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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목회는 영권이다<13~16> "변하든지 떠나든지..." 외치자 콧대높은 성도들 충격

작성자앵두|작성시간22.04.04|조회수8 목록 댓글 0

목회는 영권이다<13> "변하든지 떠나든지..." 외치자 콧대높은 성도들 충격

  • 관리자
  • 2019.08.13 오후 02:18

 

"변하든지 떠나든지..." 외치자 콧대높은 성도들 충격 

 


김의철 송도가나안교회 목사가 2016년 11월 인천 연수구 교회에서 개최된

'50일의 기적' 밤 예배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다.

  나는 그런 영적 저항 앞에 절대 물러서지 않았다. "저는 사람을 모으려고 교회를 세우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끝까지 마음을 열지 않고 변화를 거부할 거면 다른 교회로 가십시오. 하나님의 말씀과 목회자의 영적

권위 앞에 굴복하기를 거부하는 사람과는 함께 갈 수 없습니다."

 

  성도는 고객이 아니라 비저너리(visionary)다. 목사와 꿈을 같이하고 마음을 같이하지 않으면서 교회에 온다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변화하든지 떠나든지 하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콧대 높은 성도들이 충격을 받는 것 같았다.

 

  사실 성도 욕심 없는 목사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결심했다. 다 떠날지라도 교회다운 교회를 세우겠다고.

그런데 이튿날부터 나오지 않을 듯한 사람들이 계속 나오기 시작했다.

20일이 지나자 안수기도를 해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버티며 변화를 두려워하는 남자 성도부터 강단 위로 불러냈다. 

 

  설교를 마치고 안수기도를 시작했다. 그때 대부분의 남자에게 성령이 임했다.

그런데 한 정형외과 의사 집사가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래서 손을 떼지 않고 기도를 계속했다.

목석같았다. 어릴 적부터 교회를 다닌 이성적 신앙인이었다.

 

  일단 멈추고 다른 사람부터 기도해 줬다. 20분간 기도를 하고 강단 위에 섰다.

'그 집사에게 다시 안수해 주라.' 주님의 말씀이었다.

마음이 좀 상했다.

"의사면 의사지 조금 알고 배웠다고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이성으로 판단하고

성령을 거부하는 사람에게 왜 다시 기도해 줘야 합니까."

 

  그래서 소리 내어 다른 기도 제목을 놓고 성령님과 씨름하는데 '잔소리하지 말고 해 주라'고 하셨다.

순종했다. 조용히 다가가 앉아 있는 그 사람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그런데 갑자기 '푹'하고 쓰러졌다.

그때 느꼈다. 성령님께서 그 사람에게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말이다. 

 

 

  20분 동안 그 집사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주님만 아신다. 하지만 성령님께 순종했더니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기도 후에 물어봤다. "왜 쓰러지셨습니까." "목사님이 머리에 손을 얹는 순간 뜨거운 불이 내 몸에 들어왔습니다. 그때 나도 모르게 쓰러져 꼼작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날 이후 그 집사님은 완전 딴사람이 됐다. 그렇게 좋아하던 술도 끊고 일주일에 딱 한 번 나오던 사람이 지금은 매일 교회에 와서 기도하고 있다. 성가대에 들어가 성가대장으로 봉사하고, 하나님께 충성하려면 개원을 해야 한다며 연수구에 병원까지 열었다. 

 

  '하나님께서 우리교회에 이런 은혜를 퍼부어 주시는 이유가 뭘까.' 고민해보니 교회 재정이 없을 때부터 진행했던 선교였다.

사실 선교는 주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이다. 

 

 

  2009년 5월 송도 이안상가에 월세로 개척교회를 시작했지만, 현실은 냉엄했다.

나름 열심히 기도하고 매일 두 번씩 예배를 드렸지만, 송도를 알면 알수록 높은 벽이 느껴졌다.

 

  뒤늦게 들어간 교회라 종교부지 입찰 기회도 없었고 돈도 없었다. 종교부지 외에는 교회를 건축할 수 없었다.

무작정 땅 밟기를 했지만 아무런 방법도 없었다. 그래서 이런 기도를 했다.

