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스크랩] 목회는 영권이다<5~8> "이젠 제 야망 아닌 주님 위한 목회하겠습니다"

작성자앵두|작성시간22.03.31|조회수11 목록 댓글 0

목회는 영권이다<5> "이젠 제 야망 아닌 주님 위한 목회하겠습니다"

  • 관리자
  • 2019.08.13 오후 01:37

 

"이젠 제 야망 아닌 주님 위한 목회하겠습니다"

 


2003년 12월 춘천 가나안교회 설경 사진. 김의철 송도가나안교회 목사는 1999년 춘천감사기도원장으로부터

이곳 부지를 받아 가나안교회를 설립했다.​

 

"네가 왜 이 고통을 당하는 줄 아느냐." 분명한 주님의 음성이었다.

1999년 10월 죽기 위해 금식기도를 했던 나는 아무런 답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또다시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네가 십자가를 아느냐." 입을 열지 못했다. "억울하고 부끄럽고 힘들지." "흐흐흑. 네, 그렇습니다."

"십자가를 모르면서 어떻게 십자가를 전하는 목회자라고 할 수 있느냐.

십자가는 잘못한 다른 사람을 위해 억울함과 부끄러움, 고통을 끝까지 참는 것이란다." "오, 주님…."

 

길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 나니 가슴의 답답함과 어둠이 스르르 사라졌다.

미움도, 증오도 사라지니 가슴이 뻥 뚫렸다.

 

"주님, 이제야 알겠습니다. 목회에서 가장 큰 행복은 주님을 얻는 것입니다.

이제부턴 야망을 위해 목회하지 않겠습니다. 오직 주님을 위해서만 목회하겠습니다."

 

주님은 그렇게 내가 꼭 붙잡고 있던 아집을 내려놓게 했다. 사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십자가에서 겪으신

처절한 희생 앞에 내 안의 미움과 분노는 모래 한 줌, 아니 티끌도 안되는 것이었다.

 

"목사님, 금식기도를 하신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금식기간이라도 오셔서 집회를 해주십시오."

예전에 한두 번 갔던 춘천감사기도원에서 연락이 왔다.

 

금식 18일째 되는 날 기도원에서 보내준 차를 타고 춘천으로 향했다. 주님을 다시 뜨겁게 만나고 십자가가 내 삶에 들어오자 강단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다. 집회를 하던 중 20일이 끝나 죽을 먹었다. 기도원장님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목사님, 저희가 이 기도원 땅을 놓고 10년간 기도를 했습니다.

그때마다 주님께서 '내가 준비된 사람을 보낼 테니 기다리라. 아직 때가 아니다'라는 응답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주님께서 이 땅을 목사님께 주라고 하십니다."

 

"네?" 지난 2년간 땅 때문에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던 것이 떠올랐다.

"허허. 원장님, 제가 땅 때문에 죽음의 문턱까지 갔습니다. 혹시 부족한 제 설교에 은혜를 받으셨다면 제가 아니라

주님의 은혜가 크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그 감정은 일시적일 수 있습니다. 3개월간 냉정하게 기도해 보시고

때도 맞다 싶으면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기도원 대지만 1만6528㎡(5000평)이 넘었다. 당시 시가로 60억원이었다. 일시적 감정에서 그런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땅만 생각해도 알레르기 반응이 났다. 토지대장은 더 이상 보기도 싫었다.

 

3개월 후 감사기도원에서 연락이 왔다. "목사님, 집회를 한 번 더 해주셔야겠습니다."

"그러죠."

 

집회를 마치고 내려왔는데, 기도원 원장님이 확신에 찬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확실합니다. 3개월간 기도를 했는데, 이 땅을 목사님께 드리라고 합니다."

"원장님이 이 땅을 제게 주시면 원장님의 자녀들한테 버림받을 겁니다. 다시 기도해 보세요."

 

그런데도 요지부동이었다. 내가 그 땅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주님, 도대체 이게 무슨 뜻입니까. 2년간 제가 땅 때문에 경찰과 검찰을 오갔습니다.

분명 저 땅을 제가 받게 되면 또다시 소송전이 벌어질 것입니다.'

