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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와 칼럼

[스크랩] 고전2:4절의 성령의 나타남에 대한 오해와 성경적인 의미1

작성자한우리|작성시간08.03.30|조회수380 목록 댓글 5

고전2:4절의 성령의 나타남에 대한 오해와 성경적인 의미1

한우리 교회 박홍섭 목사

 

 

요즘 청교도의 이름을 도용해 자신의 거짓된 영성운동을 벌이고 있는 모 목사의 집회 타이틀은 ‘성령의 나타남’(고전2:4)입니다. 또한 신사도주의자들이 왜곡된 성령운동을 벌이면서 추구하는 은사주의 운동의 성경적 근거도 이러한 ‘성령의 나타남’을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

 

이 둘의 공통점은 성령의 나타남을 초월적인 체험에 관계된 어떤 신비한 현상으로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고전2:4절의 성령의 나타남도 초월적이고도 신비한 체험에 관계된 어떤 기적적인 현상들로 이해합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복음을 전할 때 단순히 말로 하지 않고 이런 기적적인 현상이 동반된 어떤 초월적 권세를 가지고 했다는 것이죠.

 

성령의 나타남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이들만의 것이 아니라 많은 성도들에게도 존재하는 심각한 오해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나타남’ 하면 방언이나 예언, 신유, 입신, 환상 같은 것을 떠올리고 성령집회라는 타이틀이 붙은 곳에는 언제나 그러한 체험과 현상을 사모하면서 모이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성령의 나타남에 대해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예언하는 사람, 방언하는 사람, 좀 더 나아가 입신을 하며 환상을 보는 사람들을 뛰어난 영성의 소유자, 차원이 다른 능력의 소유자로 인정하여 열광적으로 추앙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바울이 말하는 성령의 나타남의 의미는 기적이나 초월적 현상 같은 신비한 체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허물과 죄로 죽었던 죄인들의 영혼을 살려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는 믿음으로 이끄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고전2:4-5절의 문맥을 보면 이것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함이니라.”

 

바울은 복음의 역사가 사람의 지혜와 실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의 능력에 달려 있다는 것을 확신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복음을 전할 때 자신의 실력과 지혜를 의지하지 않고 오직 성령의 능력에 의지하여 성령이 복음을 받는 사람의 마음에 역사하여 그들의 마음에 복음이 심기우게 해 달라는 심정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래서 2:1-3절에서는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다.”고 한 것입니다.

 

본문에서 바울이 말하는 성령의 나타남은 죄인들의 마음에 생기게 된 믿음에 연관된 것입니다. 우리가 알듯이 죄인들의 마음에 복음이 심기워지고 그 복음을 통하여 예수를 믿게 되는 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바울은 성령의 나타남을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듯이 초월적인 경험과 기적으로 연결시키지 않고 믿음으로 연결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회심하여 예수를 믿게 된 것은 바울이라는 사람의 지혜가 만든 결과가 아니라 오직 성령이 나타난 결과이고 하나님의 능력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2:5절의 말입니다.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그러나 본문의 이러한 흐름을 놓쳐버리면 본문이 말하는 성령의 나타남을 너무나도 왜곡되게 이해하게 되고 그 결과 직통계시를 말하면서 기적을 구하고 초월을 추구하는 무분별하고 비성경적인 성령운동의 근거로 본문의 성령의 나타남이 악용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일 년에 몇 킬로씩 이동하고, 목회자에게 성령이 나타나면 제직들이 꼼짝도 못하고, 심지어 성령이 나타나는 목사가 성도에게 속옷을 벗어라고 하면 벗게 되어있다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유치한 이야기들이 소위 본문에 등장하는 성령의 나타남이라는 내용으로 한국 교회 안에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알파의 금이빨 현상, 아말감으로 씌운 이가 금 이로 변한다고 하면서 그것이 성령의 나타남이라고 우기는 것도 성령의 나타남에 대한 이런 근본적인 무지 때문입니다.

 

성령의 나타남은 마음의 변화입니다.(렘31:31-34절, 겔36:22-28절)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은 외적인 기적, 체험, 신비한 현상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내 안에서 죽었던 영혼이 살아나고 그 결과 마음으로 믿어 입술로 시인하는 믿음의 역사가 나타나 내 인생의 주도권이 나의 욕심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통치로 바뀌어 지는 것, 그것이 성령의 나타남이고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것이 없이 아무리 큰 기적이 나타나고 아무리 말을 잘하고 아무리 많은 체험과 초월적인 증거를 동원한다 해도 사람은 변하지 않습니다. 본문의 성령의 나타남은 바로 그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청교도의 이름을 팔아 거짓된 성령의 나타남을 왜곡시키고 있는 분들, 그리고 성령의 나타남을 저급한 은사주의 운동으로 변질시키고 있는 자들은 두 눈을 부릅뜨고 본문을 보십시오. 성령의 나타남이 무엇인지를 말입니다. 그리고 제발 성령의 나타남으로 그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서 회심하는 진정한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다음 번의 글은 성령의 나타남이 왜 기적과 초월과 현상적인 차원이 아니라 마음의 변화로 나타나는 것인지를 생각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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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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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grace | 작성시간 08.03.30 오늘 우리교회주보를 보니 강도사님 두분이 4일동안 알파컨프런스에 참여한다고 적혀 있어서 맘이 착찹했습니다. 고신교회인데 요즘 담임목사님이 안계시지만 고신교수님들이 매주일 개혁신학에 입각한 설교를 하고 계신데 강도사들이 너무 분별력이 없는것 같아서 안타까운 마음입니다,그리고 이곳에서는 신사도운동의 하나인 애니기도선교회에 소위 신실한것처럼 보이는 집사님들이 적극 참여하는것을 보면서 정말 진리안에서 깨어 있어야 할 시대임을 실감합니다,
  • 작성자바로미 | 작성시간 08.03.31 그레이스님 교회 주보에 공식적으로 광고 나온것을 보니... 그 교회가 알파시스템을 공식적으로 받아들인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나요?
  • 답댓글 작성자grace | 작성시간 08.03.31 오늘 장로님과 통화하면서 이 문제를 논의했더니 그 강도사들이 관계성만 배운다고 가겠다고 해서 허락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주보에 실은것은알파를 인정하는듯한 오해의 소지가 많아서 잘못이라고 하시네요. 그리고 알파에 대해서 제가 잠간 언급했더니 고맙다고 하시면서 교회주보에 신비주의나 포스터모더니즘을 경계하는 글들을 싣자고 하셨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grace | 작성시간 08.03.31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 작성자행복한당신 | 작성시간 08.03.31 아멘 감사합니다 다음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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