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서양 미술사

중세 미술(로마네스크)

작성자Andreas|작성시간09.04.01|조회수1,690 목록 댓글 0
로마네스크 예술은 로마 제국이 멸망한 뒤 10세기에 들어서 유럽이 처음으로 어느 정도 정치적으로 안정을 찾고 수도원 제도가 크게 발전한 결과로 생겨났다. 로마네스크란 말은 건축에 주로 쓰이나, 이 시기에 발달했던 다른 예술분야에도 적용되어 로마 제국과 카롤링거 왕조, 오토 대제 시대, 비잔틴 미술 및 원숙기에 이른 게르만족의 지역적 전통이 융합된 예술을 뜻하기도 한다. 프랑스에서 가장 두드러진 발전을 보였던 로마네스크 예술은 성숙한 비잔틴 전통을 계속 이어간 동유럽을 제외하고는 전 유럽에 널리 퍼졌다. 넓은 지역에 걸쳐 보급되었기 때문에 지역에 따라 다양한 특징이 나타났다(→ 노르만 양식, 부르고뉴 로마네스크 양식, 시토 양식). 그러나 가장 고도로 발달한 건축과 기념비적 조각을 비롯한 모든 로마네스크 예술은 웅장하고 힘이 넘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특성은 로마네스크 예술가들이 표현해야 했던 구조와 장식에 대한 문제를 자신있게 풀어나간 데서 비롯되었다.
대부분 교회의 감독 아래 지어졌던 로마네스크 건축은 지역에 따라, 후원한 교회의 취향에 따라 크게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꼽을 수 있는 특징은 창문과 문, 아케이드에 반원형(로마식) 아치를 많이 사용한 점, 건물 내부를 떠받치기 위해 원통형 볼트(barrel vault:네모난 공간 위에 길게 반원통형 둥근 천장을 올린 아치)와 교차 볼트(groin vault:2개의 원통형 볼트가 십자로 교차하여 생긴 볼트)를 쓴 점, 또 아치 때문에 생긴 어마어마하게 큰 힘으로 미는 바깥 방향으로의 추력(推力)에 견디기 위해 굵은 기둥과 창문이 거의 없는 두꺼운 벽을 만든 점 등이다. 프랑스에서는 서로 비슷한 기본적인 교회 평면 2가지가 발달되어 가장 널리 쓰였다. 이 2개의 평면은 양쪽 아일(aisle 側廊)과 앱스(apse 後陣)를 갖춘 기다란 초기 그리스도교의 바실리카 평면으로, 대교회에서 여러 가지 기능을 수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이 2가지 형태 모두 방사상(放射狀)으로 덧붙여진 여러 소규모 교회당과 옥내 유보회랑(遊步回廊 ambulatory), 양쪽 아일 위의 회랑, 서쪽 탑을 갖추고 있다. 이처럼 건물들의 공간을 복잡하게 나눈 것은 수도사들의 세계관을 나타낸 것이며 봉건 제도의 위계질서를 표현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로마네스크 건축이 공간의 구분을 중요하게 여긴 점은 수많은 조각 형태에서 영감을 받은 고딕 건축과 구별되는 본질적인 특징이다. 이때문에 후기의 로마네스크 양식 건물에 고딕 양식의 으뜸가는 특징인 첨두(尖頭) 아치가 사용되었다 할지라도 내부공간을 복잡하게 나누는 효과를 노린 것이기 때문에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분류된다. 기념비적 조각은 거의 600년 동안 잠자고 있다가 되살아난 것으로 로마네스크 시대의 가장 중요한 형상예술이었으며 주두(柱頭)나 육중한 교회문 둘레에 돌출되게 새겨놓음으로써 역사나 교리를 설명했다. 게르만 민족에게서 기하학적 도안을 이어받아 고전적이고 전통적인 형상을 점차 벗어나는 한편, 종교적 영감이 어우러지자 화려한 조각양식이 등장했다. 자연계의 사물 모양을 비틀며 양식화하고, 또 추상적이며 선(線) 위주로 표현하는 방법을 통해 환상적인 모습으로 자유로이 변화시켰다. 아주 완숙하고 영적(靈的)인 이 예술은 그것이 엄격하고 웅장하거나, 또는 감동으로 가득 차 있거나 간에 모두 로마네스크 양식이 초월적인 가치를 중요하게 여긴 것을 드러내주는데, 이것은 인본주의 고딕 시대의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조각과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로마네스크 회화의 걸작은 대부분 성당 내부의 벽화였다. 현재 남아 있는 벽화들을 보면 조각양식을 따른 것을 알 수 있다. 필사본에 대문자를 새기거나 책장 귀퉁이를 장식할 때는 선묘사를 양식화한 조각을 본으로 삼았다(→ 사본장식). 외경심을 일으키는 표현에는 채색 장식보다 조각이 훨씬 뛰어나긴 했지만, 채색장식에서도 세련되고 인상적인 양식이 발전했고 매우 우수한 작품이 나왔다. 조각이나 회화는 전반적인 학문의 부흥을 반영하며 폭넓은 주제를 다루었다. 이를테면 그 시대의 신학저서, 성서에 나오는 사건들, 성인들의 삶 등이다. 로마네스크 예술은 12세기 중엽에 고딕 예술에 의해 차츰 밀려나기 시작했다.