 

  '주님, 제가 무슨 일을 해 드려야 기뻐하시며 그 일만은 잘했다고 칭찬하시겠습니까.' 기도는 그렇게 했지만 내심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싶은 생각이 많았다. 그때 문뜩 한국 남자와 필리핀 여자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인 코피노가 생각났다. 그래서 다짐했다. "주님, 제가 코피노 고아원을 세우겠습니다."

 

  당장 월세 낼 돈도 마련하기가 힘겨운 상황에서 그냥 그렇게 기도했다. 그리고는 필리핀 세부에 있는 선교사님에게 연락했다. "선교사님, 고아원을 세울 수 있는 땅이 있는지 알아봐 주십시오." 얼마 지나지 않아 땅이 있다는 연락이 왔다.

 

  하지만 계약금은 고사하고 항공권을 살 돈도 없었다. 일단 땅 주인을 만날 날부터 정했다.

가기 이틀 전에 항공료가 생겼다. 땅을 보니 정말 적절한 곳이었다. 땅 주인과 가격 조정까지 마쳤다. 

 

  "패스터 김, 그럼 계약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갑자기 오게 돼 계약금을 못 가져왔습니다.

한국에 가서 계약금을 만들어 다시 오겠습니다."

 

 

† 김의철 담임목사님의 "목회는 영권(靈權)이다"는, 2019년 4월 11일부터 동년 8월 29일까지 국민일보에 게재된 총 20부작의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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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는 영권이다<14> 계약금도 없이 덜컥 시작한 코피노 고아원, 고비마다...

  • 관리자
  • 2019.08.13 오후 02:22

 

계약금도 없이 덜컥 시작한 코피노 고아원, 고비마다... 

 


송도가나안교회가 2016년 필리핀 세부 막탄에 건립한 코피노 고아원​

 

  40만 달러를 요구했던 필리핀 세부 고아원 부지 매입가를 18만 달러까지 낮췄다. 당시 환율로 2억2000만원이었다.

송도의 상가 개척교회 시절이라 원금은 물론이고 계약금도 없었다. 성도들과 기도하면서 계약금을 만들었는데,

초신자를 통해 절반이 채워졌다.

 

  당시 교회에 처음 나온 여성 간호사가 있었다. 초신자가 교회에 오면 반드시 새가족 심방을 했다. 심방 때 황당한 답변이 나왔다. "어떻게 송도가나안교회에 오셨습니까." "제가 교회 다니려고 한 것은 아니고요. 사실은 저희 집 형편이 안 좋아서 주말에 교회에서 아르바이트하려고 왔습니다." "네? 죄송하지만 우리 교회에선 아르바이트를 구하지 않습니다." "아, 그럼 교회가 작아서 아르바이트가 없는 겁니까. 큰 교회에 가 봐야겠군요" "허허, 큰 교회도 아르바이트는 없을 것입니다."

 

  나는 이분이 아르바이트를 찾아 다른 데로 갈 줄 알았다. 그런데 계속 나오는 게 아닌가.

3개월이 지났을 무렵 그가 찾아왔다. "목사님, 이 돈을 코피노 고아원 땅 사는 데 사용하세요."

 

  1000만원이었다. 그렇게 엉뚱하게 교회를 찾아온 초신자에게 헌금을 받고 보니 '코피노 고아원을 짓는 데서 물러서는 일은

꿈도 꾸지 말라'고 하나님께서 빗장을 치시는 느낌이 들었다. 문제는 잔금이었다. 한 달 후에 2억원을 줘야 하는데 아무리 해도 8000만원이 부족했다. 기도하는데 주님께서 내게 물으셨다. "김 목사, 네가 정말 고아를 위해 일하기를 원하느냐. 그렇다면 네가 고아를 위해 빚을 낼 수 있겠느냐." 말문이 막혔다. 나는 지금까지 아무리 어려워도, 자녀가 아파서 병원 갈 돈이 없어도 빚을

내 본 적이 없었다.

 

  주님께서 나의 진심을 시험하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명심이 아니라 진실로 고아를 도울 생각이 있는지 시험하고 계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래서 난생처음 개인 빚을 내서 잔금을 치렀다. 그렇게 코피노 고아원 건립을 추진하는 가운데 2014년 1억원을 갖고 경매에 들어가 56억원에 교회건물을 낙찰받았다. 

