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죄론
김영배(안드레아)
1. 원죄(Peccatum originale)란 무엇인가?
* 원조의 편에서 보면 맨 처음으로 지은 죄(Peccatum originale originans)로써 ‘능동적 원죄’ 혹은 ‘기원죄’(起源罪) 라고 한다. 그러나 그 후손의 편에서 본다면 이 세상에 태어 날 때 타고 나는 죄(Peccatum originale originatum)라는 뜻이다.
* 즉 아담과 하와의 첫 범죄로 말미암아 원초적인 거룩함과 의로움을 상실한 손상된 인간 본성을 전해주는, 이 상실을 ‘원죄’라고 부른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능동적 원죄에 반하여 ‘수동적 원죄’ 혹은 ‘유죄’(遺罪)라고 부른다.
* 그런데 이 기원죄는 아담과 하와에게는 분명한 죄가 되겠으나 그 후손들에 있어 이 죄는 엄격하게 신학적 의미에서 죄가 될 수 없다.
* 왜냐하면 죄의 성립조건을 채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죄란 죄가 되는 행위 자체와 죄라는 인식과 죄를 결단할 수 있는 자유로운 의지 상태라는 필요조건이 성립될 때...) 그러므로 원죄, 특히 유죄(遺罪)는 본죄(本罪)와 구별된다.
* 어떻든 원죄란 아담이 지은 첫 번째 죄인 동시에 그 후손 모두에게 영향을 준 죄를 일컫는다.
* 사실 원죄란 용어는 성경에는 나타나지 않으며 성아우그스티노가 처음 사용한 용어이다.
2. 성경은 원죄에 대해서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 성경은 원죄에 관한 교의의 근거를 창세 2,4b~3,24과 로마 5,12~19(21)에 두고 있으며 그 밖에 창세 6,5~6; 시편 14,1~3; 로마 1,18~20; 에제 16장; 23,49; 예레 3,25: 마태23,29~36(루가 11,47~51)등에서 후손과 연관되어 있는 조상의 죄로 언급하고 있다. 그렇지만 실제로 구약성경은 원죄를 규정하는 개념은 가지고 있지 못하다.
* 다만 그 죄와 그 죄로 인해서 나타나는 결과, 다시 말해서 부패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을 따름이다.
* 성경작가들은 지혜 문학적 입장에서 오늘날의 죄와 아담의 죄 사이에서의 연대성과 그 보편성의 신비를 밝히려 하고 있다.
* 신약성경의 바오로계 문헌에서 원죄론의 주제를 볼 수 있다.(1코린 15,21~23; 로마 5,12~21) 로마서는 아담과 그리스도를 비교하며 원죄를 거론한다.
* 그러나 아담의 죄가 우리에게 자동이체 되는 것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우리는 죽게 되어있고, 죽음은 죄의 결과라는 것이다.
* 따라서 우리가 죄와 죽음으로부터 자유롭게 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죄에 대해서 죽는 일 뿐이다(1코린 15,3; 17장; 갈라 1,4).
*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사는 것으로 인해 영과 육 사이에 어떤 투쟁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스도와 또 그의 성령을 통해서 마지막 승리를 얻을 수 있다는 것(로마 8,1~17)이 사도 바울로의 입장이다.
2.1. 창세기의 낙원 설화는 원죄에 대해서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 인간이 하느님으로부터 창조되었지만 죄는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부터 유래하는 것임을 드러낸다.
* 교회는 창세기 2,46~3,24의 야휘스트계 문헌의 낙원설화를 바탕으로 원죄이론을 해석하고 있다.
* 즉 당신의 사랑으로 영원히 살 수 있었던 인간이 원조의 불순명으로 하느님을 거역하고 자신들의 자유의지로 이런 특권들을 잃어버리고 힘들고 비참함을 맛보게 되었다.
* 이러한 특전의 박탈 상태는 그 모든 후손에게 그대로 이어지게 되었다.
