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사전] 바리새파(인),사두개파(인),에세네파 - 유대인의 3대 당파

작성자안현상|작성시간09.11.24|조회수2,997 목록 댓글 0

[성경사전] 바리새파(인),사두개파(인),에세네파


* 유대인의 3대 당파로 바리새파와 사두개파는 예수 그리스도와 초대교회를

  박해한 당파로도 유명하다.

 

 

① 바리새파 : 율법을 엄격하게 준수하고 종교를 국민생활의 중심으로 두기를

                  노력하여 백성들로부터 신망을 받는다. 다수의 뛰어난 율법학자를

                  배출하였고 정결하고 고결한 인사들이 많았다. 바울도 바리새파의

                  일원이었다.

                  그들은 의는 율법의 엄격한 실행에 있다고 주장하고, 형식적 순결을

                  중시하여,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위선에 빠졌다. 세례요한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비판을 받는다.

                  사두개파와 달리 그리스문화를 거부하고 부활과 천사의 존재를

                 믿는다.


② 사두개파 : 오직 기록된 율법만을 받아드리며, 제사장과 귀족들이 많은 계층으로

                  부유와 평안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그리스문화를 받아드렸고 영혼

                 불멸이나 육체의 부활, 천사와 영적존재를 믿지않는다.


③ 에세네파 : 결혼을 하지 않고 사해주변에서 공동체생활을 한 것으로 보여지며

                  금세기 최대발견인 쿰란동굴의 사해문서(사해사본,사해두루마리)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본다.

 

 

[바리새파와 사두개파의 대립]


사두개인들은 오직 율법만을 신봉하며 부활과 천사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제사장직 독점한 부유한 귀족층답게 정치적이고 세속적인 그들은 자신들의 입지와

행복을 위해 로마의 지배도 받아드리며 이스라엘의 그리스화를 수용한다.

반면 바리새인들은 기록된 율법과 기록되않은 구전율법도 동시에 받아드리며

부활과 천사의 존재를 믿는다. 종교적이며 그리스화를 거부한다.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은 부활신앙 등의 문제로 대립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와 초대교회

박해에는 일심으로 협력한다.

 

 


바리새인, ~파(~派)

  

[그] Pharisaios [영] Pharisees원어의 뜻은 [분리된 자들].


바리새파, 사두개파, 에세네파는 유대인의 3대 당파이다.

바리새파는 특히 사무개인(파)과 대립한 세력으로서, 일반적으로 율법의 엄격한 준수, 특히 모세 5경에 기록되어 있는 레위적 정결을 엄수하는 것에 이 파의 특색이 있었다.


바리새라는 명칭은

히브리어[페루쉼 (perushim)],

아람어 [페리샤야 (perishayya')],

헬라어 [파리사이오이 (Pharisaioi)]에 유래하고,

[파-루슈 (parush)]의 복수형으로서 [분리된 자들]이라는 뜻이다.


그 기원은 마카비서에 기록되어 있는 [경건당]에 유래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경건당은 전 2세기, 당시 성했던 그리스화(-化)의 흐름에 반항하여, 유대의 학자계급 사이에서 생겨나, 학자에 의해 해설된 율법의 엄격한 실천에 열중했던 일단으로서, 그들에 대하여 그 반대자가 붙인 호명이 바로 [바리새]라는 것이다.


그들 스스로는 [형제들], 즉 [하베-림]이라 자칭하고, 자신들을 [참된 이스라엘의 성원동지로 생각하면서, 일반시민 계급을 [땅의 백성], 즉 [암 하-아-레츠]로서 구별하여, [율법을 알지 못하는 무리들](요 7:49)로 멸시했다.


그들의 주요한 특질은,

사두개인이 [모세5경]을 지고의 권위 있는 율법으로서 신봉한데 대해,


바리새인은

1> 기록된 성문화(成文化)된 [율법], [선지서], [제서](諸書)뿐 아니라, 이것과 함께 2> 기록되지 않은 유전(遺傳-口傳律法)도 권위있는 [부조의 전승]으로서 그것들과 동시에 받아들였다.


따라서 바리새인의 신앙과 생활의 규범은 이들 두가지 율법에 기초하는 것이다.


그들은 헤롯가(-家), 로마시대에 6천명 이상의 단원을 가지고, 회당조직을 통하여 전유대에 영향을 주었다(마 23:2-7).

부활의 신앙에 있어서 사두개인과 대립하고(행 23:8), 또한 그리스문화의 침투에 대해서도 사두개인과 달리 세차게 이것을 거부했다. 그리고 종교를 국민생활의 중심에 두기를 노력하여, 국민으로부터 신망을 얻었다. 그리하여 그 중에서 다수의 뛰어난 대율법학자를 배출하고, 경건 고결한 인사도 적지 않았다.


바울도(행 26:5), 그 스승 가말리엘도 그한 사람이었다(행 5:34-40,22:3).하지만, 그들은 의는 율법의 엄격한 실행에 있다고 주장하고, 형식적 순결을 중시하여,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위선에 빠졌다. 이것은 세례요한에 의해, 또는 예수에 의해 통렬하게 비난 공격 되었다(마 3:7,23장등).