 

  '교회가 너무 많은 빚을 지고 있다. 고아원 건물 공사를 나중에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주일날 이 문제를 놓고 기도하는데 주님께서 물으셨다. "너는 나를 믿고 일할래, 돈을 믿고 일할래?"

 

  돈은 전혀 없었다. 그냥 주님을 믿었다. 설교 시작 전 고아원 건물 공사를 시작하겠다고 선포해버렸다. 이튿날 성도 한 분이

전화했다. "목사님, 저희 사무실에 잠깐 오셔서 기도 좀 해주시겠습니까. 어제 목사님이 코피노 고아원 건축 이야기를 하실 때 돈을 드리라는 감동을 하나님께서 주셨어요."

 

  그는 1억원을 헌금했다. 그 돈으로 공사를 시작했다. 세부에 사는 건축업자는 섬에 거주하던 인부 150명을 데리고 나와

숙식하면서 공사를 시작했다. 빚이 많은 상황에서 매달 감당할 수 없는 돈이 들어갔다. 그때마다 가슴 저리게 기도했다.

매일매일 아슬아슬했다.

 

  공사 중간쯤이었다. 그다음 주에 1억원을 보내줘야 하는데 돈이 없었다. '도무지 방법이 없다.

광고시간에 고아원 헌금을 한번 하자고 부탁해야겠다.' 주일 광고 시간에 입을 떼려는 순간이었다.

주님께서 내 입을 막으셨다. "너는 왜 사람을 의지하려느냐."

"아, 주님 너무하십니다. 이게 다 주님을 위한 일인데 강단에서 헌금에 동참하자는 말도 못 합니까."

"너는 지금 누구를 믿고 목회하는 것이냐?"

 

  결국, 말도 못 꺼내고 강단에서 내려왔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기도밖에 없었다. 이튿날 오전 전화가 왔다.

“목사님, 저희 부부 좀 만나주실 수 있겠습니까.” “네, 좋습니다. 매일 저녁 예배가 있으니 예배 전에 새가족실로 오세요.”

 

  전문직에 종사하는 부부는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했다. "저희가 그동안 다른 교회에 다닐 때는 교회에 문제도 있고 해서 십일조 생활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송도가나안교회에 와서 큰 은혜를 받고 영적으로 회복됐습니다. 기도를 하는데 주님께서 밀린 십일조를 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거기에 조금 더 보태서 가져왔습니다. 귀한 일에 써 주세요." 기도를 받고 부부가 떠났다. 봉투를 열어보니 1억원 수표가 들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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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는 영권이다<15> 빚도 다 안갚은 상태서 필리핀 선교지에 돈 쏟아붓자...

  • 관리자
  • 2019.08.13 오후 02:26

 

빚도 다 안갚은 상태서 필리핀 선교지에 돈 쏟아붓자...

 


송도 가나안교회가 필리핀 세부 막탄에 세운 가나안 국제크리스천학교.

교회는 강의동과 기숙사를 추가로 짓고 있다.

  2014년부터 필리핀에 코피노를 위한 고아원과 게스트룸 학교 체육관 현지교회 등을 세웠다. 단 한 번도 성도들에게 헌금을

요구하지 않았다. 주님 말씀만 믿고 하라는 대로 했다. 그 결과 기적같이 자금이 채워졌다. 토지를 매입하고 학교와 체육관,

교회 건물을 짓는데 상당한 금액이 들어갔다.

 

  재단법인을 만들고 시설허가와 수질 허가 등을 받는 데 2년이 넘게 걸렸다. 지난해부터는 본격적으로 코피노들을 수용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최고의 시설에서 전액 무료로 생활하고 있다. 놀라운 것은 교회 빚부터 갚지 않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부터 먼저 했더니 교회도 부흥하고 선교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고아원 건물을 짓다 보니 학교도 하게 됐고 교회도 생겼다. 그렇다면 현지교회도 도와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현지교회

10개를 건축했다. 친구 목사들은 다들 나를 미쳤다고 했다. 인천 송도에 56억원짜리 건물을 경매로 낙찰받아 빚을 먼저 갚지

않고 필리핀 선교를 한다면서 선교지에 돈을 쏟아붓고 있으니 도저히 계산이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내가 붙들었던 원리는 단순하다. 사심을 버리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돈을 앞세워 살지 말자는 것이었다. 왜 강단에서 영권이 살아나지 못할까. 이유는 간단하다.

