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에 남은 마음
해방 이전의 초등학교 졸업사진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졸업사진의 풍경은 놀라울 만큼 비슷하다.
학생 수의 많고 적음은 달라도 맨 앞줄에는 여학생들이 앉고, 그 뒤로 교직원들이 의자에 자리한다. 가운데에는 교장이 앉고 양옆으로 교감과 교무, 담임교사들이 배치된다. 학생들은 뒤로 갈수록 의자 위에, 책상 위에, 또 책상 위에 올린 의자 위에 서며 아슬아슬한 자세로 사진 한 장에 담기곤 했다.
그렇게 하면 백여 명이 넘는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한 장의 사진 속에 모두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늘 궁금했다.
졸업사진의 주인공은 졸업생들인데, 왜 사진의 중심에는 언제나 교직원들이 앉아 있어야 할까.
교장으로 첫 발령을 받고 1년이 지나 처음 맞은 졸업식 날, 나는 오래된 관행을 조금 바꾸어 보고 싶었다.
예전 같으면 전문 사진사가 학교를 찾아와 찬 바람 부는 2월 운동장에서 한참 동안 학생들을 세워 놓고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학교에도 좋은 카메라가 있었고 사진에 능숙한 선생님도 계셨다.
그래서 나는 맨 앞줄에 졸업생들을 앉히고, 학생 수가 많으면 그 뒤에 서게 했다.
그리고 교직원들은 마지막 줄에 서도록 했다. 교장인 나 역시 맨 끝자리에 섰다.
주인공은 아이들이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사진이 완성되고 나니 교직원들도 훨씬 자연스럽고 좋다고 했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얼굴이 더 잘 보였다. 졸업생들이 중심에 서 있는 사진은 학교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말없이 보여 주고 있었다.
그 무렵 나는 야생화 사진에 푹 빠져 있었다. 제법 좋은 카메라를 들고 산과 들을 돌아다니며 꽃을 찍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덕분에 졸업사진도 직접 구도를 잡고 촬영할 수 있었다.
아래 사진 속에는 모든 학생과 교직원을 배치한 뒤 자동 촬영 장치를 맞춰 놓고, 내가 맨 뒷줄 가장자리에서 서 있는 모습이 담겨 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다시 바라보아도 그 사진은 내 마음에 든다.
내가 했던 일들이 모두 옳았다고 말할 생각은 없다. 다만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같은 생각을 품고, 졸업사진의 주인공을 아이들로 세워 주었다면 그것만으로도 교직을 먼저 떠난 선배의 마음은 충분히 기쁠 것이다.
세월은 참 많이 흘렀다.
정년퇴임을 한 뒤에도 나는 가끔 학교를 그리워했다. 얼마 전에는 6년 동안 근무하며 정년을 맞았던 학교를 지나는 길에 둘러보고 싶어 찾아갔다. 그러나 교문 앞에서 출입이 허락되지 않아 발길을 돌려야 했다. 미리 허락 받지않고 수업중이라고.
섭섭함도 있었고, 낯선 허전함도 있었다.
한때는 매일같이 드나들던 교문이었는데, 세월은 어느새 나를 학교 밖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래도 뒤돌아보면 학교는 내 것이 아니었다. 잠시 맡아 지켰을 뿐이다. 아이들이 졸업하고 떠나듯, 교사도 언젠가는 학교를 떠나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문득문득 오래된 사진 한 장을 꺼내 본다.
사진 속에는 꽃처럼 환하게 웃고 있는 아이들이 있고, 그 뒤편 가장자리에는 조용히 서 있는 늙은 교장 한 사람이 있다.
세월은 흘러 많은 것이 사라졌지만, 아이들이 주인공이어야 한다고 믿었던 그 마음만은 아직도 사진 속에 남아 있다. 마치 오래된 흑백사진 한 귀퉁이에 남아 있는 빛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