 

피사의 대성당 

 


1068년에 착공하여 50년동안 공사한 피사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이다.

 

 

첨부이미지

피사 두오모 광장

  

 

 

미술사에서는 11세기부터 12세기 중엽의 유럽 미술을 로마네스크Romanesq ue양식이라고 부른다. '로마식'이라는 의미인데 19세기에 붙여진 이 이름은 아치 위주의 넓은 폭을 지닌 이 시대 건축을, 위로 높이 솟은 고딕양식과 구분하기 위한 건축용어였다. 그러나 현재는 건축뿐만 아니라 조각, 회화 등 미술 전반에 사용하고 있다. 피레네 산맥을 중심으로 한 프랑스 남부와 스페인 북구, 이탈리아 북부, 영국 등 지역에 따라 다소의 차이는 있으나 육중하고 거대한 공통성을 지니고 있어서 유럽 전 지역이 유사한 양식을 보여주는 첫 번째 미술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스도교가 국교로 공인된 후 사회의 모든 것이 그리스도교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생활에서의 매개체 역할을 담당하던 성당과 수도원의 건축은 로마네스크 미술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로마네스크 이전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카롤링거 왕조와 오토 왕조)의 건물은 대부분 목조로 지어졌었다. 이것은 유럽에 목재가 풍부했고, 목조 건물이 비교적 건축하기가 수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마네스크 건축의 특징은 바실리카 양식의 설계로 본당(本堂)의 천장을 석조 궁륭으로 바꾼 것에 있다.   중세에는 계속되는 전쟁과 약탈로 인한 화재로 목재 건축물이 쉽게 손상되었으므로, 내화성을 지닌 석조 궁륭의 등장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은 중세 초기 경당인 바실리카 양식을 따르면서도 새로운 요소를 추가하여 보다 풍부한 형태를 보여준다.

애프스에 이르는 긴 동랑과 그 양 쪽에 붙은 측랑은 바실리카의 구조 그대로 이며, 여기에 로마네스크 건축가들은 익랑 또는 수랑transept이라고 불리는 구조를 첨가했다. 익랑은 애프스와 동랑 사이에 놓여져 교회당 평면도를 십자가 형태로 보이게 했다. 그리고 지붕은 바실리카 양식의 목조 지붕 대신 더욱 견고하고 웅장해 보이는 석조의 둥근 지붕을 씌웠다. 동랑에 씌운 터널 식의 궁륭형 지붕은 그 무게 때문에 벽체를 더욱 튼튼하게 하지 않으면 안되었고 이로 인해 부벽이 보강되었다. 프랑스의 툴루즈에 있는 생 세르냉 성당은 초기 로마네스크 성당의 육중한 구조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성당 내부



성당 내부의 거대한 예수님 모자이크






성당 입구의 조각상

 

첨부이미지

납골당안에 있는 프레스코화로 세계 제 2차 대전때 폭격으로 완전하지 못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림 1) 생 세르냉-1070년 시작 1096년 완성/ 툴루즈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림 2) 생 세르냉 내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림 3) 생 세르냉의 평면도

이러한 원통형, 터널형 궁륭은 엄청난 양의 석재를 필요로 했고 그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서 벽을 두텁고 채광창은 작게 만들어 질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연유로 로마네스크 건축가들은 지붕의 무게를 가볍게 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는데, 기둥들 사이의 늑재나 아치를 단단히 세우고 그 사이사이를 가벼운 재료로 메우는 방법을 썼다. 로마네스크 건축의 중요한 혁신이라고 할 이 방법은 그림 4에서 볼 수 있듯이 시각적으로 터널형 궁륭보다  훨씬 경쾌하고 연속성이 있으며, 건물 내부에 더 많은 빛이 들어오게 해 채광에 많은 도움을 주기도 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림 4) 더럼 대성당의 내부-1033~1128년/노르만 양식의 대성당

