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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해설] 말라기(전4장)-2 하나님과의 회복(말4장):악인과 의인의 운명(말4:1-3),율법을 기억하라(말4:4),선지 엘리야에 대한 예언(말4:5,6)

작성자7교구카페운영자|작성시간16.05.27|조회수335 목록 댓글 0

< 갓피플(GODpeople) 지식자료실 성경총론 > 자료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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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191 연구 2 하나님과의 회복(4)

 

1. 악인과 의인의 운명(4:1-3)

      1) 구분되는 악인과 의인의 운명

    2) 의인들이 가져야 할 구원의 소망

2. 율법을 기억하라(4:4)

    1)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

    2) 율법대로 살라는 권면

3. 선지 엘리야에 대한 예언(4:5,6)

    1)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말씀

    2) 언약 속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


1. 의로운 해

2. 율례와 법도

3. 결론

4. 그 땅을 칠까 하노라

5. 극렬한 풀무불과 의로운 해

 


No.191 연구 2 하나님과의 회복(4)

 

여호와는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악인들의 멸망받아 사라질 심판의 날이 임박했음을 분명하게 선포하고 있다. 이날에는 악인과 의인들의 운명이 극명하게 대조된다. 동시에 의인들에게 승리의 환호성이 넘쳐날 것이다. 이러한 날이 임하기 전에 주의 선지 엘리야를 먼저 보내시겠다고 약속해 주셨다. 그럼 이제부터 심판의 날에 벌어질 악인과 의인의 운명 그리고 이날을 소망하는 주의 백성들이 기억해야 할 하나님의 명령을 끝으로 심판의 날 이전에 오실 엘리야가 누구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1. 악인과 의인의 운명(4:1-3)

 

본문은 알곡과 가라지를 구분할 심판의 날을 선포하고 있다. 이러한 심판의 날을 말라기 저자는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가? 그리고 이날에 악인들의 저주의 심판을 받게 된다고 하였는데, 악인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한편 심판의 날은 의인들에게 축복과 구원의 날이 되는 것이다. 이때에 의인들은 어떠한 축복을 누리게 되는가?

 

1) 구분되는 악인과 의인의 운명

 

말라기 저자는 심판의 날을 '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이라고 표현하였다. 본래 풀무불은 그 어느 불보다도 가장 뜨거운 불을 가리킨다. 그래서 성경 곳곳에서는 심판의 날을 불로서 나타내기도 하였다(3:26 ; 7:10 ; 66:15). 여기서 말하는 '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은 일차적으로 그리스도의 초림을 나타내며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의미한다. 이날에 교만하여 악을 행하던 악인들은 초개같이 된다고 하였다. 초개는 아주 심하게 마른 풀을 의미하는데, 마치 악인들의 운명이 쉽게 불타 완전히 사라지게 되는 초개로 표현하고 있다. 한마디로 악인들은 불에 타 영원히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반면 의인들은 이날에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처럼 구원의 즐거움으로 인하여 극도로 기뻐하게 된다. 이러한 기쁨의 근거는 의로운 해이신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치료하는 광선, 다시 말해 구원의 진리를 전파하심으로 이 구원의 진리를 받아들인 영혼들에게 참기쁨을 허락하게 되는 것이다.

 

2) 의인들이 가져야 할 구원의 소망

 

하박국 선지자는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여호와의 말씀에 새 힘을 얻어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고 고백하였다.(3:18). 예수님은 회의 속에 잠긴 제자들에게 씨 뿌리는 비유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반드시 임하리라는 소망의 메시지를 주시기도 하였다(4). 복음을 받아들인 의인들은 이처럼 구원의 소망이 있고, 가져야 할 천국이라는 비전이 있다.

 

2. 율법을 기억하라(4:4)

 

임박한 심판에 앞서 말라기 선지자는 율법을 기억하고 준수하라고 명하고 있다. 이 길만이 이스라엘이 회복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럼 본문에서 말하는 율법, 곧 율례와 법도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고 이 율법은 누구에게 주어진 것인가? 끝으로 말라기 선지자는 왜 율법을 기억하라고 명령하였는가?

