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인물] 사도 바울 ③ 회심 後의 바울(=전도자,선교자)

작성자안현상|작성시간09.12.04|조회수2,209 목록 댓글 0

[성경인물] 사도 바울 ③ 회심 후의 바울(=전도자,선교자)


회심 후의 바울


바울의 전도 생활은 회개와 동시에 시작되었다.

그는 다메섹에서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했다.

 

 

또 사울(바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시키니라라고 기록되어있다(행 9:20-22).


그의 회심은 동시에 사도에의 소명이었다. 바울에게 있어서 신앙생활은 곧 전도생활이었다. 이제 새 확신을 얻은 그는 즉시 그 전파에 착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자기 내부 생활에 일어나는 변화와 그 의의에 대해, 또 앞으로 취할 방침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조용히 기도할 필요를 통감했다.

 

 

따라서 그는 아라비아로 갔다가(갈 1:17) 잠시 조용히 때를 보냈다.


이 다메섹 교외의 아라비아에서 보낸 기도와 명상의 기간은 어느 정도였는지 분명치 않다. 그것은 수 주일, 길어서 수 개월 정도였으리라. 바울의 마음 속에서는 열렬한 사명감이 활활 타오르고있었다. 기도하는 시간이 필요했지만 무턱대고 장시간을 도피자적 생활에 소비한다는 것은 그의 본의도 아니고 성격도 아니었다.

 

 

다메섹으로 돌아오자 다시 예수의 복음을 전파했으나, 헬라파 유대인들이 죽으려고 했기 때문에 바울은 제자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거기서 도망쳐 예루살렘으로 갔다. 그때 이미 회심한 지 3년 후였다(갈 1:18).


예루살렘에서의 된 일에 대하여 사도행전이 전하는 것(행 9:26-30)과 바울 자신의 기술(갈 1:8-24)한 것 사이에는 일치점이 없는 것 같이 보이나, 같은 사건을 두 필자가 다른 관점에서 전하는데서 오는 차이라고 보지 않으면 안된다. 바울은 먼저 선배인 베드로를 찾아 갔고, 또 주님의 형제 야곱을 만났다. 바울은 그들을 통하여 생전의 예수에 대해 자세히 들었을 것이다. 바울의 그리스도 관(觀)이 항상 역사적 예수에 뿌리박혀 있는 것은 이럴 때 얻은 예수의 사적(事跡)에 관한 지식 때문일 것이다.


예루살렘의 신자들은 바울의 회심을 의심하고 두려워했으나, 바나바 집사의 소개로 겨우 제자들의 틈에 끼이게 되었던 것이다. 만일 이때 교회가 바울을 받아들이지 않고 말았다면 기독교의 역사는 완전히 판이한 과정을 더듬었을는지도 모른다. 바울이 다메섹에서 유대인을 피해 도망한 바울은 예루살렘에 15일 동안 머물렀으나 그 동안도 예수에 대해 전도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서도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려고 꾀하였기 때문에 사도들은 그를 가이사랴로 데리고 가서 다소로 보냈다.


사도행전 22:17- 21에 이때 바울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비몽사몽간에 환상을 보고 이방인에 대한 전도의 사명을 재차 나타내시고 격려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고향 다소에서의 약 10년 동안의 바울의 동정에 대해서 사도행전은 언급하고 있지 않다.


상당히 긴 세월이었으므로 그동안 바울은 결코 헛되이 보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러나 갈라디아서 1:21- 24에 의하면, 유대의 여러 교회가 수리아, 길리기아 지방에 간 바울에 대하여 우리를 핍박하던 자가 전에 잔해하던 그 믿음을 지금 전한다함을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고 하며, 또 그 후 예루살렘 회의의 결의서를 바울 등을 통해 안디옥에 보낸 것(행 15:23)을 보면, 이 기간에 그가 수리아, 갈리기아 지방에서 열심히 전도한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교회를 설립한 것은 크게 주목할 만하다(행 15:41참조).


그동안 안디옥에서는 이방인에 대한 전도붐이 일어나 예루살렘 교회에서는 바나바가 파견되었으나, 그 한 사람 가지고서는 도저히 충분한 활동을 할 수 없음을 깨닫고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거기서 둘이 협력하여 기독교 전도 사상 획기적인 이방인 전도를 하기에 이르렀다.


크리스챤, 즉 `그리스도인'이란 명칭이 이 안디옥에서 비롯되었다.

 

                 * 바울과 베드로의 논쟁(렘브란트 作)

 

이렇게 이방인에 대한 전도가 확대되고, 따라서 많은 이방인 신도가 교회에 들어옴에 따라 당연히 유대인 신자와 이방인 신자와의 관계, 전도구역의 문제 등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때마침 그때 유대 지방에 기근이 일어나 안디옥 교회에서 바울과 바나바를 구제하는 일에 임하게 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파견하게 된 것을 계기로, 그들은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같이 여기는 야고보게바요한과 사적으로 만나,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이 바울은 무할례자에게 복음전함을 맡기로 하고, 여기서 그들은 나와 바나바에게 교제의 악수를 하였다고 갈라디아서 2:7- 9에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바울은 회개의 순간부터 이방인에 대한 선교자로서 택함을 받았다는 자각을 가지고 있었다(행 9:15,26:17,18). 그리하여 이 자각에 입각하여 다메섹˙예루살렘˙수리아˙길리기아, 그리고 안디옥을 전전하면서 꾸준히 전도해 왔다. 그가 갈라디아서의 서두에서 선언하고 있는 바와 같이, 하나님의 직접 부름을 받았기 때문에 인간의 허락과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러나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이 바울의 입장을 이해하고, 바울에게도 하나님께서 이방인을 위해 능력을 주신 것을 인정해 준 것은, 바울로 하여금 자유로이 행동하게 한 효과는 있었다. 지혜가 있는 바울은 이 호기를 포착하여 여기에 대 전도여행을 시도하게 되었다.  (인터넷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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