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예배를 위해서 준비해야 할 것들이 더 있지만, 이제 “입례찬송”으로 넘어가자. 예배는 하나님과의 교제이다. 이 “교제로서의 예배”에 대해서 항상 잊지 말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예배시간에 늦는 것은 더욱 바람직하지 않다. 교제의 첫인사와 고백에 참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사회자는 입례찬송을 부르기 전에, 간단한 기도와 더불어 예배에로의 초청을 하는 것이 좋다. 주보에 실려진 순서에는 없지만, 유념해 두면 좋을 것 같다. 나는, 보통, 기도와 더불어서, 요한복음4장24절,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는 성구를 이용해서 “예배에로의 초청”을 한다. 인도자들은 기도 전에 이 초청을 위한 성구를 미리 준비해 두어서, 기도와 초청을 동시에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이제, 입례찬송의 의미를 새겨보자. 우리 교회의 “입례찬송”은 한글찬송가의 1번부터 80번사이에 있는 찬송곡들 중에서 거의 돌아가면서 부르고 있는 편이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공예배를 시작하면서, 무엇보다도 감사와 찬송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예배드리는 자의 합당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하나님되심, 창조와 섭리 등을 찬송으로 표현하면서, 그 분의 덕을 기리고 우리의 예배와 함께 임하여달라는 간구가 그 찬양을 부르면서 자연스럽게 표현되어 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찬송을 부를 때에 우리는 모두 다 그 자리에서 일어나 서서 부른다. 이것은, 폐회송과 함께, 예배의 시작과 마지막을 알린다는 의미도 있을 뿐만 아니라,일종의 상징적인 행위이다. 사실은 모든 예배가 서서 드림으로 인해서 하나님 앞에서 경배드리는 자의 온전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예배”라는 말은 실제로 “엎드린다”는 뜻이다. “세배”라는 말에 나오는 “배”의 뜻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예배드리는 중 내내 엎드려 있어야 하는가? 한글의 “예배”라는 말이 그런 뜻이라면, 헬라어의 “예배”에 해당되는 “프로스큐네오”라는 말은 “키스하다”는 뜻이다. 물론 입술에 키스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발등상에 키스한다는 말이다(이 “키스하다”는 의미를 확대해석해서, 신비주의적으로 예배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음에 주의하자). 발등상에 키스하기 위해서는 엎드려야 한다. 우리 말의 “배”와 연관이 된다.
원래는 “엎드”렸던 예배의 행위가 “서서” 드리는 것으로 변화가 된 것은, 아무래도 예배건축학적인 측면에서도 고찰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저 간단하게 시대적인 문화의 차이에 의해서, “서서” 드리는 것이 이 시대의 “공경”의 표현이라는 것쯤에서 만족하자. 요약하자면, 예배 중에 계속 “엎드려” 있거나, “서서” 있지 못하지만, 그 예배의 시작과 끝에 “일어섬”으로 그 전체 예배의 행위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우리 양무리교회의 처음 “입례찬송”과 그 “일어섬”의 의미라는 것이다.
입례찬송을 부르면서 주의할 것들이 있다. 전심으로 부르자. 소리 높여 부르자. 기도하면서 부르자. 특별히 늦게 오는 사람들로 인해서, 예배의 입례찬송부터 어수선해지기가 쉽다. 늦게 들어오는 사람에게 방해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미리 자리를 잡는 것부터,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주의하자. 먼저 온 사람은, 의자의 가운데 부분에 자리를 잡자. 그 뒤에 오는 사람은, 되도록 가운데 부분에 가깝게 자리를 잡아서, 자기보다 뒤에 오는 사람들을 배려하는 마음들을 가지도록 훈련하자. 사실, 뒤에 오는 사람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더욱 온전히 예배드리기 위한 배려이기도 하다.
