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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모음◈

소설 <<빨간 느티나무>> 6

작성자하늘나리|작성시간14.03.16|조회수198 목록 댓글 2

6

 

봄은 하찮은  씨앗도 생명으로 키운다. 대낮에 뜯어온 새알심 같은 익지 않은 퍼런살구를 정신없이 와삭와삭 먹던 순이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내가 이러지? 신걸 씨까지 먹다니오늘이 며칠이기에…”

초봄에 처음 선생님이 왔다간 날짜를 생각해낸 순이는 된몽둥이에 한매 얻어 맞기라도하듯 씹다만 살구를 입에 문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어쩜 이럴수가임신?...순이는 세상이 야속하고 자기의 의지를 철저히 배반하는 몸뚱이가 한스러웠다. ”

가을이 왔나보다. 세월은 사람을 기다릴줄 몰라도 짓밟힌 들녘의 한포기  작은 풀은 영근 씨앗을 품고 있다. 가을 걷이가 끝난 들판에서 허수아비는 생명의 진실을 잃었고 계절의 막바지에 피었던 쑥부쟁이 꽃들은 된서리에 무참히 쓰러졌다. 라목이된 나무는 생명활동을 정지했다. 다가오는 겨울 추위에 대비한 나무의 생존 비법이라하겠다.

, 사람두 저렇게 껌벅 죽었다 살아 났으면…”

순이는 인젠 불러오는 배를 감출 없었다. 배속에서 세차게 태동하는 생명을 느낄때마다 없는 앞날이 캄캄했다. 아기는 배속에서 슬프고 설음 많은 종추가 되여 순이의 시리고 한맺힌 가슴을 두드렸다.

차라리 , 말못하는 어미소라도 되였으면…”

순이의 임신에 뒤로 자빠지게 놀라던 선생님은 앓는 희자를 핑게대고 흑룡강 어느 시골에가 처가살이를 하고 있다. 이제 아이는 순이 혼자의 몫으로 남았다. 아이는 순이 몸에 씌워진 멍에였고 숨통을 조이는 동아줄이였으며 벗어날 없는 굴레였다.

겨울이 왔다. 만삭이된 순이는 바깥출입을 끊었다. 바깥에서는 북치고 장고치고 징을 울리며 골목 길이 떠들썩하다. 설날이라고 명절 위문이 시작됐다붉은 달러 다니는 모양이다. 순이네 차례이다. 순이를 비꼬는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가 장마철 사복 개천물 처럼 쏟아졌다

, 설날에 재수 붙을 일이 있어?. 그냥 가자구. 위문이구 나발이구…”

촌장인 기수가 깐죽대며 하는 말이다.

광영방에 꽃이야 달아야지…”

부녀회장의 신경질적인 목소리다.

? 무슨 ? 화냥년 주제에 좋아하구 자빠졌네. 온동네 렬군속 얼굴에 똥칠하구 망신살 뻗치게…”

, 달아주구 싶으면 부녀회장님이나 하시구 어떤 땡중 놈이나 붙혔는지 똑똑히 알아보시구려…”

집앞을 지나가면서 누군가 문앞에서 차ㅡ앙!하고 힘껏 내리치는 징소리가 아츠러운 외마디 비명으로 남아 순이의 허물어진 가슴을 밟았다. 어디에가 머리라도 틀어 박으며 피라도 터치우고 싶었다.

누구때메 내가 이렇게 살아야하는데! 누구때메! 나두 여자인데 어째서 이렇게 살아야 하는데 ,내가 무얼 잘못해서…”

처마밑엔 색바랜 낡은 꽃이 쭈그러든채 궁상맞게 바람에 흔들 거린다. 순이가 이제 오라지 않아 애기를 낳게 되리라는 소문은 동네 특대 뉴스다. 붉은꽃을 집에서 붉게만 살려니 믿었던 사람들은 한사코 순이를 묻은 취급을 했다.

, 구데기 밑살같은 화냥년을 이동네 호적에서 파버리구 내쫓아야지…”

광영방을 떼서 옮기구 붉은꽃을 달아줘야지 그냥 둔다는게 말이나돼?”

어떤 놈팽일가 무서운줄 모르구 간뎅이 부어서 현역군인의 안해를 다치다니…”

,,참기가 여간 바빴던 모양일세.현역 군인이라해두 전쟁판에서 십년 넘게 소식이 없으믄 전사자로 해주는 정책이  나온다며?...”

