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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을 해야 한다 어디서부터인지는 몰라도 다시 시작해야 한다 아직 학교에 다니는 아이도 있다 노신사가 주저앉아 있을 시간이 없었다 아내의 저 절망 속에서 빨리 꺼내 주어야 한다
난 한 가정을 책임진 가장이다 아내는 보좌관에 지나지 않는다 가장의 무능함이 빚어진 이 일을 빨리 이겨내야 한다 노신사는 아내를 말없이 안았다 흐느껴 울던 아내는 통곡을 했다
그런 아내의 모습에 더 가슴이 아팠다 노신사는 모든 걸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내에게 걸려 오는 전화를 모두 받아서 처리해 나가기 시작했다 커피숍도 이미 남의 것이였다 휴지가 되어버린 주식.....
사채로 집도 다른 사람의 손에 들어갔다 정말 갈 곳이 없었다 막막한 상황이 되었지만 노신사는 내색하지 않았다 집을 비워야 할 날짜가 다가오고 있었다 노신사는 가족을 모두 모이게 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라" 침묵이 흘렸다 "우리가 이 집을 비워줘야 한다. 기간이 일주일 남았다" "이사요? 어디로요?"
"동두천으로 간다. 그나마 그 쪽에 방을 얻을 수가 있었다. 그러니 조금 불편하더라도 참아라. 다시 서울로 이사 할 수 있을 때까지는 고생을 해야 한다" "왜 우리가 동두천으로 이사를 가야하는 되요. 안가면 안 되요" "나도 안가고 싶지만 상황이 어쩔 수가 없어서 그러니 이해해라"
"엄마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그게........" "아버지가 사기를 당해서 그래. 그러니 당분간 고생하자" "아버지가 사기를 당하세요. 아니요. 엄마가 당하셨겠죠" "아니라니까 아버지가 욕심 내다가 그렇게 되었다"
"아니요. 전 알아요. 아버지는 그럴 분이 아니시란 걸 엄마의 욕심이 빚어진 결과겠죠. 엄마 안 그래요? 주식 그거 잘못 된 거죠?" "흑흑흑........." "그랬군요. 그거였어요......." "이 녀석이 아니라니까...."
"아버지 그만 하세요. 알 건 알아 야죠. 숨긴다고 모르나요. 저희도 이미 다 자랐어요. 왜 이제야 말씀을 하세요" "그만해라. 이미 지난 일이야" "부채는 다 정리가 된 건가요?"
"그런 건 걱정하지 말고......" "아버지........" "안다 알아......" 노신사의 가족은 아무런 말도 더 이상하지 않았다 흐느껴 우는 아내만 바라 볼 뿐 이였다
일주일 후 그들은 동두천으로 이사를 했다 노신사는 일자리를 알아보고 다녔지만 없었다 하루하루 피가 말라 갔다 아내는 며칠 집에 누워만 있더니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돌아와서 일자리를 구했다는 거였다
노신사는 그런 아내의 모습이 가여웠다 자신이 벌인 일이라 불평 한마디 없이 불편한 집에서 생활을 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노신사는 거듭되는 거절에 한숨이 쏟아졌다 아직도 한참 일 할 수 있는데 나이가 많다고 하니......
누가 일 할 수 있는 나이를 정해 놓은 것이란 말인가? 사람이 몸이 불편해 할 수 없지 않는 한 얼마든지 일 할 수 있는데..... 나이로 모든 걸 정해 놓다니..... 노신사는 점점 절망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봄이 와서 세상은 온통 초록으로 덮여 가는데 노신사의 마음은 얼음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집에 들어가도 아무도 없었고 다들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내도 일을 시작했고 아이들은 직장 생활에 늘 늦었고 막내도 아르바이트로 늦게 들어왔다
오로지 집에 있는 사람은 노신사였다 그러다 보니 노신사는 자연스레 집안 일을 하게 되었다 시장에 가서 반찬거리를 사고 음식을 만들어서 가족을 기다리고....... 노신사는 반복적으로 일어나지는 일상이 싫어졌다
점점 자신이 초라해지는 것이 눈에 보였으니까...... 집안 일에 얽매이지 않으려고 늘 노신사는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일자리를 찾아 다녔다 노신사는 세차장에서 힘들게 일자리를 찾았다 그것도 몇 번의 시도 끝에 이루어진 것이였다
남들보다 더 부지런일 일을 했다 하루에도 수 십대의 차를 깨끗하게 닦았다 그날도 그렇게 세차를 하고 있었다 "저 혹시.......박 동준씨세요?" "네 그런데 누구세요"
뒤를 돌던 노신사는 몸이 굳듯 놀라서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겨울에 만났던 그 사람 이였다 "안녕하셨어요? 전 박 선생님 아닌 줄 알았어요" "오랜만이에요"
"그런데 여기서 뭐하세요?" "보는 그대로 ......" "그럼 세차장 시작하셨어요?" "아니 그런게 아니고........." "박 선생님"
"나 여기 직원이에요. 이쪽으로 이사도 왔고....."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으셨나 보네요" "지금은 내가 근무시간이라서 ......." "네....."
