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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늦게야 순이는 일어났다. 만사가 귀찮아서 푹 쉬고만 싶었다. “후, 내가 왜 이래。 난, 이러믄 안되는데… 아직도 현역 군인의 안해가 아닌가…”
한낮이되여 앞집에 사는 곱사등이 광식이가 급작스레 찾아왔다. 앉은뱅이 안해가 몸을 풀것 같다며 순이더러 도와 달라고 했다 광식의 안해는 간밤부터 띠염띠염 아팠는데 이제는 죽을것 같다며 순이를 붙잡고 아픔을 호소했다. 그런 광식의 안해를 보며 순이는 자기도 한번 그렇게 배아프며 엄마가 돼보고 싶었다. 광식이는 거의나 땅을 핥으며 허겁지겁 산파 데리러 갔다가 혼자 얼굴이 흙빛이 되여 헐떡이며 돌아 왔다. 접산원이 공사 위생원에 접생 기술 훈련 받으려 가고 없었다.
죽는다고 기함을 쓰던 광식의 안해는 서너번 끅,끅, 힘주더니 물컥하고 아기를 낳았다. 응아! 하고 빨간 두 주먹을 발끈 쥐고 세상을 향해 우는 아기의 태줄을 매주며 순이는 저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 나며 눈굽이 젖었다.
“여보, 애기고추 달렸어! 고추가!...”광식이는 아기와 안해를 번갈아보며 미칠듯이 좋아했다. 꼼지락꼼지락 거리는 아기를 곁에 눕히고 한참 들여다 보던 광식의 안해는 장한 일이나 했다는듯이 언제 아팠냐싶게 그 한심하게 땅을 핥듯이 등굽은 남편에게 응석을 부렸다.
“여보, 애기 그만 보구 얼른 불이나 피워서 미역국 끓여요 나 배 고픈데…”
순이는 인차 광식이네 집에서 물러 나왔다. 노긋노긋한 봄볕에 한무리 암닭을 거느리고 두엄 무지를 파헤치던 커다란 붉은볏 장닭이 홰를 치더니 나래를 한쪽으로 뻗치며 곁에 있는 암닭한테로 다가가 한바퀴 빙! 돌았다. 암닭은 납작 몸을 낮추더니 등을 타는 장닭에게 살짝 꽁지 털을 올리며 흘레하는 것이였다. 순이는 얼른 눈길을 돌리며 닭들의 짓거리를 본 자기를 누가 훔쳐 보지않나하여 사방을 둘러 보았다. 순이는 눈길을 땅에 떨구며 부랴부랴 집으로 향했다.
산쑥이 파랗게 자란 길가에서 희자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오는 야학교 선생님을 만났다.
‘희자,또 아파해요?”
“후! 봄이믄 더 한다니깐.이번에는 병원에 좀 오래 다녀야 할것 같구만…” 희자아버지는 동굴같은 한숨을 토해내며 어깨가 축 처져 돌아섰다.
“선생님, 식사 하셨어요?”
“밥? 희자때메 아침두 굶었소…”
희자아버지는 허구프게 웃었다. 때론 남자의 웃음이 그렇게 처량하고 서글프다는걸 순이는 처음 알았다. 그 웃음이 자꾸만 순이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선생님, 제가 얼른 저녘을 지을테니 희자 데리구 와서 드세요…”
“그럴가, 자꾸 신세만 져서 미안해 어쩌지? 희자 졸린다구 떼를 쓰는데 좀 재웠다가 깨워서 데리구 밥 먹으러 갈게…”
순이는 온종일 굶으면서 딸 시중을 들었을 선생님이 머리속에서 맴돌며 떠나지 않았다.
“선생님은 무슨 반찬을 즐기시던가?” 누구를 위해 밥을 짓는다는것이 순이는 무척 신바람이 났다.
저녁밥 자시러 온다던 선생님은 늦은 밤에도 오지 않았다. 희자가 또 말썽인 모양이다. 순이는 바깥에 나와 서성댔다. 희자네 집엔 불이 꺼져 있었다.