봉만이두 지원군에 간지 아마 십년이 됐을걸 참던바에 좀만 참지…”

모두 떠나간듯 싶었는데 초하루 보름에도 반갑지 않은 부녀회장이 혼자 되돌아와 색바랜 꽃을 떼내고 붉은 꽃을 달아놓고 집안으로 들어왔다. 부녀회장은 순이의 부른 앞배를 보며 한숨을 쉬였다.

이제 어쩔셈이요? 그나저나 아버지가 누군가 부터 대오.. 그래야 순이두 때를 벗구 살길이 열리지…”.

모른다고 했잖아요. 어두운 밤에 잠결에 왔다간 사람을 어떻게 알겠어요.. 이제 때를 벗은들 뭐가 다른데요?”

설후에 파출소에서 인츰 내려와 조사 할거요. 누가 지원군의 안해를 겁탈했는지 붙잡히면 쇠고랑이 차구 단단히 감옥살이를 할거요…”

부녀회장은 부전조개 처럼 입을 다물고 없는 순이를 한참이나 째려보며 버럭버럭 화를 내다가 돌아갔다. 설을 넘기자 부녀회장은 이틀시간을 줄테니 반성문 쓰고 의심되는 사람을 검거하라고 했다 더는 지체 없었다. 순이는 눈보라치는 새벽 길을 헤치며 친정으로 떠났다. 한밤중에 사람이 되여 집에 들어선  순이를 보고 식구들은 놀라 깨여났다. 누구보다 기겁하게 놀란 사람은 순이 배를 엄마와 아버지였다.

, 순이야. , 이게 웬일이니?”엄마는 기함을 질렀다.

망할년, 몸뚱이 하나 건사 못해서 서방질했어? 집안꼴을 쑥대밭으루 만드는 물건짝을 당장 치우지 못할가?!”

룡칠령감은 만삭이 딸을 도끼눈으로 흡떠보며 하늘이 낮다고 갈범처럼 소리쳤다. 금시 목쳐 죽일 잡도리다.

어쩐일인지 말이나 들어보시구려. 죽는 쇠두 물을 먹인다는데. 밤중에 애더러 어쩌라구…”

정씨는 령감한테 맞아 죽을  잡도리를 단단히 하고 평생에 처음으로 대들었다.

뭐라?! 나더러 딸년이  서방질한 핑게를 들으락고사람 환장하것다. 미친년…”

암소 곧달음 같은 성미인 령감은 베고자던 목침을 씽하니 딸에게 뿌렸다. 목침은 순이를 막아선 정씨한테로 사정없이 날아갔다 .정갱이를 면바로 맞은 정씨는 아이쿠!”비명을 지르며 자리에 꼬꾸라졌다. 순이는 원망어린 눈길로 말없이 아버지를 보다가 보따리를 들고 일어 섰다.

무거운 몸을 추수리며 문밖을 나서긴 했으나 정작 갈곳이 없었다. 집안에서 엄마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아버지가 뒤쫓아 나오는 엄마를 윽박지르는 모양이다. 구더기 밑살같은 년이라고 비난해도 류수천으로 가야했다.

마을앞 산등성이에 이르렀을 때는 이튿날 해질녘이였다. 바람부는 산등성이에는 붉은끈을 느티나무만 있다모진 산통에 느티나무를 그러않은 순이는 소식이 없는 봉만이가 한없이 야속했고 몰라라 겁먹고 떠난 선생님이 너무나 미웠다.

눈길에 집채만한 땔나무 수레를 몰고오는 한동네 사는 홀애비  왜버즈 (歪脖子)((목이 삐뚤어진 사람) 보였다.

왜버즈, 빵빵워 帮帮我)( 도와주세요)

호쥔쏘,, , 쩌머라?(好军嫂, 你, ,怎么啦?” (군인 아주머니 무슨 일이예요) 하필이면 시각에 왜버즈는 순이를 호쥔쏘라 부르며 말을 더듬었다. 남산만한 배를 그러안고 고통에 모대기는 순이를 보고서야 사태를 짐작한 왜버즈는 가뜩이나 삐뚠 목을 비비탈며 눈이 화등잔이 됐다. 순이는 길가에서 뒹굴었다왜버즈는 부랴부랴  수레에 실은 나무단을 부리웠다.  

