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사전] 바벨,바벨론,바벨탑-지구라트. 하나님에 도전 or 강림기원. 알렉산더대왕의 실패

작성자안현상|작성시간09.09.03|조회수3,429 목록 댓글 0

[성경사전] 바벨,바벨론,바벨탑-지구라트(ziggurat) 

 

 

1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2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3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4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5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 

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7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8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9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창세기 11장 1-9절) 

 

                                                           * 바벨탑 

 

< 바벨 >

바벨 ( Babel) 「하나님의 문」


일반적으로 `바벨론'(Babylon,Barulwvn)으로 번역되는데(왕하 17:24기타), 두 군데만 번역상의 관습에 따라 `바벨'을 사용하고 있다(창 10:10,11:9).

태고에 니므롯이 시날 땅에 세운 성읍(창10:10)인 경우 70인역이‘바벨론’으로 번역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바벨론'으로 하지 않고 좀 오랜 감이 드는 `바벨'을 채택하였다.

또 말의 혼잡에 관한 경우(창 11:9) 그러므로 그 이름을‘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케하셨음이라…라는 어형의 유사에 의한 어조(語調)에 주의를 끌기 위해 바벨을 취하고 있다.

바벨과 혼잡의 관련 때문에 후에는 바벨(바벨론)은 악의세력의 상징으로 된다(계 14:8,16:19). →바벨론


〈참조〉 바벨탑(Tower of Babel):바벨의 이야기(창 11:1-9)는 가장 소박하나 의미심장한 두 가지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첫째는, 무엇 때문에 지상의 민족은 각기 다른 말을 쓰고 있는가,

둘째는, 무엇 때문에 고대 바벨론의 주민은 오늘날도 아직 남아 있는 거대한 벽돌

(햇빛에 말린) 탑 직구랏(지구라트Ziggurat)을 세웠을까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과 답변에서 성경 기자는 심원한 영적 교훈을 가르쳐 주고 있다.


탑은 인간이 자기의 위대화와, 하나님 없이 인간의 일치를 만들을 수 있다는 인간의 세속적 야심을 상징하고 있다. 하나님은 인간의 교만에 심판을 내리시는데, 그것은 아무런 폭력적 수단에 의하지 않고 다만 언어를 혼란시키는 방법을 취하셨다.

그것 때문에 그들은 상호 이해 수단을 잃어 각자 자기 갈 곳으로 흩어져 갔다는 것이다.


오순절에서는 이 바벨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심판과는 반대였다(행 2:1-11). 여기서는 하나의 언어가 많은 언어를 달리하는 사람들에게 모국어로 말하도록 이해되었다. 바벨에서는 하나의 언어가 사용되었지만, 형제는 상호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펜태코스트(Pentecos, 오순절)에는 많은 상이한 언어의 사람들이 서로 형제처럼 이해와 사랑이 있었다.


`하나에서 여럿으로'가 바벨 분렬의 비극이며,

`여럿에서 하나로'가 오순절의 축복이다.


성령에 의한 진정한 일치야말로 하나님의 목적이다(창 10장,행2장에 제민족이 열거되어 있는 것은 주의할 만하다).


바벨탑의 기원은 바벨론의 도시국가의 특징으로 되어 있는 직구랏(지구라트Ziggurat)이다. 이것은 피라밋형의 높은 탑인데, 보통은 7층 루로 되어 있으며, 신전의 뜰 중앙에 세워졌다. 정상에는 신전이 설치되어 거기서 제사를 드렸다.


7층 루는 7색으로 칠해졌고, 다섯 개의 유성과 태양, 태음, 또 이에 해당하는 신들의 상징인데, 다음과 같은 관계에 있었다.


