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 여인]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이삭)와 하갈(이스마엘)
사라 (Sarah) 「공주」
아브라함의 아내인데, 갈대아 우르에서 결혼했다(창 11:28-31,17:17). 사라는 아브라함의 이복 누이로서 당시 이와 같은 결혼은 보통 있는 일이었다(창 20:12). 본래 이름은 사래였다. 그녀는 남편을 따라 갈대아 우르에서 하란으로(창 11:31), 하란에서 가나안으로(창 12:4,5) 이동했다.
그녀의 아름다움과 아브라함의 자기 생명을 지켜 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결여, 그리고 아내의 명예를 희생하여 자기의 안전을 꾀하려는 비겁 때문에 그녀를 둘러싸고 두 사건이 일어났다.
즉, 가나안에 기근이 일어나 애굽으로 내려갔을 때
아브라함은 자기가 죽임을 당할까봐사라를 아내라 하지 않고 누이라 하였다. 그녀는 바로의 궁전에 불려 들어 갔고, 아브라함은 사라의 연고로 후대를 받았다. 그러나 사라 때문에 바로가 큰 재앙을 받게 되고, 사라가 아브라함의 아내라는 것이 탄로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바로에게 책망을 받고 추방되었다(창 12:10-20).
또 하나는 후에 그랄로 이사 갔을 때,
그 곳 왕 아비멜렉이 사라를 취하였더니 그날 밤 그에게 하나님께서 현몽하시어 그 여인 때문에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시었다. 전번과 꼭 같은 사건이 일어났던 것이다(창 20:1-18). 아비멜렉은 아브라함과 친교를 맺으려고 정략 결혼을 꾀했을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아이를 낳지 못했기 때문에 아브라함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허사로 돌아갈까봐 자기 여종하갈을 첩으로 주어 이스마엘이란 아들을 얻었다(창 16장).이 때문에 가정의 평화가깨어졌다.
사라가 하갈을 학대함으로 하갈은 마침내 아브라함 곁을 떠났으나 다시 돌아왔다. 89세에 아들을 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고, 하나님의 의해 사래는 사라로 개명되었다. 그로부터 1년 후, 약속의 아들 이삭이 출생되었다(창 17:15-22,18:9-15,21:1- 5, 히 11:11,12).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 쫓는 아브라함
이삭이 젖 떼는 날 아브라함이 큰 잔치를 베풀었는데, 그때 하갈의 소생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는 것을 사라가 보고 아브라함에게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어쫓으라고 강박하였다(창 21:8-21). 사라는 127세까지 살고 가나안땅 헤브론(기럇아르바)에서 죽었으며, 마므레 앞 막벨라 굴에 장사되었다(창 23:1,2,19).
사라의 성격은 빛과 그늘이 서로 뒤섞인 것 같아 하갈의 경우에서 보는 신앙의약함과 자기 억제 및 자비로운 마음이 다소 모자라는 감이 있다. 한편, 히브리서 11:11, 베드로전서 3:6에서 보는 바와 같이, 아브라함의 신앙, 소망, 능력에 동참하여 신약 시대의 부인의 본으로 되어 있다.
하갈 (Agar) 「도망간다」
애굽 여자인데,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여종이다.
아브라함이 애굽에 가 있을 때 바로에게서 받은 것으로 보인다(창 16:112:16).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거주하여 10년이 지나도록 약속의 아들이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76세가 된 사라는 약속을 체념하고 세상적인 방법으로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게 하여 어머니라는 부름을 받아보려고 꾀하였다.
당시의 습관에 의해 그녀는 자기 여종을 아브라함에게 주었다. 하갈이 잉태하자 그녀는 자기 여주인을 멸시했다. 사라는 자기가 당한 멸시를 자기 잘못으로 온 것임을 깨닫지 못하고 그 원인을 남편에게 전가시켰다.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의 원망을 온유하게 받는 의미에서 하갈에 대한 사라의 권한을 인정해 준다. 그러자 사라는 하갈을 학대했다.
