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인물] 모세 아론 미리암 (4) 모세 아론 미리암
* 모세 아론 여호수아
미리암 - 아론 - 모세
1. 모세 주변의 인물들
레위 가문 아므람과 그 아내 요게벳 사이에서 태어난 아론과 모세, 그리고 미리암이, 우리가 흔히 기억하고 있는 모세의 가족사항이다(신명 26;59). 여기에 더하여 미디안인 장인 르우엘/이드로(출애 2:18 / 출애 18:1)와 아내 십보라, 그리고 아들 게르솜과 엘리에셀을, 우리는 모세의 가족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덧붙인다면 이집트 왕궁의 공주와 파라오, 그리고 적대자들을 모세의 주변 인물들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인물들 하나 하나가 다 나름대로 존재 이유가 있겠지만, 우리가 특별히 주목하는 인물들은 모세와 함께 출애굽의 사건의 주역으로 등장하는 아론과 미리암이다.
2. 아론
우리가 종합하여 기억하고 있는 전승을 따르면, 아론은 모세의 형이다. 아론은, 모세가 눌변이었으므로 그를 대신해 이집트 왕 파라오에게 하느님의 명령을 전하고, 모세를 도와 노예상태에 있던 히브리인들을 이집트로부터 탈출시킨다. 그는 광야생활 가운데 시내산(山)에서는 사람들의 요구에 따라 금송아지를 만들어 거기에 예배를 드리게 허용하였으나 하느님은 그를 용서하고 최초의 대사제가 되게 하였다. 그는 성막(聖幕) 곧 신성한 예배소의 책임을 맡았고, 사람들의 속죄를 위하여 하느님에게 희생 제물을 드려, 그들 죄의 용서를 빌었다. 그는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죽었는데, 아들 엘르아살이 그의 뒤를 이어 대사제가 되었다. 아론의 자손을 아론 족속이라 하는데, 그들은 대대로 사제직을 맡았다.
3. 미리암
역시 우리가 종합하여 기억하고 있는 전승을 따르면, 미리암은 아론과 모세의 누이이다(민수 26:59). 모세가 태어났을 때 히브리인의 사내아기는 죽여야 한다는 이집트 왕 파라오의 명이 무서워, 모세를 강변에 버리고, 공주가 아기를 주워가자 다가가서 유모를 천거하여 자기 어머니를 데려다 주어 동생 모세를 살려냈다(출애 2:4∼8). 그녀는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애굽)를 탈출하여 홍해를 건넜을 때 소구[小鼓]를 손에 들고 여인들과 더불어 하느님을 찬양하며 승리의 노래를 불렀다(출애 15:19∼21). 그녀는 또 모세가 에티오피아 여인을 아내로 맞은 것을 비난하다 하느님의 노여움을 사서 문둥병에 걸렸으나 모세의 기도로 나았고 가데스에서 죽었다(민수 12:1∼16).
4. 미리암-아론-모세
이상의 전승을 따르면, 아론과 미리암은 모세와 남매 관계이면서 출애굽 사건에서 보조적 역할을 수행한다. 한편 그들은 보조자 내지는 조력자이기는 하되, 상당한 흠을 지니고 있는 인물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미가가 전하는 또 다른 전승(미가 6:4)은, 그러한 관계를 염두에 두지 않고 출애굽 사건의 동등한 주역으로 이 세 인물을 등장시킨다. 그 전승 자체만으로는 가족관계라는 것을 염두에 두었는지 아닌지 최종적으로 판단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두 인물을 단순히 보조자로만 기억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을 보내서" 출애굽의 사건을 일으켰다고 전하고 있다. 이러한 전승은, 출애굽 사건의 주역으로서 세 인물의 관계를 더 역동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틈새를 열어 준다. 가족관계에 매인 존재들로서나 주도자와 조력자 관계로서만이 아니라, 공동의 주역으로서 협력과 갈등 속에 있었던 이들의 관계를 살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출애굽 사건의 공동의 주역임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대극의 처지로 전락한 여인 미리암을 중심으로 모세와 아론, 그리고 미리암의 역할관계를 조명해 보자. 이 여성에 관한 전승이 빈약함에도 불구하고 그 전승들은 이 여성의 역할이 결코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마디로 말하면, 미리암은 '구원자인 여신의 이미지'와 동시에 '금기 대상의 이미지'를 동시에 갖고 있다. 그리고 이 점은 신약에 등장하는 모든 '마리아'의 전형에 해당한다. '미리암'은 모든 '마리아'의 원조다.