제1층 토성(土星)ㆍㆍㆍㆍ니니브(Ninib)ㆍㆍㆍㆍ  흑색(黑色)

제2층 목성(木星)ㆍㆍㆍㆍ(마르두크Marduk)ㆍㆍ   등황색(橙黃色)

제3층 화성(火星)ㆍㆍㆍㆍ네르갈(Nergal)ㆍㆍㆍ   심홍색(深紅色)

제4층 태양(太陽)ㆍㆍㆍㆍ샤마슈(Samas)ㆍㆍㆍ    황금색(黃金色)

제5층 금성(金星)ㆍㆍㆍㆍ이슈타르神(Istar)ㆍㆍㆍ담황색(淡黃色)

제6층 수성(水星)ㆍㆍㆍㆍ느보神(Nebo)ㆍㆍㆍㆍ   남색(藍色)

제7층 태음(太陰)ㆍㆍㆍㆍ신神(Sin)ㆍㆍㆍㆍ      백은색(白銀色)


바벨론에 있어서 발굴 결과 바벨탑은 말두트 신전 에사길라(Esagila=머리를 높이 든 자의 집)의 북쪽 에데메난키(Etemenanki=하늘과 땅의 터의 집)라고 하는 직구랏과 동일시된다. 이것은 슈메르인이 기공한 것인데, 아마 셈족의 침입에 의한 정치적 변동 때문에 준공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 이 미완성 탑의 거대한 유물은 오랜 동안 고대 세계의 불가사의 중 하나로 되었다.


산헤립의 바벨론을 점령했을 때 이 유물을 제거하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에살핫돈, 앗슈르바니발들도 이의 재축을 시도했지만 모두 성공하지 못하였다. 이어 나보폴랏사르(나보폴라사르 Nabopolassar, BC 626-605)도 공사를 계속했지만 성공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떠나버리고 그 완성은 겨우 느부갓네살 Ⅱ세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의 비문에는 이것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다. 탑의 지계(地階)는 91.4㎡, 높이 36.5m, 제 2층의 주변은 지계보다 좁고 높이는 20m, 제 3층에서 6층까지는 각층 공히 높이 6.4m, 그 주변은 층이 올라감에 따라 좁아지고 제 7층, 즉 최상층은 높이 17m, 그 안에 신전이 설치되어 있었다. 탑 전체의 높이는 98.5m에 이르고 있었다. 바벨론의 멸망 후 이 폐허는 주변의 주민이 볕에 말린벽돌을 떼어내는 곳으로 되어졌다. 옛날 탑의 기초가 있던 부근은 오늘날 겨우 91.5㎡의 구멍으로 되어 있다.


[참조] 지구라트 [ziggurat]

 

메소포타미아의 각지에서 발견되는 고대의 건조물.

하늘에 있는 신(神)들과 지상을 연결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성탑(聖塔) 또는 단탑(段塔)이라고도 한다. 수메르시대 초기에 신전(神殿)의 기단(基壇)에서 발달하였는데, 그 전형적인 형식은 점점 작아지는 사각형의 테라스를 겹쳐 기단으로 하고(때로는 7층에 이른다), 그 최상부에 직사각형 신전을 안치하였다. 벽돌을 쌓아 평면이 사각형 또는 직사각형의 단(段)을 3∼5장 겹치고, 최상단에서 다시 계단으로 오르는 사당(祠堂)이 설치되어 있다.


원래는 각 도시에 있었으나, 거의가 무너져버려 원형을 간직하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까지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것은 우르의 지구라트인데, 밑변이 62.5×43 m이다. 우르 제1왕조의 것을 우르 제3왕조의 우르남과 슈르기가 수복(修復)한 것이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바벨탑’은 바빌론의 지구라트를 가리키는 것이다. (네이버 백과사전)

 

 

 

 

                                                            * 지구라트 


< 바벨론 >  

바벨론 (Babylon) 「하나님의 문」


메소보다미아(현재의 이라크)의 고대 도성이다. 그 폐허는 유브라데의 한 지류에 있으며, 바그다드의 서남, 그러니까 오늘날의 힐라(Hilla) 부근에 있다. 발굴은 일찍부터 행해져 왔지만 지역이 광대하기 때문에 아직 부분적으로 밖에 진행되고 있지않다. 또 지하의 수맥(水脈)이 높아 깊이 파내려갈 수 없기 때문에 발굴은 신(新)바벨론과 그 후의 비교적 새 시대의 성읍에 집중되어 왔다.