하갈은 그 학대를 못 이겨 마침내 애굽과 유다 사이에 있는 술 광야로 도망치고 말았다. 그녀는 그 고생길을 기도하면서 갔을 것이며, 따라서 자기의 교만했던 과거를 회개하였을 것이다.
그녀가 도중 샘물 곁에서 여호와의 사자를 만났다.
사자가 하갈에게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느냐고 물을 때, 그녀는 사라를 겸손하게 여주인이라고 말하고 이실직고했다. 천사는 그녀에게 낳을 아이의 장래에 대하여 계시를 주고 여주인에게 돌아가라고 명령하였다. 종으로서는 주인에게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하갈은 그 샘의 이름을 `브엘라해로이'(나를 감찰하시는 생존자의 우물)라불렀다.
하갈은 아브라함의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것은 그의 회개한 결과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며, 그것은 그녀의 신앙이었다. 아브라함은 하갈이 낳은 아들을 `이스마엘'이라고 이름 지었다. 이것은 광야에서 된 하갈의 신앙 체험을 옳게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 때 아브라함의 나이 86세이었다.
그로부터 13여 년 후에 사라에게도 아들 이삭이 태어났다.
이삭의 젖 떼는 날 아브라함은 큰 잔치를 베풀었는데, 그 때 하갈의 소생 이스마엘이 여주인 사라의 아들 이삭을 희롱했기 때문에 하갈 모자는 추방당하였다. 이는 불신앙˙시기˙교만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사도 바울은 이스마엘의 이와 같은 행동을 가리켜 이삭에 대한 `핍박'이라고 하였다(갈 4:29). 과거 학대에 못 이겨 도망간 하갈의 생명을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신 것을 직접 체험한 그녀는, 자기 생명을 사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참새일찌라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면 땅에 떨어지지 않는 법이다.
하갈은 사라의 종이기 때문에 그녀 스스로 도망쳐서는 안된다. 종이란 가혹한 주인에게라도 복종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회개한 그녀를 여주인에게 돌려 보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라 자신이 하갈을 내어 쫓으라고 요구하기 때문에 문제는 다르다. 그러므로 하갈 모자는 사라의 종으로써 더 있을래야 더 있을 수 없게 되었다. 이스마엘에게 애착을 가지고 있던 아브라함은 사라의 요구를 듣고 크게 근심하였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삭에게서 낳은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라고 말씀하셨을 뿐만 아니라, 여종의 아들(이스마엘)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라고 약속 하심으로 그에게 위로와힘이 되었다.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이 일어나 하갈과 이스마엘에게 물과 떡을 주어 내어 보냈다. 하갈 모자는 브엘세바 광야에서 방황하였다. 마침내 가죽부대의 물이 떨어졌을 때, 그녀는 목말라 죽을 지경에 이른 아들을 떨기 나무 아래 두고 그가 죽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고 하면서, 살 한 바탕쯤 떨어져 마주 앉아 방성대곡하였다. 하갈 모자가 사라 모자의 처지에 설 수 없으나, 역시 동일한 하나님의 긍휼을 입은 것만은 확실하다.
하나님은 하갈의 추방을 허락했지만, 긍휼은 무한하셔서 쫓겨난 그들을불쌍히 여기시어 이스마엘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천사를 보내시어 하갈더러 두려워 말라고 위로하셨으며, 이스마엘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고 약속하셨다.
그리고 하갈의 눈을 밝히셔서 샘물을 보게 하셨던 것이다. 하갈에 대하여 마지막으로 알수 있는 것은, 그녀 자신의 출신지인 애굽에서 며느리를 데려왔다는 것이다(창 21:8-21). 사도 바울은 하갈을 율법에 비유하여, 율법으로는 의로 인정 받을 수 없음을 하갈이 낳은 아들이 약속의 아들이 될 수 없다는 것으로 설명했다(갈 4:21-31). 이것은 적절한 비유이다. 율법은 하갈이다. 그것은 종이어서 자유를 누리지 못하며, 육이고 영이 아니며, 자연이고 약속의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추방되는 것이며 거역하는 것이다. (인터넷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