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묵상:2015년6월19일(금)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
행19:21~41
에베소지역에서의 사역이 2년 정도 진행되는 중에, 바울사도의 마음 속에는 새로운 소원이 생깁니다. 그것은 바로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왜 이런 소원이 생겼을까요? 에베소지역에서의 사역의 열매를 보면서, 제국의 중심부인 로마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 리가 없습니다. 아마도 수많은 사람들이 로마로부터 왔고 또한 로마를 향해서 떠나곤 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참된 복음, 생명의 복음을 가지고 있음을 진정으로 확신한다면, 복음에 대한 부담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복음을 들을 수 있게 할까 하고 말입니다. 이런 복음증거에 대한 본능은 크리스챤된 사람들의 본능입니다. 그래서, 대마도도 보아야 하리라, 만주도 보아야 하리라는 것입니다. 물론, 바울사도가 서바냐도 또한 가기를 바랬던 것처럼, 우리들도 대마도와 만주를 넘어 땅끝을 향한 열망이 계속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일단은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대마도도 보아야 하리라, 만주도 보아야 하리라, 이것이 우리들의 소원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소원을 갖는 것이 중요하지만, 소원을 갖는다면,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계획과 실천하는 절차가 따라야 합니다. 바울사도의 경우를 보십시오. 먼저, 22절, “자기를 돕는 사람 중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게도냐로 보”냅니다. 왜 보냈을까요? 로마를 보기 위해서, 예루살렘을 먼저 들리려고 하는데, 헌금을 모금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자기는 이사야에 남아 있습니다. 아마도, 고린도교회에 대한 문제를 좀 더 해결하고자 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것들이 모두 로마도 보아야 하겠다는 계획 가운데서 하나하나 성취되어 가는 일들이란 점입니다. 우리들도, 대마도를 보고, 만주를 보아야겠다면, 하나하나 실행계획과 성취할 수 있는 절차들을 예상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이 문제를 오늘 중으로라도 검토해 보면 좋겠습니다.
이때쯤 일어난 일이 23절부터 기록되어 있는데, 이 일이 기록된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복음으로 말미암아 적지 않은 소동이 일어났다고 하는데, 십자가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생계의 위협을 느꼈던 아데미여신을 숭배한 사람들이 소동이었습니다. 신상을 만들어서 여행객들에게 장사를 하여서 이익을 남겨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 중에 대표자가 ‘데메드리오’라고 합니다. 에베소지역을 방문하였을 때, 마침 저희 가족이 하룻밤을 잤던 곳이 바로 아데미신전의 터가 있던 바로 앞이었습니다. 지금은 단 하나의 기둥만 댕그러니 남아있을 뿐이지만, 거의 몇만 평 정도의 엄청난 터의 규모를 보고는 압도당해 버렸습니다. 이곳에서 연극장까지는 상당히 멉니다. 택시로도 5분 정도니까 1시간 정도를 걸어야 했던 곳인데, 바울사도가 아데미신전 가까이서 잡혀서 5킬로정도 떨어져 있는 연극장으로 끌려갔던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일행이 당했을 모독과 조롱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복음으로 인한 수고에 너무 게으른 나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였습니다.
바울과 더불어서 일하던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들어 함께 연극장에 넣어두고는 “에베소사람의 아데미여” 하며 2시간 동안이나 연호를 부르면서 일종의 제전을 치룬 것 같습니다. 식인종들이 백인들을 잡아놓고는 불을 피워놓고 장구소리와 함께 춤을 치면서 괴성을 불러대는 것과 비슷했을 것입니다. 마침 바울은 친구들이 말려서 연극장으로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마음이 무척 괴로웠을 것입니다. 아마도, 에베소사람들이 유대인 전체를 모욕주고 야유하는 것을 보고, 유대인 중 알렉산더를 세워서 변명케 하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마침내 서기장이 진정을 시켜서 흩어지게 합니다. 이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 때문이라고 여겨집니다. 바울로 말미암아 에베소를 떠나게 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 소동 가운데서도 결국은 사람들이 흩어지고 바울은 에베소를 떠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복음을 위한 수고에 우리 주님께서 함께 하시고 섭리하셔서 보호하실 것입니다. 힘내는 우리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