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디아포라 [Adiaphora]
*뜻: 헬라어.'대수롭지 않은, 중요하지 않은', ‘아무렇게나 해도 좋은 것'
하나님께서 명령하시지도 그렇다고 금지하시지도 않은 행동들.
①실행해도 그만이고 행하지 않아도 죄가 되지 않는 대수롭지 않은 문제.
②본질적으로 선악과 관련되지도 않고
③구원의 문제와도 직결된 것이 아닌 것.
④성도 각 개인의 경건한 사색에 의한 판단과 양심의 자유에 맡겨야 할 것
아디아포라[Adiaphora]
‘아디아포라’는 ‘대수롭지 않은’이란 뜻의 헬라어 ‘아디아포론’의 복수 형태로서, 하나님께서 명령하시지도 그렇다고 금지하시지도 않은 행동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즉, 그것은 실행해도 그만, 행하지 않아도 죄가 되지 않는 대수롭지 않은 문제로서, 본질적으로 선악과 관련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구원의 문제와도 직결된 것이 아닌 것이다. 때문에 성도 각 개인의 경건한 사색에 의한 판단과 양심의 자유에 맡겨야 할 것이다. 아디아포라의 대상이 되는 것은 주로 의식이나 행위에 관련된 문제들이다. 특히 율법을 문자적으로 시행할 뿐 아니라 세세한 부분까지 행동 규범을 정하고 사람들을 종교적으로 옭아매고 있었던 유대 사회 앞에서 예수께서 보여 주신 가르침과 행동들에서 많은 경우를 발견하게 된다.
예수께서는 하나님 앞에서 진정으로 생명을 위하고 내적인 성결을 이룬다면 외적인 의식을 준수하는 일은 별로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보셨다(막 3:4). 사도 바울 역시 이런 맥락에서 기독교인의 자유를 강조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 나라와 별로 상관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자유로워야 한다고 가르친다(롬 14:17; 고전 6:12; 8:8; 갈 5:6; 골 2:20). 더욱이 그는 주의 만찬을 제외하고는 어떤 형식도 인정치 않았으며,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는 권면으로 자신의 입장을 정리했다(고전 14:40). 하지만 그는 비록 개인에게 허락된 자유일지라도 그 자유보다 우선하는 윤리적인 원칙이 있음을 강조했다.
그것은 남을 배려하고 섬기는 도, 곧 참된 자유의 가르침이었다(롬 14:2-23; 고전 6:12; 8:9; 10:23-24). 결국 기독교인의 모든 행동은 자기 중심적이거나 자기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항상 하나님을 위하고 이웃을 위하여 금하기도 하고 명하기도 해야 하는 것이다.
[출처]라이프성경사전, 2006. 8. 15., 생명의말씀사
아디아포라[adiaphora]
헬라어로 '아디아포로스'('대수롭지 않은, 중요하지 않은'이란 뜻)로서, 이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시지도 그렇다고 금지하시지도 않은 행동들을 가리킨다. 즉, 그것은 ① 실행해도 그만, 행하지 않아도 죄가 되지 않는 대수롭지 않은 문제로서, ② 본질적으로 선악과 관련되지도 않을 뿐 아니라 ③ 구원의 문제와도 직결되지 않은 것이다. 때문에 ④ 성도 각 개인의 경건한 사색에 의한 판단과 양심의 자유에 맡겨야 할 내용들이다.
아디아포라의 대상은, 주로 의식이나 행위에 관련된 문제이다. 특히 율법을 문자적으로 시행할 뿐 아니라 세세한 부분까지 행동 규범을 정하고 사람을 종교적으로 옭아매었던 유대 사회 앞에서 예수께서 보여 주신 가르침과 행동에서 많은 경우를 발견하게 된다. 예수께서는 하나님 앞에서 진정으로 생명을 위하고 내적인 성결을 이룬다면 외적인 의식을 준수하는 일은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보셨다(막3:4). 사도 바울 역시 이런 맥락에서 기독교인의 자유를 강조했다. 그는 하나님 나라와 별로 상관없는 것들에서 적극적으로 자유로워야 한다고 가르친다(롬14:17; 고전6:12; 8:8; 갈5:6; 골2:20).
더욱이 그는 주의 만찬을 제외하고 어떤 형식도 인정치 않았고,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는 권면으로 자신의 입장을 정리했다(고전14:40). 하지만 그는 비록 개인에게 허락된 자유일지라도 그 자유보다 우선하는 윤리적 원칙이 있음을 강조했다. 그것은 남을 배려하고 섬기는 도, 곧 참된 자유의 가르침이다(롬14:2-23; 고전6:12; 8:9; 10:23-24). 결국, 기독교인의 모든 행동은 자기 중심적이거나 자기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항상 하나님을 위하고 이웃을 위해 금하기도 하고 행하기도 해야 한다.
한편, 중세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프로테스탄트 특히 루터 파 교인들을 회유하기 위해 프로테스탄트적 교리와 로마주의적 색채를 적당히 혼합한 협정을 만들어내었다. 이때 소위 아디아포라주의자들은 로마교회에의 양보를 비본질적인 것 즉,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만들어 종교개혁의 의지를 꺾어보고자 했다. 그러나 이들 아디아포라주의자들의 견해는 분명 개혁파(칼빈주의) 교회의 원리와는 모순되는 것이었다.
[출처] 교회용어사전 : 교리 및 신앙, 2013. 9. 16., 생명의말씀사
아디아포라[adiaphora]
‘아무렇게나 해도 좋은 것'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퀴닉 학파, 스토아 학파는 유덕(有德)한 것, 즉 자연의 이(理)에 따라 이성적으로 사는 것은 선(善)이고, 부덕(不德), 즉 자연에 반하여 충동에 지배되는 것을 악으로서 엄격히 배제했는데, 이 엄격한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중간에 있는 생과 사(死), 명예와 불명예, 즐거움과 고통, 건강함과 건강하지 못함 등은 아디아포라로 무시되었다. 이 생각은 기독교 윤리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고, 종교개혁 시대에는 이 문제를 둘러싼 논쟁이 있었다.
[출처]철학사전, 2009., 중원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