 

1)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

 

율례와 법도라는 말은 엄격히 구별하여 말한다면 율례는 규범적이고 원리적인 법을 말하고, 법도는 조례적인 법을 말한다. 하지만 보통 이두 단어는 하나님의 법 또는 말씀을 총괄적으로 나타낼 때 쓰인다. 이러한 율법은 온 이스라엘에게 주어졌다. 여기서 이스라엘은 혈통적이고 민족적인 개념으로써 육적 이스라엘이 아니라 신앙고백을 통하여 형성된 영적 이스라엘을 의미하는 것이다. 한편 말라기 선지자는 이 율법을 기억하라고 명하였다. 이렇게 명령한 이유는 이스라엘이 죄를 짓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 율법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실 메시야를 맞이할 자세로서 가장 먼저 필요한 일이 율법에 순종하는 것이었다. 이는 곧 하나님 앞에 순종함이요, 헌신을 다짐하는 신앙고백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때 하나님과의 진정한 관계 회복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2) 율법대로 살라는 권면

 

본문에서 말하는 '기억하라'는 단어는 현재 깨달은 사상이나 느끼는 감정을 행동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따라서 율법을 기억하라는 말씀은 이성적인 깨달음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율법대로 살라는 강력한 권면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인 의지와 순종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는 속박이나 억압이 아니다. 오히려 참된 자유와 축복을 누리는 유일한 길을 제시하는 것이다.

 

3. 선지 엘리야에 대한 예언(4:5,6)

 

본문은 말라기의 결론으로서 선재 엘리야가 와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라는 약속을 예언하고 있다. 그럼 본문에서 말하는 엘리야는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 그리고 왜 하필이면 무수한 구약의 인물들 가운데 엘리야를 언급하고 있는 것일까? 마지막으로 여기서 언급된 엘리야가 무슨 일을 할 것이라고 예언했는가?

 

1)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말씀

 

본문에서 언급된 엘리야에 대해 혹자는 실제적으로 승천하였던 디셉 사람 엘리야를 가리킨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주의 길을 예비할 세례 요한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세례 요한을 엘리야로 언급하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첫째로 두 사람이 활동하던 시기가 아합과 헤롯이 통치하던 가장 암흑한 시대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 두 사람의 사역 성경이 동일하다는 것이다. 셋째는 선지자 중의 선지자로서 엘리야를 꼽을 수 있고 마지막 선지자로서 세례 요한을 꼽을 수 있기에 엘리야로 예언된 세례 요한의 출현을 예고하는 것은 당연한 처사였던 것이다. 엘리야로 예언된 세례 요한이 와서는 아비의 마음과 자녀의 마음을 돌이키게 한다고 하였다. 이는 한 가정의 불화를 해결시켜 준다는 도덕적 개혁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본문의 아비는 이스라엘의 경건한 족장 내지는 조상을 뜻하는 것으로 세례 요한이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훌륭했던 조상들처럼 경건한 신앙을 갖도록 도와준다는 것이다.

 

2) 언약 속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 안에는 공의와 인자가 공존하고 있다. 죄에 대해서는 엄하신 공의로운 하나님이면서도 한 번 약속하신 언약은 반드시 이루시는 인자하신 하나님이시기도 하다. 회개치 않는 이스라엘에 대해서 죄의 심판을 예고하시는 공의의 하나님 그러나 한편으로는 세례 요한과 메시야를 약속하시며 구원을 보장해 주시는 인자하신 하나님이시다.

 

본문은 말라기서의 결론이자 모든 선지서의 결론이다. 하나님은 본 서를 통하여 저주와 구원이라는 심판의 양면을 제시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한 쪽을 선택하도록 요구하셨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안타깝게도 저주를 선택하고 말았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시금 그 인자하신 사랑을 인하여 구세주를 준비하고 계셨다.

 

1. 의로운 해

 

천둥이 치고 난 후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을 위해 태양이 비친다. 태양은 '구원'의 상징이다. 구원이 영광 중에 나타나는 하나님으로서 인격적으로 생각되고 있는지 혹은 내용상,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모든 행복의 총괄 개념으로 생각되고 잇는지는 말하기 어렵다. 아마도 예언자는 이 둘을 정확하게 구분할 것 같지는 않다. 마찬가지로 그에게서는 빛나는 태양에 관한 표상이 의외로 고대 동방에서 잘 알려져 있던 날래 달린 태양의 둥근 면에 관한 표상으로 넘어가고 있다. '태양의 날개'에 달려 있고 그 빛 속에서 있으며, 도래할 구원의 본질에 속하는 것은 '치유'이다. 말하자면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 괴로움으로 가득 찬 기다림의 시간 동안 생겼던 모든 안팎의 상처를 치료하는 일이다. 그 다음 불경한 자들에 대한 심판의 천둥이 치기 전에는 맥을 추지 못했던 경건한 자들이 뛰쳐나와 그 기쁨을 표현할 것인데, 이는 마치 우리에서 풀려 나온 송아지들이 날뛰는 것과 같다. 다시 부연하자면 '의로운 해'는 빛되신 예수그리스도 자신을 지칭한다. 한편 그 '의로운 해'에서 발하는 '치료하는 광선'은 원어상 '그의 날개 안에서 치료한다'란 뜻을 가진다. 이러한 표현은 날개가 하나님의 보호와 은혜를 상징한다는 점에서 의로운 해 되신 그리스도의 신유의 은혜와 죄인들의 영혼을 구원하신 그의 구속 사역을 지칭하는 것이다.

