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쥔장 목공작품실

물푸레물컵

작성자은방울|작성시간26.06.23|조회수6 목록 댓글 0

물푸레 물컵

1998년, 충청도의 한 종묘사에서 어린 물푸레나무 한 그루를 사다 심었다.
그때는 그저 나무가 좋아서였다. 나무가 자라고 잎이 피고 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일이 좋아 심었지, 훗날 그 나무로 무엇을 만들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세월은 참 빠르다. 어느덧 삼십 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물푸레는 주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해마다 힘차게 자라더니 이제는 산방 마당을 혼자 다 차지하려는 듯 우람한 모습이 되었다. 그동안 여러 차례 가지를 쳐 주었건만 성장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결국 아쉬운 마음을 품고 큰 가지들까지 잘라내는 강전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톱날이 굵은 가지를 파고들 때마다 마치 오래 함께 살아온 벗의 팔을 잘라내는 듯 마음 한구석이 애달팠다. 버리기에는 아까워 굵직한 가지 몇 개를 골라 두었다. 자연 건조를 시키고, 다시 여러 해를 묵혀 완전히 마른 뒤 초벌로 깎아 두었던 그 나무가 이번에 비로소 물컵 하나로 다시 태어났다.

물푸레는 옻칠을 올리면 목리와 색감이 유난히 아름답다. 마치 오랜 세월 나이테 속에 숨겨 두었던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 놓는 듯하다. 더구나 내가 직접 심고 가꾼 나무로 내 손으로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말로 다 하기 어려운 감회가 있다. 나무를 심을 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인연이다.

돌이켜보면 삼십여 년 전에는 퇴임 후 내가 목공을 하게 될 줄도 몰랐다. 나무를 깎고, 옻칠을 배우며, 하루하루 그렇게 살아갈 줄은 더욱 몰랐다.

목공을 시작한 지도 십수 년, 옻칠을 공부한 지도 십 년이 넘었다. 그러나 독학의 길은 늘 더디고 험했다. 작품 하나를 마칠 때마다 만족보다 아쉬움이 먼저 찾아왔고, 여러 번 후회하며 그만두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그래도 손에서 칼을 놓지 못하고 붓을 놓지 못한 것은 어쩌면 나무가 나를 붙잡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제는 나이도 적지 않다. 많아야 몇 해 뒤면 목공도, 옻칠도 내려놓아야 할 때가 올 것이다. 생각만 해도 서운하다. 평생 곁에 있을 것 같던 일들이 하나둘 마침표를 향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옛말에 "방귀 끝나자 보리양식 떨어진다" 하였듯, 슬슬 마무리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 물푸레 물컵의 옻칠은 부족하나마 오랜만에 마음에 들었다. 마치 물푸레가 내게 "아직은 붓을 놓지 마시오. 조금만 더 해보시오." 하고 말을 건네는 것만 같다.

언젠가 정말 마지막 작품을 만들 날이 오겠지만, 그날까지는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보려 한다. 이번 작업의 경험과 과정을 차근차근 정리해 두고, 다음 옻칠을 기다려 본다.

애써 잘라낸 물푸레 가지가 물컵으로 다시 살아난 것처럼, 사람의 열정 또한 쉽게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보다.

물푸레 물컵
지름 65mm
높이 90mm
옻칠 마감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