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뿔싸, 논문이 꼬였다 미국에서 박사 학위 논문을 쓸 때였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내 전공은 수학이었다. 1999년 10월로 기억하는데 박사 학위 논문 심사를 무사히 통과하고 그해 12월에 학위를 받을 예정이었다. 지도 교수의 사인만 받아서 본부에 제출하면 모든 것이 끝나는 상황이었다. 사인을 받으러 지도 교수의 방을 두드렸는데 문제가 생겼다. 지도 교수는 잠깐 앉아보라고 하더니 내게 이메일을 하나 보여줬다. 스탠포드 대학의 엘리아쉬버그(Eliashberg)라는 교수에게서 온 메일이었다. 내 논문을 읽어보니 결과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한 단계가 제대로 설명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수학 논문은 절대로 논리적 구멍이 있으면 안 되지만, 워낙 복잡한 내용을 다루다보니 놓치고 지나가는 논리적 구멍들이 종종 발견된다. 일단 논문이 발표되고 난 후에 그 ‘구멍’이 발견되는 것은 고의만 아니었다면 상관없다. 그러나 논문이 발표되기 전에 누군가 ‘구멍’을 발견한다면 논문의 저자가 그 구멍을 해결하기 전에는 논문을 발표할 수 없다.이것이 학계의 규율이다. 그런데 나는 세상적으로 말해서 참 재수가 없었다. 하루만 늦게 이메일을 받았다면, 그래서 지도 교수의 사인을 받아 논문을 제출하고 나서 이메일을 받았다면, 이것은 학위와는 상관없는 건전한 학문 토론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교수의 사인을 받는 바로 그날 아침에 이메일을 받다니!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는 졸업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논문 수정 작업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사소한 실수일 거라 생각했는데 아뿔싸! 사소한 실수가 아니었다. 논문에는 생각보다 아주 큰 실수가 있었다. 결국 졸업을 한 학기 미루고 문제 해결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몇 날 며칠을 잠도 자지 않고 수염도 깎지 않고 문제에 매달렸다. 당시 나는 박사 과정 6년차였기 때문에 이 문제를 제때 해결하지 못하면 여러 가지 여건이 복잡해지는 상황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주제를 다시 잡아서 다른 논문을 쓸 수도 있겠지만, 학교에서는 6년차 이상의 학생에게는 재정 지원을 해주지 않았다. 더욱이 내가 전공했던 위상수학(topology)이라는 분야는 쉽게 논문이 나오는 분야가 아니었다. 새로운 주제로 다시 시작한다면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예측할 수 없었다. 재정 지원 없이 기약 없는 유학생활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학위를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문제는 아주 심각했다. ‘가만 있어봐. 졸업을 못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상상하기도 싫은 결과들이 거기 있었다. 부모님과 지인들의 얼굴을 어떻게 볼 것이며, 현실적으로 취업은 어떻게 할 것인지, 당시 이미 삼십을 훌쩍 넘어선 내 나이를 생각하면 박사 학위 없이는 정상적인 취업이 어려워 보였다. 더욱 심각한 것은 국비장학금이었다. 학위를 받지 못할 경우 정부에서 지원해준 몇 년 동안의 학비와 생활비를 전부 반환해야 했다. 인생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불안과 두려움이 나를 더욱 연구로 몰아넣었다. 흰옷 입은 주의 백성 그러던 어느 날 새벽, 정말 기적같이 문제가 해결되었다! 너무 기뻐서 “할렐루야”를 외치고 문제를 제기했던 엘리아쉬버그 교수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문제가 해결된 기쁨을 안고 자리에 누웠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한 가지 일에 너무 몰두하다보니 뇌가 멈추지 않았다. 머릿속에 수식들이 멈추지 않고 저절로 돌아갔다. “다 풀렸어.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아도 돼. 빨리 자.” 아무리 스스로에게 선포를 해도 소용이 없었다. 발동이 걸린 뇌는 브레이크가 작동되지 않는 차처럼 계속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아침까지 멈추지 않던 이 ‘뇌’는 급기야 해결 과정에 또 다른 오류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 발견해버렸다!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었다. 전혀 아니었다. 나의 착각이었을 뿐. “에이, 그러면 그렇지. 이게 풀릴 리가 있냐?” 그러고는 잠이 들었다. 오후에 느지막이 일어나서는 이메일을 확인하려고 컴퓨터를 켰다. 그런데 놀랍게도 엘리아쉬버그 교수에게서 답장이 왔다. 축하한다고 말이다! 이분도 또 다른 오류를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새로운 고민이 시작되었다. ‘그냥 넘어가? 이제 시비 걸 사람도 없어졌잖아?’ ‘아니야. 그래도 크리스천으로서 양심이 있지.’ 고민이 깊어졌다. ‘뭐, 결과가 틀린 것도 아니잖아? 설명 안 되는 논리적 구멍이 하나 있는 것뿐이야. 나중에 다른 논문에서 매우면 되지 않을까? 이 정도의 오류도 없는 논문이 어디 있겠어? 엘리아쉬버그도 괜찮다고 하잖아?’ 졸업하지 못할 경우 감당해야 할 상상하기 싫은 결과들이 “이 정도는 괜찮다”는 쪽으로 나를 몰아가고 있었다. 큐티를 하려고 성경을 펼쳤다. 그때 나는 <매일성경>으로 큐티를 하고 있었는데 그날의 본문이 요한계시록 7장이었다. (요한계시록 7장 9~ 10)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질문이 하나 떠올랐다. ‘왜 주의 백성은 흰옷을 입을까? 