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는 영권이다<9> "교회 재산 놓고 싸우느니 빈손으로 나가겠다"
- 관리자
- 2019.08.13 오후 02:00
"교회 재산 놓고 싸우느니 빈손으로 나가겠다"
김의철 목사가 2009년 4월 인천 연수구 송도동에 개척한 송도가나안교회.
김 목사는 극심한 분쟁을 겪던 인천의 모 교회를 사임하고 월세로 2층 상가를 얻어 개척했다.
"내 영이 이곳을 떠났다!" 분명한 하나님의 음성이었다. 그때 나는 이렇게 기도했다.
"주님, 그렇다면 제가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그럼 제가 떠나겠습니다."
이날 반대파들이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하느라 꽹과리를 쳤다.
신학교도 나오지 않은 가짜 목사라고까지 나를 음해했다.
졸업장과 졸업앨범까지 보여줘도 위조라며 괴롭혔다. 심지어 허위 고소까지 했다.
교회 개혁과 갱신이라는 이름으로 기득권과 재산에 눈이 먼 사람들의 추악한 행태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이렇게 기도했다. "진리를 위한 싸움이라면 목숨이라도 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 재산을 두고 싸우는 것이라면 더 이상 싸우지 않겠습니다."
2년 전 춘천에서 기도하다가 경제의 관문인 송도국제도시에 선교의 관문이 되는 교회를 세워야겠다는 꿈이 생각났다.
이튿날 월요일 아침 송도로 차를 몰았다. 송도에 교회를 세우라는 하나님의 뜻이 계신다면 예비한 장소가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송도로 들어가는 첫 다리를 건너자 부동산이 있었다. 교회 자리를 알아봤다. 예비된 장소는 없었다.
다 돌아보고 허탈한 마음으로 뒤돌아가던 중 마지막 모퉁이에 비워진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다행히 그 건물 1층에 부동산이 있었다. "이 건물 2층이 비어 있던데 교회가 가능할까요?"
부동산 주인이 바로 건물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보증금 2억원에 월 250만원을 달라고 합니다."
"그럼 등기부 등본 확인을 좀 해주십시오."
3일 전에 건축 회사에서 공사비를 받지 못해 26억원의 가압류를 걸어놓은 게 확인됐다.
그 결과 보증금을 많이 넣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됐다.
그래서 보증금 2000만원에 월 450만원으로 잠정 결정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튿날 장로 한 분이 나를 찾아왔다. "김 목사님, 저희 장로들끼리 의논을 좀 했습니다. 어쨌든 교회에서
이탈하는 쪽에 30억원을 주기로 했습니다. 이곳에 남겠습니까. 아니면 30억원을 받고 나가시겠습니까."
"필요 없습니다. 저는 숟가락 하나도 갖고 나가지 않습니다. 나가되 빈손으로 나갑니다."
그러자 나를 지지하던 성도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저 악한 놈들에게 교회 재산을 다 줄 수 없습니다. 우리가 헌금을 더 많이 했습니다.
목사님, 개척하시려면 여기서 가까운 곳에 해 주십시오."
그때 이렇게 말했다. "교회 재산을 나누지 마십시오. 나는 여기에서 가까운 곳에 개척도 하지 않습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교회 재산을 나눠 나오신다면 다른 목사님을 청빙하고 교회를 세우십시오. 나는 그 돈을 받지 않습니다."
내가 이렇게 한 것은 현실을 몰라서가 아니었다. 크게 두 가지를 생각했다.
첫째, 장로들이 주는 돈을 받으면 또다시 '바지사장'이 돼 소신 있는 목회를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 싸워서 재산을 나눈 그 자금으로 교회를 개척하면 당장 처음에는 편할 수 있겠지만 과연 하나님의 축복이라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10년 뒤를 생각해보니 그 돈을 받아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결심했다. '길바닥에 나앉는 일이 있더라도 빈손 들고 오직 복음의 능력으로 교회를 세운다.'
세상 앞에 돈 없어도 개척할 수 있고 복음의 능력으로 교회가 설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성도들에게 선포했다.