인본주의와 자기 성공을 위해 목회를 하다 보면 하나님 나라의 가치가 아닌 근심과 걱정이 밀려온다.

그렇게 점점 예수님을 앞세워 '사업'을 하다 보면 성도들이 상처받고 떠날까 두려워 선지자적 말씀을 선포하지 못한다.

 

  문제는 한국교회 안에 '헌금 떨어질까 봐' '성도 떨어질까 봐' '교회 안 될까 봐' 말씀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는 희한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교회는 사업장이 아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곳이지 사람을 모으는 곳이 아니다. 영혼 구원에 대한

몸부림보다 목회 성공의 욕망을 앞세우다 보니 돈에 약해지고 지저분한 정치판에 뛰어드는 것이다. 

 

  이처럼 목회가 맘몬의 영이 지배하는 상황에 놓이면 일어설 수 없다.

기독교의 능력은 하나님의 말씀 원리를 따르는 데서 나온다.

반대로 말하면 우리가 말씀의 원리를 따르지 않으면 아무 능력이 없게 된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 돈을 믿고 가지 말고 예수의 능력을 믿고 가라고 명령하셨다(마10:8-10).

그런데 이 말씀의 원리를 지키지 않다 보니 젊은 목회자들이 교회를 개척하지 않고 좋은 후임 자리에 탐을 낸다.

선교사 지망생들도 선교를 나가기 전에 후원금 모집에 열을 올린다.

교회도 연말이 되면 목회자 사례비 책정 문제로 힘들어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하나님보다 돈을 믿고 살기 때문이다.

진정한 믿음의 공동체라면 목회자는 적게 받으려고 애써야 하고 성도들은 자기 목사를 하나님처럼 섬겨야 한다. 

 

  기독교 신앙은 돈 믿고 살던 사람들이 하나님 믿고 사는 삶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교회는 하나님의 역사하심보다 돈을 앞세운다. 무슨 사역을 하기 전 '돈이 얼마나 있는가' '돈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부터 따진다. 물론 이 과정이 은혜스럽다면 상관은 없다. 하지만 돈 문제를 의논하다가 싸우고 시험에 드는 경우가 다반사다.

 

  목회자 중에는 그런 험한 꼴을 많이 보기 때문에 아무 일도 않고 그냥 시간만 보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게 되면 교회는 주저앉거나 정체기에 들어간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땅을 정복하며 다스려야 하는데,

모험해야 하는데, 돈이 없다는 이유로 주저앉는 것이다.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단 한 명도 돈을 앞세우면서 일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하라고 하면 그냥 순종했다. 하나님은 돈을 먼저 주시는 분이 아니라 꿈을 주시는 분이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믿음이라는 '노'를 저을 때 돈과 사람을 붙여주신다. 영권부터 세워야 인권, 물권도 따라온다는 말이다. 

 

  나는 결혼 후 딸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가족외식 한번 해본 적이 없다. 아끼느라 못했고 돈이 없어 못 했다.

도덕적으로 보면 매우 검소한 목사였다. 그런데 하나님의 시각에서 보면 사이비 같은 목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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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는 영권이다<16> "교회는 권력기관 아냐... 희생·헌신 밑바닥에 깔려야"

  • 관리자
  • 2019.08.13 오후 02:30

 

"교회는 권력기관 아냐... 희생·헌신 밑바닥에 깔려야" 

 


인천 연수구 송도가나안교회의 야경.

교회는 매일 오후 8시부터 베데스다채플에서 저녁 기도회를 개최하고 있다.

  나는 오랫동안 돈의 압박을 받으며 살아왔다. 그런데 나중에야 깨달은 사실이 있다.

교회를 개척했기 때문에 가난한 게 아니라 믿음이 없어서 가난했다는 것이다.

한번은 주님께서 이렇게 물으셨다.

"의철아, 네가 정말 생각하는 비빌 언덕은 무엇이냐?"

"주님입니다."

"그렇다면 교인이 많고 적음에 따라 네가 잘사는 것이 아니라 나 때문에 잘 살아야지."

