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합수목의 물소리
하늘나리
1
아무런 기약도 없이 욕심부리지 않고 순리대로 흘러가는 합수목물에 사흘전 생때 같은 한 남자가 생급스레 빠져죽었다. 죽은 남자는 어린 시절 이 강에서 갈잎배를 띄우며 이다음 크면 바다로 갈거라고 했었다.
그 남자가 태여날적에 남자의 할매는 합수목에서 이 강물처럼 긴 생명으로 한 세상을 밝고 씩씩하게 살아달라고 태줄을 강물에 실어보냈다. 그리고 무탈하게 무럭무럭 자라라고 고사를 지냈었다. 남자는 그곳에서 한창 살 나이에 물에 빠져 죽었다 그 남자가 태여나기전에도, 태여난후에도 죽은 지금에도 합수목물은 한번도 되돌아 흐른적은 없었다. 먼 후날에도 합수목물은 결코 되돌아 흐르지는 않을것이다. 생명을 삼켜버린 강물은 오늘도 수많은 생명을 키우며 그 남자가 그토록 가고싶어했던 저 완성의 품, 푸른 바다를 향해 쉼없는 마지막 축복으로 흐른다. 인젠 그 남자가 바다로 갔을가? 아니면 어디쯤 갔을가? 갈길이 바쁜 강물은 물어도 대답이 없다.
사흘전 남자는 이곳에 왔었다. 참 살기 좋은 고장이다. 그래서인지 죽기에도 좋았다 아쉬움과 삶에 대한 애틋한 미련이 남아있어 아마 세상은 그렇게 좋은 곳인가보다.
합수목물에서부터 물은 엄청나게 많아져 강량안을 꽉 메우며 흐른다. 봄이 아무렇게나 낳아놓고 떠난 무수한 생명들을 받아안고 키우느라고 여름의 합수목은 한창 분주하다. . 무성한 생명의계절이다.
이제 이 계절이 가을의 길목을 넘어서면 합수목의 가을 강물은 탁 트인 푸른 하늘아래 누렇게 익어가는 60리 벌을 싣고 흐를것이다. 그때면 강기슭의 한포기 작은 풀마저 제몫을 다한 한톨의 영근 씨앗을 알뜰히 품고서 이 강에 감사드리며 생명의 찬가를 부르리라. 그때면 익어가는 논밭에 세워놓은 허수아비도 얼굴없는 머리에 헌 삿갓을 쓰고 한때는 자기도 이렇게 진실한 생명을 가져보노라고 세상을 향해 너풀거릴것이다.
<<후유,나도 한때는 이곳에서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 남자를 사내로 만들어주던 핑크빛 시절이 그리운듯 남자는 짙푸른 타일을 박아 지은 진정부 4층 청사를 쓸쓸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어제밤에 퍼부은 소낙비에 탁류로 변해버린 합수목물에 남자는 탁류 같은 마지막 추억마저 미련없이 던져버렸다.
<<아, 아빠, 저, 저기 합수목물에 사람이 빠져죽었어요…아까 우리 논밭에 왔던 머저리 신사아저씨가…>>
<<뭐라? 누가 죽었다냐? 바른대로 말해…>>
합수촌 박촌장은 원체 부실하게 낳아놓은 아들이 또 무슨 허망소리를 하는가 해서 아들을 다잡아 족쳤다.
<<저, 정말이란데…>>
그제야 박촌장은 논코물을 조절하다말고 일어서서 합수목쪽을 바라봤다. 사람들이 모여서있었다. 합수목에 다달은 박촌장은 그만 금붕어 물먹듯 빈입만 끔벅끔벅 다시며 할 말을 잃었다. 남자가 신었던 가죽구두 한쌍이 가지런히 다리우에 놓여있었다.
<<어쩜 세상에 이럴수가…>>
어이없게도 물에 빠져죽은 남자는 한 반시간전에 논밭을 둘러보는 그를 보고 <<박촌장, 초복 곡식치군 성초가 좋구만 올해두 두렁뚝 터지겠네.>>하면서 휘적휘적 그의 논밭두렁길을 지나갔던 남자였다. 죽으러 가는 사람치곤 너무나 의연했었다.
