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사(Persia,페르시아제국) - 바사왕 : 고레스(유대인 귀환칙령), 다리오, 크세르크세스(아하수에로/왕비 에스더), 아닥사스다(에스라,느헤미야 성벽재건
작성자7교구카페운영자작성시간19.02.28조회수3,214 목록 댓글 0바사(Persia,페르시아제국)
BC 6세기 중엽 발흥한 나라로, 오늘날의 이란에 해당된다. 전성기 때 바사(페르시아)의 경계는 동쪽의 인더스 계곡, 서쪽의 애굽, 남쪽의 티그리스 강, 북쪽의 카스피 해였다. 바사는 이란의 우르미아 호 남부에 살던 아리아 인종 유목민들이 남쪽의 파르수마슈에 이주하여 정착하게 되면서 세워졌으며, 4세기 중엽 마게도니아의 알렉산더에게 패할 때까지 서남 아시아 지역을 차지했던 중요한 나라였다.
바사인들은 인도 유럽계의 신화를 수용하여 신화를 만들어냈으며, 선과 악, 광명과 어둠의 이원론을 근거로 한 조로아스터 교를 믿었다. 바사 제국 시기에 바벨론에서의 포로 귀환, 예루살렘 성전 재건, 예루살렘 성벽 수축,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개혁 등의 일이 있었다.
성경 속의 바사 왕들: 성경에 언급되는 바사의 왕으로는 고레스, 다리오, 크세르크세스, 아닥사스다 등이 있다. 각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고레스(BC 539-530): 바사 제국의 기틀을 잡은 왕으로, 바벨론, 메대, 리디아 등을 정복했다. 칙령을 내려 바벨론으로 잡혀왔던 유대인들의 귀환을 허락했다(대하 36:22-23; 스 1-6장; 사 44:28; 45:1; 단 10:1). 느부갓네살 왕이 빼앗은 성전 기물을 돌려 보냈고 스룹바벨을 예루살렘에 보냈다. 그는 피정복민들에게 관대한 정치를 했으며, 바사 내에 속하게 된 여러 나라들의 종교나 관습에도 간섭하지 않았다.
다리오(BC 522-485): 바사 제국이 가장 번성했던 시기의 왕으로, 영토를 넓게 확장했다. 그는 수도였던 수사와 소아시아의 사르디스를 잇는 도로를 건설하여 평상시엔 상업적인 교역로로 사용했고 전시에는 수송로로 이용했다. 또한 금화 등 화폐를 제조하여 상품 유통을 활발히 했다. 성경에서 그는 바사의 재정을 사용하여 예루살렘 성전을 완성하도록 했다(스 4:5; 5:6-7; 느 12:22; 학 1:1; 슥 1:1).
크세르크세스(BC 486-465): 그리스와의 전쟁을 시도했으나 실패했으며 재위 기간 중에 영토를 많이 빼앗겼다. 성경에서 그는 아하수에로 왕으로 기록되어 있다(에스더서). 에스더의 남편이었던 그는 유대인들을 멸하려던 하만의 음모로부터 그들을 보호해 주었다(에 8-10장).
아닥사스다(BC 465-424): 성벽 재건 공사를 중단시켰던 그는 느헤미야의 간청을 받아들여 그를 유대 총독으로 임명하고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도록 했다. 에스라,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도록 허락해 주었다(스 7:1, 21-26; 느 2:1-8).
(비전성경사전)
아닥사스다(Artaxerxes)
‘율법에 주권을 주는 자’라는 뜻으로, 바사 왕을 가리키는 칭호이다. 아닥사스다로 호칭되는 왕은 네 명인데, 성경에 나오는 아닥사스다는 아닥사스다 1세를 말한다.
아닥사스다 1세(BC 464-424)는 아하수에로(크세르크세스) 1세의 아들로, 오른손이 왼손보다 길어서 ‘롱기마누스’(Longimanus)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애굽과 바사의 반란을 진압했다.
어떤 학자들은 아닥사스다 2세가 아닌 1세가 다스릴 때에 에스라가 예루살렘에 귀환해서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쳤다고 보기도 한다(스 7:1-8:1).
아닥사스다 2세는 아닥사스다 1세의 손자로 다리오 2세의 아들이다. 그는 재위 7년에 에스라가 예루살렘에 가도록 허락했다(스 7:7-26; 8:1). 이렇게 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사람은 1,800여 명이었으며, 인도자는 에스라였다. 또한 그는 재위 20년에 느헤미야를 유대 총독으로 임명했고,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도록 했다(느 2:1-18). 이 과정에서 성벽 재건을 반대하는 세력들에 의해 성벽 재건이 잠시 중지되기도 했다(느 4:7-23).
(비전성경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