 

  나의 목회는 그때부터 180도 변했다. 주님이 나의 도움이시며 필요를 채우시는 분임을 믿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말 주님만 믿고 일을 저지르기 시작했다. 힘든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주님이 돈을 주시지 않기 때문이 아니었다. 나의 믿음 없음과 관련된 문제였다. 

 

  2009년 보증금 2000만원에 월 450만원으로 인천 송도에서 가나안교회를 개척할 때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송도국제도시에 돈도 사람도 아닌 복음의 능력으로 교회가 세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십시오."

그때는 주님이 매달 역사하지 않으시면 문을 닫을 형편이었다.

런데 주님은 정말 내 믿음만큼 돈을 주셨다.

주님의 질문은 한결같았다. "돈 믿고 일할래? 나를 믿고 일할래?"

 

  하나님은 우리 필요를 채우시는 분이다.

믿음은 그 하나님을 믿고 살고 일하는 것이다.

만약 목사나 성도가 돈을 믿고 살아간다면 불신자나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건 위선이고 가식이다.

 

 

  목회하며 깨달은 중요한 사실이 또 하나 있다.

교권이 장로나 성도들에게 넘어가면 교회는 무너지고 만다는 것이었다.

과거 내가 신학교에 다닐 때는 이름만 들어도 존경스럽고 영향력이 대단한 교회가 많았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교회의 존재감이 미미하다.

수많은 교회가 후임 문제로 영권이 무너지고 있거나,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이유가 뭘까. 한국교회가 1세대 목사님들 같은 준비된 지도자를 세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왜 준비된 지도자를 세우지 못했을까.

그 원인은 세 가지였다.

첫째, 세습이란 용어로 준비된 지도자의 영입을 차단했기 때문이다.

둘째, 장로들이 '바지사장' 같은 목사를 데려다 놓고 교권을 휘두르려 하기 때문이다.

셋째, 양을 위해 죽으려고 하는 목사가 점점 사라지고 월급쟁이 목사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나는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한국교회에 희망이 없다고 본다. 

 

 

  사회는 둘째치고 교회조차 세습과 계승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민수기 3장에 보면 제사장은 레위족속 중에서 세우라고 했다. 즉, 제사장 가문에서 제사장을 세우라는 것이다.

 

  성직자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어릴 적부터 나실인처럼 훈련돼야 한다.

그 때문에 아버지가 개척을 하면 아들은 함께 땀을 흘린다. 그 외로움 고통 아픔을 다 보고 자란다.

교회를 얼마나 사랑해야 하고 얼마나 헌신해야 하는지 보고 자란다.

 

  하지만 교회에 공헌한 바도 없고 교회 출신도 아니며 교회에 대한 애정이 적은 목회자가 외부에서 들어오면 아무래도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후임자가 자기 세계를 구축하려고 전임 목회자의 흔적을 지우려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사다. 그 과정에서 성도들은 고통을 당한다. 갈등이 조장되다 보면 교역자가 바뀌고 교회가 반 토막 난다. 

 

  교회는 권력기관이 아니다. 희생과 헌신이 밑바닥에 깔려 있어야 한다.

목회자는 성도들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다. 성도들을 살리기 위해 자기 몸을 불사르는 존재다.

 

  교회 후임은 그 교회를 가장 사랑하며 교회의 영성을 이어 갈 수 있고 성도들을 개척자의 가슴으로 돌볼 수 있는 사람으로

세워야 한다. 아들이든 아니든 중요하지 않다. 아들은 안되고 남이어야 한다는 논리 속엔 잘못된 인본주의적 사고가 깔려있다.

 

  세습은 자신의 권력욕과 일신의 배부름을 위해 주민을 혹독하게 탄압하는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일가나 두고 하는 말이다.

목회는 죽는 것이고 희생이다. 누가 그 교회를 가장 사랑할 수 있을까. 

 

  물론 목회자의 아들이 사명감이 없거나 준비되지 않으면 절대 세워선 안 된다. 그런데도 후임으로 세운다면 세습이 맞다.

그러나 아들이 잘 훈련되고 준비된다면 영적 시각에서 리더십 계승이라 할 수 있다.

 

 

† 김의철 담임목사님의 "목회는 영권(靈權)이다"는, 2019년 4월 11일부터 동년 8월 29일까지 국민일보에 게재된 총 20부작의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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