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사전] 다메섹 (수리아의 성읍).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개종한 곳

작성자안현상|작성시간09.08.04|조회수1,164 목록 댓글 0

[성경사전] 다메섹(수리아의 성읍) 바울이 길에서 환상 중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개종한 곳    


* 다메섹(Dammeseq)-수리아의 성읍으로 ‘다마스쿠스(Domascus)’의

  히브리 어 지명. 現在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커(쿠)스

*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던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환상 중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개종을 하고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된다.

   

<다메섹 도상에서의 개종>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는 데 앞장섰던 바울은 대제사장의 권한으로

그리스도인들을 결박하러 다메섹으로 가던 중에 다메섹 도상에서

환상 중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천상의 빛에 눈이 멀게 된다.

교황 클레멘트 7세의 보물 총관리자였던 티베리오 체라시가

이태리 델 포폴로 교회의 체라시 예배당에 걸기 위해 주문한 그림.

카라바조(1571-1610)의 캔버스 유채물감.

 

 

로마서 9장

 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5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6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7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서 있더라 

 8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9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니라 

10 그 때에 다메섹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11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12 그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13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들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14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 

15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16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19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20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21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 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22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 

23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24 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그들이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25 그의 제자들이 밤에 사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벽에서 달아 내리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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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메섹

 

수리아의 성읍이다.

시리아 공화국의 수도인 현재의 `다마스커스b는 그 남서쪽에 헤르몬 산을 안은 안티 레바논(Anti Lebanon)의 동쪽 산록의 고원에 있다. 다메섹 지방은 강과 운화로 관개된 오아시스이다. 다메섹 성읍 그 자체가 안티 레바논에 수원을 가지는 아바나 강(Abana R.)-나할 바라다(Nahr Barada)-의 강 안에 있었으며, 성읍의 남쪽에는 동쪽으로 흐르는 바르발 강(Pharpar R.)-나할 엘 아와지(Nahr el-A'waj)-이 있다(왕하 5:12). 이 두 강은 동쪽의 반건조지대에서 소멸하고있다.


다메섹은 먼 옛날부터 군사상, 상업상 가장 중요한 도로가 여기서 교차하고 있었기 때문에 항상 상업과 종교의 중심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여왔다.

구약 시대의 이 성읍은 수리아 왕국의 도성이었다(창 14:15,15:2,

왕상 11:24,15:18,19:15,20:34, 왕하 8:7,9,14:28,16:10-12, 사 7:8).

다메섹의 이름이 제일 먼저 나오는 것은 애굽의 투트모세 Ⅲ세(Thutmes Ⅲ, BC 16세기)의 비문에서이다. 다메섹 지방에는 고대의 성읍이 매몰되어 있는수다한 중요한 구릉(tell)이 있다. 이것은 초기 시대, 즉 BC 2000년 전반에 수 개의 촌락이있었던 것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성읍이 그 중심이었는지 어떤지는 분명치 않다.다메섹 지방은 나할 바라다(Nahr Barada)의 비옥한 분지이며, 적이 여러 번 그방면에서 침공해온 반건조지대로 향해 동쪽으로 확장하고 있다.


이 방면으로부터의 적에 대하여 방어할 필요가 있으므로 다메섹의 약 9㎞동쪽에,아바나강변에 접하여 한 요새의 성읍이 있었다. 그 유적은 현재 델 에스 살리히예(Tell es-Salihiyeh)에 묻혀 있다. 다메섹으로부터 약 15㎞서남쪽의큰폐구(廢丘, Deir Hahiyeh)는 고대 바벨론 시대의 주거지중 하나인 중심지의 유적지다.


애굽의 아마르나 시대(Amarna Period, BC 1406-1353)에 다메섹은 아모리 왕국의중심이었다.


그 통치자는 애굽의 다메섹 지배를 어떻게 해서라도 제거하려고 노력한 것으로보인다. 그 시대에는 다메섹 지방과 뮤케네(Mycenean) 문명 세계(BC 1400-1100년에 희랍 문명에 앞서 번영했던 지중해 연안 제국)와의 사이에 우호 관계가 맺어져 있었던것은 델 에스 살리히예에서 발견된 뮤케네 도기류의 파편에서 명백하다. 기원전 BC 2000년대 말의 다메섹은 앗수르 사람과 세력을 다투는데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던 아람 왕국의 도성이었다.


아람 사람은 BC 1200년의 힛타이트(Hirtite) 왕국의 몰락 후 다메섹을 점령했다. 그리고 히브리 사람의 통일 왕국과 분열 왕국과의 기간 중 다메섹은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유대와 이스라엘)의 경쟁상대였다. 나아만이 요단 강에서 자기의 몸을 씻으라는 명령을 받았을때, 그는 못마땅히 생각하면서 이렇게 엘리사에게 대답하였다.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왕하 5:12). 이 말에서 다메섹은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에 대항하고 있었음을 잘 알수 있다.


다윗 왕다메섹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다메섹을 속국으로 하였다(삼하 8:5,6, 대상 18:5,6). 솔로몬 시대에 다메섹은 이전 소바 왕의 신하였던 르손에게 정복되었다. 그다음 르손은 다메섹에서 수리아의 왕이 되었다(왕상 11:23-25). 이 왕국은 솔로몬 재세시 이스라엘을 늘 괴롭혔다. 다메섹은 헤시온 왕, 다브림몬 왕 및 벤하닷 왕의 도성이었다(왕상 15:18,20,20:34, 왕하8:7). 또 하사엘 왕과(왕상 19:17, 왕하 8:8-15) 르신 왕(왕하 16:5)의 도성이기도 하였다. 다메섹의 다브림몬은 이스라엘에게 대항하기 위해 유다의 아비얌 왕과 동맹을 맺었다(왕상 15:19참조).