"여러분, 제발 싸우지 마십시오. 나는 이곳을 떠납니다. 하나님의 영이 이곳을 떠났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면 어디로 가시는 것입니까." "송도국제도시로 갑니다."
송도국제도시는 그곳에서 버스를 타면 1시간, 택시로 40분 거리에 있었다.
그러자 나를 지지하던 성도들이 교회 버스라도 가져가게 해달라고 했다. 그때 잠시 마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깨끗하게 마무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거부했다. 성도들이 수십년 신앙생활을 한 교회가 바로 집 앞에 있는데
그것을 다 버리고 송도까지 오시라고 할 순 없었다. 그것도 상가교회로 말이다.
† 김의철 담임목사님의 "목회는 영권(靈權)이다"는, 2019년 4월 11일부터 동년 8월 29일까지 국민일보에 게재된 총 20부작의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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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는 영권이다<10> "너는 왜 꿈을 점점 줄여가느냐" 질책하신 주님
- 관리자
- 2019.08.13 오후 02:05
"너는 왜 꿈을 점점 줄여가느냐" 질책하신 주님
김의철 송도가나안교회 목사가 2011년 인천 연수구 송도동 상가교회에서
예배를 인도하고 있다.
2009년 4월 인천 연수구 송도동 이안상가 2층에서 송도가나안교회 첫 주일예배를 드렸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120명이 넘는 성도들이 버스와 택시를 타고 몰려든 것이다.
"왜 가까운 교회를 두고 이 먼 곳 상가교회까지 오셨습니까."
"목사님을 따라가야 영혼이 살 것 같아서 왔습니다."
이분들은 분쟁 중인 인천 모 교회에서 수년간 영적 갈급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다. 내 아픔에 지쳐 있을 겨를이 없었다.
이분들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져 줘야만 했다. 춘천에서처럼 매일 새벽예배와 밤예배를 드렸다.
춘천의 교회는 성도가 많지 않았지만 대지가 5000평이 넘었다.
3개월 만에 사임한 인천의 교회도 제법 큰 건물을 갖고 있었다.
그런 곳에서 목회하다가 작은 상가에서 다시 시작하려니 쉽지 않았다. 그래도 행복했다.
첫 예배를 드리고 송도 안에 성전 건물을 달라고 기도를 시작했다.
"주님, 송도가나안교회가 세계 선교를 하는 교회가 될 수 있도록 건물을 주십시오."
하지만 송도의 상황을 알면 알수록 마음이 힘들어졌다.
송도는 종교부지 외에선 교회를 지을 수 없도록 법으로 묶어놨다.
나는 매주 한 건물을 지정해 놓고 교회로 쓸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처음 땅 밟기 기도를 했던 곳은 송도전시관으로 사용하던 곳이었다. 연수구에서 어린이도서관으로 사용하기로 한 곳이었는데 당시는 비어 있었다. 그래서 그 땅을 밟으며 3년 가까이 기도했다. 그러나 3년 후 예산이 편성돼 도서관으로 꾸며졌다. 2012년 어느 겨울밤 11시가 넘었는데 눈이 내렸다. 성도들과 금요성회를 마치고 눈을 맞으며 그곳을 도는데 유리창 너머로 도서관 집기가 보였다. '이제 이곳을 더 이상 돌 수 없겠구나.' 성도들은 잠잠해졌다. 눈물이 핑 돌았다.
그대로 헤어지면 안 될 것 같았다. "자, 성도 여러분.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찬양을 힘차게 부릅시다."
성도들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와 누웠는데 마음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포기할 순 없었다. 희망을 붙잡아야만 했다.
이튿날부터 다른 건물을 찾았다. 주인도 모르게 그냥 밤마다 돌았다. 그러다 현실이 보이기 시작하면 또 다시 마음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송도는 땅값도, 건물가격도 비쌌다. '송도를 벗어나 다른 곳을 찾을까' 생각해 실제로 알아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기도를 하는데 주님께서 물으셨다.
"너는 왜 꿈을 점점 줄여가느냐. 꿈을 갖는 게 돈이 드냐, 힘이 드냐."
주님은 내가 현실과 타협하는 걸 원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그래서 다시 마음을 추슬렀다.
