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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레드북'을 보고, 되잖은 생각 몇 마디

작성자고쿠락|작성시간23.04.24|조회수12 목록 댓글 0

뮤지컬 레드북을 보고,

되잖은 생각 몇 마디.

 

책을 몇 번 만들어 본 내 입장에서는 레드북 제목이 주는 뉴앙스 때문에 조금 더 호감이 갔다. 더구나 붓을 잘 못 휘두르면 필화筆華 사건이 생기기 때문에 왜 제목이 레드북일까 하는 궁금증 때문이었다. 사전 정보 없이 불쑥 입장을 하다가 보니 어느 나라 작품인지는 모르지만 극의 시작은 여자들이 글을 쓰지 못하게 하는 완고한 보수적인 사회에서 시작을 한다. 우리나라도 예전에는 여성들이 글을 할 수 없어서 양반 집 규수들은 다락방에서 몰래 글을 깨우쳤다. 조선시대의 천재여류시인 허난설헌의 불행한 일생을 예로 보더라도 가부장제의 완고한 시대에서 여성의 인권은 박해를 받아왔다. 서양이나 동양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문명이 발달하기 전부터 남성의 힘에 의한 지배구조 때문이다. 그런 불합리한 기조가 오래도록 지속되어 온 것은 어쩌면 기독교문화를 신봉하는 국가에서 더 심했던 것 같다. 어쩌면 남자의 갈비뼈를 꺼내서 여자를 만들어내는 창세기의 기록이 큰 영향을 주었다는 합리적인 짐작을 해 본다

좀 이야기가 뒤바뀌고 있지만 무대는 거대하지 않더라도 오밀조밀 아담했다. 창문을 열수 있는 2층 집이 있다는 것은 다분히 서양풍의 집 구조지만 처음 한 번쯤 2층 창문이 열리고 나서는 그 뒤로 닫혀 있어서 좀 아쉬웠다. 로렐라이 언덕 여인네들이 레드북 창간호를 발행하고 축하 이상으로 코믹하게 요두방정을 떠는 장면에서 2층 집 창문이 한 번 더 열리지 않겠나 기대를 했지만 굳게 잠겨 있었다

인간사에 있어서 창문은 매력적인 눈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문학에도 북창이 있고 남창이 나온다. 온 세상 사물과 마주치는 곳이다. 컴퓨터라고 하는 문명의 혁명이 도래하는 과정에서 마이크로 소프트를 내 놓은 빌 게이츠도 세상의 창窓이라는 뜻으로 window를 내 놓았다

레드북 뮤지컬이 막을 올리는 순간이 거대한 창을 여는 의미가 되겠지만 나는 또 세트 장치로 올라온 작은 창문에 대한 매력을 지우지 못했다.

 

주연배우 경아는 겉모양에서 얼굴이 작고 깎아놓은 알밤 같이 뾰족한 형이어서 성격이 별난 안나를 캐릭터로 받아 소화하기에 매우 안성맞춤이었다. 달빛이나 쳐다보면서 눈물 흘리는 애수의 연기가 필요한 배우라면 혹 3만 원 짜리 피자처럼 얼굴이 너부죽한 형이라도 어울리겠지만 고집불통과 지혜로 역경을 뚫고 사랑까지 쟁취하는 역으로는 경아의 마스크가 너무 깜찍하도록 썩 잘 어울렸다. 좋았다. 얼굴이 얄미운 v라인 까지는 아니더라도 어차피 배우생활을 하자면 계란이 형이 다방면으로 아름답기 때문이다.

자칫 주인공의 연기만 추종 하다가 다른 배우들의 연기를 놓치면서 작품 전체를 평가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내 눈동자가 이발소 등불처럼 바쁘게 돌아가게 되었다. 물론 80을 넘실거리며 힘차게 달려가는 나 같은 꼰대 늙은이는 나 뿐 이었지만 그런 의식은 진작부터 초개 같이 뭉개고 살아 온 터라 문제되지 않았다. 꼰대라는 개념은 나이를 기준으로 치는 것이 아니라 머리통이 갖는 개념과 의식으로 구분 되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씩씩한 생각이어서 나는 늘 그런 통념에서 벗어나 살고 있다.

