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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삶의 이야기

26년산 보리수

작성자은방울|작성시간26.06.05|조회수3 목록 댓글 0

보리수와의 밀고 당기기

퇴임하자마자 고향으로 돌아와 산방 둑방길 언덕에 보리수 다섯 그루를 심었다.
사실 열매를 따먹겠다는 욕심보다도 ‘보리수’라는 이름이 왠지 마음에 와닿았다. 이름 하나만으로도 나무를 심게 되는 법이 있으니, 사람 인연이나 나무 인연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

그중 한 그루는 먼저 세상 구경을 마쳤고, 남은 네 그루는 주인 잘못 만난 줄도 모르고 해마다 무럭무럭 자란다. 덕분에 매년 보리수 열매를 수확해 효소를 담가왔는데 올해는 생식할것 남겨두고 모두 11키로 준비해 1년간 잘 숙성시켜 고추장 만들때 사용해 맛난 고추장 가족들에게 나누어 준다.

그런데 10년 넘게 하다 보니 깨달았다.

"수확하는 사람 따로, 먹는 사람 따로."

열매는 얼마나 많이 달리는지 하나하나 따다 보면 다섯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따고, 씻고, 정리하고, 설탕에 재워 효소를 담그고, 1년을 기다려 숙성시키는 일까지 생각하면 결코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그래서 지난해에는 큰맘 먹고 강전정을 했는데.

"이제 좀 덜 달리겠지."

하지만 보리수는 내 뜻을 비웃기라도 하듯 더 많은 열매를 매달았다. 마치 "주인 양반, 아직 멀었소!" 하는 것 같았다.

보리수 열매는 생으로 먹으면 약간 떫게 느껴지는 맛이 있다. 한두 알 먹으면 시큰둥한데, 한 움큼 입안 가득 넣고 씹으면 은근히 정이 가는 맛이다. 나는 잘 먹지만 옆지기는 영 내켜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열매를 볼 때마다 어린 시절 추억이 떠오른다.

소를 먹이러 산에 갔다가 친구들과 바위에 둘러앉아 산에서 따 먹던 '뽈동' 열매. 표준말은 아직도 모르겠지만 하동 옥종에서는 그렇게 불렀다. 모양은 보리수와 비슷하지만 맛은 전혀 다르다. 그래도 빨갛게 익은 열매를 보면 그 시절 산바람과 친구들 웃음소리가 함께 따라온다.

옆지기는 해마다 말한다.

"힘들어 죽겠는데 빨리 베어버리소."

그러면 나는 또 해마다 같은 대답을 한다.

"꼭 열매 때문에 키우는 건 아니지. 새들도 먹고, 짐승들도 먹고, 꽃 피고 열매 달린 모습 보는 재미도 있는데."

결국 보리수는 아직도 살아남아 있다. 아마 나보다도 끈질긴 고집 덕분일 것이다.

올해도 옆지기는 모른 척했고, 나는 혼자 아침 세 시간, 오후 두 시간을 매달려 열매를 모두 땄다. 준비를 마쳐 저온고에 넣어두고는 슬그머니 뒷정리를 옆지기에게 넘겼다.

겉으로는 투덜거리겠지만 나는 안다.

"아까워서라도 결국 설탕에 재워 효소를 담글 것"이라는 사실을.

그렇게 올해 보리수 농사도 끝났다.

열매는 모두 따냈지만, 내년에도 어김없이 꽃은 피고 열매는 달릴 것이다. 그리고 나는 또 투덜거리면서 따고, 옆지기는 또 없애자고 할 것이다.

그게 어쩌면 보리수 때문이 아니라, 우리 부부가 살아가는 방식인지도 모른다.

잘 숙성된 보리수 효소 한 병에 담기는 것은 단순한 열매의 맛이 아니다. 한 해의 햇살과 바람, 늙은 부부의 실랑이, 그리고 내년을 기다리는 작은 희망까지 함께 익어가는 것이다.

옆지기는 내가 예상한대로 결국은 설탕에 저려 효소 담글 준비를 완료했다 ㅎㅎ
잘 숙성되기를 희망하며 또 1년후를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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