* 따라서 아담의 후손들도 그 연대책임 속에, 그리고 그의 벌도 연루되어서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원죄를 갖고 태어났다고 말하는 전통적 신학의 원죄론은 창세기 3장을 역사적인 사실로 인정하고 또 아담과 하와라는 인물의 단원조설(單元祖說)을 바탕으로 전개하고 있다.(사실, 문제가 되는 부분임)
* 이 설화가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인간적 비참함의 유일한 원인이 죄라는 것과 첫 번째 한 죄인이 모든 인간의 조상이라는 점이 이 설화가 가르치려는 의도가 아니라 인간의 삶과 죽음, 노동, 출산의 고통들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 원인을 찾아 설명하는 원인론적인 설화이다.
* 또한 히브리적 사고는 변화 속에서 불변하는 것을 설명할 때 시작 내지 태초로 돌아간다. 지금 상태는 그때도 그러했다는 것이다.
* 이처럼 ‘본질’을 ‘시작’과 동일시함으로써 성경의 설화는 ‘무엇이 그랬었다’가 아니라 ‘항상 그렇다’를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즉 과거 사건의 현재성, 삶의 보편성을 드러내 주고 있다.
* 그러한 보편성으로 말미암아 첫 인간의 삶과 첫 번째 죄가 바로 인간의 삶의 보편성, 죄의 보편성을“아담의 상황은 바로우리들의 상황이다”라고 표현 하고 있는 것이다.
* 창세기에 나타나는 선조들의 삶의 모습(예를 들어, 아담이 하와를 만났을 때 환호하는 모습, 위기 상황에서 상대방을 탓하는 모습, 잘못을 저질렀을 때 핑계 대는 아담과 하와의 모습)은 오늘의 우리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 이런 사고를 Herbert Haag은 야휘스트계 작가들이 원조들의 범죄 사실을 통해서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자신을 스스로 그 비극적인 상황으로 몰아갔으며 오직 하느님만이 인간을 구원 할 수 있고 또 구원으로 이끄는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는가? 라고 의문사를 던지며 그 완벽한 이상향의 에덴 낙원은 세상이 창조되면서 존재 했었던 과거가 아니라 오히려 인류가 끊임없이 추구해 나가야 할 미래가 아닐까? 즉 창조는 계속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 그렇지만 확실한 것은 원조 아담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죄와 유혹에 대해서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지니고 있으며 순간순간 분별하고 결단을 내려야 하는 현실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2.1.1. 죽음은 원죄의 결과 인가?
- 죽음은 원죄의 결과라는 교회의 진술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
* 고통의 원인이 죄이거나 혹은 윤리적 죄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물리적 실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그 죄나 실수가 자신의 탓일 수도 있고, 다른 이의 탓일 수도 있다. 어떻든 고통은 죄나 잘못과 깊은 관련을 지닌다.
* 그러면 원조들의 범죄가 없었다면 고통도 죽음도 없었다는 것인가?
* 사실 구약 성경 어디에도 죽음이 죄의 벌로 간주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죽음은 인간의 자연적이고도 내재적인 운명으로 표현되고 있다.
*“주님께서 사람을 흙으로 만드시고 흙으로 다시 돌아가게 하셨다. 주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일정한 수명을 주시고 땅위에 있는 모든 것을 다스릴 권한을 주셨다”(집회 7,1).
* 고대부터 영원한 생명은 신에게 해당되는 것으로 믿어왔다. 그러니 야휘스트 문헌도 당연히 그렇게 표현하고 있다.
* 다만 성경 작가는 육체적 죽음이 아니라 종말론적 죽음을 암시하고 있다. *“죽음이 이 세상에 들어온 것은 악마의 시기 때문이니 악마에게 편드는 자들이 죽음을 맛볼 것이다”(지혜 2,24)
* 하느님과의 만남의 관문으로서의 죽음은 희망이다. 하느님과의 결별로서의 죽음은 죄의 결과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영원한 생명으로 넘어가는 자연적 죽음은 죄의 결과일 수 없다.1) 다만 인간이 죽음을 체험하는 유형양식이 죄의 결과일 수 있다.2)-죽음이 희망인가, 고통인가...
2.1.2. 원죄와 그 벌에 대한 연대성은 육체적 유전에 기인하는가?
