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침례교회-오늘의 경건말씀] 2013.8.21(수) 신명기30:1-10
1 내게 네게 진술한 모든 복과 저주가 네게 임하므로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로부터
쫓겨간 모든 나라 가운데서 이 일이 마음에서 기억이 나거든
2 너와 네 자손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것을
온전히 따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3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마음을 돌이키시고 너를 긍휼히 여기사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시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흩으신 그 모든 백성 중에서 너를 모으시리니
4 네 쫓겨간 자들이 하늘가에 있을지라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를
모으실 것이며 거기서부터 너를 이끄실 것이라
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네 조상들이 차지한 땅으로 돌아오게 하사 네게 다시
그것을 차지하게 하실 것이며 여호와께서 또 네게 선을 행하사 네게 네 조상들보다
더 번성하게 하 실 것이며
6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네게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네게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
7 네 하나님 여호와에서 네 적군과 너를 미워하고 핍박하던 자에게 이 모든 저주를
내리게 하시리니
8 너는 돌아와 다시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 모든
명령을 행할 것이라
9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여 이 율법책에 기록된 그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고 네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여호와 네 하나님께 돌아오면
10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과 네 몸의 소생과 네 가축의
새끼와 네 토지 소산을 많게 하시고 네게 복을 주시되 곧 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을
기뻐하신 것과 같이 너를 다시 기뻐하사 네게 복을 주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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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휼(Mercy)
가엾게 여기는 마음을 말하는데 ‘라함’(racham; 자궁)에서 나온 말이다.
이 단어는 ‘같은 태에서 나온 이들에 대한 감정’이라는 기본적인 의미에서
‘긍휼’, ‘자비’라는 의미로 발전했다. 젖을 빠는 아기에 대한 어머니의 반응(사 49:15),
아버지가 아들에 대해서 가지는 반응(렘 31:20), 형제가 형제에 대해 기대하는 마음의
상태(암 1:11) 등을 나타내는 데 이 단어가 쓰였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감정 차원보다는 사랑의 표현이나 행위(출 33:19; 왕하 13:23;
시 102:13 등)로 드러났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죄에서 돌이켰을 때 주어지는 용서의
은혜를 표현할 때 쓰이기도 했다(사 14:1; 렘 12:15; 겔 39:25).
신약에서는 긍휼에 해당되는 헬라어로 ‘엘레오스’(eleos), ‘스프랑크논’(splagchnon)
등이 쓰였다. 긍휼은 주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치유 속에 드러내신 예수님의 사역에서
잘 드러났다. 또 1만 달란트 빚진 종을 불쌍히 여긴 왕(마 18:23-35), 방탕한 생활을
하고 돌아온 아들을 측은하게 여기고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춘 아버지(눅 15:11-32),
강도 만났던 자를 불쌍히 여겨 살려낸 사마리아인(눅 10:25-37) 등의 본문에서도
긍휼하신 하나님의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다.
또한 예수님은 세리,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을 비난하는 바리새인을 향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제사가 아닌 긍휼이라고 하셨다. 이렇듯 긍휼은 정신은 외면한 채
형식만 중시하는 바리새인들을 향해 예수님께서 율법의 핵심으로 말씀하셨던 의
(크리시스; krisis), 인(엘레오스; eleos), 신(피스티스; pistis) 중의 하나였다(마 23:23).
바울은 병 치유의 근원이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있음을 고백했으며(빌 2:27),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과 관련해서(롬 9:15; 11:30-32) 구원은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긍휼
(엡 2:4; 딛 3:5)과 은혜(엡 2:7-8)로 인해 얻는 것임을 말했다.
성경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은 자들은 긍휼을 베푸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롬 12:8; 약 3:17). 또한 긍휼은 구제와 자선 등으로 나타나며 긍휼 베푸는 일은 심판
날 긍휼을 받는 것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딤후 1:18; 유 21). 무정한 자, 무자비한
자에게 하나님은 심판을 내리실 것이기 때문이다(롬 1:29-32; 약 2:13).
→ 자비를 참고하라.
긍휼을 베푼 사람들: 성경에는 긍휼을 베풀었던 사람들이 여럿 있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었을 때 자신을 팔아넘겼던 형들을 용서했을 뿐 아니라 돕고자
했다(창 50:20-21). 모세는 양에게 물을 먹이려다가 목자들에게 쫓겨난 미디안 제사장의
딸들을 도와 주었으며(출 2:17) 보아스는 자기 밭에서 룻이 이삭을 줍도록 배려했다
(룻 2:16). 또한 다윗은 왕이 된 후 요나단을 생각하여 그의 아들 므비보셋에게 은총을
베풀었다(삼하 9:1-13). 이 외에도 기적과 회심을 체험한 빌립보 감옥의 간수는 바울과
실라의 상처를 돌봐 주었으며(행 16:33), 멜리데 섬의 토인들은 여행 도중 난파당한
바울 일행을 보살펴 주기도 했다(행 28:2).