얼음 풀린 두만강물이 철썩철썩 기슭을 치는 소리가 들리고 휘영청 밝은달이 고기비늘 같은 구름속을 헤염쳤다. 순이는 누군가 자꾸만 기다려졌다.
“후! 내가 지금 정신을 놓구 누구를 기다려. 미친년 같이…”
봉만이를 기다리는지 선생님을 기다리는지 순이는 제절로도 마음을 종잡지 못했다. 빈껍데기를 쓰고 있는 허깨비 같다는 생각이 갈마들며 괴로웠다.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내치듯이 걸치고 있는 빈 껍데기들을 훌훌 벗어 내치고 홀가분히 살고 싶었다.
“후유! 열흘 운년이 보름을 못 울어? 왜 자꾸만 마음이 약해 가지구이래. 세월이 약이라는데…”
남편의 확실한 소식이 오기전에는 어쩔수 없다. 아직도 현역군인의 안해라는 굴레를 순이는 벗어날 힘이 없었다. 억망이 된 기분으로 집에 들어온 순이는 눈 두덩에 힘을 주며 아무리 두눈을 딱감고 잠을 청해도 가슴에서 끓는 피는 식을줄 몰랐다.
“아! 난 ,나를 어쩌면 좋아…”
순이는 찬장에서 술병을 꺼내 꿀꺽꿀꺽 들이켰다. 언제부턴가 잠이 오지않는 밤이면 술먹는 버릇이 생겨났다. 선생님은 올것 같지 않았다. 밤은 깊어만 갔다. 갑자기 순이는 느티나무에 동여졌다. 숨이 막히고 갑갑하여 도망치고 싶었으나 붉은끈에 칭칭 동여진 몸은 어쩔수 없었다. 선생님이 느티나무에 불을 질렀다. 순이는 활활 타오르는 불길속에서 허둥지둥 발버둥치며 살려 달라고 소리쳤다.
“순이, 순이, 정신 차리오. 정신을. 무슨 술을 이렇게 많이 마셨소?”
억센 손이 순이를 흔들어 깨웠다
“으흐흑! 선생님 살려 주세요…”
순이는 절망에찬 울음을 터뜨리며 희자아버지를 꽉 끌어 안았다.
“순이 어디 아픈거요? 이, 이, 이러지…”
“선생님 , 전 여기가 아파요… 아파서 죽을것 같아요…”
순이는 주먹으로 동가슴을 쾅쾅 쳤다.
“선생님, 절 한번만이라도 안아주세요..네? 딱 한번만이라도…”
순이는 피를 토하게 말하며 희자아버지를 더욱 꽉 그러안았다. 희자아버지는 순이 손을 풀수 없었다. 순이의 잘 부푼 가슴이 밀착되여 오며 숨이 가빴다. 희자아버지는 처절하게 애원하며 우는 순이를 차마 밀어내지 못했다.그는 어느새 힘주어 순이의 허리를 안았다. 안해를 잃은후 처음 여자를 품에 안았다. 가슴이 쿵쾅거리며 머리속이 작열했다.
순이는 온 몸을 우들우들 떨었다. 순이의 잘 발육된 몸은 농익어 있었다. 등잔불이 꺼졌다. 환한 달빛에 어룽어룽한 창살이 한구들 널렸고 욕망이 만드는 세상일은 드렁칡마냥 얽히였다 순이에게는 풍만한 젖가슴이 있었고 옴폭패인 하얀 배꼽아래 포동포동한 언덕엔 거웃이 나있고 그속엔 생명을 잉태하는 우주와 같은 자궁이 있었다.
날이샜다. 희자아버지는 어느새 돌아가고 없었다. 순이는 벌떡 일어 났다. 머리가 몹시 아팠다.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간밤에? 간밤에 내가 무슨 일을 저질렀지? 나, 난, 아무일도…”순이는 힘껏 머리를 가로 저었다. 하지만 실한오리 걸치지 않은 알몸을 보며 순이는 슬프게 울었다.
