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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들의 나이는 얼마였을까

작성자마르투스|작성시간17.01.01|조회수5,473 목록 댓글 0

F.F. 브루스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는" 사명을 수행하기 시작했을 때 사도들의 나이는 얼마였을까?
이 질문은 단지 학문적인 관심에만 속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들 사이에서 자주 제기되는 실제적인 질문과 연관을 맺고 있다. 즉 남자들 혹은 여자들은 영적인 책임을 위임받기 전에 어느 정도의 연령이 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가?

젊은이들의 무리
사도들의 나이가 얼마였는지 명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지만, 몇가지 분명한 암시들을 찾아볼 수 있다. 누가복음 3장 23절에 의하면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할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가 오늘날 알고 있는 어떤 형제들은 아마 그분을 장로가 되기에 충분한 나이가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특별한 분이었다. 그는 아버지에 의해 독특한 사역을 수행하도록 보내진 하나님의 아들이었다. 그러나, 그분이 자신의 동역자요 사자들로 선택하시는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특별한 것이 전혀 없다. 더많은 수의 제자들 중에서, 그분은 "사도라 칭하신"(눅 6:13) 열 두명의 젊은 무리를 선택하셨다. 왜 그들을 "젊다"고 부르는가? 첫째, 나이든 사람들은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들처럼 그렇게 기꺼이 젊은 사람을 따르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당시와 그후에 우리가 그들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것으로 비추어 볼 때 그들은 틀림없이 젊었다.

베드로는 젊은이였다. 그는 결혼할 만큼 나이가 들기는 했지만, 그 당시의 한 랍비의 판결을 보면 유대인이 아내를 취할 수 있는 적합한 아이는 18세였음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호숫가에 나타나셨을 때 "젊어서는 네가"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그가 지금은 나이가 들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던 때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늙어서는 ... 남이 네게 띠 띠우리라"(눅 21:18)고 예수님은 덧붙이셨다. 따라서 베드로는 아직 "늙지" 않은 것이다. 주님의 말씀이 지시하고 있는 때가 되기까지는 30년이상의 세월이 지나야 했다. 그는 60살쯤 되었을 것이며, 예수님의 말씀이 암시하셨던 죽음으로써 그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했을 때 그는 명백히(그 당시의 계산에 따르면) 늙었을 것이다.

같은 장면에서 특별한 주목을 받았던 사랑 받는 사도는 베드로의 죽음 이후에도 한 세대를 더 살았다. 요한을 사도의 무리중 가장 어린 자로 묘사했던 전통은 아마도 옳았던 것 같다. 어쨌든, 그는 90세가 거의 다 되었을 때인 1세기 끝까지 생존했다. 예수께서 그를 부르셨을 때 그는 분명히 매우 젊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의심할 바 없이 그의 증거로 인해 열두명 중 최초로 순교자의 영예를 얻었던 그의 형제 야고보 역시 젊었을 것이다.

다른 젊은 지도자들
우리 주님의 사역 이전의 좀더 먼 시기로 생각을 돌려 세례 요한이 30세 전후해서 그의 사역을 시작했고, 끝마쳤음을 상기해 보자. 우리는 스데반을 처행했던 사람들의 옷을 지키던 "사울이라 하는 청년"(행 7:58)으로서 그를 처음으로 접하게 된다. 그 사건 이후로 그가 곧바로 수행했던 핍박은 격렬한 것이었으나 오래 가지 않았다. 스데반의 죽음 이후 몇 달이 지나 최고의 박해자는 그의 일을 수행하던 중에 사로잡혀 그가 멸절시키고자 했던 그 신앙의 열렬한 전파자가 되었다.
"사울이라 하는 젊은 청년"은 갈라디아서에서의 그 자신의 진술과 사도행전의 누가의 기록에 의하면 처음에는 다메섹과 아라비아에서, 그 다음에는 더 먼 지역으로 지체없이 그의 사도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그가 회개하고 사역을 시작했을 때 그는 30이 채 넘지 않았을 것이다. 거의 삼십년이 지난 후에 그는 자신을 나이 많은 사람으로 부른다(몬 9).

바울의 젊은 조력자 디모데를 한번 생각해보자. 그의 생애의 마지막 날까지 바울은 그를 젊은이로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누어진 교회 내에서의 일치를 증진시키고, 다른 교회에서의 거짓 가르침을 바로 잡으며, 거룩한 질서를 유지시키는 등의 가장 미묘한 임무들을 그에게 맡기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디모데는 그런 책임들을 감당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에 대해 당연히 염려했을 것이나, 바울은 자기 사람인 디모데를 잘 알고 있었다.

나이든 우리들은 때때로 젊음의 열정의 성급함에 대해서 마치 그것이 시간이 지나면 고쳐질 약점인 것처럼 이야기한다. 우리들로서는 경험의 이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경험은 젊은 사람들의 성급함보다 전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헌신되는 데는 미약할지도 모른다. 젊음의 성급함에 대한 징후들이 신약성경의 기록에서 발견된다. 하나님은 그것을 자신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셨던 것 같다.

세 부흥 운동
초기 교회가 그토록 명백하게 젊은 사람들의 운동이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 하에 신약교회의 부흥을 주도한 주된 인물들이 매우 젊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놀랄 필요가 없다.

