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사전] 감람, 감람나무, 감람유, 감람원, 감람산(올리브,Olive)
[감람, 감람나무(橄攬)]
[히] 그림참조 (zayith) [그] 그림참조(elaia)
[영] Olive(올리브).
감람은 감람나무의 열매. 길이는 3~4cm의 길쭉한 둥근 모양(타원형)으로 푸른색이다. 맛은 처음에는 쓰고 떫으나 먹을수록 단맛이 난다. 한방에서 약재로 쓰고 씨로는 ‘감람유’라는 기름을 짠다. 서양에서는 중국 감람(Chinese olive)이라고 부른다.
성서에있어서 감람으로 역된 히브리어 [자이스]는 올리브나무와 그 열매를 가리키고 있다. 노아의방주에서 날려보낸 비둘기가 물고 온 것은 이 올리브의 잎이었다(창 8:11). 이것은 평화의상징으로 되고 있다.
감람나무 꽃
올리브는 서아시아 원산으로, 일찍부터 지중해 연안에 이식되어, 올리브와 무화과는 지중해적 특징의 과실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것은 이스라엘에 있어서도 가장귀중한 과수의 하나로 되고 (출 23:11,27:20,30:24,레 24:2,신 6:11,28:4기타), 평야에서는특히 큰 숲을 이루었다(대상 27:28). 옹이가 많아서 울퉁 불퉁하게 된 줄기와 은색으로 빛나는 잎은, 팔레스티나의 특징있는 경관을 이루고 있다.
야생 올리브가 높이 2m가량 자란 때,그 줄기를 베고, 좋은 올리브의 가지를 이에 접목하는 것이 보통이다. 성장은 더디어 10-14년으로 결실을 시작하여, 30년 이상되어 완전한 수확이 얻어진다. 30-40년의 수령의 나무는높이 7m이상 자라, 1년간격으로 한 나무에 120kg의 과실이 달리고, 이것은 25ι의 올리브유(-油)가 채집되는 양이다. 9, 10월에 익어 자색으로 되고, 올리브유를 짜낸다(출 27:20). 또한생과는 소금에 절여 식용한다.
목재는 황색으로 다색(茶色)의 나뭇결이 있고, 견고하여, 닦을수가 있어서, 여러가지 공작에 사용된다(왕상 6:23,31-33). 바울은 올리브의 노수(老樹)를 젊게만들기 위해 참 올리브 나무에 야생 올리브를 접목하는 일을 인용하고 있다(롬 11:17). 이 역접목(逆接木)의 습관은 팔레스티나에는 알려져 있지 않은데, 아마도 바울은 이방인 교회의 희망을 강조하기 위해, 이러한 표현을 한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올리브 열매는 식용되는 외에도, 그 열매에서 짜낸 기름은, 관제, 약제(눅 10:34), 식용, 등화(마 25:1이하)에 씌어졌다. 제사장은 이 정결한 기름에 의해 성별되고(출 30:25,→레 4:3, 8:12, 30, 시 133:2참조), 왕은이것에 의해 기름 부어졌다. 주는 메시야(기름부음 받은자)로 불리웠다. 올리브는 변성, 축복, 미의 상징으로 되고(시 52:8,128:3,렘 11:16,호 14:6), 성서 이외에서도 올림픽 경기에서 승리자의 관에 잎이 씌어지고 있다.
* 감람목(橄攬木). [영] Olive wood. 야생 올리브 나무의 목재(왕상 6:23,31,32,33).
느8:15에서는 감람나무와 구별하기 위해 특별히 [들 감람나무](wild olive)로 역되어 있다.
→들 감람나무(野生- wild olive)
[감람유(橄攬油)]
[영] Olive oil. 감람나무의 기름. 성서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올리브유]를 말하고 있다.
감람(열매)
일반 음식물과 함께 기록되어 있는 기름은 이 올리브유이다(신 7:13,32:13,느 5:11기타). [기름]으로 역된 원어 [이챠-르 yitshar)]는, 본래는 [올리브유]를 가리키고 있는 말이다(기름, 민 18:12,신 7:13,11:14,14:23,18:4, 28:51, 대하 31:5,32:28,느 5:11,10:37,39,13:5,12, 렘 31:12,욜 1:10,2:19,24,학 1:11).