바울이 싸우고 있는 것도 이 바리새적 신앙과 사상이었다(롬 2:17-29기타). 그들은 일관하여 예수의 적이 되고, 예수를 율법을 욕되게 하는자, 죄인과 사귀는 자(막 2:1-,기타)로서 대립하여, 마침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막 3:6,15:1), 다시 교회를 박해하기에 이르렀다(→행 9:1). 율법에는 근본지향(根本志向)을 반대로 만든다. 그들은 하나님께 대하여 확실히 열심이었으나 그 열심은 참된 지식에 의하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롬 10:2).

 

 

사두개인(~人, ~派) 


[그] Saddoukaios  [영] Sadducees


유대의 종교 및 정치의 최고 지도자인 대제사장을 지지한 당파. 전 2세기에서 예루살렘멸망(후70)에 이르는 기간에 세력을 가졌던 당파로, 귀족계급에 속하고, 대제사장 및 예루살렘의 유력자들로 이룩되어 있었다.


바리새인과 대립했는데, 바리새인이 종교적인데 반하여, 그들은 아주 정치적 색채가 강했다. 수는 비교적 소수였으나, 교양도 있었고, 특히 제사장 계급을 독점하여 세력을 폈다. [사두개인]은 다윗, 솔로몬 시대에 예루살렘 성전의 지도적 제사장 [사독](→)의 이름에 유래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것이 차디크 [의로운,形 tsaddiq] 이라는 형용사에서 유래한다는 종래의 설은, 이 [차디크](tsaddiq)의 [아이](i)가 [차두크](tsadduq)의[유](u)로 왜 변했는가를 설명할 수가 없다. 그래 다윗, 솔로몬에 쓰인 사독이 사두개인의 선조라는 것이 타당한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종교적으로는 보수적, 현세적으로는 그리스 문화에 대하여 해방적이고 세속적이었다. 그 때문에 마카비 전쟁시대의 종교적, 민족적 혁신의 시기에는 냉대되었는데, 하스몬왕조 (그 초기의 지도자들은 마카비로서 알려진다)가 세속화됨에 따라 세력을 펴고, 이에 비판적이었던 바리새인과 대립하게 되었다.


이 경향은 뒤의 헤롯왕조의 친로마정책과도 영합(迎合)하여, 성전을 중심으로, 종교적으로는 제사장 계급으로서 강화되었다. 공회의 의원도 많았다. 따라서 민중으로부터는 떠나, 인기가 없었다. 그 신앙,사상은 일면 보수적임과 함께 한편 극히 합리적, 현세적이었다. 그들은 바리새인이 부가하고 존중한 유전(遺傳-)을 인정치 않고, 성문화된 모세의 율법만을 인정했다. 그 결과로, 부활도, 천사도, 영도, 일체의 존재를 인정치 않았다(막 12:18,눅 20:27,행 23:8).


또한 미래에 있어서의 보응도 부정하고, 영혼은 육체와 함께 죽음을 말하고, 의지의 자유를 주장하여,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일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말해진다. 이러한 입장에서 그들은 예수에 대해서도 반대했다. 이러한 그들을 세례 요한은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했다(마 3:7). 그들은 예수에게 와서, 때로는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보이기를 청하고(마 16:1-4), 부활에 대해 난문(難問)을 제출하여 시험하려고도 했다(마 22:23-33). 이들을 예수는 바리새인과 나란히 하여 비난했다(마 16:6,11). 그러나 복음서를 통하여 바리새인 만큼 비난의 대상으로 되어 있지는 않는데, 그것은 그들이 바리새인 보다 옳은데가 있어서가 아니라, 민중을 떠난 사두개인의 신앙은 예수의 시야에 들어오는 일이 적었던 때문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들은 예루살렘 교회 및 바울도 박해했다(행 4:1-22,23:1-10). 후 70년의 예루살렘 성전 파괴는 그들의 세력을 뿌리채로 뒤엎어, 그후, 그들에 대해서 언급된데는 별로 없다. 다만 바리새인의 가르침과 계속 대립되고 있었던 것이, 탈무드에 언급되어 있는데 그쳐 있다.



에세네파 [Essenes]

 

그리스도 시대의 유대교의 일파.

바리새파(바리사이파)·사두개파(사두가이파)와 대등한 교파의 하나이다. 유대계(系) 그리스인 A.필론의 철학적 영향이 강한 신비적인 금욕주의를 부르짖으며, 하느님과의 보다 완전한 일치를 추구하여 사해(死海) 주변에 종교적 공동생활권을 만들고 장로의 지도하에 공동생활을 하였다. 재산은 공유이며, 예배와 독서와 공동식사를 중요한 행사로 삼았다. 그 대부분은 결혼을 사양한 것 같으며, 그리스도에게 세례를 준 세례자(洗禮者) 요한이 이 파에 속했을 것이라는 설은, 확증은 없으나 금세기 최대의 발견(1945)의 하나인 《사해문서(死海文書)》의 소유자였던 쿰란 교단이 이 파라고 하는 설은 매우 유력하다. 이 쿰란동굴에서 발견된 문서들은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의 중간기의 성서역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었다. 이 파는 1세기말 경 소멸되었다. <네이버 백과사전>


(인터넷 자료정리)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 센터로 신고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