<<그 사람 죽자구 그랬나? 농사라면 죽어두 왼눈 한번 팔지않던 사람이 농사질에두 관심을 보이구…사람이 안하던 짓거리를 하믄 죽자구 그런다구들 하더니…>>
합수목다리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글쎄 죽을 사람 같지 않게 챙겨입었더라니깐…양복 쭉 빼입구 옆구리에 까만 공문가방 끼구 다리목에서 서성거리길래 처음에는 수문관측 나온 수리소 책임자인가 했당께…>>
<<누군데…>>
<<저 박촌장네 그 부실한 아들이 도랑옆에서 괴기잡이를 하다가 봤는데 지동네에 왔던 머저리신사라구 하더구만…>>
<<사람 웃기네… 등신이 병신을 웃고…머저리신사? 보나마나 경철의 매부겠구만…>>
박촌장은 되돌아서서 마을로 향했다. 합수촌은 합수목에서장바 서너컬레 사이를 두고있다.
<<이봐, 경철이 자네 매부 합수목 물귀신이 됐네 …살았을 때 미운 털 박힌 사람이지만 죽은 시체야 건져야 할게 아닌가.>>
<<뭐요? 합수목 물에 빠져죽었어? 내 언녕 그 미친 눔이 제명대루 못살구 죽을줄 알았다니깐… 데럽게스리 죽어서두 사람을 애먹이는군…>>
경철이는 동네에 나가 몇몇 사람을 불러가지고 합수목으로 향했다. 제 발등에 떨어진 불이 아니여서인지 시신 건지러 가는 사람들은 볼장 다 보고 할 말 다하며 갔다.
<<허참, 사람이 죽자구 마음먹으믄 파리 목숨보다 못하다니깐…개똥무지에 굴러두 이승이 좋다는데… 그 나이에 어디에가 똥 눌자리 없어 생목숨을 끊어…>>
<<글쎄, 죽은 사람에게는 미안한 말이오만 그렇게 살바에야 일치감치 죽는것두 랑패없지… 그 사람 어디 똥눌 자리 있어? 설 자리두 없는데...>>
<<있으믄 먹구 없으믄 굶는데… 정 배고프면 쓰레기를 들춰 먹구 그래두 어디에서 돈은 있어 그냥 그렇게 줄창 술 먹었는지…>>
합수목에 이른 사람들은 간밤의 소낙비에 엄청 불어난 찬 강물을 보며 선뜻 물에 들어서지 않았다. 서로 눈치만 보며 말뚝처럼 서있는 사람들에게 경철이가 사정했다.
<<기왕사 왔던 걸음인데 오늘 하루만이라도 좀 수고들 해 주시유. 섭섭하게 해드리지는 않을테니…>>
사람들은 물이 차다고 으스스 몸을 떨며 물에 들어섰다.
합수목에는 전에 다리가 없었다. 그래서 여름철에 물이 불어나면 작은 함지 같은 배가 사람을 건네주군 했다. 죽은 남자가 대학을 나와 이곳에 배치받았을 때 처음으로 책임지고 했던 일이 이 다리공정 총책임이였다. 남자는 이 다리를 놓을때 본때스레 해재껴 이 고장에서 이름을 떨치고 당에 들었다.
<<쳇, 이 다리 놓을 때 민공들을 휘동해 돌격대다 뭐다 하면서 들볶기두 하던게 두눈이 뒤집히게 일했당이. 다리를 다 놓구나니 뭐 체중이 열다섯근이나 내렸다 했던가! 그러던 눔이 제 떨어져 죽을 다리를 만들었군 …>>
<<그때만해두 젊은 나이에 푸른 공작증 차구 한물 잘 나가던 눔이였는데…>>
<<하긴 합수촌이 생겨나서 처음으로 대학생 이름을 띤 눔이라니깐. 집안자랑거리구 …개천에서 룡이 난 셈이지…>>
<<그래서 저 경철이 눔두 선옥이를 제끼구 제 동생 경숙이를 주선하느라구 동네 개까지 놀래우며 별라별 지랄 다했다니깐…>>
<<지금은 거지 발싸개만두 못여기지만 그때 제 누이 시집 보내구 경철이 눔이 얼마나 흰목을 썼다구… 틀림없이 제 매부는 향장, 현장, 여차하면 주장도 될거라며…>>
<<히히, 주장이 될라구? 물귀신이 됐는데…>>
사람들은 세상에 별 볼일 없는 생명이 끝났다는듯 섭섭한 기운도 아쉬운 표정도 없었다.