종교적인 기름부음의 경우에는 이 히브리어는 씌어져 있지 않다. [세멘@m,v, (shemen)]은 [기름진 것](사 25:6), [향기름](아 1:8)으로도 역된 말로서 보통 올리브유를가리키고, 종교적 기름부음의 경우에는, 이 히브리어가 사용되어 있다(출 25:6,왕하 9:6).지중해 세계에서는 동물질 지방의 부족을 올리브유에 의해 보충한데서, 올리브유는 [팔레스티나의 농민에게 있어서 고기와 버터에 해당된다]고 말해질 정도였다(왕상 17:12,14,16비교).
솔로몬은 히람에게 노동자의 식료품으로서 [밀 이만석과 맑은 기름 이십석을 주고 해마다 그와 같이 주었더라]고 기록되어 있다(왕상 5:11). 올리브유는 각종 식품의 조리에 사용되었는데(출 29:2,23,레 2:7), 또는 화장(신 28:40,암 6:6,미 6:15), 의약(사 1:6,겔 16:9,눅10:34,약 5:14), 이밖에도 등불에도 씌어졌다(출 25:6,민 4:9,16,마 25:3).
[감람원(橄攬園)]
[히] 그림참조 (zayith)
[영] Olive orchard성서에 있어서 [감람원]은 올리브의 과수원을 말한다(출 23:11,수 24:13,삿 15:5,삼상8:14,왕하 5:26,느 5:11,9:25).
감람원은 안식년 규정대로, 제 7년에는 갈지 않고 묵혀 두어서 백성의 가난한 자로 먹게할 것이었다(출 23:11).
삼손은 꼬리를 매어 횃불켜댄 여우 300마리를 블레셋인의 감람원에 몰아넣어 불사르게 했다(삿 15:4-5).
사무엘은 왕의 특권을 말하는데 이것을 인용하고(삼상 8:14), 엘리사의 종 게하시는 나아만에게서 은을 받아 감람원을 사서 하나님의 영광을 더럽힘으로써 문둥병으로 처벌되었다(왕하 5:26).
느헤미야는 전집잡은 감람원을 형제에게 돌려주도록 권하여, 유다 내부의 문제를 해결했다(느 5:11).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통회 기도에 이것을 인용하고 있다(느 9:25). 감람원으로 역된 히브리어는 [감람]으로 역된 말과 같다.→감람
[감람산(橄攬山)]
그림참조 (Mountof Olives) 「감람」
예루살렘 동쪽에 있는 높은 구릉으로 사무엘하 15:30에는 `감람 산 길(오르막 길)'(The ascent of Olives), 열왕기상 11:7에는 `예루살렘 앞(東)산', 에스겔 11:23에는 `성읍 동편 산', 열왕기하 23:13에는 `멸망 산', 누가복음 19:29, 21:37, 사도행전 1:12에는`감람원이라 하는 산' 그리고 느헤미야 8:15에는 단순히 `산'이라고 하였다.
오늘날 아랍 이름은 제벨에 둘(Jebel et-Tur=주요한 산, 즉 聖山의 뜻)이라고 한다. 구약성경에서 `감람 산'이라는 이름은(삼하 15:30) 스가랴 14:4에 나오는 정도이다. 다윗은 압살롬의 난을 피할 때 이 산을 넘었다(삼하 15:30,32,16:1).
솔로몬은 이 산에 산당을 지었으나(왕상11:7,삼하 15:32과 비교), 요아스는 이를 파괴하였다(왕하 23:13-). 느헤미야 시대에는 이 산에 많은 나무가 무성하였다(느 8:15,슥 14:4,겔 11:23비교). 그러나 주 예수의 생애와 이 곳과의 관련에 대해서는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마 21:1,24:3,26:30,눅 21:37,행1:12).
