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굽(Egypt=이집트), 애굽왕 바로(Pharaoh), 애굽과 이스라엘의 백성 *시삭

작성자안현상|작성시간12.10.24|조회수2,338 목록 댓글 0

애굽(Egypt) = 이집트

 

 

아프리카 동북부 나일 강 유역에 위치한 나라로 오늘날까지 5000여 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고대 문명의 발상지였던 나일 강 유역은 애굽(이집트) 땅의 4%

차지하고 있는데, 전 인구의 96%가 살고 있을 정도로 인구가 집중되어

있다. 6,400km에 이르는 나일 강은 애굽의 중요한 수원(水源)이며, 강 유역은

잦은 범람으로 인해 풍부한 곡창 지대가 되었다.

 

애굽의 놀라운 건축술은 피라미드, 스핑크스 등에 나타나 있다. 보통 애굽의

(파라오)들은 사후 세계에서의 부활에 대한 준비로 왕이 되면서부터 자신의 무덤인

피라미드를 짓기 시작했는데, 그 크기는 피라미드마다 다르지만 돌 하나가 약 2.5,

피라미드 전체의 높이가 약 150m나 되는 것도 있다. 피라미드 안에는 부활 후 거할

수 있도록 시체를 미이라로 만들어 놓았으며, 아름다운 장신구들도 함께 넣었다.

 

또한 애굽 사람들은 다양한 신을 섬겼는데, 주된 신은 라(Ra), 프타(Ptah), 오시리스

(Osiris), 이시스(Isis) 등이었다. 이 외에도 풍요, 질병, 나일 강의 범람 등 자연의

능력을 나타내는 수많은 신들이 있었다.

 

출애굽과 관련해서 하나님은

 

애굽의 모든 신에게 벌을 내리리라 나는 여호와로라”(12:12)

 

고 말씀하셨고, 10가지 재앙을 통해 애굽 사람들이 섬기던 신들은 하나님 앞에서

별 능력이 없는 신들일 뿐임을 보여 주셨다(7:14-12:30).

 

 

바로(Pharaoh)

 

고대 애굽 왕들의 일반적인 호칭이다. 애굽어 프로의 음역으로 본래 커다란 집

뜻하는 단어였는데 점차 왕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구약성경에는 대략 275

정도나 이 단어가 사용되었다. 종종 애굽 왕 바로라는 표현으로도 나온다

(41:46; 7:8; 36:6; 25:19).

 

 

 

성경에 나오는 애굽의 바로들

 

아브라함의 부인 사래를 취한 바로(12:10-20)

아브라함이 거하는 가나안 땅에 기근이 들자 아브라함은 그의 부인 사래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갔다. 그때 아브라함은 애굽 사람이 사래의 아름다움을 보고 그를

죽일까봐 겁이 나서 사래를 누이라고 거짓말을 하였다. 그리고 애굽의 바로는

사래를 취해 애굽 궁으로 데리고 갔다. 이 때문에 바로의 집에 큰 재앙이

내려졌으며 바로는 사래를 다시 아브라함에게 보냈다.

 

요셉이 꿈을 해몽해 준 바로(40:1-41:57)

애굽으로 팔려간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거절하여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때 바로의 신하들의 꿈을 해몽해 준 것이 계기가 되어 후에 바로의 꿈을 해몽해

주게 되었다. 그리고 요셉은 바로의 총리대신이 되었다. 이때의 바로는 애굽으로

내려온 요셉의 가족들도 선대하였는데(47:3-12) 그는 힉소스 왕조 때의 왕

아메넴하(Amenemha) 3세로 보인다.

 

요셉을 모르는 새 왕(1:8)

이스라엘 백성들을 억압하고 핍박한 이 왕은 아마도 제 18왕조의 세 번째 왕인

투트모세(Thutmose) 1세로 생각된다. 이 왕은 요셉의 업적을 의도적으로

말살하려고 하였던 왕이었다.

 

하나님의 10가지 재앙을 겪은 바로(5:1-15:21)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요구받으며 모세와 대결해야 했던 왕은 투트모세 3세에

이어 왕이 된 아멘호텝 2세이다.

 

자기 딸을 솔로몬과 결혼시킨 바로(왕상 9:16-24)

게셀을 정복한 후 솔로몬의 아내인 자기 딸에게 그 성을 예물로 주었다.

21왕조의 왕 중 프수센네스(Psusennes) 2세로 보는 사람도 있다.

 

르호보암 왕 때의 애굽 왕 시삭(왕상 14:25-26)

이 왕은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성전의 보물과 왕궁의 보물을 빼앗아 갔다.

 

바로 느고(왕하 23:29)

 

히스기야와 동시대 인물 바로(왕하 18:21)

이때의 애굽 바로는 사바카(Shabaka)라고 추정된다.

 

메렛이 결혼한 비디아의 아버지 바로(대상 4:18)

 

바로 호브라(44:30)

 

시삭, 솔로몬의 금방패를빼앗아 간 애굽 왕’  

솔로몬 사후 5, 즉 르호보암 왕 5년에 시삭은 애굽 대군을 이끌고 유다를

침공했다(왕상 14:25; 대하 12:2-4). 유다의 요새 성읍과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점령하고 왕궁과 성전의 보물을 탈취해 갔으며(왕상 14:26; 대하 12:3-9) 솔로몬이

만든 금방패도 탈취하였다.

어떤 학자들은 애굽 왕 시삭이 유다를 침략한 것을 그의 팽창정책과 여로보암을

돕기 위한 것으로 보기도 하나 성경에서는 세력이 강해진 르호보암 왕과 백성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버린 것(대하 12:1)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 때문인 것으로 말한다

(대하 12:5-7).

 

 

애굽과 이스라엘의 백성

 

가나안 땅에 심한 기근이 들자 아브라함은 애굽으로 잠시 내려갔다(12:10).

후에 노예로 팔려 갔던 증손자 요셉은 애굽의 2인자가 되었고, 요셉과 관련해서

창세기 후반부엔 애굽 궁정에서 일어난 일들이 적혀 있다(39-50).

 

요셉은 가나안 땅에 기근이 생기자 자신의 가족들을 애굽으로 인도했고,

고센 땅에 정착하도록 했다. 이후 400여 년 동안 이스라엘 사람들은 애굽에

거주하였고, 자손이 번성하였다(1:1-7). 그리고 애굽에는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게 되자 이스라엘 사람들은 종살이를 하게 되었다.

 

때가 이르자 하나님은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져내도록 모세를 보내셨고

결국엔 20세 이상의 남자들 603550명을 포함하여(1:46) 거의 2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애굽에서 나왔다.

 

이후 애굽은 이스라엘의 역사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는데, 바로는 솔로몬에게

대항하여 반역했던 여로보암을 받아들였으며(왕상 11:26-40), 솔로몬이 죽은 후에는

유다를 공격했다(왕상 14:25-26; 대하 12:1-9). 이후에도 유다의 왕들은 애굽과

크고 작은 충돌을 하였고 요시야 왕은 앗수르 군대를 돕기 위해 출정했던

애굽 왕 느고의 군인이 쏜 화살에 맞아 죽었다(대하 35:22-23).

 

한편 이사야 선지자는 애굽을 향해

그날에 이스라엘이 애굽과 앗수르로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을 주어 가라사대 나의 백성 애굽이여”(19:25)

라고 예언했다. <비전성경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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