순이는 가쁜 숨을 주기 시작했다. 왜버즈는 수레를 의지해 나무단을 둘러 주고 순이를 앉히곤  앞에  불을 지폈다. 순간 순이는 아기를 낳았다. 왜버즈는 입었던 솜옷을 벗어 아기를 싸안고 불곁에 다가갔다. 질기고 모진것이 생명이였다. 힘없이 작은 소리로 두어번 울던 아기는 그저 꼬물댔다. 왜버즈는 산으로 갈때면   차고가는 작은 술병을 깨서 아기태줄을 끊고 순이는 머리에 쓰고 있던 수건에서 실을 뽑아 태줄울 맸다. 왜버즈. 솜옷에 싸안긴 아기는 깃털처럼 가벼웠다. 번지수 틀리게 세상에 찾아온 여린 생명이였다. 슬픈 눈물이 아기 얼굴에 뚤렁뚤렁 떨어졌다.

베쿠라,워빵니”“别哭啦 我帮你。。。”( 울지마세요 내가 도와 드릴테니…”

, 새끼…”순이는 아기를 가슴에 안았다 그녀는 이제 세상을 살아갈 리유가 생겼다. 순이는 왜버즈와 살기로 작심했다. 어차피 떨어진 뒤웅박 신세가 되였으니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떻랴 싶었다. 왜버즈는 아이를 메데 (没爹) (아비없다) 불렀다. 순이가 남편없이  아이를 낳고 왜버즈와 산다는 소문은 류수천이 생겨나서 기문이였다.

, 하필이믄 되놈을 붙혔어,그것두 병신을…”

그런것 같지두 않아.왜버즈가 제아이를 메데라 부르겠나

글쎄그나저나 왜버즈가 불쌍하게 됐네. 녀편네 덕에 감옥밥 먹게 됐으니

메데가 왜버즈아이로 점찍게 될즈음 파출소에서 왜버즈에게 호출이 떨어졌다. 성질이 원체 욱하는 왜버즈는  촌에서 호출나온 사람들을 보고 당신들 양심은 개를 줬소? 죽는 사람을 살린것두 죄요?”하고 욕했다.병신 왜가리 주제에 지원군 안해를 겁탈한 죄가 어떤 죄인지도 모르는 바보천치라고 사람들은 당장에서 개패듯 왜버즈를 때렸다.

피를 토하고 쓰러질때까지 물매를 맞은 왜버즈는 미열로 시름시름 앓더니 옆구리에 물이 차며  반년만에 죽었다. 순이는 메데를 안고 살던 집으로 돌아왔다. 삶은 버거운 일이다. 운명의 신은 순종하는 자는 태우고 가지만  거역한자는 짓밟아 끌고 간다. 류수천 사람들은 그런 순이를 만나는 일을 제일 꺼린다. 팔자더럽게 재수없는년 곁에 섰다가 벼락이라도 맞을가봐 겁냈다.

그러거나 말거나 순이는 메데를 데리고 잡아먹수하고 류수천을 떠나지않았다. 메데는 귀여운 애였다. 세상물정은 몰라도 자기는 또래친구들과 다르다는걸 너무나 일찌기 알아버렸다류수천사람들은 제집아이를 메데와 놀게 못했고 메데가 놀러가도 문을 열어주지않앗다. 메데는 모든게 자기는 아버지가 없는 애여서 그런다는걸 알았다.

메데는 여덟살이되도록 호적이 없었다.할수없이 순이는 촌장인 말상같은 기수를 찾아갔다.벌써 메데 호적 때문에 8년째 싱갱이질이다. 오늘은 담판을 지어야 했다. 메데가 학교에 다니자면 호적이 있어야 했다

, 메데를 호적에 올려 주세요…”

, 애비없는 애를 어떻게 호적에 올린단 말이요. 호적에 올린다믄 몰라두으하하…”

기수는 웃을 일도 아닌데 벌건하느라지가 보이게 입을 벌리고 웃었다. 상판에 침이라도 뱉고 싶었지만 순이는 참았다.

할수 있다면 그렇게라도 해주세요. 호적이 없기만 낫겠지요

순이 호적에 올려주면 뭘루 보답할텐데…”

글세요. 어떻게 해드리면 될가요?”할수 없었다. 정말 죽기보다 싫었지만 메데를 위해서 순이는 그날 간부들을 대접할 술상을 차렸고 구렁이 담넘듯 한밤중에 찾아온 기수에게 치마끈을 풀지 않을 없었다. 순이는 메데를 호적에 올리던날 자기성을 따라 김련화라는 고운 이름을 지었다. 하지만 류수천에서는 누구도 메데를 련화라 불러주지 않고 그냥 메데로 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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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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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옥돌 | 작성시간 14.03.17 가슴이아프고 실감이난 소설 잘읽었습니다.하회를기대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하늘나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03.18 긴 글 읽어주시고 댓글 주시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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