(1) 위치와 개관:감람 산은 중앙·남팔레스틴을 남북으로 달리는 산맥의 일부의 길이 약 4㎞의석회암의민둥산이다. 게드론(기드론)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예루살렘의 동쪽에 있다.그 동쪽은 여리고와 요단 계곡으로 경사하고 있다.
산은 세 개의 산정으로 되어 있다.
그 첫째는 예루살렘 동북쪽에 있으며, 가장 높아 표고 814m, 종종 스코파스 산(Mount Scopus)이라고 불리우고 있다.
두번째는 하람 에슈 셰리프(Haram esh-Sherif)이다. 스코파스 산과의 사이에는 움푹 파인 곳이 있다. 여기에는 `가블엣 둘'(Kafr et-Tur)이라는 동리가 있다. 아랍인는 `제벨 엣 둘'(Jebel et-Tur)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시리아어의 Tur Qedisho `聖山'에서 온 말이다. 이 지명은 각양 각파의 그리스도 교회나 기념 건축물이 이 부근에 세워진데서 연유하고 있다.
세번째 것은 아랍어로 `졔벨바든 엘 하와'(Jebel Bat^n el-Hawa)라고 불리우는 것인데, 현재 예루살렘에서 여리고행 가도가 이것과 제벨 엣 둘 간의 산등성이를 가로지르고 있으며, 그 기슭을 게드론 골짜기가 동남쪽 사해 방면으로 우회하고 있다. 셋 중에서 이것이 제일 낮으나, 셀완(Selwan) 동리 바로 위에 있으며, 가나안의 옛날 유적이나 산당 남쪽에있는 다윗 시대의 예루살렘 등을 전망할 수 있다. 이 산 전체에 퍼져있던 감람나무 숲에 연유하여 `감람산'이라고 불리웠다.
탈무드(Talmud)에서는 `향유의 산'(har hammishah), 현대 아랍어로는 `둘 자이다'(Tur Zaita)라 불리우고있다. 그러나 오늘날 감람나무는 거의 볼 수 없고, 산 측면은 황량한 느낌을 주며, 군데군데유대인의 무덤이 보일 뿐이다.
(2) 구약성경에서:두 번 나오는데,
그 하나는 압살롬의 반란에 의해 낙향을 한 다윗 왕이트란스 요단에 일시적으로 피난하는 도중 이 산길을 올라갔다(삼하 15:30). 이 길은 `오르막길'인데, 바위를 까내어 만든 폭이 넓고 계단식으로 된 가파른 길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산정에는 예배하는 곳이 있었다(삼하 15:32). 이것은 놉(Nob)의 성소와 동일시되고 있으나, 어디에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또 다윗은 감람 산의 동쪽에 있는 바후림 동리를 지나갔는데(삼하 16:5), 이것은 여리고에 이르는 구가도(舊街道)의 북쪽에 있는 라스 엣 드넴(Ras et-Tmim)과 동일시되고 있다.
또 하나 언급되고 있는 곳은 스가랴의 예루살렘 멸망의 예언(슥 14:4)이다. 또 솔로몬의 이단의 아내들이 수입한 우상 예배가 행해진 `예루살렘 앞(東) 멸망 산'(왕하 23:13과 왕상 11:7비교)이 셀완 동리 윗쪽에 있는 감람 산의 남쪽봉우리와 동일시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아마 hyjiv]m'(mashit, 멸망)과 hj;v]mi(mishah, 향유)의 혼동에서 온 것으로 보는 학자도 있다. 탈무드에서는 민수기 10:1-10에 있는 붉은 암송아지를 불살라 재로 만들고 몸을 물로씻는 의식이 산당의 동쪽 문을 마주 바라보는 이 감람 산에서 행해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 산과 산당은 다리와 오솔길로 이어지고, 산 봉우리에서는 달을 세이기 위한 신월(新月)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의 봉화가 올랐다.
(3) 신약성경에서:감람 산은 예수의 지상 생활, 특히 최후의 일주일에 있어서 극히 밀접한관계를 가진다. 사도행전에 의하면, 이 곳은 승천에 앞서 부활의 주와 제자들이 회합한 장소이다. 이 산의 이름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의 기사에 나온다.
