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적(Sign),기적(Miracle), 이적(Miracle) *예수님의 사역에 나타난 이적/예수님의 이적의 의미
작성자7교구카페운영자작성시간17.01.07조회수883 목록 댓글 0표적(Sign)
구약에서는 겉으로 나타난 흔적을 말하는 뜻으로 주로 쓰였으며(출 12:13; 신 28:46) 신약에서는 초자연적인 능력이 나타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주로 쓰였다(막 16;20; 요 3:2; 20:30; 행 4:30). 표적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오트’(’oth)는 표징(창 17:11; 출 10:1), 이적(출 4:9), 징조(창 1;14; 왕하 19:29), 기호(민 2:2; 신 6:8), 예표(사 20:3), 감계(겔 14:8) 등으로 번역되었다. → 기적, 이적을 참고하라.
기적(Miracle)
자연의 법칙을 깨뜨렸기 때문에 놀라움을 일으키고 우주 안에 하나님의 적극적인 개입의 증거로 나타나는 사건이다.
기적들을 지칭하는 히브리어와 헬라어는 기적적인 사건들을 뜻하는 몇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히브리어 ‘팔레’(pele?는 ‘놀라운 일’, ‘기사’, ‘기묘’란 말로, 하나님이 하신 일들로 인해 발생한 경외심을 강조하며(출 15:11; 사 9:6), ‘모페트’(mopheth)는 ‘이적’, ‘표적’이란 말로 하나님의 징계와 보호의 증거로써의 기적들을 말한다(출 4:21; 신 7:19-24).
‘오트’('oth)는 기적적인 표적으로 하나님과 그의 의도를 나타내는 특별한 계시를 강조하는 기적들이다(신 4:34; 사 38:7). 하나님이 출애굽 당시 보내셨던 전염병들은 여러 구약의 기자들에 의해 인용되었는데 그것들은 히브리인들과 애굽인들 모두에게 두려움을 일으켰다. 이러한 기적들은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출 7:5)과 그가 자기 백성들을 대신해서 일하신다는 것(출 6:7)을 나타냈다. 기적들은 또한 애굽의 신들을 징계하고 그들의 무력함을 증거했다(출 12:12).
헬라어 ‘뒤나미스’(dynamis)는 ‘능력있는 행동’이란 뜻이다. 이 기적들은 자연의 법칙으로 설명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설명될 수 있는 사건들이다(막 6:2; 행 2:22). 또 ‘세메이온’(semeion)은 그 기적들을 행하는 사람이 진짜 하나님의 사자라는 것을 보여 주는 표적들을 가리킨다(마 12:38; 요 20:30-31). ‘테라스’(teras)는 자주 쓰이는 단어는 아니지만 ‘세메이온’이란 단어와 함께 쓰였고(‘표적과 기사들’- 마 24:24), ‘에라곤’(eragon)은 ‘역사’(work)를 말한다(요 7:3; 10:32). 예수님의 기적들의 중요성은 니고데모의 예수님에 대한 고백에 요약되어 있다.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요 3:2).
그러나 기적이 믿음을 만들지는 않는다. 바로의 마음은 모세의 기적들에 의해 더 완고해졌고, 그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을 더 미워했으며(출 8:19), 아합과 이세벨은 엘리야의 기적에도 불구하고 회개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그리스도의 기적들을 목격한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거부했고(요 9:28-34) 도리어 예수님을 대적하는 자들은 그를 사탄과 한통속이라고 주장했다(마 12:22-30).
반면 기적들은 믿음을 만들지 않지만, 사람들이 신앙과 불신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든다. 기적들은 그것을 관찰하는 사람들이 잘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다. 분명히 바로는 그의 노예들의 하나님을 무시할 수 없었다. 아합 시대의 이스라엘인들은 우상숭배로 빠져들 수 없었다. 예수의 말을 들었던 사람들은 그의 기적이 놀라웠기 때문에 그의 말을 무시할 수 없었다.
