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인물] 욥과 욥의 세친구 – 엘리바스, 빌닷, 소발

작성자안현상|작성시간12.03.09|조회수1,432 목록 댓글 0

욥과 욥의 세 친구 - 엘리바스, 빌닷, 소발

 

욥에게 재앙이 임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와 알아보기조차 어려운

욥의 곤고함에 7일간 말없이 애통하던 친구들.

 

11 때에 욥의 친구 세 사람이 그에게 이 모든 재앙이 임하였다 함을 듣고

    각각 자기 처소에서부터 이르렀으니 곧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라

    그들이 욥을 조문하고 위로하려 하여 상약하고 오더니

12 눈을 들어 멀리 보매 그 욥인 줄 알기 어렵게 되었으므로 그들이 일제히

    소리질러 울며 각각 자기의 겉옷을 찢고 하늘을 향하여 티끌을 날려

    자기 머리에 뿌리고

13 칠일 칠야를 그와 함께 땅에 앉았으나 욥의 곤고함이 심함을 보는고로

   그에게 한 말도 하는 자가 없었더라 (2:11-13)

 

 

 

(Job)

 

욥기서의 중심 인물로 팔레스타인 남동쪽 에돔 지방의 우스 출신이다(1:1).

이름의 뜻에 대해 박해입은 자, 적을 가진 자, 회개한 자 혹은 사랑을 입은 자

여러 가지 의견이 있다. 아브라함과 같은 족장 시대의 인물로 여겨지며 욥기서를

기록한 사람으로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였다(1:1).

 

가족은 아내와 10명의 아이들이 있었으나(1:2), 아이들이 모두 일찍 죽었다

(1:18-19). 욥은 나중에 다시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낳았다(42:13).

나중에 낳은 딸들의 이름은 여미마, 긋시야, 게렌합북이었다(42:14).

욥은 부자였다. 재산을 가축의 수로 정하던 시대에 욥에게는 양이 7, 약대가 3,

소가 5백 겨리, 암나귀가 5백 마리나 있었고, 종도 많이 있었다(1:3).

욥은 삶 전체를 통하여 하나님과 대면한 사람이었다.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큰 자인 욥은 하나님이 사탄에게 자랑할 만큼 인정받은

자였다(1:8).

 

성경 속의 또 다른 욥: 야곱의 아들인 잇사갈의 아들로,

야곱과 함께 애굽으로 이주했던 사람 중 하나이다(46:13). 민수기 26:24

역대상 7:1에서는 야숩으로 나온다.

 

[출처] 두란노 비전성경사전

 

 

 

(Job)

 

: 원한다

 

(1) 아라비아 우스에 사는 의인으로 큰 재산가요 자녀가 많은중에도 여호와를

    경외하였다(1:1).

(2) 여호와가 사탄에게 욥을 칭찬하셨더니 사탄이 말하기를 그가 재산이 많고

    자녀가 많아 행복된 생활중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거역할 이유가 없다고

    대답했다.

    여호와가 사탄에게 욥의 생명을 해하지 말고 무었이든 시험 해 보라 하여 재산과

   자녀를 다 잃고 자시늬 몸에는 창질이 나고 세 친구 로부터 여러가지 유혹을

   받았으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에 변함이 없었 다

    (1:8-22,4:1, 8:1,11:1<7:4-16,42:6).

(3) 그러므로 여호와가 전보다 배의 축복을 주셨다(42:12-15).

(4) 140세를 살며 자손 4대를 보고 별세하였다(42:16).

(5) 욥기를 보면 홍수시대는 기록되어 있고 소돔 고모라의 멸망사는 기록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아브라함 시대의 사람인듯 하며 저작자는 모세라하는 이도 있고

    다윗이라 하는 이도 있으며 소설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었으나 에스겔 14:14

    보아 소설이 아닌 것을 중명할 수 있다.

(6) 욥이 우리에게 보여준 것이 있으니

   심한 고난중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 지 않고. 낙심하지 않고 유혹을 받지 않고

   스스로 위로 받고. 끝까지 인내함이다 (5:11)

[출처] GODpeople 인물사전

 

 

 

엘리바스 (Eliphaz)

 

욥의 친구로 데만 사람이다(2:11; 4:1; 15:1; 22:1).

욥의 세 친구들 중 가장 연장자였던(42:7) 그는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욥이 고난당하는 것은 큰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4:7).

또 욥이 악에서 떠나면 하나님께서 그의 상태를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였다(4:12-21; 15; 22). 욥을 참고하라.