 

 로마네스크 성당에는 성서와 교회에 관련된 내용의 수많은 부조가 장식되어 있는데, 로마네스크 조각은 건축적 구조에 종속된 형태를 보여 주면서 기둥의 연장으로서의 조각, 또는 벽면의 연장으로서의 조각이라는 성격 속에 전개되었다. 건물과의 일체를 위하여 그 형태도 건축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데, 일정한 평면 공간에 표현된 형태는 건축의 기하학적 형태에 맞추어 구성되어 있다. 예를 들면 주두(柱頭)에는 동물 따위의 모티프를 1쌍씩 대칭적으로 조합하여 균형을 잡았으며, 직사각형이나 띠 모양의 공간에서는 동일한 모티프가 반복하는 식으로 하여, 조각이 독립된 것이 아니라 건축장식으로서 건축의 선․면․양감 등과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또 인간이나 동물 등 각 모티프의 형태도 몸의 형태가 건축의 기하학적 형태에 따르기 위하여 이상하게 길쭉해지거나 춤을 추는 듯한 모습을 하거나 몸을 꼬기도 한다. 이것은 로마네스크 특유의 변형과 왜곡으로 격렬하고 역동적인 생명감을 불어넣고 있다. 이러한 건축조각의 저변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장식과 포교(布敎)로 요약할 수 있고, 사실 이 두 가지 이유가 서로 상승작용을 함으로써 효과를 높이고 있다. 기둥과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인간이나 동식물의 변화된 형태는 모두가 추상적 원리에 따라 구성되어 있는데, 이것은 켈트․게르만 이래의 추상예술에 새로운 휴머니즘을 융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림 5) 셍 피에르 남쪽문의 티파늄-1115-30년경/무와삭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림 6) 사자와 예언자- 

생 피에르 남문의 중앙 기둥/1115-30년경/무와삭

 또 하나의 대표적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물이라 할 수 있는 피사의 대성당은 11-12세기 이탈리아 건축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는데, 아치가 사용된 웅장한 규모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공통성을 지니면서도 열주의 사용이 많은 점은 고대 전통을 지닌 이탈리아의 특성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대성당의 돔과 세례당의 돔, 그리고 작은 장식의 연속은 비잔틴 양식을 받아들인 것이며, 반면에 내부의 천장은 북유럽 로마네스크 건축에서 사용한 궁륭 천장과는 달리 위가 평평한 팀버루프(timber roof)형식으로 이는 초기 기독교시대의 바실리카에서 이어 받은 양식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림 7,8) 피사의 세례당, 대성당, 사탑 그리고 대성당 내부

 즉 피사 대성당은 로마네스크 양식을 따르면서도 고대 로마의 전통과 자신들의 주 교역지였던 비잔틴 그리고 당시에 요구되던 북방양식 등을 모두 받아들임으로서 새로운 건축양식을 이룬 예라 할 수 있겠다.

 교회 내부의 모든 부분들도 그 목적과 의미에 맞게금 세심하게 고안되었는데, 로마네스크와 고딕 시기를 통해 발전된 청동공예와 상아공예 및 금세공 기술을 이용한 교회를 위한 성기물 중심의 공예품들이 남아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림 9) 놋쇠 세례반-1107~18년경/87cm/벨기에 리에주 성 바르톨로메오 성당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림 10) 글로스터 대성당의 촛대-1104~13년경/청동에 도금/58.4cm/런던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림 11) 알페의 성합-작가미상/1200년경/루브르 박물관

:미사중에 성체를 모셔 두는 성합.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림 12) 환상의 새가 장식된 메달-작가미상/1107~1119년경/루브르박물관

: 상자를 장식하는 데 사용되었던 물건. 이 메달에는 매우 형상화된 이상한 새의 모습이 전체를 채우고 있다. 당시는 "조각되어질 수 있는" 에나멜이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그 이전에는 사람들이 금속판에 아주 작은 경계 막을 용접하여 붙여 구분되는 공간을 만들고, 그 곳에 에나멜을 채워 넣어 작품을 제작하였다. 하지만 이 때부터는 에나멜을 채워 넣을 공간을 만들기 위해 직접 동판을 파내는 방법을 채택하였다. 이와 같은 기술에 힘입어 메달에 새겨진 형상을 대단히 부드럽게 표현할 수 있었으며, 장기간 보존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