그러던 차에 상가 건물주가 교회를 비워달라고 했다. 마침 송도 근처 한 교회가 건축 후 어려움에 부닥쳐 예배당을 매각한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그 교회 목회자를 만났다. "조만간 1억원을 입금하지 않으면 70억원짜리 교회 건물이 경매로 넘어갑니다.
김 목사님이 맡아 주시지요." 은행에 확인해보니 사실이었다.
그래서 그 건물을 넘겨받기로 했다. 계약서를 쓰고 계약금으로 우리가 가진 전 재산인 1억원을 입금했다. 성도들은 좋아했다. '아, 이제 예배당이 생기나보다.' 그런데 이틀 후 그 교회 목회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목사님, 죄송합니다. 계약을 해지해야겠습니다."
청천벽력같은 소리였다. '이제 갈 곳이 생겼다고 다들 좋아했는데 계약이 파기됐다니.' 교회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성도들도, 나도 힘이 쭉 빠졌다. 하지만 주저앉아 있을 순 없었다. 예전에 하는 대로 매일 예배를 드렸다.
상가를 비워줘야 할 시간은 점점 다가오는데 갈 곳이 없었다. 진퇴양난이었다.
"주님, 이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습니다. 주님의 교회이니 주님이 알아서 하세요.
이제부터 저는 아무것도 안 하겠습니다. 교회 문을 닫으라고 하시면 닫겠습니다."
그렇게 매일 기도하고 예배만 드렸다. 불안한 마음으로 1주일을 보내는데,
당시 안양대 신대원에 다니던 아들이 달려왔다. "아빠, 이것 좀 보세요."
컴퓨터 화면을 보니 송도 국제신도시 안에 있는 한 교회가 건축 후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채권자인 은행에 의해 경매가 신청됐다는 내용이었다. 경매일까진 딱 5일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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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는 영권이다<11> 가진 돈 1억뿐인데... "56억 교회건물 경매 응찰"
- 관리자
- 2019.08.13 오후 02:10
가진 돈 1억뿐인데... "56억 교회건물 경매 응찰"
김의철 송도가나안교회 목사가 2011년 인천 연수구 송도동 이안상가 교회에서
밤기도회를 인도하고 있다. 김 목사는 2009년 교회 개척 때부터 매일 밤기도회를 진행했다.
그래서 이튿날 해당 교회를 찾아갔다. 목사님으로부터 교회가 경매물건으로 나오게 된 자초지종을 들었다. 사정이 딱했다.
은행도 찾아갔다. 이자를 1년 반이나 내지 않아 연체이자만 5억원이 넘는다고 했다.
은행 관계자와 약속했다.
"좋습니다. 우리 교회가 이 교회 건물을 인수하려고 합니다.
자금난으로 어려움을 겪는 목사님과 저희 교회가 윈윈할 수 있는 방법이 없겠습니까."
"NPL(무수익여신) 체결을 하면 연체 이자를 감해주겠습니다."
5억원이 넘는 이자를 감면해주겠다는 파격적 조건이었다.
그래서 전문가를 고용해 NPL계약을 위한 서류를 만들었다. 계약이 체결되기 위해선 채권자, 매입자, 건물주가 모두 도장을 찍어야 했다. 그래서 그 교회 목회자를 찾아가 이런 제의를 했다.
"목사님, NPL에 동의해주시면 연체이자가 감면됩니다. 감면된 돈만큼 목사님 교회에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하시면 빈손으로 이 건물을 떠나는 불상사를 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교회 목사는 펄쩍펄쩍 뛰면서 반대했다.
"경매당일 새벽에 하나님이 은행에 밀린 돈을 갚으라고 분명히 주실 것입니다."
"목사님, 그런 생각은 지나친 신비주의입니다. 지금까지 돈을 안 주셨다면 그 속에도 하나님의 뜻이 계실 것입니다."
"저는 끝까지 기도할 것입니다."
결국 그 목사가 동의를 해주지 않아 NPL 체결이 불발됐고 경매가 진행됐다.