* 히브리 사고방식은 ‘시작’이 ‘본질’과 깊은 연관을 지닌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 시각으로 보면, 죄의 시작에 대한 진술 속에 죄의 보편성이 담겨 있다고 말 할 수 있다.(그래서 창세기를 기술하게 된다)
* 예언신학은 죄의 보편성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다.(ex,죄 짓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1열왕 8,46)) 이런 죄의 보편성이 어떤 방식으로든 그 시초인 아담의 죄와 관련을 맺고 있다는 사상을 읽어 낼 수 있다.
* 그렇지만 육체적인 대물림으로 죄가 전달된다는 사상은 구약성경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축복이나 저주에 있어서 연대성이 자주 나타난다.
* 여기에서 연대성은 육체적인 연대성만은 아니다. 만일 육체적으로 아담과 연대성을 지녔기 때문에 죄를 전달 받게 되었다면 같은 논리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육체적 연대성을 지녀야만 구원의 은총이 가능성하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 연대성은 윤리적이고 지역적이고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가능하다.(ex 대통령이 국정을 잘못 운영하므로 인해 국민이 연대적 책임을 지고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이처럼 연대성은 신체를 초월하는 것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 따라서 우리가 아담과 하와의 죄에 대해 함께 책임을 나눈다는 것은 그만큼 함께해야 하는 존재, 가까운 존재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 즉 아담 이래 모든 인간은 하나의 일류, 하느님 앞에 함께서야 하는 공동운명체로서의 인류를 말하는 것이다.
* 또한 원죄 이야기는 인류가 서로 깊은 관련을 지니고 있다는 연대성을 말해 주는 것이다.
* 낙원설화에서도 아담의 죄는 언급하고 있지만 그 후손이 짊어질 유죄(遺罪)에 대한 언급은 없다.
* 따라서 낙원설화에 근거해서 원죄 이론을 세부적 문제까지 해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2.1.3. 창세기 작가는 낙원설화를 통하여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 창세기 작가들은 현실적으로도 체험되는 이러한 악과 죄의 문제가 어디서부터 오는지, 이러한 죄의 뿌리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창세기 작가는 죄의 원인을 하느님께 돌릴 수 없었다.
* 따라서 죄의 원인은 언제 어디서나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자유로운 인간 자신에게 그 원인이 있음을 주지시키고 있다.
* 모든 인간이 실제로 겪고 있는 이 고통과 그 원인으로서의 죄는 본질을 밝히기 위해서는 첫 번째 인간에게로 소급 시킬 수밖에 없었다.
* 다시 말해서 성경 작가는 지혜문학과 초역사적 원인론적 설화의 형식을 통하여 죄의 보편성의 원형을 첫 번째 죄로 그려내고 있다.
* 이 원형론적 방식의 설명은 종말론적 목적을 암시하고 있다. 즉 인간의 죄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자비는 끝나지 않았으며 낙원은 지금부터 인간이 추구해야할 목적이 되고 있다.3) 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2.2. 신약성경은 원죄에 대해서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 로마 5,12~21에서는 아담의 죄로 인하여 모든 사람이 유죄 판결을 받고 죽게 되었지만 그 죄 때문에 하느님의 더 큰 은총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과 올바른 관계에 있게 하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한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죄가 넘치는 곳에 은총 또한 넘친다.’는 말씀이 있다. 죄가 있기에 회개가 있고, 회개하는 인간이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다. 부활 대축일 ‘부활찬송’에‘오! 복된 죄여!’ 라는 역설을 노래한다. 인류의 죄가 아니었으면 이 땅에 강생의 신비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리라는, 하느님이 세상에 오시는 역설적 축복을 노래한 것이다.)
* 원죄에 대한 전통적 교의의 입장을 옹호하기 위하여 공의회가 가장 중요시한 성경 구절이다.4)
* 이 로마 5,12~21은 아담의 죄와 세상의 죄에 대한 바오로 신학의 절정이기도 하다.
* 죄와 죽음의 보편성에 대해서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의 보편성을 내세운다.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죄인이 된 것과 같이,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많은 이들이 의롭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로마 5,19).5)
2.2.1.불가타 라틴어 번역본의 로마 5,12의 문제점
* 사도 바오로는 죽음이 죄의 최종업보요 열매임을 강조한다(로마 1,32: 6,13.16.21.23: 7,5). 죽음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반드시 쳐부술 최후의 적이기도 하다(1코린 15,16).
