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물,세례 2015.7.6.(월) 오늘의 경건말씀. 벧전3:13-22
작성자7교구카페운영자작성시간15.07.06조회수1,300 목록 댓글 0“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벧전3:21)
물(Water)
산소와 수소의 결합체(H₂O)이며 지구의 4분의 3을 덮고 있을 뿐 아니라 인체의
70%를 차지하는 물질이다. 물은 모든 생명체와 깊은 관련이 있으며, 성경에서도
650회 이상 언급되었다. 특별히 물이 부족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더욱 중요시
되었으며, 모든 것의 기본이 되었다.
물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음료수였다(창 21:14; 민 20:11; 막 9:41;
요 2:7). 이외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나주시기 전에 물로 옷을 빠는
등 정결케 할 것을 명하셨다(출 19:10-15). 제사장은 물두멍에 담긴 물로 수족을
씻어서 정결케 한 뒤 회막에 들어갔다(출 30:18-20). 빌립은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으며(행 8:36-39), 바울은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인해 그의 신부인
교회가 성별되어 흠없는 성화의 몸이 된 것을 ‘물로 씻어 깨끗하게 하셨다’고
표현했다(엡 5:26).
또한 물은 여러 가지를 상징했다. 먼저 물은 영적 축복과 회복을 상징했다
(시 23:2; 사 12:3; 35:6-7). 물이 모자라란 것은 가장 심각한 일 중 하나이며,
선지자들은 이를 하나님의 심판으로 해석하기도 했다(렘 14:1-9; 욜 1:15-20;
암 4:7-8). 물은 자제력을 잃은 불안정한 상태(창 49:4)나 아이 성에서 패전하여
겁먹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수 7:5), 평화로운 상태(시 23:2), 환난이나 괴로움
(사 43:2), 박해(시 124:4-5), 만국에 미칠 복음(사 11:9), 구원(사 55:1) 등도
상징했다. 또한 물은 영혼의 갈급함(시 42:1), 하나님의 축복하심(겔 47:1-12),
영생(계 22:17), 그리스도(요 4:10-15), 중생(요 7:37-38)을 상징했다.
침례(Baptism)
물 속에 들어가는(물 뿌림) 의식을 말하는데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해 죽고 예수 그리스도의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서
(롬 6:3-5) 그리스도와 연합함(갈 3:26-27)을 상징하는 의식을 말한다.
헬라어로는 ‘밥티스마’(baptisma)이며 이는 ‘잠그다’(왕하 5:14; 시 68:23)
‘씻는다’(막 7:4; 눅 11:38; 딛 3:5), 비유적으로 쓰여 ‘온몸에 충만시킨다’
(마 3:11)는 의미로도 쓰였다.
세례는 물 속에 들어가는 것(물 뿌림)을 통해 옛 사람이 죽고, 죄를 씻고 물에서
나옴으로써 예수님과 함께 부활, 연합하는 것을 상징하는 예식이다. 따라서 세례는
성도가 그리스도 안으로 접목되었다는 것, 은혜의 언약의 모든 유익에 성도가
참여하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성도가 주님의 것이 되었다는 것에 대한 하나의
표적이요, 인(印)인 것이다(고후 1:22; 갈 6:17).
바울은 세례를 통해 믿는 자의 죄가 씻겨지고(엡 5:26) 예수님과 연합하게 된다고
말했는데(롬 6:3-5) 이는 세례 자체에 어떤 죄사함의 능력이 있는 것을 말한
것은 아니다. 세례를 통해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밖으로 드러내어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받음으로써 믿는 자가 그리스도 공동체의 일원으로 새롭게 살아갈
것을 약속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후 1:22; 엡 1:13; 4:30).
이 예식이 교회 안에 자리잡게 된 것은 예수님의 명령에 따른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복음 전파의 명령과 함께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믿는 자들에게
세례를 주라고 명령하셨다(마 28:19).
세례의 역사적 기원: 세례에 대한 역사적인 배경은 구약의 결례에서 먼저 찾아볼
수 있다. 구약의 헬라어 역인 70인역은 의식적인 정결을 위하여 율법에서 요구된
물로 씻거나 정결하게 하는 ‘정결 예법’을 ‘깨끗하게 한다, 씻는다’는 뜻을 가진
‘밥티조’(baptiso)라는 말로 사용하였다(출 30:17-21; 레 11:25; 민 19:17).
세례의 배경은 유대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이 유대교로
개종할 경우 그들에게 할례를 주었다. 그 후 할례 받은 상처가 나을 경우 그를
데리고 흐르는 물에 가서 물 가운데 세우고 율법을 읽어주었다. 그리고 축도를
하고 그를 물에 잠기게 한 후 그가 물에서 올라오면 그는 완전한 유대교인으로
새롭게 되는 것이었다. 또 요한의 세례도 기독교 세례의 또 하나의 기원이 된다.
