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 1장 1절-11절:에스라,바벨론포로기,세스바살,스룹바벨,고레스,바사

작성자안현상|작성시간12.12.14|조회수525 목록 댓글 0

[여의도침례교회-오늘의 경건말씀]

2012.12.14() 에스라 11-11

 

1 바사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2 바사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3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 그는 예루살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4 그 남아 있는 백성이 어느 곳에 머물러 살든지 그 곳 사람들이

  마땅히 은과 금과 그 밖의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주고 그 외에도

  예루살렘에 세울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예물을 기쁘게 드릴지니라

  하였더라

5 이에 유다와 베냐민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을 받고 올라가서 예루살렘에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고자 하는 자가 다 일어나니

6 그 사면 사람들이 은 그릇과 금과 물품들과 짐승과 보물로 돕고

  그 외에도 예물을 기쁘게 드렸더라

7 고레스 왕이 또 여호와의 성전 그릇을 꺼내니 옛적에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옮겨다가 자기 신들의 신당에 두었던 것이라

8 바사 고레스가 창고지기 미드르닷에게 명령하여 그 그릇들을

  꺼내어 세어서 유다 총독 세스바살에게 넘겨주니

9 그 수는 금 접시가 서른 개요 은 접시가 천 개요 칼이 스물아홉 개요

10 금 대접이 서른 개요 그보다 못 한 은 대접이 사백열 개요 그밖의

  그릇이 천 개이니

11 ", 은 그릇이 모두 오천사백 개라 사로잡힌 자를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갈 때에 세스바살이 그 그릇들을 다 가지고 갔더라"

    

 

에스라(Ezra)

 

대제사장 아론의 후손이며(7:1-5), 율법의 학사였다(7:5-6; 8:1). 또한 그는 바벨론에서의

2차 포로귀환 때 백성들을 이끌었던 훌륭한 지도자였다(7:7; 8:1). 그는 예루살렘으로 떠나기

전에 먼저 금식을 선포하고 기도했다(8:21-23). 예루살렘에 도착한 후, 에스라는 이방 여인들과

결혼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발견하였는데, 이에 대해 에스라가 먼저 회개하고(9:1-15)

나머지 백성들도 함께 회개했다(10:1). 에스라는 또한 잘못된 결혼으로 얻은 아내와 아이들을

내보내도록 했다(10:3). 성전이 완성된 뒤 에스라는 백성들에게 말씀을 읽고 설명도

해주었다(8:1-8).

 

성경 속의 또 다른 에스라:

1.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함께 포로에서 돌아온 제사장이며, 족장이다(12:1).

2. 유다의 자손이다(대상 4:17).

3. 에단, 헤만의 조상으로 시편 88, 89편의 제목에는 에스라인으로 나와 있다(88, 89).

 

 

에스라의 성격과 믿음

에스라서에는 이 책의 저자인 에스라의 성격과 믿음이 잘 드러나 있다. 먼저 에스라는 귀환하기 전에

아하와 강가에서 금식을 했으며 헌물을 준비했다(8:21-23). 그는 큰 일을 앞두고 먼저 하나님

앞에 무릎꿇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또한 이때 에스라는 많은 헌물로 인한 강도의 위험에

대해 군사적인 호위를 받지 않았는데, 이는 하나님의 보호를 믿는다고 하면서 군사적인 도움을

받다는 것은 믿음 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8:22).

또한 에스라는 죄에 대해 민감했다. 이는 백성들이 이방 여인과의 혼합 결혼을 통해 지은 죄를

공개적으로 고백하며 하나님께 재헌신하도록 촉구했던 모습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9:5-10:16).

에스라는 70여 년 간의 포로 생활로 인해 잊혀진 율법을 다시 가르치고, 희미해진 여호와 신앙을

재고취하며 백성들 안에 퍼져 있는 이교적인 요소들을 제거하여 회개를 촉구하는 일을 자신의

사명으로 알고 일했던 하나님의 사람이었다(7:10).

 

역사 속의 바벨론 포로기

바벨론 포로를 수용소 감금이나 대학살로 보는 것은 잘못된 시각이다.