* 이 죽음은 단순히 육체적 죽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영원한 결별로서의 영적 죽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 육체적 죽음은 하느님으로부터의 소외인 ‘두 번째 죽음’의 표징이다. 여기서 아담의 죄와 인류의 죄의 연대성을 두고 희랍어 본문이 라틴어로 번역되는 과정(불가타 본)에서 해석상 문제가 있음을 일찍이 R.Erasmus에 의해 지적되고 있다.
* 불가타 역본에서는 희랍어 접속사 ἐφ ᾧ(epo ho)를 in quo(그 안에)로 번역하고 있다. 이러한 불가타 번역본대로 이해하면 12절의 마지막 말 in quo omnes peccaverunt의 의미는 ‘모든 사람이 아담 안에 범죄 하였다’혹은 ‘모든 사람이 아담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들어오게 된 죄 안에서 범죄 하였다’가 된다. 사실 이것은 바오로가 의도한 본문의 실제적 의미가 아니다. * 사실 ἐφ ᾧ 는 εν ᾧ (in quo)가 아니라 ἐφ ᾧ는 ὲπί τούτῳ τὅι의 축어형이다. 따라서 3격을 지배하는 ὲπί가 가지는 여러 의미 중에서 어느 하나를 택하느냐가 관건이 된다. 전치사의 위치로 보아서 ‘위에’(on over)를 의미하거나 또는 은유적으로 ‘~을 근거로“(for), '~ 때문에(because)를 의미 한다.
* 따라서 은유적으로 이해 할 때, 일반적인 동기를 뜻하는 ‘~의 까닭으로’ 도 이해할 수가 있다. 또는 조건 또는 특별한 이유, 필수적 이유의 뜻으로 ‘ ~의 조건에서’,‘만일 ~이라면’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 따라서 ‘모든 사람이 범죄 하였기 때문에 ’ ‘모든 사람이 범죄 하였음을 고려하여 볼 때’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에라스무스 이후 오늘날의 일반적 경향의 해석이다.6)
* 성 아우구스티노 이후 라틴계 교회는 천 년 동안 로마 5,12을 잘못 알아들었던 것이다.
* 그러나 에라스무스의 지적처럼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죽음이 모두에게 다가오게 되었다”고 알아듣게 되면 로마 3,23의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느님이 주셨던 본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잃어 버렸습니다”라는 표현과도 일치한다.
2.3.한 사람과 모두의 연대성
* 여기서 말하는 연대성은 오역되어 잘못 해석된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각자의 죄들이 아담의 죄와 관련되어 연대성이 있음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 그 연대성을 생물학적으로 유전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죄를 지음으로써 원인성이나 윤리적인 책임성의 측면에서 연대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얻게 되는 은총이 육체적 연대성에 기인하는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이다.
2.4. 율법과 죄의 관계
* 로마 2,12~14에서 “율법을 가지지 못한 채 죄를 지은 사람들은 율법과 관계없이 망할 것이고, 율법을 가지고도 죄를 지은 사람은 그 율법에 따라 심판을 받을 것이다. … 이방인들에게는 율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본성에 따라서 율법이 명하는 것을 실행 한다면 비록 율법이 없을 지라도 그들 자신이 율법의 구실을 합니다”라고 밝히고 있으니
*‘율법이 없을 때, 죄는 죄로서 인정되지 않는다“는 말은 부정되고 있다.
2.5.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전서 15,21~22,45~49
* “죽음이 한 사람으로 온 것처럼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왔습니다. 아담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죽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살게 될 것입니다.…
* 1코린 15장에서는 부활에 대한 신앙이 그 중심을 이루고 있다.
* 그리스도의 부활과 거기에 근거를 둔 우리의 부활을 설명하면서 우리가 아담과 그리스도와 연대해 있음을 말해 주고 있다.
* 만일 죽음의 탓이 아담의 탓으로 돌려진다면, 생명은 그리스도의 덕택으로 돌려지는 셈이다.
* 물론 여기에 언급되는 것은 원죄에 대한 것이 아니라 원초적 죽음에 대한 언급이다. 그러나 주요 관심사는 죽음이아니라 부활과 생명이다.