그 목회자는 결국 아무런 재정적 혜택도 받지 못하고 교회에서 퇴거하게 됐다.
우리 송도가나안교회도 문제였다. 아무 대책 없이 가진 돈 1억원만으로 56억원이나 되는 교회건물에 응찰하겠다고 나선 상황이었다. 그날 교회 건물이 경매 나온 사실을 저녁기도회 때 광고했다.
"여러분, 돈이 있든 없든 간에 우리가 응찰하겠습니다. 그리고 무조건 그 교회건물을 사겠습니다."
"아멘!" 무슨 용기가 생겼는지 자신 있게 광고했다.
하나님께서 송도에 예배처소를 주신다고 분명히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희한한 일은 그다음 날 벌어졌다. "목사님, 은행지점장이라는 분이 찾아오셨습니다."
"은행지점장이라고? 약속도 잡지 않았는데." 경기도 일산에 있는 모 은행지점장이라고 했다.
"교회 건물을 새로 사신다고 말씀 들었습니다."
"네, 경매로 나온 교회 건물이 있어서 기도 중에 그렇게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의 사정을 어떻게 알고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사실 제가 사는 아파트에 송도가나안교회 성도가 살고 계십니다. 그분은 엘리베이터에서 저를 만날 때마다 그렇게 송도가나안교회와 목사님 자랑을 합니다. '저렇게 목사님을 자랑하는 성도가 신앙생활 하는 교회라면 안전하게 돈을 빌려드려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상가교회이지만 대출해 드리고 싶습니다."
"담보가 없는데 어떻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은행지점장은 내 목회 스토리를 듣더니 춘천 가나안교회의 땅을 담보로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목사님, 춘천 땅 정도면 5억원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비록 떠났지만, 춘천 성도들은 여전히 든든한 중보기도자들이었다.
그렇게 4일 만에 5억6000만원을 만들어 입찰금으로 넣었다.
"경매물건 0000, 송도가나안교회 낙찰!" 이제 문제는 25일 안에 잔금 50억원을 만드는 것이었다.
만약 그 돈을 납부하지 못하면 입찰금은 고스란히 국고로 들어가게 돼 있었다.
나는 단 한 번도 이렇게 큰 금액을 만든 일이 없었다.
은행의 신용도는 고사하고 상가 개척교회라 은행에 갈 일도 없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송도의 비전을 품으라고 하셨다. 이번 낙찰은 하나님의 사인이다.'
망하면 망하리라는 심정으로 전 교인이 합심해 집중적으로 기도했다.
놀랍게도 며칠 후 주채권 은행 관계자를 만났는데 놀라운 이야기를 했다.
"목사님을 만나 목회 스토리를 들어보니 돈을 빌려드려도 될 것 같습니다. 적극 협조해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은행 2곳에서 자격도 안 되는 나와 송도가나안교회 성도들을 믿고 50억원이라는 거액을 대출해 줬다.
무사히 잔금을 다 치렀다. 원래 건물을 쓰던 목회자가 퇴거하는 모습을 보니 안쓰러웠다.
4000만원을 이사비에 쓰라고 건넸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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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는 영권이다<12> '선데이 크리스천' 변화시키려... 50일 집중 기도 돌입
- 관리자
- 2019.08.13 오후 02:14
'선데이 크리스천' 변화시키려... 50일 집중 기도 돌입
인천 송도가나안교회에서 2016년 10월 개최된 '50일의 기적 목회자 영성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이 뜨겁게 찬양하고 있다.
상가교회에 있다가 경매에서 낙찰받은 현재의 건물로 이사를 오자 모든 것이 달랐다.
전기료가 10배 이상 나왔다. 수도료, 가스비, 관리비 등 모든 씀씀이가 커졌다.
상가에 있을 때 나오던 헌금 전부를 합쳐도 대출이자를 충당하기가 어려웠다.
새 건물이라고 했지만, 예배당을 짓다가 중간에 부도가 난 건물이었다.
국제도시 송도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내부가 허술했다.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밖에 없었다.
새 건물로 이사 오기 1주일 전에 한 가정이 등록했다.
