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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상담

[말씀 상담]짐승의 혼,짐승의 영(전도서3:21)

작성자마르투스|작성시간16.06.12|조회수3,795 목록 댓글 0
성경질문-전도서 3:21


전도서 3:21 인생의 혼(히:영)은 위고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1.영들이 어디로 가는 것인가를 묻는 질문입니까?(자신도 모름)
아니면, 다른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자신은 알고 있음)

2. 거의 모든 영어성경이 -사람의 '영' /짐승(동물)의 '영' -같은'영'으로 나와 있었는데
이 영이 '영 혼 육 '으로 구분할때의 '영 '입니까? 그럼 동물도 영이 있습니까?
원어에도 같은 단어입니까?



답글

전3:21
[개역성경]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공동번역] 사람의 숨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숨은 땅 속으로 내려간다고 누가 장담하랴!
[표준새번역] 사람의 영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영은 아래 땅으로 내려간다고 하지만, 누가 그것을 알겠는가?"
[현대인의성경] 사람의 영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영은 땅 속으로 내려간다고 누가 입증할 수 있겠는가?
[KJV] Who knoweth the spirit of man that goeth upward, and the spirit of the beast that goeth downward to the earth?
[NIV] Who knows if the spirit of man rises upward and if the spirit of the animal goes down into the earth?"


1) 짐승에게 영이 있는가?


혹간의 사람들은 짐승에게 영(spirit)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으므로 짐승에게도 영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영(spirit)과 혼(soul)이 구별되지 않고 서로 호환되어 사용하는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예를 들자면 사람이 죽었을 때에 육체를 떠나는 요소가 영이라는 성경구절과 혼이라는 성경구절은 혼동되어 사용이 됩니다. 그래서 영혼과 육체를 이분법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는 영과 혼을 구별하여 해석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미 죽은 사람들의 영혼에 대해서 히12:23 “온전케 된 의인들의 영들(프뉴마)”, 벧전3:19의 “옥에 있는 영(프뉴마)들”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계20:4에서는 “목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프쉬게)”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므로 영과 혼에 대한 구별이 사실상 없습니다.
또한 죽음에 있어서도 혼이 떠난다는 표현(창35:18, 왕상17:21, 눅12;20)과 영이 떠난다는 표현(시31:5, 전12:7, 눅23:46, 요19:30)등 사실상 명확한 구분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어리석은 부자에게 “그 영혼(soul, 혼)을 도로 찾으리라”(눅12:20)고 하였고, 스데반은 “주 예수여 내 영혼(spirit, 영)을 받으시옵소서”(행7:59)라고 말합니다
또한 성경에서는 인간이 죽었을 때에 영 따로 혼 따로 각각 활동한다는 어떤 구절도 없으며, 하나님 앞으로 혼과 영이 각각 구분되어 간다는 성경구절도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하여야만 합니다.
예수님은 "몸은 죽어도 영혼(soul)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soul)을 능히 지옥에서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10:28)라고 몸과 혼의 이분법으로 말씀하셨고, 사도바울은 고린도교인들에게 ”육신은 멸하고 영(spirit)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얻도록 하기 위해“(고전5:5)라고 몸과 영의 이분법으로 말하였다. 또 야고보는 ”영(spirit)이 없는 몸은 죽은 것“(약2:26)이라고 말합니다.
또 죄에 있어서도 혼이 죄를 짓는다는 구절과(벧전1;22, 계18:14), 영에 죄가 있다는 구절(시78:8, 잠16:18, 전7:8, 잠16:2)도 사실상 구분이 없습니다.
또 영으로만 하나님과 교류를 하고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혼으로도 하나님과 교류를 하고 대화를 한다는 성경은 말합니다(시25:1. 시 62:1, 시 103:1, 눅1:46)

즉 짐승에게도 사람과 같이 영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는 자체가 성경에서는 영과 혼의 뚜렷한 구별이 없다는 뜻입니다.


2) 전도서 기자가 몰라서 묻는 질문인가, 알고 묻는 질문인가?


원문의 구조는 부정의문형으로 질문을 하고 있으며, 그것에 대한 성경해석은 다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도서3장21절 앞부분은 짐승과 사람의 죽음이 같다는 것을 말하고 있으며, 동일하게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언급함으로서, 사람의 경우는 짐승과 달리 하나님에게로 간다는 것을 반박하여 질문을 하고 있다고 해석이 됩니다.
결론적으로 "아무도 모를 것이다"라는 부정적인 의미와 함께 전도서 저자는 짐승과 사람의 사후는 다르다고 말하면서, 사람은 하나님께 순종하여야 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전 3:19 인생에게 임하는 일이 짐승에게도 임하나니 이 둘에게 임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이의 죽음 같이 저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 것이 헛됨이로다
전 3:20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전 3:21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간혹 전도서 저자가 어디로 가는지 전혀 모르기 때문에 질문을 한 것이다라는 해석도 있지만, 전도서 기자는 12장7절에서 "신(spirit)는 하나님에게로 간다"고 말하고 있다는 것을 볼 때에 옳은 해석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전 12:7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즉 사람과 동물의 죽음은 모두 동일하지만, 그 영혼(영)에 대한 사후의 차이점은 다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음의 유명한 주석도 동일한 견해입니다.