* 죽음과 부활의 원인으로서 아담과 그리스도가 언급되고 있다. 아담은 모든 이들에게 죽음의 원인이 되고 있다. 그만큼 모든 이가 그에게 속해 있다는 말이다.
* 한편 그리스도는 모든 이들에게 부활의 원인이 되신다. 따라서 그만큼 모든 이가 그에게 속해 있다는 말이다.
* 이와 같은 죄와 구원의 이중적 대조의 원인성이 원죄에 대한 해석과 무관하지 않다.
* 또한 여기에서 사도바오로가 강조하는 것은 그리스도요, 영적인 것이다. * 아담은 그리스도를 강조하기 위한 배경으로 사용하였으며 육적인 죽음뿐만 아니라 결정적인 영적인 죽음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3. 전통적 원죄론의 정당성과 문제점
3.1. 문제점
* 첫째, 전통적인 원죄론은 창세기 3장의 낙원설화를 역사적인 사실처럼 인정하는 가운데 그 근거를 마련하는 경향을 보이며 단원조설을 강조, 다원조설을 거부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 오늘날 성서학자들은 창제시의 낙원설화를 역사적 사실 보도가 아니라 원인론적 설화로 규정하고, 인간이 하느님으로부터 창조 되었다는 사실만 인정할 뿐이지 단원조였는지 다원조였는지는 학문적 연구 대상으로 개바시키 놓고 있다.
* 아담과 하와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과연 그 나무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첫 인간의 이름이 아담이었는지도 알길이 없다.
* 다만 오늘날 인간은 여전히 선과 악을 선택해야만 하고 선을 택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자주 악을 선택하는 자신을 본다.
* 잘못 선택한 대가로 치르는 고통들이 있다. 그리고 선택하는 과정에서 핑계를 대고 싶어 하는 우리들을 만난다. 그러나 잘못은 항상 선택하는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또한 깨닫게 된다.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는 우리 인간들의 이야기임을 부인 할 수 없다.
* 원죄론적 근거로 언급되는 창세 3장의 낙원이야기는 역사적인 사실을 전해주는 보도가 아니라, 인간의 삶의 진실을 비유적으로 전해주는 원인론적 설화로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
* 둘째, 전통적인 원죄론은 ‘출생을 통하여’(트리엔트공의회, 원죄에 관한 선언, 제3조)라는 표현으로 아담이 지은 기원죄가 후손에게 물려지는 유죄가 된다고 설명하는데 이는 마치 원죄가 생물학적 차원에서 유전적으로 대물림하는 인상을 주고 있다.
* 그렇다면 마리아의 원죄 없음은 양친 요아킴과 안나의 무죄함을 주장해야 할 것이다.
* 셋째, 전통적인 원죄론은 원죄의 결과로서 출산의 고통, 노동, 죽음을 명확히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 성경에 의하면 출산은 축복으로 이해되고 있고(창세1,28 참조), 노동은 아담이 범죄 하기 이전에 하느님께서 그를 에덴동산에 데려다놓은 이유가 되고 있다(창세2,5~8). 또한 원죄와 본죄의 구별이 모호하다. 인노첸시오 3세가 자유로운 의지로 동의하여 저지른 죄인 ‘본죄’와 자유의지와 상관없는 ‘수동적 원죄’를 구별하였지만, 아담에게 첫 번째 기원죄는 자신의 자유의지를 행사하여 범한 것이기 때문에 본죄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죄의 결과가 아담에게나 후손에게나 다르지 않다면 본죄와 구별이 없는 것과 다름없다. -아담의 기원죄는 본죄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원죄가 우리의 본죄가 될 수는 없다-
* 넷째, 전통적인 원죄론은 낙원설화를 근거로 원죄 이전 인간의 상태를 완벽한 행복의 상태로 묘사하고자 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낙원의 행복한 상황을 인류가 시초에 누렸던 과거의 상황이 아니라 인류가 실현해야할 미래의 사건으로 이해하고 있다.
* 다섯째, 그리스도교 계시의 핵심은 죄가 아니라 은총이며 죽음이 아니라 생명이며 파멸이 아니라 구원이다.