 

 

(1) 역사

:BC 3000년대와 그 이전의 층에는 미치지 못하므로 성읍으로서의 바벨론의 기원에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다. 최고(最古)의 문헌적 자료는 악갓 시대의 것인데(BC 2500 경),샤르칼리 샤리(Sharkali-sharri) 왕의 연표(年表)에 기록되어 있다. 즉, 왕은 카딩기르(키, KA. DINGIRki)에서 여신 아누니툼(Anunitum)과 신 아바(Aba)의 두 신전의 건립을 축하했다고 했다.

이 이름은 성읍의 슈메르 이름 카딩기락(Ka-dingirak), 또는 악갓 이름 바브일림(Bab-ilim)의 어느 것에서 유래했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양자 공히 `하나님의 문'을 의미한다.

Bab-ilim이라는 이름의 최초 용례(用例)는 우르(Ur) 제 3왕조 시대의 본문에 있다(BC 2200-2100 경). 그 당시 바벨론은 아직 한 도의 도성에 불과했다. 이어 이신 라르사(Isin-Larsa)시대에 성읍은 아모리인의 왕조에 의한 소독립국의 도성으로 되었다. 그 왕조의 가장 저명한 왕 함무라비(Hammurabi) 때에 바벨론은 남메소보다미아의 거의 전토에 지배를 확장했다. 그러나 이 왕조는 BC 1600년보다 약간 후에 힛타이트의 침략을 받아 멸망했다. 다음의 캇시트(Cassite) 시대와 중기 바벨론 시대에 바벨론은 남 메소보다미아의 도성으로서의 위치를 유지했다.

도성은 앗수르의 지배자 투쿨티 니누르타 Ⅰ세(Tukulti-Ninurta Ⅰ, BC 1235-1198)에게 점령되어 일부는 파괴 되었지만세력을 회복하여 이 불행에서 벗어났다. 앗수르의 디글랏 빌레셀 Ⅲ세와 사르곤 Ⅱ세가 남메소보다미아를 정복했을 때 바벨론은 저항의 중심지로 되었기 때문에 산헤립은 BC 689년 드디어 도성을 멸망시켜 버렸다.


그러나 산헤립의 아들 에살핫돈은 도성을 재건하여 그 후계자 아슈르바니발의 형제 샤마슈슘우킨(Shamash-shum-ukin)은 바벨론의 섭정으로 되었다. 이 섭정은 왕에 반역했기 때문에 바벨론은 가혹한 공격을 받았다. 그러나 BC 608년 바벨론의 반항에 의해 마침내 앗수르 제국이 멸망 당한 후부터는 이 도성은 신바벨론 제국의 수도로서 가장 빛나는 시대를 맞았다.

나보폴랏사르(나보폴라사르 Nabopolassar)와 느부갓네살 Ⅱ세는 공공 건축과 요새 구축의 대사업을 추진했다. 신바벨론 제국이 바사에 투항했을때 바벨론시는 아무런 저항도 없이 고레스 왕에게 성문을 열어 주었다(BC 539).

바벨론은 그 후 바사 왕들의 밑에서 지배적인 지위를 유지했다.

바사 제국이 알렉산더 대왕에게 쓰러졌을 때에도 바벨론은 저항하지 않고 대왕을 받아들였다. 바벨론은 당연히 알렉산더의 신제국 수도로 선택되었다. 그러나 그의 후계자 셀레우코스Ⅰ세 니카토르(SeleucusⅠ Nicator)가 티글리스(티그리스) 강가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셀류키아(Seleucia)를 건설한 다음부터는 이 도성은 바벨론의 존재를 위협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서서히 바벨론의 주민은 셀류키아로 이주하고 바벨론은 황폐하기에 이르렀다.


신약성경 시대에 이 고대 도시는 겨우 천문학자와 수학자의 단체가 살고 있었는데 불과하였다.


(2) 건조물

:신바벨론 제국의 바벨론은 유브라데 강을 사이에 두고 그 양 안에 대략 구형을 이루고 동북 서남으로 뻗어나갔다.

 

 

강 동쪽 지역은 시의 옛 부분을 포함하고 있고, 왕궁과 주요 신전이 있었다.