종교개혁을 예로 들어보자. 루터가 그의 95개 조항을 발표했을 때 그의 나이는 34세였다. 칼빈이 그의 "기독교 강요"의 첫판을 냈을 때 그는 27세였다. 젊은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35세에 프랑스령 스위스에서 복음사역을 시작했던 길라우메 파렐(Guilaume Farel)에 의해 크게 격려를 받았다.

그와 그의 동료들이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을 시작했을 때 존 낙스는 45세였다. 그러나, 그는 (갤리선의 노예로 일했던 기간을 포함하여) 12년간을 유배지에서 보내야했다. 그는 30세에 이미 개혁자가 되어 있었다. 그의 친구 조지 위스하르트(Wishart)는 1546년 화형 당했을 때 33세였다. 그 18년 전에 같은 도시(세인트 앤드류스)에서 패트릭 해밀턴은 25세의 나이에 불태워졌다. 윌리엄 틴데일은 그의 나이 31세 혹은 32세에 영어 신약 성서(그리스어로부터 직접 번역된 최초의 영어성경)의 판을 최초로 찍어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또다른 전진 운동은 18세기의 복음주의 부흥이었다. 그 부흥은 웨슬리 형제와 조지 휫필드를 통해 이루어진 은혜의 역사로부터 시작되었다. 웨슬리 형제들은 1738년 5월에 거듭났는데, 그때 존은 35세였고, 찰스는 31세였다. 찰스보다 일곱 살 어렸던 조지 휫필드는 더 일찍 회심했으며 웨슬리 형제 둘 모두에게 유익한 영향을 끼쳤다.

휫필드가 일세기 반 전에 쓰여진 책 한권에 커다란 영적인 빚을 졌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것은 우리의 주제에 적합할 것 같다. 그것은 20대의 젊은이였던 헨리 스쿠갈(Scougal)의 저서인 "인간의 영혼 속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이었다. 스쿠갈은 애버딘 대학의 신학교수로 임명된 직후인 1678년에 2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영국과 미국의 영적인 삶은 이 젊은 사람들의 사역에 헤아릴 수 없는 은혜를 입고 있다.

19세기 초의 형제운동의 시작을 살펴 볼 때도 그 양상은 반복된다. 1825년과 1828년 사이에 그 운동을 주도했던 일단의 사람들은 예외없이 젊은이들이었다.

그 무리들 중 가장 나이 많은 축에 속했던 J.G. 벨렛과 A.N. 그로우브스는 1795년에 태어났다. 벨렛이 "내 마음이 ... 형제로서 태어난 곳"으로 묘사했던 그로우브스와 벨렛의 대화가 행해졌을 때 그들은 둘 다 32세였다. 그로우브스가 바그다드로 그의 개척 선교를 떠났을 때, 그리고 그럼으로써(자신은 깨닫지도 못하면서) 형제들의 선교 운동을 시작했을 때 그의 나이는 34세였다.

J.N. 다비가 교회의 원리의 주된 내용을 확립시킨 "그리스도의 교회의 성격과 일치에 대하여"라는 소책자를 1828년에 발간했을 때 그는 28세였다. 다비의 영향하에 옥스퍼드의 학업을 그만두고 1831년 그의 고향 플리머드로 가 그곳에서 형제들의 증거에서 지도적인 위치를 차지했을 때 B.W. 뉴튼은 24세였다. 그 증거는 너무도 효과적이어서 플리머드는 그 전체운동을 지칭하는 것으로 널리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플리머드 모임의 또다른 멤버였던 헨리 볼라세(Borlase)는 28세인 1834년에 "그리스도인의 증거"의 최초의 편집자가 되었다. 그는 다음 해에 주님께 갔기 때문에 그의 편집자 시기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조지 뮐러와 헨리 크레익이 테인마우드에서 그들의 연합사역을 시작했을 때(1829), 그들은 둘 다 24세였다. 3년후 그들은 브리스톨로 옮겨갔다. 조지 뮐러가 1836년 브리스톨에 그의 고아원을 열었을 때 그의 나이는 31세였다. R.C. 차프만은 1832년 반스테이플에서 그의 사역을 시작했을 때 29세였다. 차프만은 그후 70년간을 그곳에서 사역했다.

이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오늘날 대다수 교회에서는 장로가 되기에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다고 판단되었을 만한 나이에 영적으로 큰 중요성을 지닌 일을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젊은이들을 사용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어떤 특별한 영적 운동을 시작하실 때 그분은 자신의 목적을 수행할 준비가 되어있는 남자들과 여자들을 지명하셨으며, 그들은 대체로 젊다는 것이 사실인 것 같다. 개척정신은 노년이라기보다는 청년기의 특질인 것이다. 나이든 우리들은 "젊은 사람들이 그것을 하도록 시켜라"라고 말하기를 좋아한다. 만약 우리가 할 수 있는 대로 그들에게 모든 도덕적이고 물질적인 원조와 격려를 제공한다면 그것은 바람직한 것이다.

그들과 우리는 함께 하나님의 동역자들이다. 그들의 사역의 부분이 더 이상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이라면, 그들이 그 일을 수행할 수 있고 기꺼이 하려 한다는데 대해 기뻐하도록 하자.

** F.F. Bruce는 전 세계의 수천명의 사람들에게 신약성서를 가르쳤으며, 영국 벅스톤 근교에 있는 모임에서 활발히 사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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