자비(Mercy)
무력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말한다.
인자(창 19:19), 은혜(창 20:13), 긍휼(마 9:13)과 같은 말이다.
구약에서 자비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여러 단어이다. 히브리어 ‘라함’(ra?am)은 긍휼의
감정이며, 주로 ‘사랑’(love)으로 번역되었다. 또 ‘하난’(hanan)은 사랑에 의해 동기가
부여되어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적극적인 도움이며, 종종 ‘은혜롭다’
(to be gracious) 또는 ‘자비를 베풀다’(to show mercy)로 번역되었다. 주로 ‘인애’로
번역된 ‘헤세드’(chesed)도 ‘자비’(대상 16:41)로 번역된 곳이 있다.
헬라어 ‘엘레오스’(eleos)는 고통에 의해 우러나오는 깊은 정서적 관심을 의미하며,
적극적인 도움을 준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성경에서 ‘엘레오스’를 사용하여 묘사되는
하나님은 인간의 고통에 의해 마음이 깊이 움직이는 분이시며 우리를 그분과 원수 되게
하는 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돕기를 선택하신 분이시다(약 5:11).
자비는 특별히 복음서와 신약의 서신서에 잘 나타난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자비를
간청할 때마다(마 9:27; 15:22; 17:15; 막 10:47-48; 눅 18:38-39) 예수님께서는
응답하시고 그 사람의 필요를 채우셨다. 예수님께서는 자비가 하나님의 성품의
기본이라고 가르치셨고(마 5:43-48 참조)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 5:7)라고 선언하셨다.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의
과오 중 하나는 구약 율법의 세부사항을 강조하느라 그 뿌리가 되는 “의와 인과 신”
(마 23:23; 12:7 참조)을 간과한 것이었다.
서신서들은 구원이 하나님의 자비에 뿌리내리고 있음을 보여준다(엡 2:4; 벧전 1:3).
우리는 영적으로 무력하므로 구원을 얻기 위해 자신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자비를
온전히 의뢰해야 한다(롬9:16). 더 나아가 그리스도인들은 매일매일 하나님의 자비에
의지해야 하며, 우리에게는 이런 권면이 주어진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 4:16). → 긍휼, 사랑, 인애를 참고하라.
인애(Kindness, Mercy, Compassion)
어진 마음으로 남을 사랑하는 마음을 말한다.
인애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헤세드’(chesed)이다. 그러나 ‘헤세드’는 개역성경에서
‘자비’(대상 16:41), ‘인자’(창 19:19), ‘은혜’(창 20:13) ‘긍휼’(마 9:13) 등의 여러
단어로 번역되었다. 성경에서 이 단어는 하나님에 대해서도 또 인간에 대해서도
사용되었는데, 특별히 이 단어가 하나님에 관해 사용될 때는 그의 백성들에 대한
‘언약에 기초한 불변적인 사랑’(신 7:12; 미 7:20 등)을 말한다.
호세아서에 나타난 하나님은 바로 그의 백성들을 끝까지 사랑하시고 기다리시는 인애의
하나님이시다(호 2:14-23). 하나님의 본질은 사랑이시며 그분은 인애가 크시기 때문에
죄 지은 인간들에 대하여 재앙을 내리시기 전에 회개를 촉구하시고 기다리시는
분이심을 분명히 하고 있다(신 7:9; 욜 2:13; 욘 4:2; 미 7:18). 이 단어가 인간에게
사용될 때는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들에 대한 친절과 자비, 그리고 하나님께 대한
순결과 헌신을 표현할 때 사용되었다(호 6:4; 12:6). 또한 인애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 사이에서 행해져야 할 중요한 덕목이며 의무이다(창 47:29; 룻 3:10; 잠 31:26).
인자 1(Love, Great kindness)
하나님의 속성 가운데 하나로, ‘마음 속 깊이 사랑을 느낌으로써 우러나오는 친절’을
말한다. ‘인자한’이라는 형용사는 ‘크레스토스’(krestos)라는 헬라어를 번역한 것으로
하나님(눅 6:35; 벧전 2:3)과 사람(엡 4:32)에 대해서 ‘사랑스럽고 친절하며 관대하다’는
뜻으로 사용되었고 ‘자비’(고후 6:6; 갈 5:22), ‘온유’(고전 13:4)로도 번역되었다.
‘인자함’은 자비한 마음이나 동정심, 연민의 정과 같은 단순한 느낌 차원에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 자발적이면서도 아주 결정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을 말한다.
인자함은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약한 자가 강한 자에게 보여 주는 행동이 아니라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강한 자가 약한 자에게 변함없이 나타내는 충성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인자하심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보여 주셨으며, 지금 우리에게도 베풀고
계신 하나님의 성품이다(시 89:24, 98:3).
(비전성경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