서쪽 지역은 보다 후대의 것인데 `새 도성'이라 불리우고 있었다. 이구형을 이중의 벽이 둘러싸고 있다. 내벽(內壁)은 임구르 엔릴(Imgur-Enlil)이라 불리웠는데, 폭은 약 7m, 외벽 네멧티엔릴(Nemetti-Enlil)의 폭은 약 4m였다.벽위에는 18m-20m 간격으로 탑이 서 있었다. 시내에 들어갈 때에는 해자의 다리를 건너 이중 성벽의 문을 지나게 되어 있다. 느부갓네살 Ⅱ세는 이들 성벽 외에 도성 남쪽과 동쪽에 다시 이중의 벽을 쌓아 방비를 견고히 하였다. 이 새 이벽의 외중 벽은 폭이 약 8m, 내벽도 그만하였다. 다시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이들 성벽의 북쪽과 동쪽에 인공호수나 해자의 지대가 만들어져 있었다.

성읍 북쪽에서 이 느부갓네살 방벽을 통과하여 들어가면 안쪽에 바로 유브라데의 제방 위에 하궁(夏宮, Summer Palace)이라 불리우는 궁전이 있었다. 이 궁전을 덮은 사구(砂丘)를 오늘날도 역시 `바빌'(Babil)이라고 부르며, 성읍명을 보존하고 있다. 더 나아가면 제 2의 큰 궁전과 그와 비슷한 건물(`兵營'이라고 불리운)이 길 좌우에 있었다. 이들 건물의 가로쪽 벽은 채색(彩色) 에나멜 칠을 한 기와인데, 사자의 열이 양각되어 있었다.

그리고 곧 유명한 이슈타르 문(the Ishtar Gate)에 이른다. 그 아치형 입구는 폭이 5m, 높이는 약 9m인데,양쪽에는각각사각탑(四角塔)이 서 있었다. 탑과 문의 표면은자색을 띤 남색 타일인데, 일렌의 황소와 용의 채색 양각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문을 들어가 문 안쪽 홀을 지나면 외벽, 즉 네멧티 엔릴(Nem etti-Enlil)을 통과한 것이 된다. 거기서 다시 제 2의 큰 문에 들어가 내벽, 즉 임구르 엔릴을 지난다. 이 문도 청파리색(靑坡璃色) 타일로 단장되어 있었는데, 한층 높고 컸다. 그 배후에 약 30m의 안쪽 문홀이 있고,그 곳을 나가면 시내를 남쪽으로  곧바로 내려가는  주요 도로  아이부르 샤부(Aibur-Shabu)가 통해 있었다. 이 지점에서는 왼쪽에 여신 닌마크(Ninmakh)의 신전이 보였다. 그와 같은 주요한 신전만도 시내에는 얼마든지 있었다. 또 바로 오른쪽에는 바벨론의 여러 궁전 중 최대의 것이 있었다.


이 궁전은 세 개의 주요한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각 부분은 방형의 광장을 중심으로 많은 방이 늘어 서 있었다. 도로에 면한 부분에는 왕의 공적 알현실(謁見室)이 있었으며, 거기에 옥좌가 있었다. 제 2의 부분은 왕의 거주용으로, 제 3의 부분은 하렘으로서 세워진 것이었다. 시내 중심부보다 조금 남쪽에는 마르두크(Marduk) 신전인 에사길라(Esagila)가 서 있었다. 이 신전의 주요한 문은 동쪽에 있었다. 그곳을 들어가면 많은 방으로 둘러싸인 방형의 광장이 있었다. 더 안으로 들어가면 신전의 주건물이 여럿이 늘어서 있었으며, 높은 금단(金壇)에 대리석의 마르두크상(像)을 안치한 장방형의 건물도 거기 있었다. 건물의 장식은 호화의 극을 이루고 지붕의 대들보는 금은으로 씌우고 벽도 금으로 덮여 있었다. 신전 북쪽에 있는 탑 에테메난키(Etemenanki)는 웅장했으며, 이것이 바벨탑의 이야기와 관계가 있다고 한다(창 11:1-9). 그밖에 시내의 교량이나 늘어선 많은 집도 발굴되고 있다.