<<그만들 해라. 죽은 사람놓구 말밥에 올리믄 벌 벋는다. 그나저나 죽은 사람 찾다가 산 사람 병나겠다. 나 이거 추워서 거시기가 없어졌는걸… >>
<<히히, 네 마누라 오늘밤에 잃어버린 거시기 찾느라구 빌빌 거리게 됐다. …>>
강기슭에 구경나온 동네 사람들이 웅기중기 모여서 시신을 찾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일이 바쁜철이라 농약 친다,비료친다 하며 사람들은 하나둘 빠졌다. 일여덟되는 사람들이 그런대로 두어시간 물에서 지체하다가 점심핑게를 대고 가 버렸다. 남자를 삼켜버린 강물만이 기슭을 치며 변함없이 흐른다.
오후에 경철이는 제 사촌, 륙촌, 팔촌에다 조카들을 휘몰아 강에 끌구 나왔다.
<<아니 며칠전에는 어느 옛날 장가갈 때 첫날옷이라며 주름이 주룩주룩한거 입구 술병 차구 엄마 아부지 산소에 갔다왔다더니 지랄 같이 죽기는 왜 죽어? 그것도 하필이면 물에서…>>
<<차라리 죽을바엔 차에나 치일게지…>>
죽은 남자의 륙촌 매부가 투덜댔다.
<<녀편네 덕에 너무 호강에 자빠져 떵떵거리며 살더니…>>
<<그건 모르구 하는 소리다 녀편네 덕에 그 매부 밸 빠지구 창 빠지구 너부러졌는데 무슨 시비야.>>
경철의 사촌동생 경수가 툭 쏘아붙혔다.
<<야, 지금 세월에 녀편네 끼구 사는 남자가 몇이나 되니? 한집 건너 홀애비 살림인데 못난것…>>
<<남의 사정 다는 모르지만 생목숨 끊을때는 무슨 말 못할 고충이라도 있었나보지. 예전에 부부금슬이 그 사람들처럼 좋은 사람두 이 동네에는 없었네. 맹꽁이부분지 잉꼬부분지 하는 말이 그 집 내외를 두고 한 말이 아닌가…>>
<<하긴 예전에 푸른 공작증 차고 떵떵거릴 때 남방으루 출장갔다가 돌아오며 경숙이를 줄 고급젖싸개를 샀다가 함께 출장한치들에게 숱한 놀림을 당했지 …그래두 비위야 좋은 놈이였지. 놀림당하면서두 뭐라 했는지 알아? 내 녀편네한테 달린거 내가 건사하지 않구 니들이 하겠냐? 니들두 이쁜걸루 골라 사다줘봐라, 첫날밤 잔치날이 될게다…>>
<<훗훗, 그랬지. 제 식구들을 무섭게 챙기던 놈인데…정작 보내놓구나니 허전두 했겠지. 그 놈 안해가 떠나던 날 집에두 들어가지 않구 비행장에서 돌아오던 걸음으로 토방에서 병나발술을 들이켰잖아. 이튿날 아침 우리 집 사람이 제 륙촌이 무사히 도착했는지가 궁금해 가보니 그냥 그 맵시루 토방에 너부러져 자더래…>>
<<그 경숙이 년두 지독하다. 말끝마다 그 매부를 쥐꼬리만한 월급에 매달려 궁리없이 산다구 얼마나 몰아부쳤는데… 언제는 그 쥐 꼬리 보구 시집가지 못해 죽는다 산다 란리를 피우더니…>>
사람들은 물속에서 사람찾기보다 남자가 살아온 세상살이에 더 열을 올렸다. 그런대로 물속에서 서너시간 어정대던 친척들과 할 일 없이 물가에 나왔던 동네사람들이 해질녘에는 경철이네 집으로 쓸어들었다.
경철의 안해는 쓸어드는 친척들을 보며 게두덜거렸다.
<<살았을 땐 그 집 애새끼들을 거두느라고 애를 먹었더니 어른이란건 죽어서 애를 먹이는 판이구만. 가지각색이다. 어디에 가 죽을 자리 없어 하필이면 물귀신이 돼가지고 산사람들마저 이 고생을 시키는지…>>
바깥 마당뜰에 돌 세개를 고여놓고 큰 가마를 건 경철의댁은 대낮에 언제 장을 봐왔는지 커다란 돼지머리를 두쪽으로 빠개고 거기에 발쪽까지 설설 삶아냈다. 그리고 텃밭에서 싱싱하고 칠칠한 생오이와 고추, 상추, 마늘, 파를 뽑아다 씻어서 고추장에 받쳐 먹음직스럽게 상에 올려놓았다. 설설 끓는 큰 솥에서 잘 익은 돼지머리 반쪽을 들어내더니 커다란 칼판에 놓고 썩뚝썩뚝 저며냈다. 경철의 댁은 뜨거운 살고기점을 손에 쥐고 훌훌 불면서 양념간장에 뚝 찍어 우물우물 넘겼다.