검은 옷도 있고 회색 옷도 있는데…’ 그때 그림 하나가 떠올랐다. 흰색 와이셔츠에 잉크 한 방울이 똑 떨어지는 그림이었다. 검은 옷이나 회색 옷에는 잉크가 떨어져도 잘 안 보이지만 흰옷은 다르다. 작은 잉크 방울 하나도 흰옷에는 치명적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어졌다. “나는 내 백성이 죄에 대해 이렇기를 원한다.” 그날 일어난 일들은 어떤 것도 우연이 아니었다. 문제를 착각한 것도, 뇌가 멈추지 않았던 것도, 그리고 큐티 본문이 하필 요한계시록 7장이었던 것도! 어떤 것 하나 우연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섬세한 계획 속에 있던 일들이었다. 나는 바로 일어나서 차를 몰고 지도 교수를 찾아갔다. 지도 교수는 자기도 이메일을 받았다고 하며 내게 잘했다고 칭찬해주었다. 나는 쭈뼛거리며 내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것이 사실은 착각입니다. 저도 착각을 하고 엘리아쉬버그 교수도 착각하신 겁니다. 문제는 전혀 해결된 것이 없습니다.” 이실직고를 했다. 방을 나오는데 다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볼 수 없는 것은 다 해봤고, 인간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이 없어 보였다. 논문을 통째로 폐기하고 1,2년의 시간을 재투자해 새로운 논문을 쓰든지 아니면 한국으로 돌아가든지 선택해야 했다. 재정적 지원 없이 1,2년의 시간을 다시 투자한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에 6년 반의 유학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갈 각오를 하고 차로 돌아왔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는 것 운전을 해서 집으로 오는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그것은 내 안에 불안함이 사라진 것이었다!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착각하기 전까지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던 불안함과 두려움이 아침 햇살에 안개가 걷히듯 사라져버렸다. 대신 하나님께서 지금 나와 함께 이 차 안에 계신다고 하는 새로운 임재가 느껴졌다. 보이지는 않지만 뭔가가 차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게 뭐지?’ 나는 곧바로 알 수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였다! 마치 차가 하나님의 임재로 터져버릴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경험했던 하나님의 임재는 그전에도, 그리고 그후에도 경험해보지 못한 특별한 임재였다. 하나님께서 내게 작은 소리로 속삭이고 계셨다. 그것은 아브라함에게 속삭이셨던 하나님의 음성이었다. (창22:16~17)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내 안에 기쁨이 임하기 시작하는데, 집에 오는 내내 울다가 웃다가 부흥회를 했다! 이때부터 놀랍게도 내 안에 평안이 임하기 시작했다. 상상할 수 없는 기쁨과 평안이 내 안에 가득했다. 주위 사람들은 기뻐하는 내 모습을 보고 문제가 잘 해결된 줄로 생각하고 축하해주었다. “아니요, 문제가 최악으로 꼬였습니다. 아무래도 짐을 싸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이 말이 유학생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아는 주위 동료들은 오히려 나보다 더 걱정을 해주었다. 그런데 나는 정말 특별하고도 이상한 시간을 보네고 있었다. 가장 불안하고 심란해야 할 상황에 인생에서 가장 평안하고 큰 기쁨을 누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 사건을 통해 나는 이 후에 내 인생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될 중요한 진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평강이 없는 것은 상황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때 내 상황은 최악이었다. 불안하고 두려운 것이 당연했다. 그런데 평강이 있었다. 평강이 없는 것은 상황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가 없음에서 온다. 불안 또는 두려움이란 “하나님이 없는 상태”를 지칭하는 단어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면 어떤 상황 속에서도, 어떤 환경 속에서도 평안할 수 있는 절대 평강이 있다! 그것은 무엇으로도 부술 수 없는 ‘절대 평강’이다. 이야기는 계속된다. 며칠 후에 꿈을 꾸었다. 꿈에서 나는 열심히 문제를 풀고 있었고 마침내 해결책을 찾았다. 잠을 깨고 보니 꿈이었다. 보통 이런 꿈들은 깨고 나면 꿈에서 해결했었다는 사실만 기억나지 구체적인 것들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신 꿈은 달랐다. 꿈에서 문제를 어떻게 풀었는지 생생하게 기억이 났다. 그대로 따라해보니 그것이 정말 해답이었다! 이성으로는 불가능해 보일 것 같던 문제가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풀린 것이다! 박사 논문 심사를 다시 받았고 통과했다. 지도 교수가 물었다. “참 기가 막힌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했는데, 그 복잡한 도형은 도대체 어떻게 생각해냈나?” 나는 간증을 했다. 사실은 꿈에서 하나님이 보여주셨다고 말이다. 지도 교수는 웃으며 논문에 사인해주었고 나는 학위를 취득하게 되었다. '데스티니 : 하나님의 계획' (규장)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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