* 따라서 원죄론은 은총, 생명, 구원을 밝게 드러내기 위한 배경으로서의 어둠의 역할이라는 것도 이해 할 수 있다.
* 그러므로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절대적 중보성, 세례의 절대적 필요성이 강조될 필요가 있다.
* 세례를 받지 않음으로써 영원한 벌을 받는다는 표현보다는 무죄한 어린이들 조차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지 않는 다면 선물로서의 하느님 나라가 가능하지 않다는 설명이 적합할 것이다.
* 이렇게 적극적인 계시 해명 없이 그리스도교 원죄론은 라너가 지적한 것처럼 비관적인 인간관과 세계관을 보여 준다는 인상을 줄 수밖에 없다.
3.2. 정당성
* 첫째, 전통적인 원죄론은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제시한다.
* 원죄론의 출발점은 그리스도이다. 원죄론의 성서적 근거인 로마 5,12-21은 죄와 죽음보다는 은총을, 아담보다는 예수 그리스도가 훨씬 큰 영향을 주고 있음을 드러낸다.
* 사도 바오로는 인간이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죄의 상황에 빠져 잇음을 바라보면서 모든 사람의 구원은 예외 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실현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 인간 스스로의 자유의지로써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한 은총으로 구원된다는 점이 핵심이다.
* 따라서 그리스도교의 원죄론은 지금 인간이 여러 가지로 비참한 처지에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하느님이 원하시는 아니고 그것이 바로 인간 자신들의 죄의 결과이고, 그리스도 안에 머물지 않을 때 모든 인간은 죄인이고 그 때문에 영원히 죽을 운명에 처하게 됨을 이야기 한다.
* 따라서 그리스도교 전통적 원죄론은 그리스도교의 핵심이 인간의 죄와 인간이 파멸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구원, 하느님의 자비임을 드러낸다.
* 둘째, 전통적인 원죄론은 죄의 기원이 하느님으로부터 유래한 것이 아니라 바로 인간에게 있음을 밝혀주고, 또 하느님의 처벌은 바로 죄 지은 인간에게 해당된다는 것을 알려 준다.
* 창세 3장의 낙원설화는 악의 상황이 지금과 마찬가지로 인류가 태어난 시초에도 다르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 셋째, 전통적인 원죄론은 인간의 죄가 보편성을 지니고 있고, 또 상호 관련성을 지니고 있음을 드러낸다.
* 낙원 설화는 ‘무엇이 그랬다’가 아니라 ‘항상 그렇다’를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즉 과거 조상들의 죄의 현재성을 드러낸다.
* 이러한 죄의 보편성은 ‘아담의 상황이 바로 우리들의 상황’임을 드러내 준다.
* 우리는 악이 악을 부르고, 미움이 미움을 낳는 현실을 체험하고 있다. 이러한 체험을 원죄론은 선조들의 죄가 후손들에게 전염되는 것으로 이야기 하고 있다.
* 분명 이 전염은 혈연적 유전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죄스러운 상황은 각 사람이 지은 죄를 세상의 죄라는 하나의 죄로 만드는 연결고리를 이룬다. 그리고 이 ‘세상의 죄’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제거할 수밖에 없는 죄스러운 상황을 이룬다는 것이다.
* 칼 라너 왈,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다른 사람의 죄에 의해서 각인 받는 존재이며, 외딴 섬과 같은 절대 고립된 존재는 없다는 것이다.
* 우리가 이미 앞선 세대가 쌓아 놓은 기술과 지성과 윤리로부터 출발 하듯이 잘못과 고통에 대해서도 분명 똑같이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 넷째, 전통적인 원죄론은 인류의 연대성을 계시해 준다. 예를 들어 아버지의 파산이 아들에게도 고통을 주는 것이 사실이며, 아들의 잘못에 대해 법적 책임은 없으나 보호자로서 도의적 책임을 무시할 수 없다. 이것이 친밀한 관계일수록 책임에서 뿐만 아니라 권리에 있어서도 깊은 관련을 갖기 마련이다.