성경 속의 또 다른 엘리바스: 에서와 아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36:4; 대상 1:35).

[출처] 두란노 비전성경사전

 

빌닷 (Bildad)

 

욥을 방문했던 세 친구(엘리바스, 빌닷, 소발) 중의 한 사람이다(2:11-13; 42:7-10).

그는 아브라함의 아들인 수아의 자손일 것으로 여겨진다(25:2; 대상 1:32).

욥기 8장과 18, 25장에서 빌닷은 욥이 죄 지은 것을 인정하지 않아서 계속해서

고난당한다며 그를 책망했다. 후에 빌닷은 도리어 하나님의 책망을 받았으며(42:7),

욥의 중보기도로 용서받았다(42:8-10).

[출처] 두란노 비전성경사전

 

 

소발 (Zophar)

 

나아마 사람으로 욥의 세 친구 중 하나이다(2:11; 11:1; 20:1; 42:9). 소발은 고난

당하는 욥을 찾아가 욥은 그의 죄로 인해 그가 당하는 고난보다 더 고난받을 만한

것이라고 말하며(11; 20) 욥에게 죄를 버리라고 충고하였다.

[출처] 두란노 비전성경사전

 

 

소발 (Zophar) 거만한

 

나아마 사람이며 욥의 세 친구 중의 한 사람이다.

이 친구들은 무슨 관계로 친구가 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친절한 것만은 사실이다.

그들은 상상외의 욥의 현상을 보고 통곡하면서 7일 간이나 말을 못하였으니,

욥의 참상을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은 무엇이라고 위로할 말이 없었다. 소발은 혈기왕성한

청년으로 생각된다. 소발의 말로 판단하건대, 그는 매사에 하나님의 판단을 의지한다.

그러므로그의 말은 신앙적으로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그가 욥의 태도를 오해하여

말한것은 잘못되었다.

 

소발은 하나님의 지혜를 주장하고, 그의 무소부지(無所不知)의 총명은 악에 대하여

무관심한 듯하시지만, 모든 일의 근본을 아시고 보시고 계심을 말한다. 그는 죄인의

회개만 하면 수치와 공포는 없어지고, 환난에서 건지움을 받아 여생을희망과 안락한

가운데서 보낼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욥 자신도 회개치 않으면 악인이 받는 벌을

면치 못한다고 경고했다. 그의 주장의 근거는, 악인은 반드시 벌을 받고 의인은

반드시 상을 받는다는데 두었다.

 

따라서 그는 욥의 재난은 욥의 죄에 대한벌이라고 주장한다. 욥이 크게 번영하다가

졸지에 망한 것은, 그가 사악하여 빈자를학대하고 남의 재물을 빼앗은데 대한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라고 단정하고, 욥을 공박하였다.

악인의 번영은 일시적이요 장구치 못함과, 필경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에의하여

모든 불의의 소유물은 그의 생명과 함께 멸망하고 만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논리의 부당성을 지적하시고, 제물(祭物)을 통한 욥의

도고에 의해 그가 사유함을 받을 것을 명하셨다(2:11,11:1,20:1,42:9).

[출처] GODpeople

 

 

욥에 대한 소발의 주장

 

소발은 악한 자의 번성은 잠깐일 뿐이며 금방 사라지고 만다고 했다(20:4-9).

욥이 당하는 고난도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악을 행한 대가라는 논리였다(20).

 

이에 대해 욥은 강력히 반발했다.

자신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죄를 짓지 않았는데도 고난을 당했으며, 자신이 당한

고난의 이유는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하나님을 무시하는 악한 자들이 더

잘되고 고난당하지도 않으며 편안하게 살다가 죽는 것을 보면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이 불공평해 보인다고 토로했다(21).

 

우리는 소발보다는 욥의 주장처럼 세상을 바라볼 때가 많다.

그래서 예수님을 잘 믿으며 정직하게 사는 사람보다는 악한 사람들이 더 잘되고

부유하게 사는 것을 볼 때 욥과 같은 고민을 한다. 또 욥이 보았던 것처럼 악을

행하든 선을 행하든 한 번 죽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선을 행하다가 고난받기보다는

차라리 자기 욕심껏 살다가 죽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욥 외에 시편 73편을 쓴 기자나 하박국 선지자, 예레미야도 똑같은 고민과 질문을 했다.

그들이 얻었던 대답은 고난당하고 있는 상황과 현실에만 눈을 고정시키지 말고,

인생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라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말하면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2:4)였다.

