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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수필수기◈

옥수수 소동

작성자고쿠락|작성시간22.07.17|조회수129 목록 댓글 0

옥수수 소동/김문억

 

 

웃기는 얘기다

사실적인 것만 대충 고백 해 보면 이렇다

 

옥수수를 갖고 왔다는 전화를 받고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늦은 밤이었다

아까 낮에 체육관 아줌마가 주문을 받으러 다니는 바람에 나도 덜컥 같이 주문을 했다  어린 애를 등에 업고 옥수수자루를 차에서 내리는 젊은 여인 곁에서 남편 같은 젊은 남자가 거들고 있다

아기가 등에서 미끄러져 내려올 듯 한 여인의 옆모습은 아무렇게나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턱 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첫 대면부터 허름한 남루가 나를 제압 해 왔다.

옥수수 하나를 자루에서 꺼내 황급하게 껍질을 까면서 속을 보여 준다 

끝부분은 브라보콘 아이스크림처럼 옥수수 알갱이가 없는 민판이었다.

나에게 온 옥수수마저 나를 닮은 대머리였다

사전에 옥수수가 알이 꽉 차지는 못 했다는 정보를 미리 알려 주면서

정 받지 못하겠다면 자기네가 그냥 어찌 처분할 수밖에 없다는 안타까운 양해를 구하기에 순간적으로 마음이 약해진 입장이 되어 일단은 물품을 보기로 했다. 거절을 잘 못 하기도 하지만 닥쳐오는 상황에 적당히 잘 순응하는 편이다.

껌껌한 곳에서 들여다 본 옥수수를 대충 살펴 볼 수밖에 없었던 것도

늦은 시간에 애기를 업고 나에게 옥수수를 팔러 온 그들 부부의 입장이

조금은 딱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거기다 대고 물건을 어찌 탓하면서 되 물릴 용기가 서지 않았다 

자그마치 열 자루니까 개수로 치면 삼백 개다.

차를 끓이기 위해 볶은 옥수수를 시장에서 구입 하다가 보면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고 2천 원짜리 옥수수튀김을 사서 먹어봐도 한 번 입에 대면 금새 먹어치우는 바람에 늘 아쉬움이 컸다. 컴퓨터 작업을 할 때는 군것질로 그만이다

왕창 사가지고 아쉬움 없이 옥수수차도 만들고 뻥 튀김도 만들어서 재현이가 오면 흡족한 표정으로 놀라게 해 주고 싶었으며 나 역시 겨우내 두고두고 많이많이 먹고 싶었다

몇 개의 옥수수 껍질을 벗겨내다가 문득 삼백이라는 숫자가 눌러오는 억눌림에 깜짝 놀라게 되었다.

불과 한 자루도 다 까지 않았는데 껍데기가 산처럼 쌓여오기 시작한다. 거실이 꽉 차오면서 순식간에 감당이 안 되었다.

비로소 난감한 생각이 들면서 정신이 조금 들기 시작한다 이게 보통 일이 아니네?  

시작한 작업을 멈출 수는 없는 일이고 끝을 보자는 심산으로 계속 껍질을 벗겨 나갔다.

나는 본디 일이 생기면 얼른 끝을 내야 편하고 개운하다 

거실가득 차오르는 껍데기를 처분하면서 계속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쓰레기봉투를 꺼내봤지만 너무 작아서 턱도 없다

얼른 마트로 달려가서 사업장에서나 쓰는 대형봉투 두 개를 샀다

그렇게 해서 이틀에 걸친 작업이 끝나고 보니

겹겹으로 입은 옷을 홀라당 벗어놓은 알몸 옥수수가 엄청나게 많이 쌓여갔다. 일단은 신나는 일이었다.

아직도 현역으로 출퇴근을 하는 마누라님은 내가 하는 일은 관여하지 않는다. 구경거리나 생겼다는 듯이 지나치면서 씩 웃기만 한다.

절반은 알갱이를 터서 말렸다가 옥수수차도 끓이고

재현이가 오면 커다란 자루에 담은 뻥튀기를 준비 했다가 짜자잔! 놀라게 해 주고 싶었다. 녀석이 보면 얼마나 좋아할까 생각만 해도 으쓱 했다.

절반은 베란다 빨래걸이에 걸어놓고 말리면 나중에 요긴하게 쓰겠다는 생각을 했다 옥수수를 걸어서 말리는 농촌 풍경도 생각이 나서 아직은 순발력이 살아있다

커다란 피자 판 같이 생긴 플라스틱 의자를 놓고 오르고 내리면서

옥수수를 빨래걸이에 달아매는 작업을 진종일 또 했다

다리가 덜덜 떨리기도 했지만 삐끗 떨어질 것 같은 위험한 작업이다

마지막으로 달아매고 의자에서 내려와 돌아서는데 등 뒤에서

쿵! 

옥수수 무게를 못 이긴 빨래걸이 전체가 그만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다 마치 마스게임을 하는 많은 사람이 동시에 앉은 자세로 바꾸고 안 일어서는 동작이었다. 아, 불사!! 무엇을 탓 하고 한숨지울 새가 없다. 어차피 내가 다 해결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떨어지지 않게 단단히 옥 처매서 매달았던 옥수수를 모두 풀어내고 빨래 대를 다시 단단하게 엮어 매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철물점에 가서 철사를 사다가 단단하게 묶고 풀어놓았던 옥수수를 다시 올려 매다는 작업으로 이틀이 더 걸렸다. 철사를 파는 철물점을 찾는데 하루가 더 걸렸기 때문이다.