<<아따 아주머니, 빨리 술상 보라니깐. 긴 여름해를 물에서 보내구나니 출출해서 죽겠는데…>>
사람들은 술상에 모여 앉았다. 집안에 친척들이 앉고 바깥에 동네사람들이 앉았다. 해가 지자 아예 전등을 바깥에 걸구 사람들은 술판을 벌였다. 전등에 숱한 부나비가 덮씌우며 부딪쳤다가 떨어져도 사람들은 술 먹기에 여념이 없었다. 몇해를 가도 잔치 한번, 애들 돌잔치 한번 없는 동네에 이런 큰 술판이 벌어지기는 몇해만이다. 경철이가 분주히 오가며 술을 권했다.
<<저 대낮에 모두 찬물에서 고생했소. 많이 드시라니깐. 고기는 얼마든지 있어유. 그리구 래일 하루 더 수고해주시우. 일이 마무리되면 섭섭하게 하지 않을테니깐…>>
<<술이 좋긴 좋다. 잔치해두 술, 사람이 죽어두 술… 그런데 죽은 사람에게 석전(저녁) 제사라두 지내구 술 먹는가?...>>
한참 먹고 나서야 누군가 뚱딴지 같이 제사말을 꺼냈다.
<<석전이구 식전이구 제사는 무슨 제사, 막 죽은 판에 무슨 법이 쓸데 있다구. 빨리빨리 주는 술이나 먹구 가세. 짧은 밤에 긴 노래 부를 셈인가?>>
<<체, 기왕에 벌린 술판이니 좀 늦어지더라두 먹구 가세나.>>
래일 볼일 많다던 사람들도 주는 술을 다 먹고나서야 줄레줄레 떠나갔다. 사또덕에 나발 분다고 죽은 사람 덕분에 잘 먹었다고 혀꼬부랑 인사도 잊지 않고 갔다
아무 곳에 가서나 엉뎅이 소힘줄 같이 질긴 몇몇 술고래들은 마당턱 돌후렁에 재차 서려놓은 장작불이 다 사그라진지 이슥해도 그냥 술상을 차고 앉아있다.
<<야, 그 눔아가 불민스레 물에 빠져죽긴 했어두 불여시 같은 경숙이가 떠난후 애들을 데리구 죽을 고생을 했다. 작은애가 나무에 올라 갔다가 떨어져 사고쳤을 때 꼬박 석달을 똥오즘 받아냈다. 날마다 학교에 업어가구 업오오구, 업구 병원에 다니구…애들이 지에미 없다구 지극정성을 다했다. …>>
<<참, 경숙이가 리자돈 십만소시나 처넣구 개코 같이 이년넘어 돈 한푼 못보냈잖어.그땐 불쌍하게 살았다. 정말 먹을걸 못얻어 먹구 빚군들에게 쫓겨 상판이 퍼렇게 얻어부시운적두 한두번이 아니다. >>
<<쳇,그치 공작을 잘해 단위에서 우대정책으로 산 벽돌집두 리자돈에 다 말아먹었지. 동지섣달에 세집을 네번씩이나 옮겼잖어.집세를 못내 번번이 쫓겨다녔지… 여북하믄 토요일 일요일 휴식때는 자전거를 타구 30리밖의 타동네에 가 명태 씻기를 했겠냐!>>
<<가까이 사는 우리는 어째 그렇게 사는줄 몰랐을가?>>
<<쳇,그치 원래 자존심 강한 놈이잖아. 남들에게 밸 빠진 구질구질한 제 모습 보이기 싫었겠지…>>
<<어유, 밤이 깊었네 우리두 인젠 갔다가 래일 다시 오자구.>>
간다간다 하면서 그들은 또 술 한병을 굽내고서야 아쉬운대로 엉뎅이를 들었다. 억수로 취한 그들은 경철이네 대문을 빠져 나와선 누가 선창을 뗐는지 생급스레 그것도 노래라고 내질렀다.
<<한많은 이 세상 야속합니다. …한 오백년 살, 살자는데…웬, 웬…성화요…>>
짜마귀 우짖는것 같은 소란에 그들이 지나가는 골목마다에서 동네 개들이 자지러지게 짖어댔다. 한참 동네 골목길이 부산하더니 제 집씩 모두 찾아들어갔는지 마을은 다시 조용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