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Prophecy),계시(Revelation) ,방언(Tongue)

작성자7교구카페운영자|작성시간20.06.08|조회수730 목록 댓글 0

예언(Prophecy)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계시된 진리를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을 가리킨다.

히브리어 로에’(roeh)호제’(hozeh)보는 자라는 뜻이며, ‘ 네부아’(nebu?h)말씀을 전하는 자를 의미한다. 헬라어 프로페튜오’(propheteuo)하나님께로 받은 메시지를 선포하다’(고전 11:4-5), ‘예언하다’(7:6; 1:67), ‘숨겨진 어떤 것을 밝히다’(고전 14:24-25), ‘가르치다, 권고하다, 위로하다’(고전 14:3, 31), ‘예언적 은사를 갖는다’(21:9)를 의미한다.

예언은 미래에 관한 예측만이 아니라 성령에 의해서 과거와 현재의 내용 모두를 포함한다. 각 선지자들의 미래에 관한 메시지는 그것이 심판의 메시지든 구원의 메시지든 그 목적은 그 시대의 청중을 회개시키고 격려하기 위한 것이었다(3:2). 즉 하나님과 하나님의 언약,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심판, 하나님의 구원, 장차 올 하나님 나라에 관한 메시지였던 것이다.



계시(Revelation)

인간 스스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하나님 자신을 직접 드러내시거나 알리시는 것을 말한다(16:17; 16:25-26). 헬라어로는 아포칼립시스’(apokalypsis)로 원뜻은 감추어져 있고 덮여 있던 것을 직접 열어보이거나 알려주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 자신을 알리시는 방법으로는 일반 계시와 특별계시가 있다.

일반 계시: 모든 시대, 모든 장소의 모든 사람들에게 일반적인 방법으로 하나님 자신을 나타내시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은 자신이 만드신 자연(1:20), 역사(17:22-31), 인간의 양심(1:22, 32)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신다.


특별 계시: 죄로 타락한 사람은 자연, 역사, 양심을 통해 계시하신 하나님을 바르게 알기가 어렵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을 직접 알려 주시는 특별 계시의 방법을 쓰셨다.

하나님 자신과 구원의 진리를 보여 주시는 특별 계시의 방법은 계시를 통해(8:13; 10:5; 1:9; 6:5; 7:53; 3:19), 꿈과 환상을 통해(12:6; 삼상 28:6; 2:28; 40:5; 7:13; 1:17; 7:1-9:10), 직접적인 음성으로(2:16; 19:9; 삼상 3:4), 무생물들을 통해 임재하심으로(99:1; 3:2; 78:14; 38:1),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서이다(1:1). 이러한 하나님의 계시는 성자 예수님의 성육신과 그분의 사역과 생애,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결정적으로 나타났다(1:2; 1:18; 14:7, 9-11). 그리고 이러한 특별계시를 보존하고 전달하기 위해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다(20:31; 딤후 3:15-17).

특별 계시의 목적은 하나님 자신을 드러내셔서 죄에 빠진 인간을 구원하시고 교제하시기 위해서이다.


방언(Tongue)

각 나라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10:5)를 지칭하거나 성령의 은사를 받은 성도가 하는 언어를 말한다.

성경에서 방언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글롯사’(glossa)이다. 이 단어는 우리 신체의 일부인 ’(tongue)를 가리킬 때(7:35; 1:64; 16:24; 3:1-12), ‘, 어법, 언어’(language)를 가리킬 때(2:4, 11), ‘이상하거나 모호한또는 설명이 필요한 표현을 가리킬 때(고전 12; 14) 사용되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특별히 방언을 거론하였다.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방언을 너무 지나치게 높이 평가하여 방언이 성령의 임재하심에 대한 특별한 증거라고 생각했다. 이에 대해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지나친 방언 기도가 교회 밖의 불신자들에게 비난받을 것을 염려하여(고전 14:23), 성도와 불신자들에게 덕이 되고 모본이 되도록 방언을 사용하되(고전 14:2-6, 12, 16-19, 23-25) 방언을 할 때는 반드시 통역과 함께 해야 하며(고전 14:13-19, 28), 방언을 말할 때 두 세 사람이 순서를 정해 차례대로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하라(고전 14:27)고 권면했다.