창문을 열어놓고 옥수수가 빨리 마르기를 기다렸다

얼마 후 재현이가 오는 날짜에 맞춰서 내가 처음 수확한? 옥수수로 뻥튀기를 튀겨냈다

매 주 금요일에 우리동네로 오는 뻥튀기 장수도 깜짝 놀란다 내꺼만 두 차례나 튀겨냈기 때문이다. 하마터면 집에 몇 곱절 더 많은 옥수수가 있다고 말을 할 뻔 했지만 표정관리를 하느라고 입을 꾹 다물었다.

기다리던 외손자 재현이가 왔다  

자신만만하고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내놓은 동산만한 뻥튀김 보따리를 보라보는 재현이의 표정이

 

얼래?

 

반응이 별로다. 반가운 시색도 없고 먹으려는 마음도 없는 것 같다

너무 큰 강냉이 보따리에 질린 탓일까? 녀석의 반응을 주시하는 중인디

 

‘입 안이 깔깔해서’

 

한 주먹 먹어 보더니 더는 먹지 않는다. 내가 너 줄라고 직접 말려서 튀긴 자연산이라고 말을 해도 할아버지의 정성을 알아주기는커녕

고개를 옆으로 살래살래 저으면서 입안이 깔깔하단다. 젠장!

아니 이제 초등학교 1학년짜리가 뻥튀기를 입안이 깔깔해서 안 먹는다고?

강냉이 보따리를 두 팔로 끌어안고 녀석을 내려다보는 내 마음이 사나운 바람이 불어 어지럽다. 할애비 체면에 뻥튀기가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다 이야기하기도 뭣하고 이 쪽팔리는 상황을 수습하고자 나 역시 아무렇지 않은 듯이 표정관리를 해야 했다. 어정쩡한 애 표정이 조금은 쓸쓸했던지

마침내 곁에서 상황을 보고 있던 마누라가 참지 못하고 그만 뻥! 웃음보따리가 터지고 만다. 마누라님은 지금까지 옥수수의 기나긴 수난과 역경의 역사를 낱낱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빨래걸이에서 옥수수가 단단하게 말랐다

너무 단단하게 붙어있는 알갱이를 쭈그리고 앉아서 이틀에 걸쳐 발라내고 나니 오른 쪽 엄지 손끝이 얼얼하다.

이제 어려운 일은 다 끝났다. 베란다에서 마르기만 하면 된다. 모두 발라서 통풍이 잘 되는 양파자루에 넣어 내 놓았다 그래야 옥수수차를 만들어서 눈 내리는 날 주전자에서 차 끓는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바스락바스락 강냉이를 연신 씹으면서 시를 쓸 수가 있다.

몇 날이 또 지나가고 퍼뜩 옥수수 생각이 나서 자루를 들어 보았다

앗! 이런! 이를 어쩐담?

옥수수가 모두 곰팡이가 슬고 밑으로는 이미 썩어가고 있었다. 눈에 들어오는 겉모양만 그대로였다. 고함이라도 질러보고 싶은데 혼자라서 억울했다.

경악을 금치 못 하고 쪼그리고 앉아 심사숙고를 해 보았다. 무슨 생물학자나 되는 것처럼 곰팡이가 슬은 옥수수 보따리를 앞에 놓고 내가 나에게 말 했다

‘이 옥수수는 처음부터 잘못 된 옥수수가 나에게로 왔다

시작부터 잘못 된 것이니까 끝까지 나를 괴롭히는 것이다

그래! 이제는 여기서 인연 끊자 끝내자 끝이다 이걸로 끝'

 

미련 없이 용감하게 옥수수 보따리를 쓰레기장 음식물통에 갖다 부었다

그 날도 장마 비가 내렸다 보는 사람이 없어 다행이었다. 비로소 장마철이라는 때를 늦되게 깨달았다.

옥수수를 사고부터 근 2개 월 만에 나는 옥수수로부터 마침내 해방이 되고 여름이 다 지나갔다.

그런데 참 묘한 기분이다 정말 나는 실패한 화학자인가?

당연히 기분이 나쁘다거나 속상하다거나 손해를 많이 봤다거나 하여 허공에 대고서라도 못된 말 한 마디쯤 짓뭉개야 할 그런 입장이었지만

그런 생각은 추호도 없이 무슨 큰 깨달음이나 얻은 것처럼

그래!

過猶不及과유불급

이것도 체험이다 하고 빈손을 털면서

그래 조금씩 시장에서 사 먹는 것이 답이구나,

내가 욕심이 너무 과했어

중얼거리면서 옥수수를 까는 동안 메모 해 주었던 시조나 한 수 적어 보았다.

 

 

 

옥수수/김문억

 

열두 겹 진지를 쳤다

밖에서는 안 보인다 

 

촘촘하게 물 샐 틈 없이 구축 해 놓은 방어진

 

똑 닮은 일 천 병사가 빼곡하게 잠복 해 있다.

 

 

옥수수 1/김문억

 

 

궁금하다 뭘 하는지

웅장하고 깊은 돔 집

 

 

육중한 대문을 열고 열고열고 또 열고 열두 대문 열고 들어서면  얇은 絲 커튼이 열리면서 막 오르는 팡파르 웅장하다.  

하얀 드레스를 똑 같이 맞춰 입은 동갑내기 소녀들의 매머드 합창단이 하늘과 땅과 빛과 그림자 눈 비 바람소리 새소리 물소리 발소리가 모두 모여서 가지런히 똑 닮은 가을을 만들었네 랄랄랄 랄랄랄. 찬양하고 있다.

 

열두 줄 현을 탄주하는  

하얀 손이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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