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갓피플(GODpeople) 지식자료실 성경총론 > 자료 옮김.
4 여호수아의 고별설교, 수23,24장 (목차)
1. 첫 번째 유언적인 강화(수23장)
1)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
2) 오직 그리스도로 무장해야 할 교회
2. 세겜에서의 고별유언(수24:1-28)
1) 하나님 은총의 윤리적인 속성
2) 거룩함과 화평함을 좇아야 할 교화의 본분
3. 여호수아의 죽음과 장사(수24:29-33)
1) 약속의 땅에서의 삶의 결단
2) 신앙 모범의 중요성
1. 여호수아의 당부(수23장)
2. 딤낫세라
3. 세겜
No.37 연구 4 여호수아의 고별설교(수23,24장)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언약과 축복의 획득은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 얻은 언약과 축복을 유지하는 일을 항구적인 과제이자 삶의 행복한 결과를 얻는 열쇠이기도 하다. 여호수아서의 말미는 정복한 가나안 땅에서 어떻게 해야 만이 하나님의 축복과 언약을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지 선민의 번영의 길을 여호수아의 고별 강화로 장식하고 있다. 이 예언적인 고별 강화의 내용은 향후 이스라엘 선민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벌어질 일들의 전조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1. 첫 번째 유언적인 강화(수23장)
이제 20년에 걸친 전쟁과 땅 분배의 사역들은 끝났다. 여호수아의 나이도 110세에 이른 것이다. 그는 자신의 수한이 다 되가는 것을 느끼고 영지 딤낫세라(수19:50)로 유사들을 불러다가 고별 강화를 한다. 그 내용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그 땅을 차지할 것"(수23:5)이라는 것과 그 조건은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친근히"(수23:8) 하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 그는 너희를 위해서 싸우신 자"(수23:3)며 앞으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심"(수23:10)이라고 한 것이다. 하나님은 선민을 위해, 선민의 앞에서 선민의 대적들과 싸워 물리쳐 주시는 전쟁의 수뇌라는 것이 여호수아의 신앙고백이다.
1)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
'싸움에 앞장서시는 전쟁에 능하신 하나님' 이라는 내용은 성경 전체에 '만군의 하나님'이라는 별호로 약 282회나 언급되어 있는 신학 사상으로 원어로는 twbx hwhy(여호와 체바오트)이다. 사실 출애굽부터 가나안 정복의 여정은 엄밀하게 보면 전쟁사이다. 그와 같은 전쟁 속에서 이스라엘 선민들은 변변한 무기도 없이 무서운 가나안 동편의 아모리 족속 그리고 별처럼 많은 가나안 본토 거민들과 싸워 오늘의 영광스러운 승리를 이끌어 냈다. 소수의 유랑 민족이 단시간에 거대한 팔레스틴의 도시 국가들을 깨뜨리고 정복한 일은 역사상 상식 밖의 일이다. 이와 같은 승리의 원인은 선민의 힘과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싸워 주심으로 가능했음을 여호수아는 강조하는 것이요, 향후 선민 국가의 번영의 '키'는 바로 그와 같은 전쟁의 총수이신 하나님을 섬기고 그분과 친근한 교제를 나누는 것임을 교훈한 것이다.
2) 오직 그리스도로 무장해야 할 교회
이와 같은 여호수아의 만군의 여호와 사상은 신약성경의 교회의 영적 전투의 슬로건이 된다.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엡6:11)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충만으로 무장한 삶, 즉 그리스도 예수로 무장해야만 교회는 승리한다. 그 옛날 가나안에 정착한 선민들이 여호수아의 경고와 교훈을 망각하고 가나안 문화로 무장한 결과 타락과 패망을 한 것처럼, 오늘의 교회도 그리스도와 그 진리로 무장치 않고 세상의 사상과 문화를 의지하면 사단에게 패배당하게 될 것임을 교훈 받아야 한다.