또한 바울은 방언은 성령의 부분적인 은사들 가운데 한 가지이기 때문에(고전 12) 온전한 것이 올 때는 사라지게 되므로(고전 13:8-10) 방언하는 것보다 헌신적인 생활이나 사랑의 은사가 더욱 귀중함을 강조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자기 자신이 방언으로 말할 수 있음을 감사하게 여겼으며(고전 14:18), 고린도 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다 방언하기를 원했다(고전 14:5).


방언, 언약적 축복: 베드로는 오순절에 하나님의 신이 모든 육체에 아주 특수하게 부어질 것을 예언했던 구약성경의 한 인물로서 선지자 요엘을 지목했던 반면에 사도 바울은 특별히 방언 그 자체를 구약과 연결시키고 있다. “율법에 기록된 바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다른 방언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저희가 오히려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고전 14:21 이하). 모세는 BC 15세기에 이스라엘을 심판하기 위해 외국어를 말하는 백성이 올 것을 예언했다(28:49). 이사야는 BC 8세기에 동일한 예언을 했으며(28:11), 이스라엘이 포로로 잡혀갈 때 예레미야도 동일한 메시지를 되풀이했다(5:15). 이러한 예언은 외국어를 말하는 바벨론인들이 BC 586년에 이스라엘을 짓밟았을 때 처음으로 성취되었다. 그러나 바울은 이러한 이스라엘에 대한 언약적인 저주의 표적이 신약 시대의 방언이라는 은사의 현실을 통해 그 결정적인 성취를 보게 되었다고 말했다(28:11; 고전 14:22).


문자적인 의미로 오순절의 방언은 이스라엘로부터 그 나라를 빼앗아 열방의 모든 나라에 준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는 방언이라는 은사에 의해 제시된 구원의 확장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즉 하나님의 구속사적인 프로그램이 유대인 중심의 활동에서 세상의 모든 열국을 포함하는 활동으로 옮겨진 것을 알려 주는 표적의 기능이 있다. 즉 방언이라는 표적은 전이의 표적이다.


따라서 방언은 이스라엘의 언약적인 불충성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적인 저주의 표적임과 동시에 모든 민족들에게 모든 언어로 말씀하실 하나님의 언약적인 축복의 표적이다.


방언과 예언: 은사들은 모두 각각의 독특한 특징들이 있으면서도 중요한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 ‘구제하는 것’, ‘긍휼을 베푸는 것’(12:8) 등은 말이나 언어와 관계된 은사가 아닌 반면 방언이나 예언과 같은 은사는 모두 언어적인 성격(verbal nature)을 가진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게다가 예언과 방언 양자는 하나님께 영감을 받아 말하는 은사인 것처럼 보인다. 방언의 통역 가능한 성격(고전 14:5)은 방언이 무의미한 음절이라는 가능성을 배제시킨다. 그렇다고 외국어와 같은 성질의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외국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은사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언어적 숙달이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분명히 은사로서의 방언을 말하고 있다(고전 12:10).

그러나 두 은사는 뚜렷한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예언은 교훈과 격려와 위로를 위한 것이지만 방언은 그것이 통역되지 않으면 단지 방언하는 자만을 교훈한다(고전 14:3-5). 방언은 표적이지만 예언은 아니다. 방언은 예언에 의해 향유되는 사역보다 훨씬 좁은 영역에 본래적으로 제한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방언은 하나님의 능하신 행동에 주의를 집중한다. 그러나 예언은 하나님의 능하신 행동에 대한 반응으로 회개하고 믿을 것을 요청한다.

 

[성경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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