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쥔장 목공작품실

농업인 수당

작성자은방울|작성시간26.06.23|조회수4 목록 댓글 0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오늘 농업경영체에 등록된 농업인에게 지급되는 농업인 수당을 받았다.

혼잡을 피하기 위해 마을별로 수령 요일을 정해 두었다는 이장의 문자를 받고, 점심 약속도 있어 아침 일찍 옆지기와 함께 면사무소를 찾았다.

1인 가구는 60만 원, 부부 2인 가구는 70만 원. 현금이 아닌 지역상품권으로 지급된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는 분명 도움이 되는 제도다. 지역 상권을 살리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수당을 받아 들고 돌아오는 길 내내 마음 한구석은 무거웠다.

나는 솔직히 이 돈이 없어도 살아가는 데 큰 어려움이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이 수당이 절실한 사람들도 많다.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나누어 주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아니면 정말 필요한 이들에게 더 두텁게 지원하는 것이 바른 길인지 생각하게 된다. 물론 그것은 한 늙은 농부의 생각일 뿐이고,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의 판단은 또 다를 것이다.

문득 오래전 교직 생활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남해 설천초등학교에 근무하던 시절, 전원학교 지원 사업비를 활용해 6학년 졸업반 학생 열 명 남짓을 데리고 중국 북경과 백두산으로 3박 4일 수학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모두 무료로 갈 수도 있었지만, 나는 담임선생님께 말했다.

"전부 공짜로 하면 교육적으로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적은 금액이라도 스스로 부담하게 합시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5만 원씩만 받았다.

내가 어린 시절에는 가정형편 때문에 수학여행을 가지 못하는 친구들이 학급마다 적지 않았다. 지금도 해외 수학여행 경비를 전액 부담하라고 하면 절반 이상의 아이들이 참여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때 그 아이들은 백두산 천지를 직접 바라보았고, 만주 벌판을 달리며 조상의 발자취를 느꼈다. 아마도 그 경험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나는 학부모들에게 농담처럼 말했다.

"훗날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초등학교 때 백두산을 5만 원으로 다녀오게 해 준 교장을 기억하며 술 한 병 들고 찾아오면 좋겠습니다. 그때까지 건강하게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로부터 어느덧 정년퇴임한지 14년이 흘렀다.

그 아이들은 이제 스물일곱 살 안팎의 청년이 되었을 것이다. 스승의 날도 여러 번 지나갔지만 아직 연락 한 통 받은 적은 없다.

서운해서 하는 말은 아니다.

다만 세월을 살아오며 깨달은 것이 있다.

공짜로 받은 것은 고마움도 빨리 잊힌다는 사실이다.

사람의 기억은 이상해서 스스로 애써 얻은 것은 오래 간직하지만, 저절로 주어진 것은 어느새 당연한 것이 되어 버린다.

오늘 받은 농업인 수당도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상품권을 모두 사용하고 나면 받았다는 사실조차 잊고 살아갈 수도 있다.

그래서 요즘 대한민국을 바라보며 걱정이 앞선다.

어려운 국민을 돕는 일은 국가가 반드시 해야 할 책무다. 그러나 도움과 의존은 종이 한 장 차이다.

국민이 다시 일어설 힘을 길러 주는 정책인지, 아니면 점점 받는 것에 익숙해지게 만드는 정책인지는 깊이 고민해야 할 문제다.

나라의 재정은 끝이 없지 않고, 국민의 자존심 또한 돈으로만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땀 흘린 만큼 보람을 얻고, 어려운 사람은 따뜻하게 보듬되, 스스로 설 수 있는 힘을 잃지 않게 하는 나라.

나는 그런 대한민국이 오래도록 이어지기를 바란다.

면사무소에서 돌아오는 길, 상품권이 든 봉투보다 나라의 앞날이 더 무겁게 느껴졌다.

한 사람의 힘으로는 닿을 수 없는 이야기일지라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걱정되는 마음을 오늘 6.25날 내 마음을 기록으로 남겨 둔다.

느티 두껑있는 찬기

지름 150
전체높이 100
옻칠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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