바벨론 포로는 일종의 재정착으로, 이스라엘 포로들은 바벨론에서 낮은 계급의 자유인과

같은 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유대인 중 많은 수가 텔 아비브(Tel Aviv) 지역의 주요한 관개 수로인 그발 강 (Kebar) 곁의

바벨론 도시 근처에 정착하게 되었는데, 그 이름을 기념해서 현대 이스라엘의 항구 도시

텔 아비브 (Tel Aviv)의 이름이 지어지기도 했다.

포로 기간 동안 유대인 포로들은 자신의 집과 곡식을 재배할 수 있는 땅을 가졌으며(29:4-7;

8:1; 12:1-7), 나름대로의 제사장, 장로, 선지자들이 활동하고 있었던 것 같다.

비록 일상적인 생활은 유지하고 있었을지 모르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떠나 있는

상태였기에 그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예레미야 애가에 담긴 애가들은 바로 이러한

슬픔이 표현된 노래였다.

 “내 눈의 흐르는 눈물이 그치지 아니하고 쉬지 아니함이여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살피시고

  돌아보시기를 기다리는도다 나의 성읍의 모든 여자를 인하여 내 눈이 내 심령을 상하게

  하는도다”(3:49-51).

 

 

바벨론 포로에서 일어난 일

 

모세는 신명기에서 만약 하나님의 백성이 범죄한다면 그들의 땅에서 뿌리를 뽑히게 될 것이며

여러 나라들 가운데 흩어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28:15-68). 실제로 바벨론에서의 포로 생활은

이 예언이 성취된 것이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축복이었다. 바벨론 포로기간을 통해 히브리인들은

그 동안의 우상숭배를 버릴 수 있었고, 성경에 신앙의 초점을 맞추게 되었으며, 성경연구와

예배의 장소인 회당을 통해 신앙이 부흥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을 징계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던 바벨론도 이사야 13:19-20에 예언된 것과

같이 궁극적으로는 폐허가 되었고, 힐라(Hillah)에 있는 유대인 마을을 제외하고는 완전히

역사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세스바살(Sheshbazzar)

 

바사 왕 고레스에 의해 유다의 총독으로 임명되었던 사람이다(5:14). 그는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때 고레스 왕의 고지기 미드르랏으로부터 성전 기명들을

넘겨받아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왔다(1:8, 11; 5:14, 16).

바벨론 식 이름을 갖던 당시의 상황(1:7)과 역사가 요세푸스의 견해에 따라 세스바살

스룹바벨의 바벨론 식 이름이라는 주장도 있으며 유다 왕 여호야긴(여고냐)의 아들 세낫살

동일 인물로 추정하기도 한다(대상 3:18).

 

스룹바벨(Zerubbabel)

 

스룹바벨은 바사 왕 고레스의 허락으로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함께 포로지에서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유대 총독이다(2:1-64). 그는 여호야긴 왕의 손자로 브다야의 아들이다(대상 3:19).

스알디엘의 아들로도 나오는데(1:12) 스알디엘이 조카인 스룹바벨을 아들로 삼았거나

스알디엘이 죽은 후 동생 브다야가 결혼해서 낳은 아들이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는 므술람, 하나냐, 하스바, 오헬, 베레갸, 하사댜, 유삽헤셋의 아버지이다(대상 3:19-20).

레사, 아비훗의 아버지로도 기록되었으며 예수님의 족보에 기록되어 있다(1:13; 3:27).

스룹바벨은 학개를 통해 하나님의 종이라는 칭호를 들었으며 하나님의 날에 인을 삼을

것이라는 말씀을 들었다(2:23). 이러한 스룹바벨은 친히 종의 신분으로 오시는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인물이었다(2:7). 또한 그가 하나님의 영광이 머무르는 성전을 다시 지었던

것에서 그는 참 성전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사람이었다(2:18-22).

 

스룹바벨의 업적

1차 귀환 지도자로 포로지에서 귀환한 후 하나님의 단을 만들고 제사 제도를 회복하였으며

(3:2-3) 율법의 규례대로 초막절을 지켰다(3:4-6). 성전 재건을 시작했으나(3:7-13)

여러 반대로 다리오 2년까지 성전 재건을 하지 못하였다(4:1-24). 그 후 다리오 왕 2년에

중단되었던 성전 재건을 다시 시작하였고 학개와 스가랴의 격려 가운데 다리오 왕 6년에

성전 재건을 완성하였다(5:1; 6:13-15).

 

 

미드르닷(Mithredath)

 

1. 바사 왕 고레스의 창고지기이다(1:8).

