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바울(Paul) : 교회의 핍박자, 다메섹도상의 회심, 1,2,3차 전도여행의 주요 일정과 주요사건, 로마행과 죽음

작성자안현상|작성시간12.12.04|조회수537 목록 댓글 0

바울(Paul)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의 의미를 해석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공헌을 한 신약 시대의

인물이다. “대머리와 휜 다리에 눈썹은 서로 맞닿고 코는 매부리에 단신의 다부진

체구를 가진 호감에 찬 사나이, 그는 인간의 모습에 천사의 얼굴을 가진 자이다.”

이것이 2세기 바울과 테크라의 행적’(The Acts of Paul and Thecla)이라는 한

외경에 묘사된 바울의 인물 스케치이다.

 

한때는 기독교의 핍박자였던 그가 다메섹에서의 회심을 통해 신약성경의 방대한

부분을 기록한 성경의 저자요 위대한 신학자로, 노련한 목회자요 설교자로,

유대인 공동체의 울타리를 넘어 이방 세계로 나아간 선교사가 된 그의 삶 자체가

하나의 메시지다. 바울에 대한 이해는 그가 활동했던 AD 1세기 유대- 헬라의

문화적 배경을 이해함으로써 더 잘 이해될 수 있다.

 

유대인으로서의 바울

: 바울은 비록 헬레니즘의 영향 하에 있던 다소에서 태어나기는 했으나 엄한

유대교 관습에 따라 유대교 집안에서 자라났으며(3:5), 자신의 유대교적인 전통을

자랑으로 여겼다(9:3; 11:1).

 

그래서 그는 자신을 자랑스럽게 내가 팔 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히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3:5-6)라고 소개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바리새인이 되기 위해서는 율법에 정통한 랍비의 문하생이 되어 철저히

율법을 공부해야만 했는데, 바울은 당시 가장 유명했던 힐렐 학파의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했다.

 

바울 자신이 나는 내 동족 가운데서 나와 비슷한 나이의 많은 사람보다 유대교에서

앞서 있었으며, 내 조상들의 전통을 지키는 일에도 훨씬 더 열성이었습니다

(1:14- 표준새번역)라고 한 것을 보면 그가 유대교에 얼마나 열심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유대적 배경을 자랑하는 자들에 대해서도 바울은 저희가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저희가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저희가 아브라함의 씨냐

나도 그러하다”(고후 11:22)고 말했다.

 

기독교 박해자로서의 사울

: 바울이 바리새파 랍비 교육을 받은 후 초창기 기독교 운동 박해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3:6; 1:13-14, 23; 고전 15:9).

누가는 스데반 집사가 순교하던 현장에 있었던 사울(바울)청년으로 묘사하고

있는데(7:58), 이때 사용된 청년의 헬라어 네아니아스’(neanias)는 적어도

25세에서 35세 미만의 사람을 가리킨다고 볼 때 사울은 이미 정규적인 바리새파의

랍비 교육을 거의 끝내고 유대교 회당에서 율법을 가르치는 교사의 위치에 있었을

것이다.

 

사울은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겼을 뿐만 아니라

(8:3) 회당에서 그들을 때렸으며(22:19), 심지어 그들을 죽이기까지 했다

(22;4; 26:10).

 

사울은 회심한 이후 그의 서신에서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핍박하여 잔해하였다고

고백했다(1:3). 여기에 쓰인 잔해하다의 헬라어 폴데오’(poltheo)는 강하고

거센 폭력을 동반하는 잔악한 행동을 가리킨다. 특별히 이 단어가 핍박하다라는

헬라어 디오코’(dioko)라는 말과 함께 미완료시제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은 그 당시

사울의 교회 핍박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계속되었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사울은 예루살렘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것만으로 부족해

다메섹으로 도망간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기 위해 예루살렘 대제사장으로부터

공문을 받아 다메섹으로 내려가기까지 했다(9:1-2).

 

다메섹에서 회심한 바울

: 사울은 교회를 핍박하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 회심하게 된다.

그의 회심을 다루고 있는 세 본문(9:1-9; 22:6-16; 26:12-18)에서 공통적인 것은

사울이 하늘로부터 온 밝은 빛을 보았다는 것과 그가 땅에 엎드러졌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그리스도임을 밝히는 음성을 들었으며, 눈이 멀었다는 사실이다(세 번째

기사에서 바울이 장님이 되었다는 기록은 없다).

 

이를 계기로 그의 삶은 전적으로 변화되었다. 그가 그처럼 핍박했던 그리스도를

자신이 증거하며,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자신의 사명으로 받아들이고,

심지어 율법의 역사와 대조를 이루는 이신칭의(以信稱義)를 주장하는 자로 바뀌게

되었다.