성경은 영적인 은사 중의 하나로 기적 행하는 은사를 언급하고 있다(고전 12:10, 28-29). 그러나 또한 성경은 앞으로 올 ‘모든 가짜 기적들과 표적들과 이적들을 행할 적그리스도의 기적들’도 예언한다(살후 2:9). 사도 바울은 이런 거짓 기적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라 ‘멸망하는 자들’만을 속일 것이라고 한다(살후 2:9-10).
이적(Miracle)
상식적이고 자연적인 것을 초월하는, 즉 초자연적인 사건이나 일을 말한다. 성경에 나타난 이적들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 인간의 역사 안으로 직접 개입하셔서 행하시는 일을 가리키지만, 또한 이것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그의 백성들이 이해하고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구약에서의 이적: 이적이라는 말은 성경에서 히브리어로 ‘모페트’(mopheth)와‘펠레’(pele?가 주로 사용되었다.
‘놀라움, 기사, 잠재력, 기적’ 등을 뜻하는 히브리어 ‘모페트’는 하나님의 능력을 특별히 드러낼 때 쓰이는 단어이다.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백성을 바로의 손아귀에서 구출하기 위하여 이집트 궁정에서 이적을 행했을 때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이제 내가 바로에게 하는 일을 네가 보리라 강한 손을 더하므로 바로가 그들을 보내리라 강한 손을 더하므로 바로가 그들을 그 땅에서 쫓아내리라”(출 6:1)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자기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하여 일상적인 자연 질서를 깨뜨리고 놀라운 능력을 나타내신 것이다. 그러나 처음에는 이집트의 술객들도 아론이 지팡이로 뱀을 만든 것과 같은 이적을 행했다(출 7:8-13). 이적이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는 방법이기는 하지만 다른 신을 섬기는 선지자들도 이적과 기사를 행할 수 있다고 말한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들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기 위하여 시험하기 위한 것이므로 이적과 기사가 그들에게 이루어질지라도 듣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신 13:1-3).
이적을 가리키는 또 다른 단어 ‘펠레’는 홍해를 건넌 뒤 이 놀라운 사건을 노래한 출애굽기 15:11에서 ‘여호와께서 행하신 기이한 일’로 번역되었다. 이것은 하나님 이외에는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또한 이 단어가 시편에서는 홍해를 건넌 사건과 같은 특별한 사건이 아닌, 자연계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시 89:5-6).
신약에서의 이적: 신약에서 이적은 아주 중요한 개념으로 등장하고 있다. 헬라어에서 ‘이적’에 해당하는 단어는 ‘타우마’(thauma)이지만 실제로 성경에서는 사용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우리가 이적이라고 부르는 것은‘세메이온’(semeion; 표적), ‘테라스’ (teras; 이례적 사건, 이적), ‘뒤나미스’(dunamis; 권능, 힘, 능력)와 같은 용어들의 번역이다. 이 말들은 이스라엘을 애굽으로부터 구해 주신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며(출 7:3-4; 신 4:34), 또한 권능과 능력이 하나님의 이름과 동의어로 사용될 수 있다(시 54:4; 렘 16:21과 행 4:7; 출 9:16과 롬 9:17)는 구약의 정신을 반영하고 있다. 특히 예수님에게서 이적들은 역사 속에서 구원을 이루시고, 구원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능력의 표현들로 나타났다.
예수님의 이적의 독특성: 한편 예수님의 이적들은 당시 주위 세계의 이적과 차이를 가지며, 또한 구약의 엘리야의 것과도 차이가 있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의 이적은 그 독특성과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먼저 예수님의 이적은 대부분 선물(先物) 이적이 아니었다. 물론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베풀어진 포도주 이적이 다소 선물 이적의 요소가 부분적으로 나타나고 있으나 전체적인 의미에서는 선물적인 의미가 중심이 될 수 없다. 오히려 가나의 포도주 이적은 어려운 상황에 닥친 가정을 구해 주는 자연 이적의 성격이 강하며, 이 이적을 통해 예수님이 누구이신가가 드러나게 된다.