“이건 아닌데. 이건 정말 아닌데, 내가 어떻게 이럴수가? 이럴수가 있어…내가…”
흐리멍텅한 머리를 들고 아직도 후둘거리는 다리를 옮겨 디디며 순이는 바깥으로 나왔다. 아침해살에 처마밑에 달린 붉은꽃은 피빛으로 물들었다. 비웃는듯한 그 꽃을 순이는 차마 올려다 볼수 없었다. 순이는 꽃을 떼여 움켜쥐고 얼른 집에 들어와 보이지 않는 구석쪽에 치워 놓고 그 맵시로 도로 드러누웠다. 다 잊어 버리고 이대로 영영 잠들어 버리고 싶었다.
이튿날 부녀회장이 커다란 붉은꽃을 만들어 가지고 사람들을 휘동해 왔다. 희생된 렬사시형의 제사가 돌아왔다. 꼭 십년째 제사다. 부녀회장은 맡은 직무에 충실해서인지 질기게도 제사날을 잊지않고 추모제를 지낸다.
순이는 제물사러 집을 나섰다. 광식이네 집을 지나는 순이의 눈에는 고추달린 아기가 떠오르고 흘레하던 닭들이 떠올랐다. 해마다 제사를 지내주는 동네사람들이 고맙고 감사하기도 했으나 인젠 부담스러웠다. 그저 자기가 살아 가는대로 지켜봐주고 제발 내버려 두었으면 마음이나마 편할것 같았다. 지난 밤 일이 자꾸만 떠오르며 오늘따라 순이는 보지도 못한 시형의 제사가 아니라 남편의 제사를 지내는 착각에 자꾸만 빠져버렸다.
순이는 동네사람들이 제발 빨리 제사를 끝내고 떠나갔으면 편히 눕고만 싶었다. 희자아버지는 제사 지내는 동안 묵묵히 아무말도 하지않고 여러사람들과 함께 제사를 보고 돌아갔다. 떠나면서 안타깝게 순이를 피끗 건너다 보았다. 순간이긴했으나 사슴같은 그 눈길에 마주친 순이는 뜨거운 피가 가슴을 휘저으며 전률했다.
제사를 지내느라 온종일 북적이던 집은 사람들이 가고 보니 무덤속 같이 괴괴했다. 혼자 우두커니 앉아서 그물그물 타오르는 등잔불을 멀거니 바라보며 순이는 한없이 울고만 싶었다. 제사 지낼때 나오지않던 울음이 가슴을 먹먹하게 메우며 터졌다
“나더러 어쩌라고…”
얼마나 울고 있었을가 갑자기 사립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발자국 소리가 다가오더니 문고리 잡는 인기척이 들렸다.
“선생님이?”
“순이…”나지막한 부름소리가 들렸다. 순이는 수천번 저 문고리를 잠가야지 하면서도 누운채로 있었다. 희자아버지는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누워서 울고 있는 순이를 쿵쿵 뛰는 가슴에 꼭 붙혀 안아주었다. 순이는 희자아버지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너무나 기대며 살고싶은 남자의 가슴이였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가?! 힘차게 짖쳐들어 오는 남자를 순이는 유감없이 받아 들였다. 거세찬 남자의 률동에”아!”하고 순이는 보뚝터진 물살마냥 한맺힌 덩어리를 토해내며 까무룩한 이시각 이채로 껌뻑 죽어도 좋다고, 이슬같은 생피를 흘리며 사지가 찢겨도 무가내라고 절규했다. 샐녘에 선생님은 동네 사람들이 보기전에 돌아가겠다고 했다.
“언제 또 오시겠어요?”
순이는 자신의 물음에 또 한번 놀랐다.
“글쎄, 시간이 되는대로 …또 올게…”
선생님은 옷을 주어 입었다. 바지가랭이를 꿸때 통이 너른 속옷은 그검고 우거진 숲속에서 힘찼던 거시기를 그대로 삐죽이 보이게했다. 선생님은 떠나갔다. 그제야 지쳐버린 순이는 철저히 함몰된 자신을 의식하며 서글펐다. 이시각 자기의 자궁은 인젠 헤 입벌린 페광이 됐다고 절망했다. 저도 모르게 으스스 몸부림이 처졌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될대로 되라지,이제 나더러 어쩌라구…”어느새 느티나무엔 바람이 분다. 순이는 깊은 잠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