 

2. 율례와 법도

 

'호렙 산에서 명한 법'은 이스라엘의 출애굽 당시 호렙 산에서 하나님의 모세를 통해 주신 모세 율법을 가리킨다. 또한 율례와 법도에서 '율례'는 도덕, 의식, 시민법 등 세부적으로 규정된 법규들을 의미하며, '법도'는 각 율례에서 파생된 사회 구성원들의 공적, 사적 권리와 의무를 가리킨다. 그러나 성경에서 이 말들은 서로 혼용되어 사용되기 때문에 위에 언급된 모세 율례의 교훈들을 강조하여 지칭하는 중언법적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실로 이러한 율법은 신약과의 연결 속에서 우리를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 몽학 선생이므로 이차적으로 그 율법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혈통적이고 영적인 이스라엘을 위해 세워진 영원한 언약으로 이해할 수 있다.

 

3. 결론

 

본 절과 6절은 예배를 마무리짓는 표현 양식으로 메시야의 도래를 선포하기 위한 엘리야의 출현을 예시하고 있다. 이는 이미 말3:1에서 언급된 바 있는 세례 요한의 출현을 지시하는 말로, 4절보다 더욱 직접적으로 구약과 신약의 연결점을 제공하고 있다. 선행자가 예언자 엘리야라는 점을 어디서 알게 되었는지는 비밀로 남아 있다. 이러한 표상은 여기서 처음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이러한 표상은 다른 증거에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본 절의 엘리야는 엘리야와 유사한 심령과 능력을 가졌던 세례 요한을 가리킨다. 실로 엘리야와 세례 요한 사이에는 많은 유사점이 있다. 곧 그들은 모두 그 백성들을 열조의 경건으로 인도했고, 크고 두려운 심판을 예언했으며, 불순종과 배역의 상황 속에서 사역했다. 본 절과 같은 표현은 예수그리스도를 다윗과 같은 왕권을 가지신 다윗을 후손으로 언급한 것과 동일한 것이다. 실로 본 절은 율법과 선지자의 말씀이 예수에게서 성취되므로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심판의 날이 이르기 전에 마땅히 율법과 선지자의 말씀을 경청하고 준수하며 메시야를 영접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을 촉구하는 의미를 가진다.


4. 그 땅을 칠까 하노라

 

''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주하는 약속의 땅이다. 실로 이스라엘의 죄악이 편만할 때마다 그 땅은 그 백성들의 거주를 용납하지 않았다. 따라서 본 구절은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그 죄악에서 회개치 않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적 징벌로 인해 결코 그 땅을 소유하지 못하게 될 것이란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3:2)의 세례 요한의 외침은 곧 이러한 저주를 면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한편 저주의 경고라는 심각한 말로 구약의 마지막이 종결된다는 점 때문에 유대의 전승들은 좀더 긍정적인 종결을 위해 메시야 대망 사상이 투영된 5절은 본 서의 결구로 보았다.

 

5. 극렬한 풀무불과 의로운 해

 

불은 부정하고 순결치 못한 것들에 소멸하고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상징하거나 경건치 못한 자들을 징벌하는 표현으로 사용된다(50:3 ; 10:17). 따라서 극렬한 풀무불은 멈출 수 없는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나타낸다.

 

반면 의로운 해는 태양이 온 세상에 그의 빛을 비추는 것처럼 도래할 하나님의 왕국에서 그리스도의 의가 온 땅에 전파될 것을 나타내는 말이다. 따라서 의로운 해는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모든 의와 기쁨과 행복의 근원이며, '세상의 빛, 큰 빛'(9:1)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에게 극렬한 풀무불로 진노하시지만, 순종하는 자에게는 치료의 광선을 발하시는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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