또한 예수님께는 징벌 이적이 없다. 그와 유사한 것으로 무화과나무 저주에 관한 이적(막 11:12-14, 20)이 있으나 이것은 분명 예수님의 비유적인 행위였을 뿐이다. 예수님에게 징벌 이적이 없다는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나라를 가져온 태도와 정확히 일치한다.
예수님의 이적이 갖는 또 하나의 독특한 점은 이적 사역에 믿음이 결부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고향 사람들에게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이적 베푸시기를 거부하였다(마 13:58; 막 6:5). 또한 유대 지도자들이 요구한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 역시 거부하였다(막 8:11 이하). 그래서 예수님의 이적 이야기에는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는 말이 중요하게 등장한다(막 5:34; 5:36; 눅 8:50; 막 10:52; 눅 18:42; 마 8:10과; 눅 7:9; 막 9:23 이하).
예수님의 사역에 나타난 이적
예수님의 사역에서 이적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예수님이 행한 이적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범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육체적인 질병의 치유 (2)축귀 (3)죽은 자의 소생 (4)자연 이적(급식 이적, 물위를 걸으심, 풍랑을 잔잔케 하심, 무화과 나무 저주, 가나 혼인잔치에서의 이적).
치유 이적에서 예수님은 고난받고 있는 인간을 대상으로 하며, 구체적인 치유의 성격을 띠고 있다. 여기에서는 예수님의 치유적 말씀과 동작, 특히 예수님과 병자 사이의 인격적 접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 과정에서 예수님께 나아오는 자의 믿음이 중요한 동기로 등장한다(막 5:34, 36; 10:51 이하). 이런 동기는 죽은 자의 소생에서도 나타난다(막 5:21-43; 눅 7:11-17).
축귀 이적은 마가복음에 많이 나오며(막 1:23-27; 5:1-20; 9:14-29), 이 이적에서 예수님은 인간을 사로잡고 비인간화시키는 귀신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추방해 내신다. 귀신 축출 이적의 초점은 귀신과 그의 권세자 사탄이 더 강하신 분 곧 예수님께 굴복하는 데 있다(막 1:24; 5:7). 자연 이적은 바람, 풍랑, 배, 식량 등 사물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며, 긴박한 상황과 위협적인 자연의 힘으로부터 인간을 구조한다(막 4:36-41; 6:31-44, 45-52; 8:1-9; 11:12 이하; 눅 5:1-11; 요 2:1-11 등).
예수님의 이적의 의미
예수님의 이적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그것이 그의 하나님 나라 선포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예수님은 도래한 하나님의 왕적 통치를 구약의 예언자 정신에 서서(사 45:1-13; 61:1-3; 시 146:7) 가난한 자에게 복된 소식으로, 병든 자에게 치유의 기쁨으로, 포로된 자에게 자유로, 갇힌 자에게 해방으로 선포하였다(마 5:3 이하; 눅 4:16-21). 예수님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왕적 통치는 상한 자를 싸매어 주고 병든 자를 강하게 하는 하나님의 종말적 목자 통치와 같은 것이었다(겔 34:15-16). 예수님께서 시각 장애자의 눈을 뜨게 하고, 귀신에게 사로잡힌 자를 해방시킨 사건들은 종말론적 메시아의 구원의 때와 함께 찾아올 하나님의 왕적 통치가 이미 예수님의 이적 활동 속에서 도래하였음을 알리는 구체적인 징표요, 이미 시작된 하나님 나라의 첫 열매들이었다.
귀신을 축출한 이적들에서 예수님은 구시대와 구시대의 권세자 사탄의 통치의 종말을 선언한다. 예수님은 자신을 강한 자 사탄보다 더 강한 자로 밝히고 있고(막 3:27; 눅 11:22), 자신의 공생애 활동을 통하여 귀신들의 우두머리 사탄의 권세가 땅에 떨어진 것을 알리고 있다(눅 10:18). 나아가 이적은 새 시대, 즉 메시아를 통한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것이며, 하나님의 종말적 구원의 권능이 역사하고 계심을 드러내고 있다.
[비전성경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