배우마다 歌聲이 힘차고 활달한 것은 뮤지컬의 특장이기도 하겠지만 연기가 너무 간결하고 호소력 있게 전달되었다. 특히 주인공(안나)의 튀어 오르는 고음에서 전율을 느낀다. 한 옥타브 더 필요한 가성假聲 마저 밟고 올라갈 때는 객석을 완전히 장악하는 고압선 압권이었다. 마치 피를 토할 것 같은 애처로운 상상 마저 들어서 은근히 걱정이 되었지만 경아는 이미 연기자의 베테랑이 되어 있었다.

문득 그분 생각이 났다. 돌부처를 만드는 장인匠人이 한 분 있다. 돌에 관해서는 우리나라에서 2인 자 되기는 싫다는 자존심을 갖고 있는 분이다. 정釘 한 번 잘못 치면 그것으로 작품은 망치는 일이지만 그것이 또한 돌을 다루는 마력이면서 매력이라고 한다. 경아의 뮤지컬 연기를 보면서 엔지가 나오면 고쳐서 다시 할 수 있는 브라운관의 연기자와 다른 점을 느끼게 되었고 그 석수 장인을 생각하게 되었다. 엄청난 양의 많은 대사를 다 외우면서 노래도 하고 연기도 해야 하는 3중고다. 대단한 노동이다.

 

레드북은 몇 가지의 문제를 시사 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예술의 창작 정신이다. 글공부를 겨우 마치고 써 낸 소설 속 주인공이 올빼미로 묘사 되었다 하여 실제의 주인공이 시비를 걸고 마침내는 법정에까지 가는 필화筆禍 사건으로 번지지만 저급한 여론 보다는 작품을 받아들이는 독자층의 다양성으로 인해서 이를 극복하고자 노력한다. 특히 아무리 여론이 안 좋다 하더라도 나는 나라고 하는 자신의 뚜렷한 주관을 밀고 나가는 뚝심과 창작정신이 이 작품의 대미를 장식한다. 한 편의 작품을 읽는 독자 마다 이해되는 방향이 다양하다면 그 작품은 성공한 작품이 된다. 이는 예술에서 보장되고 있는 창작의 자유와 권리에서 나온다. 문학은 언어의 해방이면서 표현의 자유를 근간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일부 통속적 여론에 함몰되지 않고 자신의 의지로 거대한 장벽을 무너뜨리고자 하는 안나의 창작 정신은 높이 평가 되어야 한다. 순수한 문학을 도구 삼아서 바지까지 벗어 던지고 달려드는 못된 놈의 평론가를 잘 피해가고 있다. 문자를 해득하고 소설까지 써서 기득권자들 사회를 풍비박산 시킨다. 개성이 뚜렷한 안나의 저돌적 행동으로 남존여비 사상을 무너뜨리고 왜곡된 문학작품 인식으로 법정에 까지 가는 코미디도 재미를 더한다. 우여곡절 끝에 레드북 창간호를 발행하고 축하 이상의 난리를 치는 로렐라이 여인네들의 활기찬 연기는 코믹의 절정이었고 극劇 중의 극치였다. 이 때에 난 또 닫혀있는 창문을 올려다보았다. 어느 수다꾼 아낙네가 말참견 한 마디쯤 있을 법한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마치 모짜르뜨가 그림 한 장을 그려 놓고 많은 사람을 초대하여 어지럽던 장면이 덮쳐 왔다

소설도 성공하고 사랑도 쟁취를 하는 예정된 해피엔딩 이기 때문에 희극이 좀 더 가미 되어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안나가 계속 소설을 쓰겠다는 자신의 의지를 피력하는 브라운과의 언쟁에서 좀 더 적극적인 액션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은 나만의 욕심일가 일탈일까. 왜냐하면 이 부분이 이 작품의 중심이면서 축을 이루는 부분으로 예술의 객관성과 함께 개성까지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객석의 수많은 눈동자가 집중되어 빛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공연은 성곡적이었다. 객석도 만원이었고 박수도 만원이었고 기립도 만원이었다.

출연배우들의 마무리 인사를 받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유명한 물개박수를 열열이 치게 되었다.

 

추신 : 소리 나는 문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스스로 짝퉁 시인이라고 했던 나의 인식이 레드북 관람으로 인해서 확 바뀌게 되었다. 우선은 요즈음 유행하고 있는 트롯 가수들이 목청을 꺾으면서 덜덜 떠는 소리라도 경청 해 보아야겠다.(시인 김문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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