"제가 건축업을 하고 있습니다. 내부 리모델링을 해 드릴 테니 돈은 여유가 있을 때 주시면 됩니다."
그렇게 간신히 리모델링을 마무리했다.
상가에 있을 때처럼 매일 새벽과 밤마다 예배를 드렸다. 매월 이자 낼 수 있는 형편이 안 됐다.
하지만 이자 날이 되면 신기하게도 돈이 채워졌다. 한 번도 이자 납부 날짜를 어긴 적이 없다.
2014년 그렇게 예배당을 옮기고 2~3개월 지나자 마치 투망에 물고기가 들어오듯 150명 성도가 늘어났다. 전체 성도가 300여명으로 성장하면서 교회 운영의 부담이 줄어들었다.
그런데 내 마음속에 큰 근심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교인들은 많아졌는데 다들 일요일에만 교회 가는 선데이 크리스천이다. 영락없이 주일에 딱 한 번 나오는 정통 도시교회
성도들의 모습이다. 심방도 받지 않고, 예배 후 나갈 때 목사와 눈도 잘 마주치지 않는다.' 그때부터 마음의 갈등이 생겼다.
'내가 사람 모으려고 송도까지 와서 개척한 것인가. 이렇게 사람들이 많아진 것을 과연 부흥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대로 갈 순 없다고 결심했다. 이 사람들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성경을 읽다가 사도행전 2장에 눈이 멈췄다.
예수님 승천 이후 갈 곳 없던 제자들은 비밀의 장소에 숨어 기도했다. 50일이 되는 날 성령이 임하고 그날 이후 성령에 의해
변화가 됐다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세상에 나가 교회를 세웠다.
그 초대교회가 교회역사상 가장 성경적인 교회가 됐다.
'아, 그렇다면 우리교회도 50일 동안 집중적으로 한번 기도해 보는 게 어떨까.'
그렇게 '50일의 기적' 기도회를 한다고 광고했다. 의문이 들기도 들었다.
'이 바쁜 세상에 과연 밤마다 50일 동안 몇 사람이나 나올 수 있을까.'
그때 주님은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기도의 자리는 사람을 모으는 것이 아니다. 나와 너 단둘의 교제 시간이다."
그래서 마음의 결심을 했다. '아, 나라도 제대로 기도하자. 사람이 모이든 안 모이든 시작하자.' 2014년 12월 1일부터 2015년 1월 19일까지 50일의 기적을 한다고 선포했다. 등록을 받아보니 하루 전날까지 고작 15명의 등록했다.
'이제부터 15명을 데리고 50일 동안 아무 데도 안 가고 교회에서만 지내겠다.' 그렇게 시작했는데 그날 밤에 180명이 모였다.
그때 머리를 딱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한국교회가 기도하지 않는 것은 성도의 문제가 아니었다. 목사의 문제였다.'
그래서 찬송하고 말씀 전하고 기도하는 간단한 순서로 기도회를 진행했다. 매일 한 시간씩 말씀을 전했다.
며칠이 지나자 영적 저항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기도회를 시작한 것은 성도들이 갖고 있던 기존의 잘못된 신앙 습관을
바꾸기 위해서였다. 강단에서 사람들의 잘못된 신앙, 인본주의적 습관, 다원주의적 사고를 많이 책망했다.
표정이 일그러졌다. 말씀을 듣다가 나가는 사람이 생겨났다. 분위기도 싸늘해졌다.
저항이 심했다. 이러다가 사람들이 다 떠나고 교회 문 닫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물러서지 않고 계속 외쳤다. '하나님의 말씀, 진리를 외치다가 교회 문을 닫아야 한다면 닫겠다.'
성도들 마음속에 깊이 잠재돼 있던 완고함이 점점 드러나기 시작했다.
온갖 교만과 거짓으로 길들어 있던 옛 습관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어떤 이는 얼굴을 붉혔고 어떤 이는 항의 문자를 보내왔다.
또 어떤 이는 충격을 받고 발길을 끊었다.
† 김의철 담임목사님의 "목회는 영권(靈權)이다"는,
2019년 4월 11일부터 동년 8월 29일까지 국민일보에 게재된 총 20부작의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