(3) 성경에서의 바벨론

:바벨론은 부요하고 호화스러운 도성이었다는 평판을 얻고 있었는데, 이것은 고고학적 발견으로부터도 증명된다. 더구나 이 평판은 단순한 사실을 말하는 것이아니고, 도덕적인 판단이 더해져 있었으며,


특히 계시록의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17:5)에 표시된 것처럼 `바벨론'은 종교적, 도덕적 악과 오만한 대적과의 상징으로서 묘사되어 있다. 이것은 유대인의 종교적 확신과 바벨론의 지배자들의 유대인에 대한 가혹한 취급 등을 아울러 생각한다면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유대교에서의 이 평가는 초대 기독교에도 계승되어 바벨론은 온갖 독신(瀆神)과 우상 예배가 행해진 악마의 영역으로서 상징적으로 받아졌다(계 17:15-18). 초대 교회에 있어서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대적자의 원형(原型)으로서, 당시의 로마의 도성, 또는 제국(帝國)을 의미함과 동시에(벧전 5:13) 종말에 가서는 멸망될 악마의 지배와 권세를 의미했다(계 17:5).



< 바벨탑(~塔) > 


[영] Tower of Babel. 바벨탑의 기사는, 창 11:1-9에 보여지는데, 홍수 후의 인간의 문명의 하나의 도달점이 여기서 간결한 기사에 의해 훌륭히 설명되어 있다. 여기에는 의미심장한 두 가지의 물음에 대한답이 보여져 있기도 하다.

 

 

제1은, 어찌하여 지상의 민족은 종류가 다른 말을 쓰고 있는가,

제2는, 어찌하여 고대 바빌로니아의 주민은 오늘날도 아직 남아 있는 거대한 구운 벽돌의 탑(塔) 지구라트(Ziggurat)를 세웠는가의 물음인데,


이 물음과 답에서 성서기자는 심원한 영적 교훈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탑은, 인간이 자기의 위대함과 하나님 없이 인간의 일치를만들 수가 있다는 인간의 세속적 야심을 상징하고 있다. 하나님은 인간의 교만에 심판을 내리시는데, 그것은 어떤 폭력적 수단에 의하지 않고, 다만 언어를 혼란케 하시는 방법을 취하셨다. 그러므로 그들은 상호 이해의 수단을 잃고, 각자 흩어져 갔다는 것이다.


오순절의 일은, 이 바벨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심판의 역(逆)이었다(행 2:1-11). 여기서는 하나의 말이, 많은 언어를 달리하는 사람에게 모국어로 말하듯이 이해되었다. 바벨에서는 하나의 언어가 말해졌지만, 형제는 서로 이해치 못했다. 그러나 오순절에는 많은 다른 언어의 사람들이 서로형 제처럼 이해할 수 있는 사랑이 있었다.


[하나에서 여럿으로]가 바벨의 분열의 비극이고,

[여럿에서 하나로]가 오순절의 축복이다.


성령에 의한 참 일치야말로 하나님의 목적이시다(창10장과 행2장에 여러민족의 列記가 있는 것은 주의할 만하다).


바벨탑의 기원은 바빌로니아의 도시국가의 특징으로 되어 있는 지구라트(Ziggurat)이다. 이것은 피라미트 형(形)의 높은 탑으로서 보통은 7층루(七層樓)로 되어 있으며, 신원(神苑)의 중앙에 세워졌는데, 정상에는 신전이 만들어지고, 거기서 제의가 행해졌다. 7층루는 일곱 가지 색으로 칠해지고, 5개의 유성과 태양, 태음, 또는 그것에 상당하는 신신의 상징으로 다음과 같은 관계였다.


제1층 토성(土星)ㆍㆍㆍㆍ니니브(Ninib)ㆍㆍㆍㆍ  흑색(黑色)

제2층 목성(木星)ㆍㆍㆍㆍ(마르두크Marduk)ㆍㆍ   등황색(橙黃色)

제3층 화성(火星)ㆍㆍㆍㆍ네르갈(Nergal)ㆍㆍㆍ   심홍색(深紅色)

제4층 태양(太陽)ㆍㆍㆍㆍ샤마슈(Samas)ㆍㆍㆍ    황금색(黃金色)

제5층 금성(金星)ㆍㆍㆍㆍ이슈타르神(Istar)ㆍㆍㆍ담황색(淡黃色)

제6층 수성(水星)ㆍㆍㆍㆍ느보神(Nebo)ㆍㆍㆍㆍ   남색(藍色)

제7층 태음(太陰)ㆍㆍㆍㆍ신神(Sin)ㆍㆍㆍㆍ      백은색(白銀色)


바벨론에 있어서의 발굴의 결과, 바벨탑은 마르두크의 신전(神殿) 에사길라(Esagila=머리를 높이 든 자의 집)의 북방 에테메난키(Etemenanki=하늘과 땅의 기초의 집)라고 불리우는 지구라트로 동정된다.

