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인물] 사도 바울 ⑥ 제3차 전도여행(A.D 54-58년) 소아시아~그리스지역
제3차 전도여행 [A.D 54 ~ 58년]
* 전도일지 (행18:23-21:17)
1. 안디옥(시리아)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지역
안디옥에서 3차 전도여행을 떠남.
2. 에베소 :3년정도 머무름
아볼로(학문과 성경에 능한 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가르침, 아가야로 건너감), 12 사람에게 세례, 안수 베품(성령임함, 방언, 예언함),
3개월 회당에서 강론, 두란노 서원에서 강론(2년), 바울 희한한 능력 행함(손수건,
앞치마로도 치유), 마술사가 자기 책(은 5만)을 불태움.
데메드리오(은장색이, silversmith, 아데미 여신 은감실 만듬)가 소요를 일으켜
바울을 죽이려 함(서기장 무리 안돈). 가이오와 아리스다고가 잡힘.
3. 마케도냐와 헬라지역
3개월 동안 머무름. 고린도에서 암살 계획이 있음을 알고 육로로 빌립보까지 감.
4. 드로아
먼저 도착한 동료(소바더, 아리스다고, 세군도, 가이오, 디모데, 두기고,
드로비모)를 만남. 7일 머무름. 설교를 듣다가 죽은 유두고를 살림.
5.앗소
6. 미둘레네기오 >사모 >밀레도
밀레도에서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청하여 만남 (간증, 기도, 전송).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이르려고 에베소를 방문하지 못함.
7. 고스>로도>바다라 >구브로 해안
8. 두로
7일 동안 제자들을 방문함. 제자들이 예루살렘으로 가지 말 것을 간청함.
9. 돌레마이>
10. 가이사랴
빌립(일곱 안수집사 중 일원, 딸 4명, 처녀로 예언함, 아가보 선지자 바울
예루살렘에서 결박 당함 예언하고 못 가게 함)의 집에서 여러 날을 지냄.
*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다고 바울이 결의함.
11. 예루살렘
3차 전도여행을 마침.
제3차 전도
제3차 전도는 제2차 전도여행의 연속이었다.
제2차 때 성령으로 금지되었던 소아시아 전도, 특히 에베소 전도에 전력을 집중시켰다. 바울은 일찍부터 중심적 대도시의 중요성에 유의하여 그 전도를 꾀하였으나, 이때까지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겨우 다년 간의 그 숙원을 이루게 된 바울은 약 3년동안이 도시에 머물렀다.
그의 오랜 전도생활에서 이렇게 한 곳에 오래 머물은 곳은 없었다. 그는 이 동안 부근의 각 도시에까지 전도를 시도했는지의 여부는 분명치 않다. 골로새와 히에라볼리에는 에바브라를 통하여 복음을 전했다(골 4:13). 다른 여러 도시에도 이와 마찬가지로 그의 동역자를 보내 전도를 했을는지도 모른다.
누가는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행 19:10)라고 기록했다. 그러나 바울 자신은 줄곧 에베소에 머물러 전도에 전념했다고 여겨진다. 그 자신이 말하는 바와 같이 에베소에 있어서는 "내게 광대하고 공효를 이루는 문이 열려" 있었다. 한편, 그에게는 "대적하는 자가 많아" 실로 다사다난한 3년이었다. 사도행전 19:1 41에 기록되어 있는 바와 같은 사건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고린도 교회와의 관계가 험악하게 되어 바울은 적어도 한 번은 직접 고린도에 가서 화해에 힘쓴 일조차 있었다. 실로 "날마다…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 있었으니 감개무량한 것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에베소를 떠나 마게도냐에 건너갔을 때" 우리 육체가 편치 못하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라"고 술회했다.
그러나 고린도에 보냈던 디도의 기쁜 보고를 받고 그는 비로소 환희와 만족을 느낄 수 있었다(고후 7:5-16). 아마 이때 일루리곤 지방에서의 전도를시도했을 것이다(롬 15:19,20,행 20:1-3). 이렇게 그는 완전히 화해한 고린도 교회를 다시 방문하여 평화로운 3개월을 보냈다.
이제 3차에 걸친 전도여행으로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고"(롬 15:19),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을 정도로 되었다(롬 15:23). 전도에 지칠줄 모르는 그의 눈길은 더 서쪽인 로마와, 로마 이서(以西)의 나라에로 돌려졌다. 사실 그는 "여러 해 전부터…너희에게 가려는 원이 있었다"(롬 15:18-29). 그리하여 이제 여러 해 전부터의 숙원이 이루어지려는 찰라에 우선 로마 교회에 자기의 계획을 말하고, 그와 동시에 전부터 품고 있던 소신을 밝혔던것이다. 이것이 곧 다름아닌 로마서이다.
그러나 로마에 가기 전에 일단 예루살렘에 돌아갈 필요가 있었다. 그는 이 시대의 모든 서신이 보이듯이(고전 16장,고후8장,9장,롬15:25-28), 모교회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해 연보를 준비하여 이것을 각 교회의 대표자들에게 지참시켜 예루살렘으로 갔다. 그는 이와 같은 헌금으로 모교회와 이방인의 여러 교회와의 사이에 밀접한 연락을 갖게 하여 굳은 결합을 유지시키려 했던것이다.
이렇게 그는 이 대표자들과 같이 예루살렘으로 갔다(행 20:4).빌립보에서는 누가가 일행에 참가한 것은 `우리'라는 대명사가 다시 쓰여지고 있다는 것으로서도 알 수 있다(행 20:5).
빌립보에서 예루살렘에의 여행은 바울에게 있어서는 `비아 도로로사'(슬픔의 길)였다. 그도, 사람들도불길한 운명이 그를 기다리고 있음을 예감하고 있었다. 그는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라고 말했다. 그가 도중에 들린 드로아˙밀레도˙두로˙가이사랴 등의 각지에서 형제들과의 작별은 모두 눈물이었다. 특히 밀레도에서의 에베소의 장로들과의 작별장면을 이를 데 없이 애절하였다. 신약성경 중 이 기사만큼 페이쏘스(pathos)에 풍부한 곳이 다른 데는 없다(행 20:17-38)
(인터넷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