구원자로서 미리암은, 우선 출애굽기 1장에 나오는 모세의 누이로서의 역할에서 나타난다. 여기에 그 이름이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 '누이'와 '미리암'을 동일시하는 전승은 미리암의 존재를 누이의 역할과 겹쳐 받아들였다. 지혜로 생명을 건져낸 역할이다. 어머니 요게벳과 이집트의 공주 등으로 분화되어 있는 생명을 보존하는 여성의 역할을 '누이'가 대변하고 있다. 설령 그 설화적 양식 구조 자체가 모세라는 한 '영웅'의 주변을 장식하는 이야기로 되어 있다 하더라도, 그 존재와 역할의 의미는 뚜렷하다.
다음으로 구원자로서 미리암의 역할은 히브리 노예들이 홍해를 건넌 장면에서 더욱 뚜렷이 드러난다(출애 15장). 여기에서도 미리암의 역할은 모세에 뒤이은 것으로 되어 있지만, 느닷없이 존재 의의가 없는 여인이 등장할 리 없다. 성서의 전승 자체가 전반적으로 모세를 중심으로 기술된 것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홍해 탈출이라는 군사적 사건에서 미리암의 역할이 오히려 더 중요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도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모세의 아내를 두고 갈등하는 장면(민수 12장)에서 결정적으로 미리암의 이미지는 교차한다. 구원자로서의 이미지와 금기의 대상으로서 이미지가 교차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미리암은 모세를 비난하는 인물로 등장하고 있고 그 때문에 저주를 받는다. 비록 아론의 중재로 회복되기는 하였다 하나 이 사건을 계기로 적극적 역할을 담당하는 미리암의 존재는 사라진다. 이로써 '구원자로서 미리암'은 '금기의 인물로서 미리암'이 되고 만다. 게다가 민수기 20장 1절에 이르러 느닷없이 미리암의 죽음이 언급되는데, 이 사실은 금기의 인물로서 미리암의 이미지를 더욱 강화시킨다. 가데스에서의 불신 사건과 아론의 죽음 사건의 서두에, 사라졌던 미리암이 등장한다. 미리암의 존재는 '불신'과 '죽음'의 이미지가 된 것이다.
그러나 모세와의 갈등 사건의 진상은 무엇이었을까? 설화의 표면 구조와는 달리 이 갈등의 사건은 오히려 구원자로서 미리암의 역할을 더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계기이다. 여기에서 미리암과 아론은 모세에 대해 이의 제기를 하는 공동의 주역으로 등장한다. 표면상 여자 문제 때문인 것으로 되어 있지만, 아마도 그 사건은 모세의 지도력 자체를 문제시한 사건이었을 것이다. 출애굽의 모든 공과를 모세가 전유한 것으로 되어 있는 전승의 입장에서 보면, 아론과 미리암의 이의 제기는 '불경'스러운 것일 수 있다. 그러나 구원자로서 미리암의 이미지를 전하는 전승을 깊이 헤아려 살펴 볼 때, 미리암이 어느 순간에 갑자기 '이단자' '배신자'로 돌변했다고 보기 어렵다. 여전히 공동의 주역으로서 모세의 지도력의 결함을 극복해보려는 시도를 도모한 사건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순간에 미리암이 금기의 인물로 전락한 것은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입각한 전승의 소산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점은 똑같은 이의제기자로서 아론에게는 저주가 내리지 않고 오히려 역시 느닷없이 중재자로 등장한 점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중간에 아무런 해명도 없이 아론은 어정쩡한 중재자로 등장한다. 여기에는 모든 사건의 발단이 '방정맞은 여자' 때문에 빚어졌다는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의 음모가 숨어 있다.
오히려 아론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일찌감치 저주를 받아야 마땅한 인물이었다. 시내산 아래 광야에서의 '금송아지 사건'(출애 32장)의 주역이 아론이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신뢰하기보다 보이는 형상에 집착한다. 해방의 자유에 대한 갈망보다는 물질이 보장하는 안정을 여전히 기대한다. 금송아지 사건에서 모세가 전자를 대변한다면 아론은 후자를 대변한다. 과연 금송아지가 야훼의 형상이냐 아니냐는 종교문화사적인 맥락에서의 논의를 떠나, 성서 전승의 맥락에서 보면 확실히 그렇다. 그렇다면 그 사람들의 그 욕망을 승인하고 거기에 편승한 아론은 저주받았어야 마땅하다. 그것은 한 지도자의 여자 관계를 문제시한 사건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였다. 히브리인의 정체성에 관한 근본적인 문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남성' 지도자 아론은 면책된다. 철없는 백성들만 벌을 받을 뿐이다.
성적 편견의 희생자가 된 미리암을 복권시키는 것은, 한편으로는 남성적 권위의 대변자로서 모세를 진정한 평등과 해방의 지도자로 복권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생명의 말씀으로서 성서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표면의 문자와 구조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과 해방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어떻게 전해지고 있는지를 깊이 들여다보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는 성서 전승 자체가 한 시대의 해석임을 유념해야 하는 것이다.* (인터넷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