 

기도 중에 주님의 다른 뜻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장님, 정말 이 땅을 제게 주실 생각입니까."

"예, 목사님이 어떻게 쓰시든지 드리겠습니다."

"제가 땅 때문에 고통을 당했던 것 아시지요. 그런데도 제게 주셔야 하는 이유가 뭡니까."

"하나님이 드리라고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자필로 제게 땅을 넘긴다고 명확하게 써주십시오.

제가 땅을 받게 되면 법인을 만들고 교회를 개척한 뒤 선교사역을 할 것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땅은 기도원 원장님과 딸 4명의 공동명의로 돼 있었다. 그중 2명은 내게 소유권을 이전하는 데 찬성했지만 2명은 반대했다. 이는 재산권을 두고 복잡한 소송전이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소유권 이전에 반대하는 딸들이 거세게 들고 일어났다.

 

 

† 김의철 담임목사님의 "목회는 영권(靈權)이다"는,

2019년 4월 11일부터 동년 8월 29일까지 국민일보에 게재된 총 20부작의 기사입니다.

http://www.ganaanch.com/board/3384


 

--------------------------------------------------------------------------------------------------------------------

 

목회는 영권이다<6> "네가 붙잡고 있는 것을 다 버리라"

  • 관리자
  • 2019.08.13 오후 01:45

 

"네가 붙잡고 있는 것을 다 버리라"

 


김의철 송도가나안교회 목사가 2003년 춘천 가나안교회에서 밤 집회를 인도하고 있다.

김 목사는 목회사명을 회복하고 매일 영성집회를 인도했다.

2000년 12월 강원도 춘천으로 목회지를 옮겼다. 춘천 감사기도원을 개조해 가나안교회를 개척했다.

더 이상 예전과 같이 목회하지 않기로 작정했다. '인본주의를 철저히 버리고 오직 믿음과 영성으로만 목회하겠다.'

그래서 매일 새벽과 저녁 두 번씩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복잡한 토지 소유권 문제를 푸는 실마리는 아이러니하게도 과거 2년 동안 수원에서 교회를 뺏기며 겪었던 고통에서 나왔다.

그때의 치욕스러운 경험들이 땅 문제를 해결하는 데 모두 쓰인 것이다.

 

하나님께선 깊은 기도 중에 이런 질문을 하셨다. "내가 너에게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아느냐."

열심히 심방하고 전도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답을 못하고 망설였다.

 

그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원하는 것은 네가 내 곁에 머무는 것이다."

그 말씀이 내 가슴에 박혔다. 그 의미를 깨닫고 한참 동안 울었다.

 

그 전엔 내가 주의 일을 한다고 하다가 지칠 대로 지쳤다. 그런데 주님은 그것이 주님의 일이 아니라고 말씀해주셨다.

주님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하나님이 좋아서, 그냥 주님 곁에 머무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가능하면 내 생각대로 앞서서 일하려 하지 않았다.

그냥 교회에 머물며 기도하는 시간을 늘려갔다.

'그래, 지금까진 세상을 얻기 위해 목회를 했다. 이제부턴 주님을 얻기 위해 하자.'

 

기도하는데 이런 감동을 주셨다. "지금까지는 네가 교회를 통해 먹고 살려고 했다. 지금부터는 교회를 위해 죽으라."

그 길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고민했다. '교회를 위해 죽으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 기도하는 길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님, 제가 40일 금식기도를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십시오." 주께서 큰 감동을 주셔서 금식 작정을 했다.

그러나 막상 40일간 금식할 생각을 하니 두려움이 엄습했다.

금식하다 죽는 사람도 있었고 정신을 잃어버리는 사람도 있었기 때문이다.

 

"주님, 제가 금식하다가 죽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렇게 되면 저의 두 자녀와 아내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너의 아들딸, 아내는 너와의 관계 이전에 나의 아들딸이다. 왜 걱정하느냐."

"춘천의 교회를 이렇게 개척했는데 교회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너의 교회가 아니라 나의 교회다. 네가 할 일은 기도하는 것이다."

 

그때부터 마음이 편안해졌고 2001년 9월 1일부터 금식기도에 들어갔다.