이것은 슈메르인에 의해서 기공된 것인데, 결국 셈족의 침입에 의한 정치적 변동 때문에 준공하지 못하기에 이르렀다. 이 미완성인 탑의 거대한 유물은 오랫동안 고대세계의 불가사의 중 하나로 되었다. 산헤립(Sennacherib 전 704-681)이 바벨론을점령한 때 이 유물을 제거하려 했으나 성공치못했다. 에살핫돈(Esarhaddon 전 680-669),앗슈르바니팔(Asshurbanipal 전 668-631)등도 이 재축(再築)을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로 끝났다. 이어서 나보폴랏살(나보폴라사르 Nabopolassar 전 626-605)도공사를계속했으나 성공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그 완성은 겨우 느브갓네살 2세(Nebuchadnezzar Ⅱ 전 605-562)에의해이룩되었다. 그의 비분에는 이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다. 탑의 지계(地階)는 91.4㎡이고, 높이 36.5, 제2층의 주변은 지계(地階)보다 좁고, 높이는 20m, 제3층에서 6층까지는 각 층 모두 높이 6.4m, 그 주변은 층을 거듭함에 따라 좁아지고, 제7층 즉 최상탑은 높이 17m, 그 가운데 신전이 세워져 있으며 탑 전체의 높이는98.5m에 미치고 있었다. 바벨론 멸망후 이 폐허는 주변 주민의 흙벽돌 절취장(切取場)으로 되어버렸다. 옛 탑의 기초였던 부근은 현재 불과 91.5㎡의 구덩이로 되어 있다.(출처:인터넷)

* <바벨탑>의 설명 내용이 <바벨>의 설명과 유사하고 중복되나 그대로 게재함.

 

 

< 바벨탑 관련 다른 글 >

 

신을 경배하는 지구라트


기원전 3세기 바빌론의 신관이자 역사가 베로수스는 인간들이 원래는 한 민족이었으나 다음과 같은 사건 때문에 언어가 달라지고 다른 민족으로 나누어졌다고 기록했다. "최초의 사람들은 자신의 힘을 너무 믿어 신을 경멸하고 자신이 신보다 위대하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오늘날 바빌론이 있는 곳에 높은 탑을 쌓았다. 이 탑이 하늘에 닿으려 할 때 갑자기 신이 있는 곳에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해 탑을 무너뜨렸다. 탑의 폐허는 바벨이라고 이름이 붙여졌다. 사람들은 이때까지 같은 언어를 사용했는데, 신은 이들로 하여금 다른 언어로 말을 하게 만들었다."


성경의 창세기에는 이와 비슷한 얘기가 등장한다.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투스도 바벨탑의 규모에 대해 언급했다. 과연 바벨탑은 실재로 존재했을까.


바벨탑처럼 각 시대의 예술가들에게 수많은 영감을 불러 일으킨 것은 드물다. 신들이 인간의 도전에 대한 대비책으로 인간의 언어를 뒤죽박죽으로 만들고 건설중인 탑을 파괴한다는 전설은 예술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떠올리게 하는 소재였기 때문이다.


우선 예술가들은 바벨탑의 규모가 도대체 얼마나 되길래 신들조차 두려워했는지 알고 싶어했다. 하늘까지 오르려면 어떤 구조로 건설해야 하는지는 더욱 궁금한 일이었다. 중세시대의 삽화를 보면 상상력으로 그린 바벨탑이 여러가지로 등장한다.


그러나 바벨탑은 상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실재로 존재하는 탑이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는 지구라트라는 건축물이 존재한다. 바벨탑은 바빌론에 지어진 지구라트의 하나일 뿐이다.