2. 세겜에서의 고별유언(수24:1-28)
지신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온 것을 안 여호수아는 자신의 장지가 될 세겜으로 가서 다시 한 번 마지막으로 백성들을 불러모았다(수24:1). 그는 하나님의 의롭고 신실하심을 강조한다. 즉 그 옛날 조상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대로 모세와 자신을 통해 가나안 땅의 정복으로 온전히 이루어 주셨음을 회고식으로 술회했다. 하나님은 그 언약을 신실하게 의로우신 하나님의 백성이 된 선민들은 그에 걸맞는 응답적인 삶의 자세를 지녀야 한다.
1) 하나님 은총의 윤리적인 속성
우리는 여기서 간과하기 쉬운 하나님 축복과 은총의 속성을 교훈 받아야 한다. "만일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신들을 섬기면 너희에게 복을 내리신 후에라도 돌이켜 너희에게 화를 내리시고 너희를 멸하시리라"(수24:20)고 했기 때문이다.
2) 거룩함과 화평함을 좇아야 할 교화의 본분
사실 가나안 거민들과 선민들의 차이는 거룩함과 화평함에 있었다. 가나안인들은 야수적이며 동물적인 삶을 살았고, 선민들은 율법 안에서 연단 받아 거룩했었다. 그 결과 가나안 본토인들은 그 땅에서 멸절과 추방을 당했고 선민들은 새 주인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가나안 전쟁의 승패와 그 패망과 영광은 다른 요인보다도 그 윤리적 문제에서 기인됐음을 보여 준다.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는 무조건적이 아니다. 의와 거룩함과 화평함의 춘국 윤리를 기반으로 시행된다. 그 윤리성을 상실하면 축복도 자연 상실된다.
3. 여호수아의 죽음과 장사(수24:29-33)
본분에서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여호수아의 일생이 얼마나 빛나고 위대한 삶이었는가를 볼 수 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만 섬기도록 고별 설교를 하면서 만족스럽게 죽은 것이다.
1) 약속의 땅에서의 삶의 결단
"우리가 정녕 여호와를 섬기겠나이다"(수24:21). 이는 여호수아의 유언에 대한 선민들의 응답이요, 맹세이다. 그들의 삶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매일 매일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재결단이다. 가나안의 불신과 우상 풍조에 물들지 않고 율법과 제사를 통해 하나님과의 교제를 재결단해야만이 복된 번영의 삶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이와 같은 결단과 맹세를 여호수아는 그 삶의 마지막 사역으로 세겜 상수리나무 아래서 이끌어 낸 것이다.
2) 신앙 모범의 중요성
"이스라엘이 여호수아의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사는 날 동안 여호와를 섬겼더라" (수24:31)에서 알 수 있듯이 모세의 후계자로서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데 앞장섰던 여호수아는 충성된 신앙적 삶을 살았다. 교회의 직분자들과 지도자 위치에 있는 성도들도 자신의 행동과 삶이 하나님 나라에 막중한 영향을 끼침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여호수아서는 여호수아의 소명으로 시작하고 그의 장사됨으로 끝맺게 된다. 여호수아는 신약의 예수그리스도의 가장 구체적인 모형적 삶을 보낸 것이다. 그 충성됨, 그 용기, 그 예언적인 통찰력은 예수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참 그림자인 것이다.
1. 여호수아의 당부(수23장)
여호수아는 수23:7-11에 이스라엘 지도자들에게 여호와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은 섬기지 말라고 강조한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만 온전히 섬기기 위해서는, 첫째로 가나안 땅 중 아직 정복하지 않은 나라들 가운데 가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 나라들은 모두 사신 우상으로 가득 찼으니, 거기 가서 그 나라 사람들과 사귀는 자는 미신에 쉽게 빠지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거듭 세 번을 중복하여 강조되었는데, 이것으로 미루어 우상에 대한 하나님의 관여가 얼마나 큰가를 짐작할 수 있다.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기 위해서 해야 할 두 번째 일은 하나님 여호와를 친근히 대하는 것이다. 사람이 다른 신을 따르지 않으려면 하나님께 단단히 붙어 있어야 한다. 여기서의 친근함은 단단히 붙어 있음을 의미한다. 이와 함께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 여호와께만 단단히 붙어 있을 이유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벌써 강한 나라들을 가나안 땅에서 쫓아내시고 이스라엘로 거기에 거주하도록 하셨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렇게 여호와는 살아 계신 참된 하나님이시다. 살아 계셔서 생명과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을 우리는 떠날 수 없다.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기 위해 해야 할 세 번째 일은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것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여 순종하는 자만이 우상과 세속을 멀리 떠날 수 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대표자들에게 이스라엘의 구원 역사를 인식 시켰다(수24:2-13). 이스라엘의 구원은 하나님께서 홀로 이루셨다는 의미로 '내가'(하나님이)란 말이 많이 사용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께만 달려 있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게 된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신앙이 참 신앙이다. 여호수아는 신앙 지도자로서 선도자적 인격을 지녔다. 그는 하나님 여호와만 섬기는 데 있어 환경과 주의를 문제시하지도 않았다. 그는 말하기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24:15)고 다짐하였다.