(호크마)
기자는 사람이 죽음을 맞게 된다는 점에서 짐승과 다를 바가 없다고 말하면서도 여기서는 사후(死後)의 차이점을 언급한다. 즉 대부분의 사람들이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지만, 짐승과는 달리 사람의 영혼은 위로 올라간다는 것이다. 여기서 짐승의 혼이 아래로 내려간다는 것을 끊어져 없어진다는 의미이고 사람의 혼이 위로 올라간다는 것은 사후의 인생의 영혼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소관 하에 들어가게 된다는 의미로 이해된다(Eaton). 그리고 혼(루아흐)이라는 말이 본절에서 사람이나 짐승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었지만, 우리는 이를 사람에게는 '영혼'으로, 그리고 짐승에게는 '호흡'(혹은 의식 기능) 정도로 적용시켜 이해해 볼 수 있겠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 2:7).


(톰슨주석)
그러나 죽음 이후의 상황에 있어서 인간과 동물은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다.
혼(히, 루아흐): 생명의 근원(창2:17)을 의미한다. 모든 생명은 인간이든 동물이든 다 하나님께로 왔다(시36:9). 그런데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갈리 영혼을 지녔으며, 육체적 죽음 이후에도 이는 소멸하지 않고 영원히 존재하게 된다. 바로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부인하거나 망각하는 자는 ‘멸망하는 짐승’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위...아래 : 본서에서 ‘위’는 하나님이 계신 곳을, ‘아래’ 또는 ‘땅’은 죄 아래 있는 세상을 의미한다. 전도자는 죽음을 포함한 인생의 모든 비밀을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깨닫게 된다. 바로 여기에 신앙 고백이 있다.


(메튜헨리의 주석)
인생에게 임하는 일이 짐승에게도 임하나니 이 둘에게 임하는 일이 일반이라. 죽음은 짐승과 사람에게 동일한 변화를 일으킨다. 인간과 짐승의 몸에 일어나는 변화는, 살아남은 자들이 표하는 관심에만 차이가 있을 뿐 똑같다. 솔로몬은 여기에서 모든 것이 '다 한 곳으로 간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인간과 짐승의 시체는 다 똑같이 부패한다. 모든 것은 썩어서 '다 흙으로 돌아간다.' 인간과 짐승의 혼에는 매우 큰 차이가 있지만 그것은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차이이다(21절). 인간이 죽으면 그 '혼'은 그를 지으신 혼들의 아버지 하나님께로 '올라간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 혼은 육체와 함께 죽지 않고, '음부의 권세에서 구속받는다'(시 49:15). 인간의 영혼은 어두운 초롱에서 꺼낸 촛불과 같아서 그 초롱은 실로 쓸모없는 채로 남게 되나 촛불 그 자체는 더욱 밝게 빛나는 것이다. 모든 육욕적인 감각주의자들처럼 감각에 의지하여 살아가며 저희 눈에 보이는대로 행하는 자들은 짐승보다 뛰어남이 전혀 없다.' 짐승처럼 죽으리라고 생각되는 자들이 짐승처럼 살아간다는 것은 조금도 이상할 바가 없다. 그런 자들에게 있어서는 이성의 고귀한 여러 기능들이 없어져 버리는 것이 당연하다. 이상의 것들로부터 다음과 같은 점이 추론되고 있다. 즉 이 세상에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다'는 점이다. 깨끗한 양심을 지니고 절대로 불의한 의로움의 자리에 들여놓지 말라. 명랑한 삶을 누리라.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는 일을 형통케 해주셨다면, 우리는 그것으로 즐거워해야 하며 그것을 무거운 짐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IVP 주석)
짐승과 사람은 둘다 죽는다는 점에서 똑같다. 죽음 이후의 상황에서 사람과 동물 사이에 차이가 있음을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22절은 결론으로 인생의 수수께끼에 대한 치유책은 하나님의 선을 의지해서 살아가는 것이다.

(트랙성경)
이상의 결론으로 인생의 혼, 짐승의 혼은 다 흙에서 왔다가 흙으로 돌아감이 일반이다. 물론 윗절에 혼란이란 말은 없다. 다만 그 육체가 다같이 흙이니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본 절에 혼이란 말로 한 계단 넘어선 말로서 이 혼이 하나는 위로, 하나는 아래로 가는 것을 알 자가 누구냐? 모른다. 이도 같이 갈 것이 아닌가의 말이다. 이는 알 수 없다는 완전결론이 아니라 영이 없는 상태에서는 알 수 없는 것임을 내포하면서 사람에게는 영이 있음을 그 위에 강조하는 말이기도 한 것이다. 역설적으로 육만으로 알 수가 없으나 사람은 육만이 아니라는 말이다. 여기에 '알랴' 하는 말은 부인이나 회의적인 말이 아니라 물질주의 유물사상으로는 알 수 없는 일이나 이 위에서 볼 때는 알게 된다는 말이 내포되었기에 전도자의 의도에 맞는 말이다.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이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의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롬 8:3-4) 여기 하나님은 하시나니 바울이 이 진리를 바로 받은 것이다. 바울이 복음을 바로 받음이다.
그리하여 더 나아가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의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 8:5-6) 여기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하는 이 사망은 짐승의 사망과 일받임을 지로한다. 그보다 거기 더해질 것이 있으니 사망에 그치는 것만은 아니다.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 이도 짐승의 사망과는 다르다.
죽는다는 그 일이 일반이요 같다 할 것이나 실은 같이 아니하다. 심판이 있다는 이 사실이 엄연한 사실이다. 짐승이 결국 인생과 같을 수는 없는데 영 없이 사는 자, 영을 무시하고 사는 자는 짐승의 지위에까지 내려갔다는 말이거니와 반드시 후에 심판받을 일이 남아 있어 짐승과 같이 흙으로 돌아가서 끝나는 것이 아닌 줄 알 것이다. 전도자의 의도가 여기 있음이다.

[출처] 성경질문-전도서 3:21 (무엇이든지 물어보세요) |작성자 dsmed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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