다브림몬의 아들인 벤하닷 Ⅰ세(BC 900-875)는 이스라엘 왕 바아사와 동맹을 맺었으나 후에 유대의 아사 왕과 동맹하게 되었다(왕상 15:18-, 대하 16:2). 아람은 계약을 체결하고 다메섹 성읍에 시장을 개설할 권리를 얻었다(왕상 20:34).이 시대에 다메섹은 앗수르에 대항하는 서방 제국 중에서 지도적 역할을 하고 있었다. 지중해 연안 제국의 왕들과 이스라엘의 아합과 동맹하여 BC 854년 살만에셀(앗수르 왕)과 회전하여 패하였으나 앗수르의 전진을 저지하였다. 이 싸움에서 아합은 길르앗 라못에서 전사했다(왕상 22장).벤하닷Ⅲ세는2년간 왕위에 있었으나 하사엘에게 살해되었다(BC843-797, 왕하 8:7-15). 그 뒤를 벤하닷 Ⅳ세가 이었다.


그는 이스라엘에게 승리하여  이스라엘의 거의 전 영토를 점령하고 사마리아를 공위하였다(왕하6:24-). 이 포위는 엘리사의 충고에 의해 풀렸다.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Ⅱ세는 이스라엘의 국력을 회복하였다(왕하 14:28). 다메섹은 또 앗수르와 싸우지 않으면 안되었다. 다메섹 왕국이 그 입장을 보존하기 위하여서는 앗수르 사람이 서방에 있어서 성공하는 것을 방해할 필요가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중요한 것이 시로 에브라임전(Syro-Ephraimite War, BC 734)이다.


다메섹의 르신과 이스라엘의 베가는 앗수르에 대한 그들의 전쟁에 참가하도록 강권하여 유대의 아하스에게 도전하였다. 이사야는 아하스 왕에게 경계하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하스는 앗수르에게 의존하였다. 싸움의 결과디글랏 빌레셋의 통치하에 있던 앗수르가 BC 733-732년에 다메섹을 정복하기에이르렀다.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바와 같이(사 7:4-,8:1-,17:1-) 르신 자신은 전사했다(왕하 16:9). 이들 사건에 의하여 다메섹은 강대한 왕국의 도성으로서의 이름을 상실하고, 그 후로는 외국의 통치자에게 지배된 단순한 한 지방의 중심 성읍으로 전락하였다.


앗수르 다음에는 바벨론, 바사 그리고 마침내는 알렉산더다메섹을 정복한 것이다.로마 제국의 정책에 의해 다메섹은 아레다 Ⅲ세(Aretas Ⅲ)가 지배하는 나바티아 독립 왕국(Nabatean Kingdom)의 수도로 되었다(BC 85).

BC 65년에 로마 제국은 수리아를 정복하고 다메섹은 나바티아 장관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바울이 다메섹에 왔을때(행9:2-) 다메섹은 아레다 Ⅳ세에 의해 통치되고 있었다(고후 11:32).

그 당시 거기에는 수다한 유대인이 있었으며, 그리스도인들도 적지 않았다

(행 9:2,22:5,6,10,11,26:12). 이 부근에서 다소의 사울이 부활한 예수를 만나 회개하여 그리스도인이 되었다(행 9:2,3,10,22:6,10-12,26:12). 사도행전 9:12에 있는 `직가(直街)'라고 불리운 전설적 가로는 약 3.2㎞되며, 성읍의 대략 중앙을 동북쪽에서 서남쪽으로 달리고 있다.


현재는 빈약하지만 바울 시대에는 고린도식 원주가 늘어선 당당한 대로였다. 그 동단에 성읍의 동문(東門)이 있다. 높이 11.4m, 넓이 6m의 큰 성문과 작은 두 쪽 문은 로마인의 손으로 된 것이다.직가는 현재 데르브 엘 무스다김(Derb el-Mustaqim, 일반적으로는 Suq ettawil)이라고 한다.


유다와 아나니아의 집(행 9:10) 그리고 바울이 광주리를 타고 내려왔다고 하는 성벽(고후 11:33,행 9:25)은 현재의 다메섹에서도 볼 수 있다. 성문 중중앙과 남쪽의 아치문은 턱 이전에 돌을 쌓아 막아 버렸고, 북쪽의 작은 쪽문만이 열려 있다. 바울 시대에 이 성읍은 아레다 왕의 수중에 있었으나, 곧 로마에게 넘어갔다(고후11:32). AD 634년 오말 휘하의 아라비아인에게 포위되어 이듬해에 공략되었다.


1300년에는 타르타스에게, 1400년에는 티무르에게 약탈되었다. 1516년 이래 토이기인의 손으로 돌아갔다. 1860년 7월 6,000명의 그리스도인이 토이기군의 원조를 받은 회회교도의 폭도에게 학살당하였다. 1936년 프랑스의 위임통치에서 독립하여 1958년 이집트와 통일 아랍 공화국을 결성했으나, 1961년에 분리한 시리아의 수도로서 현재 놀랍게 발전하고 있다.


* 출처 : 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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