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Peace), 평강(Peace), 평화(Peace), 화평(Peace) = 샬롬’(히,shalom)/에이레네(헬,eirene)
작성자7교구카페운영자작성시간14.04.29조회수249 목록 댓글 0평안(Peace), 평강(Peace), 평화(Peace), 화평(Peace) = 샬롬(Shalom)
[여의도침례교회-오늘의 경건말씀] 2014.4.29.(화) 시편35:19-28
[다윗의 시]
19. 부당하게 나의 원수된 자가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못하게 하시며 까닭
없이 나를 미워하는 자들이 서로 눈짓하지 못하게 하소서
20. 무릇 그들은 화평을 말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평안히 땅에 사는 자들을
거짓말로 모략하며
21. 또 그들이 나를 향하여 입을 크게 벌리고 하하 우리가 목격하였다 하나이다
22. 여호와여 주께서 이를 보셨사오니 잠잠하지 마옵소서 주여 나를 멀리하지
마옵소서
23. 나의 하나님, 나의 주여 떨치고 깨셔서 나를 공판하시며 나의 송사를
다스리소서
24.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의 공의대로 나를 판단하사 그들이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못하게 하소서
25. 그들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아하 소원을 성취하였다 하지 못하게 하시며
우리가 그를 삼켰다 말하지 못하게 하소서
26. 나의 재난을 기뻐하는 자들이 함께 부끄러워 낭패를 당하게 하시며 나를
향하여 스스로 뽐내는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하게 하소서
27. 나의 의를 즐거워하는 자들이 기꺼이 노래 부르고 즐거워하게 하시며 그의
종의 평안함을 기뻐하시는 여호와는 위대하시다 하는 말을 그들이 항상 말하게
하소서
28. 나의 혀가 주의 의를 말하며 종일토록 주를 찬송하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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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Peace)
성경에서는 ‘평강’과 ‘평화’, ‘평안’을 구별 없이 사용하고 있는데 히브리어로는 ‘샬롬’이다.
예수님은 옥합을 깬 여인과 열두 해 동안 혈루병을 앓은 여인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막 5:34)고 말하셨는데, 이것은 죄 용서와 치유의 결과로 임하는 종말론적 평화의
성취를 의미하며, 구원과 평안이 같은 의미임을 증명한다.
예수님은 70인 제자를 파송하시면서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마 10:12-13)라고 말하라고 하셨다. → 평화를 참고하라.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
요한복음에서‘평안’이란 말이 사용되고 있는 곳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는
고별의 상황이다(요14:27;16:33; 20:19, 21, 26). 예수님께서는 이제 세상에 남게 되는 제자들,
불안해 하는 제자들에게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고 위로하셨다.
비록 예수님께서 떠나가시지만 다른 보혜사, 곧 성령께서 오셔서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 모든
것을 생각나게”(요 14:26) 하실 것이기에 근심도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는 말씀이었다. 또한
예수님께서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에(요 16:33) 성도들이 비록 세상에서 환난을 당한다 해도
담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평강(Peace) = 샬롬’(히,shalom)/에이레네(헬,eirene)
‘샬롬’, 즉 평화를 말한다.
하나님은 평강의 하나님이시며 이 평강의 하나님께서는 인간관계에서도 평화가 실현될 것을
명하고 계신다. 그래서 성도들은 예배 드리기에 앞서 먼저 형제와 화목해야 하며(마 5:23; 참고,
살전 5:13),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써야 하고(롬 14:19), 마음을 같이 하며 평안을
이루어야 한다(고후 13:11). 이는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고후 13:11).
또한 믿는 이들은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마음과 생각을
지키실 것을 믿기에(빌 4:7)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뢸 수 있으며(빌 4:6), 부활하신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과 성령으로 인해
담대히 세상으로 나갈 수 있다(요 20:19, 21- 22).
예레미야 선지자는 평강의 왕으로 오신 주님이 배척당할 것을 예고하면서 그 당시 거짓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이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안이 없었다”(렘 6:14)는 말로 표현했다. 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하신 첫 번째 말씀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눅 24:36)였다.
→ 평화를 참고하라.
평화(Peace) = 샬롬’(히,shalom)/에이레네(헬,eirene)
‘평화’는 히브리어로는 ‘샬롬’(shalom)이고 헬라어로는 ‘에이레네’(eirene)이다.
그 뜻은 (1) 완전함, 하나됨, 조화 그리고 번영, 건강함, 충만함이다. 신학적으로는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에서 형성된 내적인 조화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까지 미친 상태를 말한다.
이 단어는 대체로 두 가지의 서로 구별되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하나는 ‘평화, 호의, 우애’로, 전쟁이나 적대관계에 대한 반대 개념으로 쓰이며,
다른 하나는 ‘행복, 번영, 복’으로 여기서는 구체적인 물질적 선에 매우 강한 강조를 두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어떤 의미이든, ‘완전함’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전제되고 있다.
구약에서의 평화
: ‘샬롬’은 ‘보상’과 ‘지불’이라는 기본 개념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출 21:33- 34; 욥 22:21; 시 56:12 등).
또한 샬롬이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은 긍정적인 의미인 ‘만족, 만족을 줌’이다. 이것은 사람을
흡족하게 하는 어떤 것으로 말미암아 구체적으로 만족스러워진 상태에 대한 표현이며 외적인
만족과 내적인 만족 모두를 포괄하고 있다.