* 아담의 죄와 우리 자신들의 죄와의 연관성은 바로 아담과 우리 자신 사이의 깊은 연대성을 의미한다. 즉 아담과 우리는 하나의 인류를 이루는 신비체임을 말하는 것이다.
* 바오로 사도는 아담과 예수 그리스도를 비교하면서(로마 5,12-21)‘네가 아담과 같은 인간이 아니라면 인간이었던 예수 그리스도와는 상관이 없게 된다. 네가 아담의 죄와 관계가 없다면 예수그리스도의 구원과도 상관이 없다.’그처럼 아담과의 연대성은 다른 한편으로 그리스도와의 연대성도 더불어 밝혀준다.
* 다섯째, 구원이 무죄성 이상의 것임을 계시한다. 즉 원죄론은 구원이란 인간이 무죄하여 자신의 선행의 대가로 얻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원죄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에게 베푸는 선물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 다시 말해서 인간이 마리아를 제외하고는 예외 없이 원죄에 물들어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인간이 구원될 수 있다는 계시의 역설적 표현이다. 또 다시 말하면 아무리 무죄한 어린이들조차도 예수 그리스도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구원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결국 유아세례와 관련하여 원죄론은 구원이란 인간이 자신의 선행의 대가로 얻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에게 베푸는 선물임을 드러낸다.
4 결론
불교는 죄와 고통의 원인을 욕심과 집착으로 보고 여기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8정도를 말한다. 반면 그리스도교에서는 죄와 고통의 원인을 이기심으로 보고 원죄의 원인이 이기적 본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이기적 본능을 벗어나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사랑이 구원의 과정이다.
- 참고 -
8정도: 고를 떠나 열반에 이르기 위한 불교의 실천 수행으로서의 여덟 가지 바른 길이다.
부처님께서 중생들이 중도의 원칙을 실천해 갈수 있도록 일상생활 가운데서 그것을 구체화한 것으로서, 곧 정견 정사 정업 정명 정정진 정념 정정이 그것이다.
(1) 정견(正見)
일체 존재와 사물에 관해 바르게 관찰하고 바른 견해를 가지는 것이다. 이는 삼 밝히고 있는 바대로 제법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여실히 볼 요구하는 견해의 정화(淨化), 관찰의 정화를 말한다.
(2) 정사(正思)
탐애와 번뇌에 얽매임이 없이 밝은 지혜로서 사성제의 이치를 바르게 생각하는 것이다. 올바른 사유의 생활을 말한다.
(3) 정(正語)
정견 . 정사 의하여 항상 진리에 계 바른 언어를 쓰라는 것이다. 거짓말, 허망된말, 악한 말 등을 하지 않고 의로운 말, 진리를 드러내는 말을 하는 언어생활의 정화를 말한다.
(4) 정업(正業)
정견 . 정사 의한 바른 행동을 말한다. 몸과 입과 뜻의 세 가지 업(身口意 三業)을 늘 정화하여 악업을 짓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5) 정명(正命)
바른 생활, 즉 생활하는 방법을 말한다. 정당하고 바른 직업으로써 생활하라는 것이다. 직업의 귀천의 문제가 아니라, 직업의 정당하고 정당하지 못하고가 문제가 된다.
(6) 정정진(正精進)
부처님의 가르치심에 따라 악을 방지하고 선을 실천하는 생활이 이루어지도록 바르게 노력하는 것이다. 바른 생활과 수행을 게을리 하지 않고, 항상 용맹스럽게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
(7) 정념(正念)
‘염’은 전념 불망의 뜻으로서, 부질없는 욕망과 사념을 버리고 항상 바른 마음 바른 기억으로서 거룩한 법을 실천 수행해 나가는 것이다.
(8) 정정(正定)
산란한 모든 것을 여윈 몸과 마음의 바른 안정을 말한다. 곧 신심의 일체화로서 몸과 마음이 항상 고요한 일경(一境性)의 상태에 있게 하는 것이다.
-이상의 팔정도를 크게 네 부분으로 묶어서 생각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불타의 가르침에 의해 일체 존재의 실상을 바르게 관찰하고 바른 견해를 갖는(정견)
둘째,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말하고, 바르게 행동하며 일상 생활을 영위하는 일(正思.正語 正業)
셋째, 바르고 정당한 직업으로써 살아가는 일(正命).