 

이와 같은 급작스런 변화는 학문, 깊은 사상, 토론, 논쟁 등의 결과로써 점진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다메섹 도상에서 순식간에 발생한 것이었다. 바울의 이러한

회심은 다메섹 도상에서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울에게 나타나셨다는 사실로서만

설명 가능하며, 그 외의 어떠한 해석도 바울의 회심을 설명하기에는 불충분하다.

 

회심 직후의 바울과 초기 사역

: 바울은 회심한 즉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아로 증거했다(9:19-22).

이로 인해 회개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를 반대하는 유대인들도 있었으므로

다메섹을 떠나지 않으면 안되었다(9:25). 바울의 아라비아 생활이 사도행전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갈라디아서에서는 언급되어 있다(1:17). 언제 갔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간 것은 분명하다. 이것을 토대로 그의 행적을

추적해 본다면, 다메섹에서의 복음전도, 아라비아로의 도망, 다메섹으로의 복귀 후에

예루살렘으로 갔을 것이다(9:26).

 

갈라디아서와 사도행전에 따르면, 바울은 그 후 3년만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베드로와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를 만났으나(1:18), 헬라파 유대인들의 반대로

그곳에 오래 머물 수가 없었다. 그들을 피해 사울(바울)은 출생지인 길리기아

지역에서 약 10년간의 침묵기를 보낸 것으로 보인다. 그때 안디옥 교회의 목회자인

바나바의 부름을 받고 그와 함께 안디옥 교회를 목회하게 되었다(2; 11:25 이하).

 

바울의 1차 전도여행

: ‘예루살렘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전파되던 복음이 땅 끝까지로 확산되는

분수령을 이루는 곳이 사도행전 13장이다. 즉 바나바와 함께 바울이 안디옥 교회로

부터 파송을 받음으로 시작된다. 그들을 따로 세우라고 하신 분은 성령님이신데

(13:2) 그들에게 손을 얹은 후에 떠나 보낸 것은 교회였다(13:3).

 

일정:

안디옥 실루기아(13:4) 구브로의 살라미(13:4) 바보(13:5-6)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13;13) 비시디아 안디옥(13;14) 이고니온

(13:50-51) 루스드라(14:5-6) 더베(14:20) 루스드라, 이고니온,

안디옥(14:21-23) 버가, 앗달리아(14:25) 안디옥(14:26-28)

 

주요 사건들:

*바보(Paphos)의 총독 서기오 바울의 회심(13:12)

- 이방인들에 대한 바울의 직접적인 접근은 1차 전도여행의 혁신적 발전으로 볼

수 있다(이 즈음에 사울이 바울로 그 이름이 바뀜; 13:9).

*밤빌리아의 버가에서 요한 마가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감(13:13)

- 이 사건은 바울을 크게 실망시켰다(15:38).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행한 바울의 설교가 처음으로 요약된 형태로 기록됨

(13:16-41).

*루스드라에서의 디모데의 회심

- 바울의 1차 전도여행의 기록에는 나오지 않고 있으나 두 번째 루스드라를

방문했을 때(16:1) 디모데는 이미 형제들로부터 칭찬을 받고 있던 인물이었으며

(16:2), 바울은 그런 디모데를 데리고 전도여행을 떠났던 것이다(16:3).

바울의 1차 전도여행의 가장 큰 성과 가운데 하나는 바로 디모데의 회심일 것이다.

 

바울의 2차 전도여행

: 예루살렘 공회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안디옥을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15:36). 바울의 두 번째 전도여행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사건은 복음의

씨앗이 처음으로 유럽 땅에 심기워졌다는 것이다.

 

일정:

안디옥 더베, 루스드라(15:40-16:1) 드로아(16:6-8) 빌립보

(16:11-12) 데살로니가(16:40-17:1) 베뢰아(17:14-15) 아덴,

고린도(18:1) 에베소(18:18-19) 예루살렘(18:21-22) 안디옥

(18:22)

 

주요 사건들:

*마가를 데리고 가는 문제로 바울과 바나바의 의견 대립이 생김(15:37-39)

-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로,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떠났다(15:39, 41).

*루스드라에서 디모데가 전도 일행에 합류함(16:3).

*드로아에서 마게도냐 사람의 환상을 봄(16:8-10).

*빌립보에서 두아디라 성의 자주장사 루디아가 회심했으며(16:14), 빌립보 감옥의

간수와 그 온 집안이 세례를 받음(16:33).

*데살로니가에서의 3주 이상 체류 및 전도활동(17:2).

*신사적이고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는 베뢰아 사람들의 회심(17:12).

*아덴에서의 아레오바고 설교(17:22-31).

*18개월 동안의 고린도 사역

-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와의 동역(18:2-3), 경건한 이방인 디도 유스도 집에서의

사역(18:6), 바울의 전도활동이 로마법에 의해 보호받음(18:12-18).

 

바울의 3차 전도여행

: “안디옥으로 내려가서 얼마 있다가 떠나”(18:22-23)라는 표현으로 볼 때

2차 전도여행과 3차 전도여행간의 시간 간격은 별로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세 번째 전도여행에서 가장 중요하게 언급된 내용은 에베소에서의 사역이다.