또한 샬롬은 만족을 주는 과정, 방법과 기술에 강조를 두는 경우, 계약 혹은 일치로 이해될 수
있다. ‘샬롬을 만들다’(수 9:15; 사 27:5-개역에는 ‘화친하다’)라는 표현이 그 대표적 예가 될 수
있으며, 신명기 20:10 이하의 ‘평화를 선언하다’도 비슷한 예이다. 보상 행위를 통해 이루어진
상태를 강조할 때, 특히 불일치나 전쟁에 대한 화해가 이루어질 때, 샬롬은 ‘평화’라는 의미로
되는데, 이 의미는 상호간에 값을 치름으로 인해 생겨난 상태를 가리키며 전쟁에 대한 반대개념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왕상 2:5; 20:18; 사 59:8; 시 120:6-7).
‘평화의 언약’이라는 말이 성경에 여러 번 나오는데(민 25:12; 사 54:10; 겔 34:25; 37:26),
모두 본질적으로 미래의 의무들에 근거한 것(가령, 이러이러하게 하면 이렇게 하리라)이 아니라,
과거의 사건에 대한 보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샬롬은 처벌, 앙갚음, 징벌 등의 의미로 쓰이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의미의 본문들은 전통적으로,
‘평화’ 혹은 ‘구원’이라는 의미로 해석해 왔지만, 맥락을 살펴보면, 그와는 반대인 것을 볼 수 있다.
미가서 5:5을 “이 사람은 우리의 평강이 될 것이라”로 보통 해석하지만, 문맥은 앗수르의 침공을
말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보응 혹은 징벌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시편 37:37은 “사람의 마지막은 샬롬이라”(개역성경: “화평한 자의 결국은 평안이로다”)이다.
37절 앞의 본문은 하나님께서 의인과 악인에게 응답하심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보응 혹은
보상’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 경우, ‘보응’(샬롬)은 ‘징벌’과 ‘만족’의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
신약에 나타난 평화
: ‘평화’, ‘평강’, ‘평안’, ‘화평’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이레네’는 신약에서 92회 사용되고 있으며,
요한일서를 제외하고 신약의 모든 책에서 쓰이고 있다.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곳은 복음서로써
25회 사용되고 있으며(마-4회, 막-1회, 눅-14회, 행-7회, 요-6회), 바울 서신에서는 26회 사용되고
있다(대표적으로 롬-10회, 엡-8회 사용).
신약에서 말하는 평화는 화친, 즉 ‘전쟁이 없는 상태’라는 일반적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눅 14:32),
무질서와 반대되는 개념이다(고전 14:33).
그 밖에도 중요한 개념을 포함하고 있는데 평화는 구원과 관련이 있다.
예수님이 탄생하셨을 때 천사들은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 2:14)라고 노래했는데 이런 천사들은 목자들에게
예수를 ‘구주, 곧 그리스도 주’(눅 2:11)로 알려주었다. 이것은 평화와 구원이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또 사가랴의 찬양 가운데 예수의 공생애 활동을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취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라고 증언했다(눅 1:79). 여기서도 구원과
평화가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시면서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
하였거니와”(눅 19:42)라고 울면서 탄식하셨다. 사도행전에서 교회가 성장하는 것을 누가는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행 9:31)라고 표현했고
베드로도 예수 그리스도가 ‘화평의 복음’을 전했다고 말한다(행 10:36; 참고, 엡 6:15-‘평안의 복음’).
이렇듯 예수님께서는 평화로 오셨고, 평화를 전하시며, 평화를 이루신 삶을 사셨다.
예수님을 전하는 것은 바로 화평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요, 화평의 복음을 전하는 공동체에게
부활하신 주님은 평화를 주시고, 그 평화 가운데 교회는 든든히 서 가는 것이다.
또한 평화는 언약의 성취와 관련이 있다. 무엇보다도 신약의 평화 개념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가 용서받고,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칭함을
받음으로써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 곧 화해의 관계가 맺어지게 된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롬 5:1). 에베소서 2:14-18과 골로새서 1:15-20에 따르면 예수님은 ‘화평’
그 자체이며, 십자가로 원수된 것을 소멸하심으로써 인간과 모든 만물과 하나님 사이에,
또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화해와 평화를 이룩하셨다.
이렇게 예수님이 이룬 평화는 이미 구약 시대에 약속된 ‘화평의 언약’의 성취이며(사 54:10-‘화평케
하는 나의 언약’; 겔 37:26-‘화평의 언약’), 또 이미 스가랴 선지자가 예언한 바 있는(슥 9:9-10)
‘메시아의 평화’의 실현이다. 메시아가 오셔서 이룩할 이 평화에 대해 시편 기자는 “저의 날에
의인이 흥왕하여 평강의 풍성함이 달이 다할 때까지 이르리로다”라고 기대한 바 있다(시 72:7).
즉 성경이 말하는 평화는 단순히 심리적 평안이나 정치와 무력에 의해 이루어지는 평화가 아니라
사랑과 화해로 원수와도 한 몸을 이루는 평화이다.
샬롬! 인사법 = 샬롬’(히,shalom)/에이레네(헬,eirene)
‘인사하다’(사알, lac)라는 동사와 결합한 형태인 ‘사알 레샬롬’(m/vl lac)’은 ‘누군가의 (외적 내적인)
만족함을 물어보다’라는 의미로, 거의 인사 형식으로 굳어진 표현이다(삿 18:15; 삼상 10:4; 17:22;
25:5; 30:21; 왕하 10:13). 이 인사 형식은 동사 없이 쓰이기도 한다(삿 6:23; 19:20; 삼상 25:6).
[출처] 비전서경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