2. 딤낫세라
수19:50;수24:30에는 딤낫세라가 여호수아 자신의 기업으로 요구한 성읍이며, 또한 그가 묻힌 곳으로 되어 있다. 딤낫헤레스는 바로 이 딤낫세라의 옛 명칭으로 추측되는데, 그 이유는 딤낫헤레스라는 말의 의미가 태양의 몫이라는 것과 또한 이곳이 태양의 숭배지였다는 가정에 근거하고 있다.
랍비 전승은 이 명칭의 기원을 태양을 정지시킨 여호수아의 행위와 연관시키며, 또한 여호수아 무덤 위에는 태양의 상징이 있다고 주장한다. 명칭이 뒤바뀌어진 이유는 옛 명칭이 내포하고 있는 태양 숭배지하는 오명을 제거하기 위한 의도에서였으며, 또한 땅을 분배한 후에는 여호수아에게 남겨진 땅의 몫을 딤낫세라라로 불렀기 때문에 수19:50, 24:30의 이 지명의 철자 딤낫세라는 적합한 것이다.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이 무덤이 세겜에서 남서쪽으로 27㎞ 정도나 떨어진 키르벳 티브네에 있었던 것으로 추측한다. 오늘날의 명칭에는 옛 명칭의 첫 부분만 남아 있다. 이곳에 있었던 한 웅장한 텔의 지표면에서 발견된 후기 청동기 시대 및 초기 철기 시대의 도기 파편들은 여호수아 당시 한동안 이 성읍이 그에게 점령되었음을 말해 준다.
3. 세겜
이 성읍은 그리심 산과 에발산의 경사진 곳에 있었다고 추측된다. 그리고 해부학적인 용어로 세겜 근처의 지리적 모양을 가리키는 초기 히브리인들의 표현이 또 한 증거가 되는데, 그것은 땅의 배꼽(삿9:37)이란 표현이다. 이 구절은 세겜이 내려다 보이는 산들 아마 그리심 산 또는 이세겜의 서쪽 평원 중의 하나를 가리킨다.
통상 B. C. 19세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집트의 자료들에 이 지명이 나오는 사실은 히브리인들이 이 지명을 가나안 사람들로부터 받아들여 사용하였다는 것을 분명히 해준다.
여호수아가 처음으로 가나안을 정복한 후 세겜에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모은 것으로 되어있다. 그런데 이와 똑같은 모임이 실로에서도 개최되었다는 기록 때문에 이 세겜과 실로 두 성읍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몇 가지 의문이 있다.
초기 부족 역사 시대에 세겜은 군사와 정치상의 중심지였으며, 실로는 종교적 중심지였다는 주장이 있어 왔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보다는 이 두 성읍이 예루살렘에 수도가 세워지기 전에 군사상의 중심지와 성지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여호수아에 의해 세겜에서 맺어진 계약은 열두 지파의 동맹을 초래하였는데, 이것은 확실한 전승에 근거하고 있으며, 그 다음 세기들에 이 지파들이 살아가는 데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세겜이 종교적으로 중요한 곳이었다는 것은 그곳에서 계약을 체결한 후 율법을 기록하고 여호수아가 큰돌을 취하여 여호와의 성도 곁에 있는 상수리나무 아래 두었다는 사실에서 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