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Faith)
신앙, 확신, 신뢰, 의뢰함을 의미하며 진실로 받아들이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성경에서의 믿음은 하나님께 자신의 삶을 바꾸는 태도를 말한다. 믿음을 지닌 사람은 하나님이 계시해 주신 진리를 확실하고 신뢰할 만한 것으로 여기고 신뢰, 사랑, 그리고 순종함으로 하나님께 반응한다.
구약에 나타난 믿음
창세기 15:6에 나타난 ‘믿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들과 같이 많은 자손들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을 때(창 15:5) 아브라함은 여호와를 믿었고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창 15:6). 창세기 15:6과 구약 전체를 통하여 사용된 히브리어 단어는 ‘아만’(’aman)이다. 이 단어의 어근은 견고하고, 믿을 수 있고, 확실하고, 그리고 진실된 것을 의미하며, 담대함을 가지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아멘’(’amen)은 이 어근에서 유래한다. 무엇인가를 믿는 사람은 그것의 신뢰성을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그의 아내 사라가 자녀를 갖는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신실성을 확신하였던 것이다.
바울이 수세기 후에 언급한 것과 같이 “그가(아브라함이)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롬 4:19-22).
아브라함은 그와 같이 하나님의 약속을 듣고, 그 상황을 평가하였고, 그리고 견고하고, 믿을 수 있고, 확실하고, 진실한 것으로 하나님의 약속에 자신의 믿음을 두도록 이성적인 결정을 했다.
바울은 창세기의 사건이 우리들의 유익을 위해 기록되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로부터 일으키신 것을 믿는 모든 자들에게 아브라함과 같이 그들의 믿음을 의로 여기실 것이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민수기 14장에 나타난 불신앙: 민수기 14장은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정복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했는지를 얘기하고 있다. 후에 모세는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믿지 아니하고 그 말씀을 듣지 아니하였나니”라고 말했다(신 9:23). 하나님을 참으로 믿는 것은 그를 믿을 만한 분으로 여겨 그의 약속을 중요시 하며 그의 말씀대로 행동함으로 하나님께 우리 자신들을 위탁하는 것으로 나타나야 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그의 도덕적인 성품을 계시하시고 신자에게 믿음의 삶을 안내하여 주는 율법을 주셨다(신 4:5-8).
신약에 나타난 믿음
신약에서 믿음의 대상은 예수님이시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 자신을 완전히 계시해 주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믿음: 신약은 ‘믿다’란 의미로 헬라어 ‘피스튜오’(pisteuo)를 사용한다. 우리들은 그 단어가 두 개의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요한복음에서 가장 잘 볼 수 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던 사람들 중 몇 사람들은 피상적인 믿음으로 반응을 보였는데, 그들은 예수님이 좀더 어려운 말씀들을 말씀하셨을 때 의심으로 바뀌어졌다 (요 2:22, 23; 6:60을 대조해 보라).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전적인 위탁을 가지고 예수님께 반응을 보였다. 그들은 아브라함이 이전에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였던 것 같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약속을 신뢰하였다. 이들은 예수님을 신뢰함으로 그들 자신과 그들의 현재적 삶과 그들의 영원한 삶을 그분의 손에 위임하였다.
요한이 이런 종류의 믿음을 얘기할 때, 그는 전형적으로 그것을 ‘생명’과 연관시킨 것을 주목하여 보라. 사실 요한은 그의 복음서의 목적을 그러한 용어로 표현하고 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1).
로마서 4장에 나타난 믿음 이해: 이 장은 창세기를 회고하면서 자식을 주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아브라함의 반응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롬 4:19-22).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나님 자신에게 있었고 또 그가 약속하신 것을 행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능력에 있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도 담대함을 가질 수 있다. 우리는 그 방법과 그 이유를 알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가 약속하신 것을 우리를 위해 행하실 것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히브리서 11장에 나타난 믿음: 이 위대한 장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다. 이 장은 계속해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행동으로 표현했던 남녀들을 열거하고 있다.
노아는 하나님이 경고하셨던 비가 땅에 홍수를 이루기 이전에 방주를 세웠다. 아브라함은 그가 아내의 임신의 표시를 보기 이전에 하나님의 자녀에 대한 약속을 믿었다. 애굽에서 죽었던 요셉은 미래를 내다보고 또 그의 가족의 후손들이 하나님이 그들에게 약속하셨던 땅으로 4세기 후에 돌아갈 것을 얘기하였다. 각 경우에서 믿음은 신자의 미래에 대한 개념을 형성하였고 또 그가 선택하였던 결정에 있어서 차이점을 만들었다. 믿음은 또한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바꾸어 놓는 개념을 우리에게 형성하여야 한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비록 아직까지 보지 못하지만 우리가 바라는 것에 대해서 확신할 수 있다.
야고보서 2장에 나타난 믿음: ‘믿음’은 적어도 두 가지 면에 있어서 효력을 발생할 수 없다. (1) 믿음의 대상이 잘못된 경우 - 거짓되거나 또는 헛된 대상에 믿음을 두는 자는 헛되게 믿는 자이다. (2) 믿음의 반응이 잘못된 경우 - 믿는 것에 대해서 개인적인 위탁 없이 지식적으로 믿는 자이다. 야고보는 심지어 마귀들도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고 떤다는 점을 가지고 이 두 번째 문제를 예증하고 있다. 행동으로 옮기도록 인도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반응 없이 어떤 것이 사실이라고 동의하는 것으로는 단순히 믿음이 있다고 생각할 수 없다. 예수님 안에서 부름 받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주님께 대한 우리의 총체적인 반응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이 신뢰할 만한 분으로 여기고 있고 또 우리가 믿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고 행하는 모든 것이 그 확신에 의해 나타나야 한다.
[비전성경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