀(R. B. Caffin) 교수 등으로부터 공개적인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그래서 급기야 1991년 가을학기에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학우회에서 차 영배, 서철원, 권 성수, 박 형용, 박 정렬 교수 등을 모시고 '공개토론회'를 가졌고, 고신교단에서는 젊은 목회자들을 중심으로 지난 1992년 8월 24일 부산에서 '성령세례 문제'를 주제로 '공개토론회'를 개최했다.
그러나 최갑종 교수에 의하면, 가장 중요한 문제인 차영배 교수의 주장이 참으로 화란의 개혁주의 신학자, 헬만 바빙크의 입장을 충실하게 대변하고 있는지, 또 그의 '성령에 대한 가르침'이 신약성경 자체의 가르침과 참으로 일치하고 있는지에 관하여 그동안 교의학자들과 신약학자들 사이에 충분한 연구평가가 이루어지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최 갑종 교수에 의하면, 셋째로는 1980년대 후반이후 20세기 영국의 가장 유명한 강해설교가로 알려져 있는 로이드 존스 목사의 성령론에 대한 책들이 번역되어 널리 보급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로이드 존스의 2차적 능력세례는 '중생과 성령세례'를 동일시하던 이제까지의 한국장로교회의 전통적 입장에 문제를 제기하였다. 한편, 백석대학교의 유 태화 교수의『삼위일체론적 성령론』145)도 동일하게 개혁신학적 노선에 분명히 서 있다.
백석대학교의 최 갑종 교수는 그의 책,『예수??교회?성령』146)에서 "누가와 바울"의 성령론을 다루었다. 또 그는 다른 책,『성령과 율법』147)에서 "누가와 바울과 요한"의 성령에 대한 증거들을 상호 비교하여 '先-중생과 後-성령세례설'의 주장을 주도면밀하게 분석하고 비평하였다. 한편, 신약학 분야에서 ‘성령’에 관한 걸작으로 평가되는 책은 총신대학교의 이 한수 교수의『신약이 말하는 성령』이다.
각 주
1. 고재수(N. H. Gootjes), ?성령으로의 세례? (서울: 개혁주의 신행협회, 1987).
2. 권성수역, ?성령은사론(Richard B. Gaffin Jr, Perspectives on Pentecost)? (서울: 기독 교문서선교회,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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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 바르트는 실제로 '변증법적 신학'(Dialektische Theologie)의 사고를 가지고 있다(184). 그리고 바
르트가 '구원론과 교회론 등이 상당히 문제'(필자의 논평)가 된 가톨릭 신학자인 칼 라너에게 영향을 주
었다(181-182)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자유주의 신학자인 아돌프 하르낙과 빌헤름 헤르만에게 직접 배
웠고(185), '칼 바르트의 성령론'과 '윌겐 몰트만의 성령론'이 매우 유사하다는 점을 주장한다(195). 김명
용, "바르트의 성령 이해"『성령과 기독교 신학』(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0), 181-182, 184, 185, 186,
188, 195. 뿐만 아니라 칼 바르트는 WCC (1948년에 개최된 제1차 암스텔담 총회)의 개회 강연을 했다
는 역사적 사실을 인정했다(185). 결국, 바르트는 오늘의 범종교적 혼합운동의 기수가 된 것이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김명용은 칼 바르트를 가리켜서, '칼빈주의자'(186)라고 거짓증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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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과 한국장로교회의 교단별 성령론에 대한 비교 연구”에 대한 논평
논 평 유정선 (한국성서대학교/조직신학)
5월에 평택대학교에서 개최된 제 20차 한국복음주의 조직신학회에서 조봉근 박사님은 “칼빈과 한국교회의 인간론 비교 연구”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하신데 이어 본 복음주의 학회에서는 “칼빈과 한국장로교회의 교단별 성령론에 대한 비교 연구”라는 논문을 발표해 주셨습니다.
아마도 박사님의 남은 생애는 조직신학 전 분야를 칼빈과 관련하여 비교 연구하시는 것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잠깐 제머리 속을 스쳐 지나가면서 학자의 아름다운 인생의 마무리 작업으로 꽃 피울 학문의 열매가 한국교계와 학계에 미칠 영향력을 한 번 상상해 보았습니다.
논평의 시간을 통하여 후배 학자들에게 학자적, 그리고 학문적 자극을 갖게 해주신 조봉근 박사님에게 감사드리며 특히 조직신학계에 큰 어른이신 조봉근 박사님의 글을 감히 이제 막 학자의 길에 들어 선 논평자가 논평을 하게 되어 영광으로 생각하며 동시에 논평의 기회를 주신 복음주의 조직신학회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논평의 순서는 논문의 간단한 내용 요약과 논평 순으로 하겠습니다.