메소포타미아의 풍요로운 도시국가들은 기원전 3000-500년 사이 자신들이 숭배하는 신을 모시는 수백개의 지구라트를 만들었다. 바빌론, 우르크, 우르와 같은 주요 도시들은 도시 중앙에 거대한 지구라트를 갖추고 있었다. 현재 유적이 확인된 것만 해도 30곳 이상이다. 지구라트는 위로 올라갈수록 규모가 작아지는 단으로 된 피라미드 형태의 탑이다.


현존하는 최고의 지구라트는 우르에서 발견됐다. 이 지구라트는 기원전 1천2백년 경에 건설됐다. 5단으로 만들어졌으며 높이는 50m다. 꼭대기에 있는 신전은 신관만이 출입할 수 있고, 일반인은 1단까지만 접근이 허용된다. 이 지구라트에서 올려지던 특수 의식에 대한 전설은 지구라트가 종교적인 용도로 사용됐음을 말해준다.


수많은 지원자 중에서 엄선된 한쌍의 남녀는 지구라트 위의 신전 앞에서 엄숙하게 결혼식을 올린다. 식이 끝나면 부부와 수행원, 그리고 가족들은 신전 안으로 들어간다.


이곳에는 두개의 관이 있는데, 이곳에서 신랑과 신부는 성스러운 죽음을 맞는다. 그들이 관속에 뉘어지면 수행원들도 독약을 마시고 부부를 따라간다. 곧 가축들을 죽여 제물로 바친 후 무거운 돌문을 닫는 것으로 의식은 끝난다. 이들의 성스러운 죽음으로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신들의 은총이 내려져 풍요와 영원한 삶이 보장된다.


알렉산더 대왕이 포기한 사업


그러나 모든 지구라트에서 인간을 제물로 희생시킨 것은 아니다. 지구라트는 신들이 내려와 축복을 내릴 수 있도록 만든 건물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홍수에 휘말리고 작열하는 태양의 불볕에 시달리는 세계에서 인간이 신의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다는 점은 쉽게 이해가 간다. 지구라트를 만든 동기가 신의 강림을 바라는 인간의 욕망이었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여기서 유명한 바벨탑이라 불리는 지구라트를 생각해보자. '바벨'은 '신의 문'이라는 뜻으로, 유태인들이 붙인 이름이다.


바벨탑을 처음 발굴한 사람은 독일의 콜데바이다. 그는 1913년 바빌론을 발굴하던 중 도시의 중앙에 있는 거대한 탑 유적의 토대에서 기원전 229년에 새겨진 점토판을 발견했다. 점토판에 따르면 탑은 7층이고 그 위에 사당이 설치돼 있었다. 몇가지 자료를 종합해 조사한 결과 바벨탑을 세우는데 모두 8천5백만개의 벽돌을 사용했으며, 건물의 규모는 가로와 세로, 그리고 높이가 약 90m에 달했다는 점이 밝혀졌다.


이렇듯 바벨탑의 규모는 다른 지구라트보다 훨씬 크다. 이런 거대한 규모를 갖게 된 것은 바빌론이 다른 도시들을 압도할 정도로 정치·경제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당시 바빌론의 외곽 둘레의 길이는 16km에 이르렀고, 폭 27m에 달하는 도시의 내벽을 따라 경계탑들이 서있었다. 도시 한편으로는 유프라테스강이 흘러 천연의 방어선을 이루었다. 도시 안에 화려한 궁전이 수없이 지어졌고, 한때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였던 공중정원도 성 안에 있었다.


바벨탑은 기원전 479년 페르시아의 침공으로 철저히 파괴됐다. 알렉산더 대왕이 바빌론을 점령했을 때 폐허가 된 바벨탑을 재건하려 했지만, 너무나 거창한 사업이었기 때문에 중간에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1만여명의 인원이 2개월 간 투입된 후의 일이었다.


한편 건설 중이던 바벨탑 위로 혜성이 떨어져 수많은 사람들이 살상당했다는 대담한 가설을 세우는 사람도 있다.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전세계의 수많은 언어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단 하나의 혜성 충돌로 설명하는 것은 외계인이 지구라트를 건설했다는 주장만큼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출처: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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