2. 스룹바벨과 이스라엘 백성이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려고 하자 이를 반대하는 글을

   아닥사스다 왕에게 올렸던 바사의 관리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4:7).

 

 

바사(Persia)

 

BC 6세기 중엽 발흥한 나라로, 오늘날의 이란에 해당된다.

전성기 때 바사(페르시아)의 경계는 동쪽의 인더스 계곡, 서쪽의 애굽, 남쪽의 티그리스 강,

북쪽의 카스피 해였다. 바사는 이란의 우르미아 호 남부에 살던 아리아 인종 유목민들이

남쪽의 파르수마슈에 이주하여 정착하게 되면서 세워졌으며, 4세기 중엽 마게도니아의

알렉산더에게 패할 때까지 서남 아시아 지역을 차지했던 중요한 나라였다.

바사인들은 인도 유럽계의 신화를 수용하여 신화를 만들어냈으며, 선과 악, 광명과 어둠의

이원론을 근거로 한 조로아스터 교를 믿었다. 바사 제국 시기에 바벨론에서의 포로 귀환,

예루살렘 성전 재건, 예루살렘 성벽 수축,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개혁 등의 일이 있었다.

 

성경 속의 바사 왕들:

성경에 언급되는 바사의 왕으로는 고레스, 다리오, 크세르크세스, 아닥사스다 등이 있다.

 각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고레스(BC 539-530):

바사 제국의 기틀을 잡은 왕으로, 바벨론, 메대, 리디아 등을 정복했다.

칙령을 내려 바벨론으로 잡혀왔던 유대인들의 귀환을 허락했다(대하 36:22-23; 1-6;

44:28; 45:1; 10:1). 느부갓네살 왕이 빼앗은 성전 기물을 돌려 보냈고 스룹바벨을

예루살렘에 보냈다. 그는 피정복민들에게 관대한 정치를 했으며, 바사 내에 속하게 된

여러 나라들의 종교나 관습에도 간섭하지 않았다.

 

다리오(BC 522-485):

바사 제국이 가장 번성했던 시기의 왕으로, 영토를 넓게 확장했다. 그는 수도였던 수사와

소아시아의 사르디스를 잇는 도로를 건설하여 평상시엔 상업적인 교역로로 사용했고

전시에는 수송로로 이용했다. 또한 금화 등 화폐를 제조하여 상품 유통을 활발히 했다.

성경에서 그는 바사의 재정을 사용하여 예루살렘 성전을 완성하도록 했다(4:5; 5:6-7;

12:22; 1:1; 1:1).

 

크세르크세스(BC 486-465):

그리스와의 전쟁을 시도했으나 실패했으며 재위 기간 중에 영토를 많이 빼앗겼다.

성경에서 그는 아하수에로 왕으로 기록되어 있다(에스더서). 에스더의 남편이었던

그는 유대인들을 멸하려던 하만의 음모로부터 그들을 보호해 주었다(8-10).

 

아닥사스다(BC 465-424):

성벽 재건 공사를 중단시켰던 그는 느헤미야의 간청을 받아들여 그를 유대 총독으로

임명하고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도록 했다. 에스라,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도록

허락해 주었다(7:1, 21-26; 2:1-8).

 

 

고레스(Cyrus)

 

안샨 왕 캄뷰세스 1세의 아들로 바사(페르시아)의 초대 왕이다(BC 559-530).

메대 바사를 통일하고 바벨론을 정복하여 그 당시 최대의 영토를 차지한 왕이었다.

고레스의 정복정책은 앗수르와 달리 정복민족의 전통을 존중하고 종교의 자유도

인정하였다(1:3-4). 이러한 정책의 일환으로 바벨론 포로였던 이스라엘 백성을

이스라엘 땅으로 귀환하게 했으며 성전도 재건축하도록 허락했다(1:2-4).

고레스의 조치는 이미 오래 전 이사야 선지자에 의해 전해진 예언의 성취였다(44:24-28;

45:1-13). 이사야는 고레스에 대해 그는 열국을 정복하고 예루살렘과 성전을 회복할 자이며

(45:1), 기름 부음을 받은 자요 이스라엘을 해방시킬 목자라고 예언했었다(44:28; 45:1).

에스라도 이런 고레스에 대한 예언의 성취에 대해 기록하였다(1:1-2; 3:7; 4:3).

 

[출처] 두란노비전성경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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