1. 내용 요약
들어가는 말에서 연구자는 비 비 워필드(B. B. Warfield)의 말을 인용하여 존 칼빈(John Calvin) 을 성령의 신학자로 소개하면서 한국 장로교회는 성령의 신학자인 칼빈의 신학을 따르고 있음을 확언한다. 그리고 바로 이 성령의 신학자 칼빈의 신학을 표방하고 있는 한국장로교회가 칼빈의 신학과 그의 성령론을 어느 정도 수용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본 연구자는 한국장로교회를 크게 합동교단, 고신교단, 통합교단, 기장교단, 즉 4대 교단으로 분류하고 각각의 교단에 속해 있는 학자들의 성령론 문헌을 비교 분석하고자 한다고 논문의 목적과 방법을 밝히고 있다.
먼저 서철원과 차영배, 이한수를 비롯한 총신대학교의 교수들의 성령론에 관한 저서들, 고재수,안영복, 변종길, 유해무를 비롯한 고신대학교의 교수들의 저서들, 김재성과 조병수를 비롯한 합동신학대학교 교수들의 저서들과 최갑종과 유태화를 비롯한 백석대학교의 교수들의 저서들, 이수영과 차윤배, 현요한, 성종현을 비롯한 장신대학교의 교수들의 저서들, 그리고 기장을 대표하는 한신대 오영석 교수와 연세대 김균진 교수읫 어령론 저서 및 발표 논문 자료와, 호남신학대학교의 황승룡 교수와 개혁신학원의 정원태 교수들의 성령론 저서를 소개하였다.
이어 성령 운동을 주제로 한 신앙 강좌와 대담, 논문 발표 등을 소개하면서 “개혁신학의 성령론”을 발표한 김영한 교수, “바르트의 성령론 연구”를 쓴 김명용 교수를 연구자와 같은 맥락에 있는 필립 로사토의 “바르트 성령론”을 목차 언급 정도로 간단하게 비교하고 있다. 그 외에 칼빈의 성령론을 다루고 있는 교수들, 즉 이은선, 김은수, 그리고 본 연구자의 연구가 있었음을 간단히 소개하면서 연구자는 한국장로교회를 앞서 구분한 4개 교단을 4개의 학파로 분류하고 박형룡 학파(총신대학교),박윤선 학파(고신대학교), 이종성 학파(장신대학교), 그리고 김재준 학파로 나누어 그들의 성령론 저서를 중심으로 구체적으로 열거하였다.
“1. 박형룡 학파의 성령론” 부분에서는 서철원 교수와 정원태 교수, 서철원 교수와 차영배 교수와의 논쟁 사건 등을 소개하였고 성령강림에 있어서 차영배 교수가 개혁신학자들의 전통과 다른 주장을 펼치고 있었음을 지적하면서(1-3) 본 연구자의 성령론 강의록을 중심으로 은사와 성령세례, 방언, 일반은총과 특별 은총, 성령 충만 등에 관하여 본 연구자의 입장을 나열한 후(3-14), 다음으로 이한수의 “신약이 말하는 성령론”을 목차 중심으로 소개하고 있다(14-15).
“2 박윤선 학파의 성령론”에서는 안영복, 고재수, 그리고 차영배 교수 사이의 논쟁과 성령세례에 관한 차영배, 유해무 교수와의 논쟁, 그리고 1994년 기독교 학술원에서 주최되어 발표된 논문 발제자와 논문 제목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16-17).
“3 이종성 학파의 성령론”에서는 장로회신학대학교는 이종성 박사의 통전적이고 포용적인 성향때문에 교단과 신학계에 커다란 문제가 없음을 언급하면서 신정통주의자들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김명용 교수의 성령론과 번역서를 소개하고 이수영 교수와 최윤배 교수가 보여준 칼빈의 성령론에 대한 관심은 이례적인 일이었으나 반가운 일이었음을 아울러 지적하면서 성종현, 현요한, 그리고 오성춘의 성령론을 간단히 소개하였다. 반면 황승룡 교수의 성령론은 chapter를 중심으로 비교적 자세하게 소개하면서 목회자와 교회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고 평가한다(19-21).
“4 김재준 학파의 성령론”에서 김재준, 오영석, 김균진, 그리고 김경재 교수의 성령 이해를 소개하고 있다(21-22).
“끝맺는 말”에서 본 연구자는 칼빈의 신학을 표방하고 있는 한국장로교회는 교단으로 분열되면서 칼빈의 신학과 거리가 멀어졌다고 결론 맺으면서 장로교의 본질에서 벗어나고 있는 한국장로교회의 일부 교단에 대하여 우려를 표명하였다. 이어 본 연구자는 한철하, 원종천, 유태화, 최갑종 교수의 성령론 저서를 언급하면서 그들이 지니고 있는 성령 이해에 대해 간단하게 비평하면서 논문을 맺고 있다.