"주님, 금식기도를 시작할 때 고통스럽지 않고 들것에 실려 다니지 않게 해주십시오."

 

하지만 4일째 되는 날 견딜 수 없는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뼈마디가 아프고 창자가 꼬였다. 속에선 역한 냄새가 올라왔다.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그럴수록 강단 앞에 나아가 눈물로 하나님께 간구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이 고통을 이길 수 있게 해주세요."

 

기도가 끝나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그렇게 냄새나던 입 안쪽에서 달콤한 침이 나오기 시작했다.

침을 삼키니 머리부터 모든 고통이 스스르 내려가기 시작했다.

마음이 편안해졌고 고통이 줄어들었다.

그 은혜를 안고 금식하며 매일 두 번씩 예배를 인도했다.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지팡이도 짚지 않고 매일 예배를 인도하며 40일 금식기도를 마쳤다.

금식이 끝나자 주님이 물으셨다. "너 왜 금식했느냐."

"주님을 얻기 위해서 했습니다."

"그렇다면 네가 붙잡고 있는 것을 다 버리라!"

 

그때 나는 수원 사건을 마무리하고 약간의 돈이 있었다. 그렇게 의지했던 돈,

그것 없으면 못살 것으로 생각했던 돈을 개척교회에 줘버렸다.

그리고 나니 주님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40세가 넘어 무일푼 빈털터리가 돼 주님만 바라보는 훈련이 시작됐다.

주님은 금식 이후 1년 동안 아무도 만나지 않고 빈손으로 당신만 바라보며 살게 하셨다.

 

정해진 수입은 없었다. 오직 주님이 주시면 있고, 안 주시면 없는 상황이 됐다.

주께서 기적을 베풀지 않으시면 아이들 학교도 보낼 수 없는 처지가 됐다.

 

특히 생활비와 학비가 필요할 때면 가슴이 저렸다.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사람들에게 부탁하거나 빌리지도 않았다.

어차피 없으니 그냥 기도만 했다. 그러면 꼭 필요한 돈만 주셨다.

 

 

------------------------------------------------------------------------------------------------------------------------------

 

목회는 영권이다<7> 기도로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벼락같이 내린 축복

  • 관리자
  • 2019.08.13 오후 01:49

 

기도로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벼락같이 내린 축복

 


김의철 송도가나안교회 목사가 2007년 2월 강원도 춘천 경강교회에서 열린

가족초청 예배를 인도하고 있다.

40일 금식이 끝나자 하나님과 동행하는 훈련이 시작됐다. 꼬박 1년 동안 바깥에 나가지 않고 교회에만 머물며

기도훈련에 전념했다. 물질을 초월하는 믿음의 훈련도 3~4년간 철저히 받았다.

 

주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새벽기도 제단을 쌓고 밤 8시부터 11시까지 간절히 기도했다.

365일 그렇게 기도의 불을 이어가며 빈손으로 주님만 바라봤더니 교회에 축복이 오기 시작했다.

성도들이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고 교회 부지 문제도 모두 해결됐다. 교회 재산도 많아졌다.

 

'아, 부르심을 받은 목회자는 정말 돈 걱정하면 안 되는구나. 빈손으로 주님만 바라보고 살았더니 축복을 주시는구나.'

돈 때문에 노심초사했던 과거의 삶이 얼마나 큰 잘못이고 죄악인지 깨달았다.

 

2000년 12월 춘천가나안교회를 개척하고 5년쯤 지났을 때 자립했다.

너무 감사한 마음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개척을 하든지 좋은 일을 하든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회 모임에 갔더니 경강교회 담임목사가 와서 하소연했다.

"교회를 빼앗길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저는 해결할 능력이 없어 교회를 사임하겠습니다."

예배당을 뺏긴 고통을 알기에 내가 좀 알아보겠다고 했다.

 

경강교회는 40년 된 농촌교회로 노인들이 많았다. 순박한 어르신들을 보니 어린 시절 자랐던 거제 송진교회가 생각났다.

가장 큰 문제는 교회 부지의 명의가 경강교회가 아닌 40년 전 임시당회장 이름으로 돼 있다는 점이었다.