요한의 세례는 단순히 의식적인 결례만은 아니었다. 요한은 세례를 메시아의
임박한 오심을 대망하는 가운데 회개와 하나님의 법들에 대한 헌신을 상징하는
공적인 행위로써 소개하였다. 요한의 세례는 회개와 죄를 자복하는 세례였으며
오실 메시아를 준비하는 세례였다.
성경에는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었다는 기록은 없다. 예수님은 요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마 3:13-16).
신약의 기자들은 세례의 배경을 이루는 구약적인 사건인 노아 홍수 사건(벧전 3:20- 21), 홍해 사건(고전 10:2), 할례 의식(골 2:11-12) 등에서도 세례의 상징적인 의미를 말하고 있다.
세례에 대한 기독교의 전통적인 관점들: 물 세례에 대한 세 가지 중요한 관점들이
있다.
첫째로 성례적인 관점은 세례를 은혜의 수단으로 보는 것으로, 그것을 행함으로써
죄들의 용서와 새 생활이 오며(가톨릭의 견해), 또는 말씀의 전파로 인해 힘을
발휘하게 될 믿음이 심기는 도구로도 본다(루터교).
둘째는 개혁 개신교 교회들이 따르고 있는 언약적인 관점이다. 물 세례를 구약의
할례와 같이 하나님과의 언약적인 관계에 대한 표로 본다. 세례는 개인들을 교회로
처음 인도할 뿐 아니라, 구속에 이르게 하는 은혜의 표와 인침을 상징하는 것으로
본다.
셋째는 상징적인 관점인데 물 세례는 그리스도를 구주로 공적인 고백을 하는
것으로 본다. 처음 두 관점을 따르는 자들은 유아 세례를 행하지만 세 번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세례는 사람이 오직 그리스도에게 믿음을 인격적으로 고백할 수
있는 정도의 연령이 되었을 때에만 합당하다고 주장한다.
세례에 대한 대표적인 성경 구절들
1. “그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요”(마 3:11): 여기서 불로 세례를 주는
것은 보통 불신자들에게 임할 마지막 심판에 대한 언급으로 보기도 한다(마 3:12).
그러나 어떤 학자들은 신자들 위에 머물렀던 ‘불의 혀들’(행 2:3)로 오순절에
나타났던 신자들을 정결케 하는 성령의 역사에 대한 언급으로 본다.
2.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마 3:14):
요한은 예수님이 자신에게 세례를 받으시려 할 때 처음에는 거절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의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마 3:15)는
말씀은 세례 요한을 감동시켰다. 이것은 예수님이 회개할 죄를 가지셨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은 이같은 방법으로 요한의 메시지와 견해를 같이한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표명한다는 의미이다.
3. “너희가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막 10:38-39) : 예수님은 두 제자에게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막 10:38)라고
물으셨다. 이것은 예수님이 장차 경험하게 될 십자가 처형의 고통에 그들도
진심으로 참여할 수 있는지를 물어보신 것이다.
4. “모세에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고전 10:2): 출애굽 시 애굽을
떠났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세에게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기적적인
행동들을 통하여 모세의 지도력 하에 한 백성으로 함께 인도함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5.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벧전 3:21상): 베드로는 성도가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되는 영적인 세례와
노아의 경험을 유추하여 말하고 있다. 방주가 심판의 물 속에서 노아를 구해 주고
그를 새로운 세계에 두도록 한 것같이 예수님과 우리들의 연합(세례를 통하여
상징화되고 인침을 받았던)을 통하여 성도를 하나님의 심판에서 안전하게 넘어
가도록 인도해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세례는 ‘인간의 악한 정욕대로’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도록 새로운 영적인 세계로 이끈다는
것이다(벧전 4:2).
유아 세례에 대하여: 유아 세례에 대한 의견은 기독교의 교파간에 각각 그 견해를
달리하고 있지만 유아 세례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측의 견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세례의 구약적 배경인 할례를 유아들에게 행했다는 것(창 17:12;
출 4:25-26; 레 12:3)과 신약의 기자가 세례를 할례와 연관시켜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골 2:11-12).
둘째는 신약에 나오는 구원의 초청에 아이들이 포함되어 있고(행 2:38-39) 어린아이를
포함하여 온 가족이 세례를 받은 예가 있다는 점이다(행 16:15, 32; 고전 1:16).
또한 예수님도 어린아이들을 축복하셨고(막 10:14-16) 유아 세례가 초대교회
때부터 실시되었다는 점에서 유아 세례의 정당성을 찾을 수 있다.
[출처] 비전성경사전
[여의도침례교회-오늘의 경건말씀] 2015.7.6(월) 벧전3:13-22
‘고난 속에서 드러나는 소망’
[고난을 두려워 마라]
13. ○또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14.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고
15.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16.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17.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그리스도의 고난과 승리]
18.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19.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20.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침례의 새 창조]
21.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22. 그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