2. 논평
이 논문의 가장 큰 기여도는 무엇보다 방대한 성령론 자료들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한국교회사에서 중요했던 성령론 논쟁들과 이에 참여했던 학자들, 그리고 현재 한국 신학대교 교수들이 출판한 성령에 관한 저서와 논문들, 특히 한국 신학자인 경우 82종의 저서와 외국 신학자인 경우 100여 종의 저서와 논문을 소개함으로써 성령론에 관한 자료를 정리해 놓았다는 점을 비롯하여 한국에서의 성령론 논쟁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기여도에도 불구하고 논평의 자리이기에 굳이 아쉬웠던 점을 언급하자면
1. 논문 형식에 있어서 논문 전체가 각주 처리는 되어 있으나 결정적으로 각주 내용이 빠져 있다. 따라서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사항들을 참고 또는 확인 할 수 없었다.
2. 논문 작법에 있어서 “들어가는 말, 1, 2, 3, 4, 결론”으로 구분되어 있을 뿐 들여쓰기를 비롯하여 단락의 구분이 전혀 되어 있지 않으며 문장이 너무 길었다. 심지어 한 문장이 무려 14줄이 되는 경우도 있다.(17페이지 2줄부터 16줄까지가 한 문장으로 되어 있다).
3. 논문 분량에 있어서 통상적으로는 15페이지 내외로 하고 있는데 비하여 2배 이상이다. 따라서 논문 완성도를 위하여 충분히 교정하여 반복되는 부분은 삭제하고 내용은 과감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실제적으로 본 논문의 반복 부분을 제시하자면 p. 17의 “고려신학대학교의 성령론을 바르게 정립한 학자는 단연 신약학의 .........”과 이어 “고려신학대학교의 성령론을 바르게 정립한 학자는 단연 신약학의....” 부분이며 결론 부분에서도 역시 차영배 교수와 최갑종 교수와의 논쟁을 비롯하여 변종길 박사의 성령론, 기독교학술대회 논문 발표 건 등을 굳이 반복(23-24)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또한 각 교단별 이해를 위한 부분들이 한 쪽으로 편중된 면이 없지 않음을 볼 수 있다(박형룡 학파는 14페이지, 박윤선 학파는 3페이지, 이종성 학파는 4페이지, 김재준 학파는 2페이지). 따라서 본 논평자는 장로교회 전체보다는 보수 노선에 있는 교단을 선택하고 그 중에서 대표적인 학자의 성령론을 중심으로 비교 분석하였다면 “비교연구”라는 제목에 보다 충실한 논문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제안해 본다.
4. 논문 내용에 있어서 한국에서 출판된 신학대학교수들의 성령론 내용을 목차 중심으로 소개하고 있다. 따라서 성령론 자료를 파악하는 데에는 적지 않은 도움이 되겠으나 “칼빈과 한국장로교회의 교단별 성령론에 대한 비교 연구”라는 제목에 있어서는 다소 미흡한 점이 없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5. “1”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한수 교수는 이 부분에서 사도행전 6:6절로 8절의 내용을 다시 살펴서 주석하고 논증해야 할 것이다”라고 지적하고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한 연구자의 논증과 주석도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6. “끝맺는 말” 부분에서 또 다시 교수들의 성령론 저서 및 발표 자료들을 언급하면서 “마지막으로 신약학 분야에서 ‘성령’에 관한 걸작으로 평가되는 책은 총신대학교의 이한수 교수의 신약이 말하는 성령이다”로 마무리되고 있는 것과 성령의 신학자 칼빈의 신학 사상 수용도를 가늠해 보기 위한 한국장로교회의 교단별 성령론에 대한 비교연구와 어떠한 상관관계를 갖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의 성령론을 바르게 정립하고자 본 논문을 연구하시고 기꺼이 발표해 주신 조봉근 박사님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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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라오스정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5.01.06 대충 한번 읽어 보았습니다..이 내용을 소화하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리라 봅니다..
믿음의 내용을 학문적으로 표현한다라는 문구가 마음에 들지는 않으나,,이것 또한 하나님의 역사로 보기로 하였습니다..부디 성경이 제시하는 <성령론>으로 되리라고 확신 합니다..영적인 일은 두부모 자르듯이 그렇게 확실하게 결판낼수 없다고 봅니다..그렇다고 분별을 못할정도의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적어도 개혁주의 노선을 걷는 믿음의 사람들이라면,.모두가 공감하고 인정하는 그런 신학이 나오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