우리는 소발과 욥의 주장을 통해 악한 꾀를 좇는 사람이 더 잘되고 평안하게 사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궁극적으로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보고 계시며(33:13)

이에 대한 심판을 예비해 놓으셨다(딤후 4:14)는 진리를 깨닫게 된다. 자신이 간절히

추구하며 중요하게 여기는 것,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버릴 수 없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이에 대해 성경은 돈이나 부귀, 명예, 성공 등은 다 사라져 버리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살 것임을 분명히 했다(요일 2:17).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후 4:18).

[출처] 두란노 비전성경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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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친구

 

세 친구가 욥을 위로하기 위해 찾아 왔습니다.

굳이 기별을 한 것도 아닌데(6:22) 남에게 소식을 듣고 득달같이 달려온 것입니다.

그들은 몰라보게 변한 욥의 몰골에 할 말을 잊고 큰 소리로 우는가 하면, 벌거벗은

채 종기를 긁고 있는 욥의 고통에 경악하며 겉옷을 찢고 티끌을 머리에 뿌리며 땅에

앉아 욥의 아픔을 같이했습니다(12). 그러나 그들의 그 순수한 우정과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그들도 결국은 욥의 진정한 위로자가 될 수는 없었습니다.

 

 

엘리바스 에서의 손자인 데만의 후손

 

욥을 향해 제일 먼저 입을 연(4:1) 엘리바스는 에서의 손자인 데만의 후손(36:11)

이었습니다. 그래서 에돔의 성이었던 <데만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욥의 고난이

죄 때문이라고 직언합니다. 엘리바스는 자신의 관찰과 경험에 많이 의존하며 마치

신학자와도 같은 논리를 전개합니다. 그는 욥의 세 친구 가운데서 가장 사려가 깊지만

<하나님은 심판을 내리신다>는 뜻의 이름 만큼이나 오직 악인들만이 고난을 당한다는

신념으로 욥의 고난 역시도 곧 그의 죄를 의미한다고 단정하며 세 개의 긴 담론을

남깁니다(4-5, 15, 22). <하나님이 너를 책망하시며 너를 심판하심이 너의 경건함

때문이냐 네 악이 크지 아니하냐 네 죄악이 끝이 없느니라>(22:4-5).

 

 

빌닷 아브라함과 그두라의 아들 수아의 후손

 

빌닷은 엘리바스에 이어 두 번째로 욥에게 말한 친구입니다. 그는 수아 사람으로

아브라함이 그두라에게서 낳은 아들 수아의 후손인 듯한데(25:2), 그도 역시 세 개의

긴 담론으로(8, 18, 25) 욥에게 충고합니다. 빌닷은 주로 전통과 역사에 근거해

말하지만 내용은 거의 엘리바스의 주장과 동일한데 그 어조는 엘리바스보다도 더

강경합니다.

 

<너는 틀림없이 죄를 지었다. 따라서 회개해야 하나님이 너의 이 모든 고통을

면케하실 것이라>는 논조입니다. 그러나 그의 논리는 <논쟁의 하나님>이란 뜻의 그의

이름만큼이나 논쟁적입니다.

 

 

소발 나아마 사람. 에돔 또는 아라비아 지역거주자

 

그는 욥에게 충고한 세 번째 친구로 나아마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아마도 에돔이나 아라비아에 거주했던 것 같습니다. 소발은 엘리바스와 빌닷보다

훨씬 더 과격합니다. 완고한 도덕주의자 혹은 교조적 근본주의자처럼 보입니다.

그는 두 개의 담론(11, 20)으로 욥을 충고하는데 추측에 많이 의존하며 때로는

무례하고 짜증스러워하며 퉁명스러운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전혀 타협할 줄을

모르는 원리주의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욥을 향해 <너는 죄를 짓고 있다.

 

당장 회개하지 않으면 네 생명이 단축될 것이라>고 위협합니다. 소발은 하나님을

매우 무자비한 분으로 이해하는 듯하며 그의 이름이 <거칠다>는 뜻이어서 그런지

그의 논조는 처음부터 몹시 강경하고 과격합니다.

 

절친이요 똑 같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이토록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와

현실과 고난에 대한 해석이 서로 다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모쪼록 이 세 친구들의 담론과 욥의 치열한 변증을 통해 사람들의 보다 다양한

관점과 신념들을 확인하며 더욱 신앙과 고난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히게 되시길 빕니다.

[출처] CTS 말씀묵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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