세월이 흘러 그분의 후손이 교회 땅이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교회는 혼란에 빠졌다.

 

담임목사는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었다. 성도들과 사이도 좋지 않았다.

사임을 앞두고 퇴직금을 놓고 실랑이도 벌이고 있었다.

 

"김 목사님, 우리 교회 좀 제발 지켜주세요." 할아버지 할머니 성도들이 애원했다. 그들에게 교회는 삶의 전부였다.

퇴직금을 받기 위해 노인 성도들과 대립하는 담임목회자, 얄팍하게도 토지소유권을 주장하는 목회자 후손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불쌍한 시골 성도들이 보였다.

 

"목사님, 더 이상 성도들과 대립하지 마십시오.

퇴직금은 교회개척자금 형식으로 저희 교회에서 지급하겠습니다."

그렇게 그 목사는 2000만원을 받고 교회를 떠났다.

 

남은 문제는 토지 소유권을 해결하는 것이었다. 경강교회는 40년 전 미국 선교사가 당시 3만원을 줘서 땅을 매입한 교회였다. 엉뚱하게도 임시 당회장을 맡았던 인사가 토지를 자신의 명의로 등기해놓아 문제가 생겼다. 그의 후손을 만났다.

"제가 개인적으로 어느 정도 사례를 하겠습니다. 그 땅을 교회 명의로 바꿔 주시지요."

"법대로 하려면 하시오."

 

어쩔 수 없이 소송이 시작됐다. 40년 전 사건을 바로 잡는 일은 쉽지 않았다. 증거를 찾아내고 증인을 세우는 게

만만치 않았다. 특히 증인으로 나선 초창기 개척 전도사가 이중적인 행동을 하는 바람에 고통을 겪었다.

 

때마다 나는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저는 어떠한 고통을 당하든 어떤 욕을 먹든 상관없습니다.

이 교회만 빼앗기지 않게 해주십시오. 시골 분들이 믿음을 지켜나갈 수 있도록만 해 주십시오."

 

과거 수원에서 교회 건물과 땅을 빼앗기고 2년간 겪었던 수치스러운 경험이 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됐다.

성도들은 내가 변호사비를 써가며 자신들의 교회를 지키기 위해 힘겨운 싸움을 벌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2년간의 소송 끝에 2심에서 '경강교회가 존치하는 한 토지에 대한 재산권을 후손들이 행사할 수 없다'는 판결을 받아냈다.

사실상 승리였다.

 

이 일을 하면서 새벽기도와 밤 기도회를 쉬지 않았다. 매일 기도하면서 울고 또 울었다.

춘천가나안교회와 경강교회는 거리상 멀지않았다. 두 곳을 오가며 새벽기도를 인도했다.

주일이 되면 양 교회를 오가며 통합 예배도 드렸다.

 

정말 초대교회가 따로 없었다. 영적으로 회복되자 경강교회 성도들도 살아나기 시작했다.

"목사님, 교회 생활이 참 행복합니다." 여기저기서 행복하다는 고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매일 밤 기도회에 동참하는 성도들이 늘어났다. 경강교회의 모든 문제가 마무리된 2007년 송구영신예배 때였다.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

 

목회는 영권이다<8> 청빙받은 교회 원로목사-장로들 극심한 알력

  • 관리자
  • 2019.08.13 오후 01:54

 

청빙받은 교회 원로목사-장로들 극심한 알력

 


김의철 송도가나안교회 목사(왼쪽 두 번째)가 2006년 춘천 가나안교회에서

미국 리젠트대 목회학 박사 학위 취득 감사예배 후

동창인 미 공군 채플린 군목 일행과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춘천가나안교회와 경강교회의 문제가 정리되자 교회는 안정적으로 성장했다. 이보다 좋을 수 없었다.

2007년 마지막 날 송구영신 예배 때 '새해의 말씀'으로 말씀 책갈피를 잡았다.

 

히브리서 6장 14절이었다.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나는 이미 결혼을 하고 자식까지 장성했는데 무슨 번성일까' 궁금했다.