여인은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저녁에 다시 여인은 그곳을 찾았다 노신사는 아직도 일을 하고 있었다 일을 마치고 나오는 노신사를 발견하고 여인은 노신사 앞에 차를 세웠다 "타세요"
노신사는 아무런 대꾸도 없이 차에 올랐다 여인은 차를 몰아 식당으로 들어갔다 "박 선생님 " "오랜만이네...... 더 이뻐진 것 같아요" "아까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이에요? 세차장 직원이라뇨?" "말 그대로 그곳 직원이에요"
"박 선생님" "퇴직금으로 작은 가게나 하나 해 볼까 했었지.........." 노신사는 그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여인에게 들려주었다 여인은 너무 놀라서 입을 벌렸다 노신사는 아무 표정도 없이 앉아서 술을 마셨다
여인은 노신사의 그런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 "가족들과는 어떠세요?" "다들 바쁘니까 ....." "선생님 힘들지 않으세요?" "지금 내 처지에 그런거 따질 때가 아니지......"
연신 술을 마시던 노신사는 그만 자리에서 잠이 들어 버렸다 여인은 그런 노신사를 가까운 모텔로 옮겼다 안본 사이에 노신사는 많이 늙어 있었다 사람이 돈 앞에는 장사가 없나보다
그 돈이 원인이 되어 지금의 노신사의 모습이 이렇게 변했으니..... 모텔에서 나온 여인은 차를 몰아 서울로 돌아 왔다 여인은 노신사를 도와주고 싶었다 자신이 어떻게 도와 줄 수 있을지 생각에 잠겼다 여인의 일을 도와 달라고 하면 분명 거절을 할 것이다
거절 못하게 도와주는 방법을 여인은 찾고 있었다 노신사와 별다른 인연도 아니었지만 여인은 도와주고 싶었다 몇 번의 만남이었지만 여인에게 노신사는 편안한 안식처 같은 느낌이었다 여인은 노신사를 도와줄 방법을 찾느라 사무실에서 밤을 새웠다
아침이 밝아 오자 여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를 몰아 도착한 곳은 농원이었다 각가지 화초들이 잘 가꾸어진 그런 곳 이였다 아침 이슬을 머금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농원 안으로 들어가자 벌써 일하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사장님 나오셨어요" "네 안녕히들 주무셨어요" "그런데 오늘은 일찍 오셨네요"
"네 . 저 김 부장님 저하고 얘기 좀 하실까요" "무슨 ......" "사무실로 잠시 들어오시죠" 사무실로 들어간 여인은 자리에 앉아 자리를 권했다 "김 부장님 요즘 우리 농원 인사 문제는 없나요?"
"인사 문제라뇨?" "사람이 더 필요 하다던가 아니면 누가 말썽을 부린다던가....." "그런 일없어요. 처음엔 사장님이 여자 분이라고 다들 말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다들 사장님 좋아해요. 사장님이 그 만큼 저희들한테 이득을 주시잖아요"
"제가 무슨......" "사실 말이지 전에 계시던 사장님은 안 그러셨거든요. 그런데 지금 사장님은 뭐든 저희들이 일하기 편하게 해주시고 힘들 때 함께 계셔주시잖아요. 그래서 다들 좋아해요. 그런데 갑자기 인사 문제는 왜 물어 보세요?"
"우리 농원에 한사람 더 들어오면 어때요?" "사람을 더 채용하시게요?" "그럴까 하는데 어떠세요?" "이제부터 일손이 많이 필요 할 때죠. 있으면 저희야 좋죠. 그 만큼 일이 적어지는데....."
"그런데 이쪽 일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에요" "열심히만 하면 다 배울 수 있어요. 저도 처음부터 알았나요" "그럼 김 부장님이 도와 주실껀가요?" "누군데 그러세요?"
"그런데 그 분이 이곳에서 제 위치를 알아서는 안 되요" "그건 어려울꺼에요. 사장님 오시면 다들 인사하는데 어쩌시려고요?" "당분간 이곳에 오지 않을꺼에요. 모든 업무는 김 부장님이 알아서 해주세요" "그럼 강연은 어쩌구요?"
"그건 당분간 못한다고 하세요. 아니면 김 부장님이 하셔도 되잖아요" "내가 어떻게 해요" "잘 아시면서 왜 모르는 척 하세요. 제가 김 부장님 실력을 아는데........" "아니 그런데 누군데 그러세요?"
"제가 조금 아는 분이에요. 그 정도만 아세요. 다른 분들한테는 말씀하시지 말고요. 일손이 바빠져서 충원하는 걸로 해주시고요" 여인은 당부을 몇 번이나 하고는 농원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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