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쥔장 목공작품실

고책상 리몰딩

작성자은방울|작성시간26.06.21|조회수8 목록 댓글 0

친구 아버지의 혼이 깃든 책상

60년 지기 고등학교 친구 집을 찾았다.

친구는 창고 한쪽에 묵혀 두었던 오래된 좌식책상 하나를 보여주며 물었다.

"이것도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그 책상은 친구가 초등학교 시절 사용하던 것이었다. 윗대로부터 물려받아 수십 년을 견뎌 온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친구의 아버님도 생각났다.

나를 무척 아껴 주셨던 분이었다. 친구가 군 제대 무렵 결혼할 때의 일도 아직 선명하다. 함께 간 우인들은 모두 군인이었고, 나만 유일한 일반인이자 교사였다. 아버님께서는 혹여 젊은 군인들이 신부 집에 폐를 끼치지는 않을까 걱정하시며 여러 번 내 손을 잡고 당부하셨다.

"연보너가 잘 챙겨서 무사히 마무리해 주게."

그 믿음과 따뜻함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결혼 전에는 서로의 집을 제집처럼 드나들며 지냈지만 세월은 사람들을 바쁘게 만들었다. 할머니와 부모님을 떠나보내고, 아들딸을 훌륭히 키워 고향에서 부농으로 살아가던 친구. 그러나 인생은 늘 뜻대로만 흐르지 않았다. 아내를 먼저 보내고 지금은 홀로 지내며 노인정 할머니들의 운전기사 노릇을 자청하는 순박한 노인이 되었다.

창고에 오래 방치된 책상은 상처투성이였다.

생쥐가 서랍 앞판을 갉아 구멍을 내었고, 여기저기 파손된 흔적이 보였다. 손잡이는 모두 망가져 있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책상은 참 귀한 물건이었다.

천판은 친구 아버님께서 사라호 태풍 때 넘어진 마을 보호수 느티나무를 제재하여 오랫동안 말린 뒤 사용한 것이었다. 다른 부재들은 소나무를 손대패로 깎아 정성껏 만든 것이었다. 기계가 귀하던 시절, 아버지의 땀과 손길이 스며든 작품이었다.

세상은 어느새 좌식에서 입식 생활로 바뀌었다. 더 이상 사용할 일은 없지만 차마 버릴 수 없어 보관해 두었다는 친구의 말에 마음이 움직였다.

"일단 차에 실어 봐라. 고쳐 보고 아니다 싶으면 돌려주고, 괜찮으면 안 돌려줄지도 모른다."

웃으며 한 말이었지만 마음만은 진심이었다.

추운 계절에 우리 산방으로 온 책상은 여름이 되어서야 본격적인 손질을 시작했다.

먼저 느티나무 천판에 천연 밀랍 가구 케어제를 사용해 보았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국 사포를 들었다. 80방, 120방, 220방, 400방까지 차례로 연마하고 샌딩 신너를 뿌려 건조시켰다. 나머지 부분은 거미줄과 먼지, 세월의 때를 에어건으로 불어낸 뒤 다시 연마하였다.

맑고 쾌청한 날을 골라 무광 라카로 마감했다.

구석구석 손사포를 더 대야 할 곳이 많아 완성도가 조금 아쉬웠다. 눈에 잘 띄지 않는 곳들이지만 작업하는 내내 마음 한구석에 걸렸다.

그래도 때로는 장인의 욕심보다 물건의 생명을 되살리는 일이 더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고풍스러운 서랍 손잡이를 달아 주니 비로소 책상이 옛 품격을 되찾았다.

완성 사진을 친구에게 보내며 농담처럼 말했다.

"수리비를 두둑하게 내고 가져갈 건가, 아니면 수리비 대신 책상을 나에게 맡길 건가 결정해라."
잠시 후 친구의 답장이 왔다.

"가져가야지."

당연한 일이었다.

그 책상은 단순한 가구가 아니었다. 한 아버지의 땀과 정성, 한 가족의 추억, 그리고 세월의 이야기가 담긴 삶의 기록이었으니 말이다.

이제 그 책상이 친구의 집으로 돌아가 손자들의 손길까지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래보는 마음과 내가 가진 작은 재능을 친구에게 기부하는것으로 날 사랑해 주신 친구 아버지에 대한 보은으로 삼으려 한다.

나무는 늙어도 죽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과 추억을 품은 채 다음 세대로 건너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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