 

8개월 후 대신선교대학원장인 나성균 목사님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왔다. "김 목사, 인천의 중형교회가 담임 목회자를 청빙한다네. 내가 가고 싶지만, 상황이 그렇지 못해. 기도하는데, 자꾸 김 목사 얼굴이 떠오르는데 이력서를 넣어보는 게 어떻겠소." "아이고, 목사님.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는 춘천에서 행복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어허, 내가 기도를 많이 하고 어렵게 전화하는 거야.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니 일단 기도부터 하시게." "예, 기도는 해보겠습니다."

 

그날은 수요일이었다. 예배 후 기도를 하는데 세계선교의 환상이 보였다. 나 목사님께 전화했다.

"목사님, 주님께서 인천에 뭔가 뜻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이력서는 제출하겠지만,

그 외의 다른 것은 안 하겠습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맡기겠습니다."

 

3개월 후 해당 교회에서 전화가 왔다. "84명의 지원자 중 목사님이 최종 3명 안에 드셨습니다. 청빙위원들이 목사님 교회를

탐방해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요." 청빙위원들이 둘러본 뒤 다시 투표했는데 나에게 압도적 표를 줬다고 했다.

'아, 이게 하나님의 뜻인가. 내가 만약 떠난다고 하면 성도들이 울고 불고 난리가 날 텐데...'

 

깊은 기도를 하고 강단에 섰다. "여러분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제가 인천의 모 교회 청빙을 받고 거기로 가야 할 상황이

됐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선교만을 위해 달려왔습니다. 요셉처럼 저를 좀 그곳으로 보내주십시오." 웅성거렸다.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인천 교회의 공동의회를 통과했다. 2009년 1월 세계선교의 관문에서 왕성한 선교활동을 하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인천으로

이사했다. 600여명이 출석하는 교회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 원로목사측과 장로측이 극한 대립을

빚고 있었다.

 

원로목사를 만났다. "다른 목사는 나를 찾아왔는데, 김 목사만 왜 청빙과정에서 인사하러 오지 않았는가."

"저는 인본주의나 사람에 의지하는 목회를 하지 않기로 다짐한 목사입니다. 결례했다면 용서해주십시오."

"그랬군. 그럼 장로들을 모두 제명하게."

"아니, 장로를 제명한다니요?"

 

"나는 이 교회에 평생을 바친 사람일세. 이 교회를 절대 포기하지 못해.

자네가 목회를 편안히 하려면 세 가지 조건을 이행해야 하네.

첫째는 장로 전원을 제명할 것,

둘째는 교회 안에 내 사무실을 만들 것,

셋째로 내 생활비를 더 줘야겠어."

 

마음이 무거워졌다. "돈 문제는 제가 개인적으로 어떻게 해결해 드리겠지만

나머지는 제가 결정할 사항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기도에만 집중하겠습니다."

"뭐야? 내 말을 안 듣겠다는 거야. 참고로 나는 고소·고발을 80번 이상 해본 사람이야."

 

장로들도 만만치 않았다. 그들은 두 파로 양분돼 있었다.

"원로목사를 더 이상 만나지 마십시오. 이곳에선 저희 말을 들으셔야 목회가 가능할 겁니다."

"목회는 하나님 보고 하는 것이지 장로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건 아니지요."

 

원로목사는 소속 노회에 압박을 넣어 내가 위임목사가 되지 못하도록 방해했다.

결국 위임목사 청원이 부결됐다. 그러자 성도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두 패로 나뉜 장로들도 나를 음해하기 시작했다. 서로 자신의 편에 설 것을 요구했다.

자신들의 뜻대로 되지 않자 협박까지 했다.

"김 목사님, 밤길 조심하셔야겠습니다."

심지어 예배시간에 꽹과리를 치는 사람도 있었다.

 

그곳은 교회가 아니라 지옥이었다.

강단에서 설교하면 공동묘지 앞에 선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의 얼굴엔 웃음이 사라져 있었다.

 

어느 주일 밤 예배를 마치고 기도하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김의철 담임목사님의 "목회는 영권(靈權)이다"는,

2019년 4월 11일부터 동년 8월 29일까지 국민일보에 게재된 총 20부작의 기사입니다.

http://www.ganaanch.com/board/3387


 


 

 

다음검색
스크랩 원문 : 부산남구정보센터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