예배의 순서들의 의미들을 알고 진지하게 드리는 예배에 대한 소망을 갖게 된다면, 그 예배의 사모하는 마음들 속에 우리 성령님께서 자리를 잡으실 줄을 믿는다. 왕의 자리를 친히 펴시고는 그 왕좌에 성부하나님께서 좌정하셔서 우리의 입술과 마음이 하나게 된 찬양을 들으시면서, 하늘의 천군과 천사들도 함께 찬양드리게 될 것이다. 그 보좌옆에는 우리의 구세주되신 어린양이 앉아계시고….아니, 아니....때론 서 계시기도 하신다(손성은:계속).
이제, 입례찬송의 의미를 새겨보자. 우리 교회의 “입례찬송”은 한글찬송가의 1번부터 80번사이에 있는 찬송곡들 중에서 거의 돌아가면서 부르고 있는 편이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공예배를 시작하면서, 무엇보다도 감사와 찬송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예배드리는 자의 합당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하나님되심, 창조와 섭리 등을 찬송으로 표현하면서, 그 분의 덕을 기리고 우리의 예배와 함께 임하여달라는 간구가 그 찬양을 부르면서 자연스럽게 표현되어 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찬송을 부를 때에 우리는 모두 다 그 자리에서 일어나 서서 부른다. 이것은, 폐회송과 함께, 예배의 시작과 마지막을 알린다는 의미도 있을 뿐만 아니라,일종의 상징적인 행위이다. 사실은 모든 예배가 서서 드림으로 인해서 하나님 앞에서 경배드리는 자의 온전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예배”라는 말은 실제로 “엎드린다”는 뜻이다. “세배”라는 말에 나오는 “배”의 뜻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예배드리는 중 내내 엎드려 있어야 하는가? 한글의 “예배”라는 말이 그런 뜻이라면, 헬라어의 “예배”에 해당되는 “프로스큐네오”라는 말은 “키스하다”는 뜻이다. 물론 입술에 키스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발등상에 키스한다는 말이다(이 “키스하다”는 의미를 확대해석해서, 신비주의적으로 예배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음에 주의하자). 발등상에 키스하기 위해서는 엎드려야 한다. 우리 말의 “배”와 연관이 된다.
원래는 “엎드”렸던 예배의 행위가 “서서” 드리는 것으로 변화가 된 것은, 아무래도 예배건축학적인 측면에서도 고찰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저 간단하게 시대적인 문화의 차이에 의해서, “서서” 드리는 것이 이 시대의 “공경”의 표현이라는 것쯤에서 만족하자. 요약하자면, 예배 중에 계속 “엎드려” 있거나, “서서” 있지 못하지만, 그 예배의 시작과 끝에 “일어섬”으로 그 전체 예배의 행위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우리 양무리교회의 처음 “입례찬송”과 그 “일어섬”의 의미라는 것이다.
입례찬송을 부르면서 주의할 것들이 있다. 전심으로 부르자. 소리 높여 부르자. 기도하면서 부르자. 특별히 늦게 오는 사람들로 인해서, 예배의 입례찬송부터 어수선해지기가 쉽다. 늦게 들어오는 사람에게 방해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미리 자리를 잡는 것부터,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주의하자. 먼저 온 사람은, 의자의 가운데 부분에 자리를 잡자. 그 뒤에 오는 사람은, 되도록 가운데 부분에 가깝게 자리를 잡아서, 자기보다 뒤에 오는 사람들을 배려하는 마음들을 가지도록 훈련하자. 사실, 뒤에 오는 사람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더욱 온전히 예배드리기 위한 배려이기도 하다.
예배의 순서들의 의미들을 알고 진지하게 드리는 예배에 대한 소망을 갖게 된다면, 그 예배의 사모하는 마음들 속에 우리 성령님께서 자리를 잡으실 줄을 믿는다. 왕의 자리를 친히 펴시고는 그 왕좌에 성부하나님께서 좌정하셔서 우리의 입술과 마음이 하나게 된 찬양을 들으시면서, 하늘의 천군과 천사들도 함께 찬양드리게 될 것이다. 그 보좌옆에는 우리의 구세주되신 어린양이 앉아계시고….아니, 아니....때론 서 계시기도 하신다(손성은: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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