예수님과 그 제자들은 감람산의 동쪽에 있는 베다니 동리에서 출발하여 벳바게로 갔다. 복음서 이야기에 의하면, 벳바게는 산 봉우리 가까이에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데, 아마 가블 엣 둘 아니면 그 주변이었을 것이다(마 21:1,막 11:1).
군중이 `호산나'라고 외치면서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환영한 것은 이 산의 내리막 길이다(눅 19:37,38). 예수님이 이 산을 넘어왔을 때, 예루살렘의전 시가가 느닷없이 한 눈에 들어오자, 예수님은 이 도성을 위해 울었다(눅19:41-44). 스가랴의 예언(슥 14:1-5)과 호응(呼應)하는 예루살렘 멸망과이 세상 끝날에 관한 예수님의 예언은 여기서 행해졌다(마 24:3,막 13:3,4,눅21:5-).
마지막 유월절을 보낸 후 예수님은 감람 산으로 들어갔다(마 26:30,막14:26). 요한복음 8:1-11의 간음한 여자 이야기의 무대도 여기이다. 공관 복음서도요한복음과 같이 예수님의 체포 전 일주일은, 낮은 성전에서 보내시고, 밤은 감람 산에서 보내셨다고 기록하고 있다(눅 21:37). 그러나 밤에 예수께서 지난 곳이 실제로 어디였는지는분명치 않다. 또 부활 후 예수님과 제자들의 최후의 회합은 이 산 아니면 그 근처라고 짐작된다(눅 24:50,행 1:12).
(4) 기독교의 성적(聖蹟)으로서:엘리오나(Eleona) 교회당(바자리가)이 연대적으로는 최고(最高)의 것이다. 이것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기 전에 제자들을 가르치시고, 승천하는날 아침 그들과 회합한 장소로 여겨지는 작은 굴 위에 AD 325년에 건축이 시작된 것이다.
614년 바사군에게 파괴되었으나, 그 기부(基部)의 일부가 가블 엣 둘 동리 남단의 프랑스 갈멜과 수도원의 부근에서 발굴되었다. 중세기에 순례자들은 엘레오나를 주기도를 가르쳤다고믿어온 작은 예배당으로 인정하게 되고, 또 후에 이르러 사도신경도 여기서 작성되었다고믿었다.
375년 경 제벨 엣 둘 산정의 승천한 장소로 보이는 곳에 팔각형의 교회를 세웠다.이것은 십자군의 손에 의해 재건되었으나, 13세기에 이슬람 교도의 손에 들어갔다.
오늘날은 팔각형의 기초부와 중앙 성당 외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으나, 이 중앙 성당은 민간 전승(傳承)에 의하면, 예수께서 승천한 바로 그 지점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돔과 출입구 부근의첨탑은 완전히 이슬람교도의 손으로 개조되어 있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산기슭에 있는 겟세마네의 위치는 잘 알고 있다. 발굴에 의해 두 개의 교회가 부분적으로 겹쳐져 발견되었다.아랫 쪽의 낡은 교회는 4세기 말의 것인데, 동산에서 예수께서 기도한 장소의 기념으로서세워졌으며,
614년 파괴되어 십자군에 의해 재건되었지만, 그 위치가 조금 어긋나버렸다.
14세기에 파괴되어 1924년 새로 건축되기까지는 그 부근의 작은 굴이 예수께서 고민하신 장소로 되어 있었다. 455년 경 예수의 모친 마리아의 무덤이라고 믿어진 곳에 교회가 세워졌으나, 바사인에게 파괴되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대해 운 곳으로서 겟세마네에서 엣 둘로통하는 도로의 남쪽에 있는 교회가 그 곳이 아닌가 생각된다. 또 엣 둘의 서북쪽에 있는 감람나무 숲은 민화(民話)로서 전해지고 있는 바에 따르면, 제자들이 주의 승천 후 갈릴리사람들이여라고 외친 곳이라고 한다.
* 출처:인터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