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사전] 고레스 (Cyrus 키루스/태양) 바사(페르시아제국) 나라의 초대왕.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예루살렘 귀환을 명한다. 하나님의 종. 하나님의 목자.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내 목자라 그가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네 기초가 놓여지리라 하는 자니라” <사44:28>
고레스 왕의 비문. 여호아 하나님의 계획에 도구로 사용된 하나님의 종
고레스 왕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귀환시키고 성전을 건축하게 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그림참조 (Cyrus) 「태양」
바사나라의 초대왕(BC 546-529 재위)인데 여호와께서는 고레스 원녀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켜온 나라에 조서를 내리고 공포하여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게 하셨다.
그리하여 유다, 베냐민 족장들 그리고 레위사람들이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마음이 감동되어 금은 보물과 짐승 기타 예물을 즐거이 드려 여호와의 전건축에 다 일어났다.
그는 또한 느부갓네살 당시의 여호와의 전 기명(5400)과 사로잡힌자를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갔다(대하 36:22,23;스 1:1-11). BC 536년이 포로의 석방 귀국은 매우 유명하다. 그는 또 성전 건축을 위해 레바논에서 백향목을 가져오게 했다(스 3:7).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고레스는 나의 목자이며 나의 모든 기쁨을 성위하리라. 또 그의 오른손을 잡아 열국을 그에게 항복시키고, 험한 곳을 평탄하게 하겠다고 말씀하셨다(사 44:28;451-5).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고레스란 이 이름은 바사어의 Kurush(쿠루쉬) 엘람(Elam)어, 앗수르어, 바벨롱너의 Kurash(쿠라쉬), 히브리어의 vr,/K (고레스), 희랍어의 Ku'ro (쿠로스)인데 그 이름의 기원이나 의미가 불확실하다.
어떤 학자는 엘람어에 기원한다고 하나 아무런 신빙성 있는 증거가 없다. 희랍인의 어떤 전설에 의하면 이 대제(大帝)의 이름은 본래 바사어의 Agradates(아그라다테스)라고 한다는데 그것이 본명이었다면 Kurush(쿠루쉬) 혹은 Cyrus(키루스)로 변화한 이유를 밝힐 수 없다.
여하튼 그는 고레스로서 고대에 있어서도, 현대에 있어서도 잘 알려져 있다. 이 이름은 오늘날 우리에게 널리 쓰여지고 있는 동양의 고대 유일한 왕명이다. 그것은 이 이름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과 불미스러운 일을 했다는 소리를 듣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이름의 기원, 의미가 무엇이든 간에 그는 스스로 고대 바사의 아카메데스(Achamenes) 왕조의 후예라고 한다. 그는 메대 왕 아스타게스(Astyages)의 통치하에 있던 한 작은 고을 안샨 즉 안잔(Anshan or Anzan) 왕국에서 주전 598인가 599년에 출생하여 주전 559년에 부왕의 위를 계승하였다.
이유는 그의 즉위 후에 즉시 메대와의 싸움에 시작하여 550년 메대의 서를 에쿠바타나를 점령 약탈했다. 그리하여 그는 대국의 지배자로 되고 서부 아세아에서 그의 경쟁자가 될만한 자는 불과 두 사람 밖에 없었다.
그것은 하리스강(江) 저쪽 소아세아에 있어서 루디아(Lydia)왕 크로에서스
(Nabonidus)였다.
고레스가 메대 사람의 왕이 되어 그들에 의해 정복되어 있던 앗수리아의 영토를 계승했을 때 그 국경은 소아세아의 하리스강까지 미쳤다. 크로에서스는 이와같은 인접국가와의 접근 위험을 깨닫고 자기를 지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려 애굽왕 아마시스(Amasis) 및 함대를 증가시키기 위해 스파르타와 동맹을 맺었다. 고레tm는 이 동맹이 체결되기 전에 크로에서스를 공격하려고 결심했다. 크로에서스와의 최근 싸움은 결정적인 곳까지 이르지 못했으나 두번째 싸움에서 크로에서스는 패배했다.
싸움은 겨울 동안에는 중단되었다가 봄이 돌아오자 다시 시작되어 드디어 사데(Sardes)sms 점령되고 크로에서스는 포로가 되었다(BC 546년). 이 해부터 539년까지 고레스는 전진 또는 후퇴하면서 싸워 정복하고 조직하여 당시에 알려져있던 최대의 제국을 만들었던 것이다.
히브리인들도 그를 알고 그 장래를 확신하고 있었다. 히브리 최대의 선지자한 사람에게는 (사 45:1-4)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라고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로서 알려져 바벨론의 최후까지도 예언했다(사 46:1,2;47:1-5). 나보니다스 왕은 그 왕국과 국민의 안전보다도 신(神)들의 안전에 마음을 썼으며 고레스가 침입했을깨 그것을 막을 방비도 없었다. 이리하여 바벨론은 즉시 용이하게 함락되고 그와 동시에(BC 538) 페니키아(Phoenicia), 블레셋의 해안 제지방과 거기 속한 내지(內地), 또 수리아, 발레스틴도 고레스의 수중으로 들어왔다.
고로 그는 유대인의 왕으로도 되어 바벨론에 있는 포로를 돌아가게 허락했던 것이다. 이것은 전반적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지만 그 감화는 크고 또 멀리까지 미쳤다. 바벨론은 그의 제국의주요 성읍의 하나로 되어 더 큰 지위와 명예 그리고 힘을 얻었다.
고레스는 그이 아들 칸비세스를 바벨론의 왕으로 하고 자신은 「제국(諸國)의 王」이라고 칭하며 그의 통치 범위의 광대함을 나타냈다. 10년동안 여름철에는 악메다(Achmetha)에서, 겨울철에는 바벨론에서 요지부동한 전력을 한 손에 쥐고 있었으나 카스피해의 동안(東岸) 평원에서의 팔디아인(Parthians)과 마사게테인(Massagete)과의 싸움에서 부상하여 드디어 전사했다.
그 유해는 충신의 손에 의해 파살가데(Pasargade) 대평원의 거대하고 장려한 묘소에 매장되었다. 세상은 그와 견줄만한 자를 보지 못했으므로 당장 그를 잊어버릴 수 없었다. 정복민에 대해서는 동정심이 많고 싸움터에서는 전략가 또는 지휘관으로서 뛰어났으며 그보다 이전의 그 누구도 그에 견줄 자가 없었다. 고레스의 종교에 대한 태도는 바벨론의 왕 나보니다스(Nabonidus)와는 달리 그는 바벨론을 항복시키자마자 성전 수축을 단행했다.
* 출처:인터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