넷째, 바른 종교적 수행을 실천하는 일(正精進. 正念 .正定).
고를 여의고 열반에 이르는 길은, 이와 같이 특별한 요구이기 보다는 오히려 범상한 것들이다. 팔정도의 요청은 한 마디로 말해 평범함의 올바른 실천, 그것으로 균형이 잘 취해진 생활이나 욕망의 처리 방식 같은 것을 말하고 있다.
* 원죄에 관한 성서의 가르침은 오늘날의 교리처럼 명확하지 않다. 창세기의 낙원 설화는 어떻게 아담의 죄가 우리에게 전이(轉移)되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에서도 아담의 죄와 우리들의 죄의 연대성만을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 또 원죄와 본죄의 구별도 사도시대 직후부터 명확했던 것은 아니다.
* 초기 교회공동체는 물질을 악한 것으로 보고 악을 악신에게서 유래하는 것으로 보는 영지주의의 이원론에 대항해서 창조의 선함을 옹호해야 했다.
* 또 초기 공동체는 주로 성인들에게만 세례를 베풀다가 점차로 유아세례를 베풀기 시작하면서 유아세례의 타당성을 설명하기위해 원죄와 본죄를 구별하였다.
* 오늘날의 원죄에 대한 교리는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육화하신 성자”에 관한 신경의 조항을 해설하는 과정에서, 특히 유아 세례와 관련해서 오랜 역사를 두고 점차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원죄교리의 결정적 확립은 성 아우구스티노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 아우구스티노는 인간의 자유의지로 구원을 이룰 수 있다는 펠라지아니즘을 거부하며 구원이란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은총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임을 강조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서 아우구스티노는 원죄를 사욕편정과 관련시킨다(원죄와 동일시하지는 않지만)
* 또 모든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되는, 부모의 성적 결합 안에서 리비도(Libido)에 의해 원죄가 자녀에게 유전되는 것으로 보았다.
* 왜 무죄한 어린아이들에게 이렇게 성급하게 세례를 주는가? 라는 테르툴리아노 교부의 질문에 성치프리아노는 유아들은 비록 인격적인 본죄를 지니고 있지 않지만, 태어나면서 아담으로부터‘예 죽음의 오염’이 전염되었고, ‘자기 잘못이 아닌 다른 이로 말미암은’죄가 사함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유아세례의 시행을 정당한 것으로 인정하면서, 할례처럼 생후 8일까지 유아세례가 연기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시노드 편지, 5)
* 죄란 어떤 결함이 있는 행위이다. 따라서 그것은 행위로서 그 원인을 가지고 있다. 죄의 원인은 의지이다(G.달사뇨-R고지의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
* “아담의 모든 후예들은 아담을 머리로 하는 집단의 구성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같은 본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아담과 동일한 인격이다. 따라서 그는 오직 그러한 본성밖에 물려줄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그의 후예들은 모두 본성의 죄라고 불리는 원죄를 지니게 되었다.
1) 참조: 프란츠 요셉 녹케, 「종말론」, 조규만 옮감, 성바오로 출판사, 1998, 153~155
2) 참조: G 그레사케, 「종말신앙-죽음보다 강한 희망」, 심상태 역, 성바오로 출판사, 82~83
3) Cf. L.Mazzinghi, art.cit.,103~105: .Mazzinghi는 ‘죄의 확산’- ‘은총의 확산’이라는 도식으로 야휘스트계는 신학을 드러내고 있다고 주장한다. D.Clines는 ‘창조-역창조-재창조’의 도식으로 태고사가 전개되고 있고, 인간의 죄는 바로 역창조의 시작으로 그려지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4) Herbert Haag은 이 구절을 “원죄 이론의 locus classicus(古典的 場)”라고 명명하고 있다.(H.Haag, op.cit., 87)
5)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편, 주교회의 교리교육위원회, 가톨릭대학교 교리사목연구소 여,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1994,402항.
6) A.Pitta는 로마 5,12에 대한 10가지 해석의 역사를 소개하면서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던 사실로 말미암아”(Per il fatto che tutti hanno peccato)로 번역하는 것이 가장 근접하는 번역으로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