 

일정:

안디옥 갈라디아(18:22-23) 브루기아, 에베소(19:1) 마게도냐,

고린도일 것으로 추정되는 헬라(20:1-2)마게도냐(20:30) 빌립보,

드로아(20:6) 미둘레네, 사모, 밀레도(20:13-15) 고스, 로도, 바다라,

두로(21:1-3) 가이사랴, 예루살렘(21:7-15).

 

주요 사건들:

*장기간에 걸친 에베소에서의 사역

- 세례 요한의 세례만을 받은 제자들에게 안수하자 성령이 임한 사건(19:1-7),

2년 동안에 걸친 두란노 서원에서 말씀 사역(19:9-10), 은장색 데메드리오의

극렬한 반대(19:23-41).

*드로아에서 강론할 때 유두고라는 청년이 졸다가 3층에서 떨어져 죽자 다시 살려줌

(20:7-12).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과의 눈물겨운 작별인사를 나눔(20:17-37).

*가이사랴에서 빌립의 집에 머물고 있을 때 선지자 아가보가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붙들릴 것을 예언함(21:11).

 

로마에서의 바울과 그의 죽음

: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의 고소로 체포되어 가이사랴 빌립보에 이송되어

2년 간의 감금 생활을 하게 되었다(22-26). 이때 바울이 교회의 지도자라는

점을 이용해 뇌물을 받으려 했던 벨릭스 총독에 의해 재판이 연기되다가 결국

로마로 소환을 받게 된 바울은 그의 후임자 보르기오 베스도에게 넘겨진다

(24:27). 베스도는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그들로 하여금 바울을 재판하게

하려 했으나, 바울은 로마 시민으로서 가이사에게 호소했다(25:9-10).

 

로마로 이송되는 도중에 유라굴로 광풍을 만나 난파하게 되고 멜리데 섬에서

겨울을 났다. 누가는 바울이 봄에 로마로 압송된 후 이태를 자기 셋집에 유하며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28:30-31)고 기록하면서 사도행전을 마감하였다.

 

로마에 거주한 지 2년 후에는 바울이 무엇을 했는지, 또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다. 교회의 전승에 의하면, 바울은 AD 63년경에 석방되었고,

그리고 다시 체포되어 네로의 손에 죽임을 당하기 전에 서바나(스페인)와 에게 해

지역을 방문했을 것으로 본다(AD 67년경). 클레멘트 1, 무라토리 정경 및 외경의

베드로행전은 바울의 서바나 여행을 입증하고 있고, 또한 바울의 로마 1차 감금에서

풀려난 후에 기록되었을 것으로 보는 목회서신들은 사도행전에 기록된 것 이후의

소아시아 지방과 그리스도 지방에서의 사역을 암시하고 있다(2:19, 24; 1:5;

딤후 4:20).

 

디모데후서 4:7-8은 바울 자신의 삶에 대한 가장 적절한 고백인 동시에 설명이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딤후 4:7-8).

 

신학자로서의 바울

: 일반적으로 바울을 신약 교회가 낳은 가장 위대한 신학자로 보고 있지만, 최근에는

바울 신학 자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많다. 즉 전통적으로 생각해 왔던

것처럼 바울에게 신학자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지, 그리고 그에게는 과연 그만의

신학이 있었는지에 대한 문제 제기이다. 사실 바울은 신학이라는 이름을 붙인

한 권의 책도 쓰지 않았다. 단지 역사적 정황에 처해 있었던 교회들과 개인들에게

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헬라어로 써서 보낸 서신들이 전부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들이 바울 신학 자체를 무효화시키지는 못한다. 비록 그의

신학적 가르침들이 서신들이 보내진 역사적 상황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으나,

그 편지들은 바울 자신의 통일성 있는 신학을 보여 주고 있는 것들이다. 즉 바울의

신학을 단지 상황의 산물로 보기보다는 오히려 각 서신들이 쓰여지기 전에 이미

바울 자신의 신학이 있었다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일 것이다. 따라서 역사적 정황성을

가진 바울의 서신들에서 바울의 통일성 있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각각의 서신들을

통해서 그 배후에 자리잡고 있는 바울의 신학을 더듬어 볼 수 있으며, 이는 다시

개별 서신을 보다 깊이 이해하게 만든다.

 

사실 바울 서신들에 나타난 그의 신학은 사역 현장에서 받은 계시와 전승으로서의

복음에 대한 구체적인 해명이요 적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그는 복음의

충실한 해석가이지 복음의 창시자는 아니다. 즉 그가 받은 복음이 그의 신학을

결정한 것이지 그의 신학적 사고가 그의 복음을 결정한 것은 결코 아니다.

 

[출처] 두란노비전성경사전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 센터로 신고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