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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종 ] 어느 창녀의 죽음 10 부

작성자풀잎향기|작성시간16.07.29|조회수145 목록 댓글 0

그녀는 오 형사를 가만히 응시하다가 큰일을 결심한 듯이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었다.

「전화로 저를 찾을 때는…… 진이 엄마 바꿔 달라고 그러세요.」

하고 일러 주기까지 했다.

그 말에 오 형사는 그녀가 자식까지 데리고 있는 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남의 신상에 대해서 더 이상 묻고 싶지가않았다. 도처에 병균처럼 침투해 있는 불쌍한 사람들의 숨가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는 이 세상의 뿌리처럼 되어 버린 가난과 고통에 대해서 일종의 불가사의한 힘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검시의의 진단에 따른다면 춘이가 타살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자살이라고 하더라도 거기에는 어떤 자에 의한 압력 내지는 피치 못할 직접적인 원인이 개재해 있을 가능성이 많아졌다고 볼 수 있었다. 적어도 이러한 생각은 그가 어제 사창가의 진이 엄마를 만나 보고 났을 때 더욱 구체화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는 춘이와 함께 도망쳤다는 사내에 대해서 의문을 품었다. 그자가 춘이의 죽음과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일선 수사관으로서의 그의 입장에서 볼 때는 거의 당연한 것이었다. 따라서 그는 늦기 전에 그자에 대해서 확실히 알아볼 필요를 느꼈다.

시간에 틈이 좀 난 것은 오후 늦게였다. 그는 바로 어제의 그 창가(娼家)로 전화를 걸어 포주를 찾았다.

포주는 세 사람의 손을 거쳐서야 겨우 전화를 받았는데,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상대는 남자였다. 오 형사는 다시 사창가에 들어가기가 싫었으므로 포주에게 경찰서로 와 주도록 부탁했다. 그러자 포주는 무슨 일 때문에 그러느냐고 하면서 몸이 불편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래서 화가 난 오 형사는 그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반시간쯤 뒤에 포주는 잔뜩 찌푸린 얼굴로 나타났다. 그는 땅딸막한 키에 살이 몹시 찐 사내였는데, 머리까지 훌렁 벗겨져 첫인상부터가 흉물스러워 보였다.

그는 들어서자마자 여러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는데, 더러 악수까지 하는 것으로 보아 경찰과는 꽤 관계가 깊은 모양이었다.

오 형사는. 여자들에게 매음을 시켜 그것으로 치부(致富)까지 하고 있는 자가 이렇게 버젓이 건재할 수 있다는 사실에 더욱 기분이 상했다. 그는 사내를 데리고 이층의 취조실로 올라갔다.

실내는 몹시 추웠다. 피의자에게 위축감을 주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경찰 자체의 권위 의식 내지는 속성 때문인지 한겨울에도 취조실에만은 불을 피우지 않았다.

포주는 실내 중앙에 놓여 있는 나무 의자 위에 앉자 가볍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오 형사는 그가 이런 곳에는 이미 익숙해져있다는 듯이 행동하려 들고 있음을 알 수가 있었다.

「다른 것은 묻지 않겠어. 그 대신 내가 지금부터 묻는 말만은…….」

「도대체 무슨 일 때문에 그럽니까?」

포주가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가만 앉아 있어!」

그는 신경질적으로 큰소리를 질렀다. 포주는 그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것 같았다. 그러나 오 형사는 매음업을 하는 자에게는 조금도 존대어를 쓰고 싶지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오히려 몇 대 갈겨 주고 싶었다.

「당신 집에 춘이라는 여자가 있었지?」

오 형사는 선 채로 포주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포주는 책상 위에 모아 잡고 있던 두 손을 밑으로 재빨리 끌어내렸다.

「그렇지 않아도 그 애를 찾고 있는 중입니다.」

「찾고 있다니, 어떻게 된 건데?」

「그 년이 도망쳤습니다. 빛이 십만 원이나 있는데 갚지도 않고…….」

「그 년이라니…… 당신이 그 여자를 그렇게 부를 권리라도 있어?」

오 형사는 포주를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그렇지만 빛도 안 갚고 도망쳤으니 까 도둑 년 아닙니까.」

「이 치가 정신이 있나. 그럼. 여자를 가둬 놓고 등쳐먹는 놈은 뭐야? 그런 놈은 도둑놈이 아니고 신산가?」

오 형사가 이렇게 윽박지르자 포주는 책상 위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그러나 두고 보자는 듯이 이를 악물고 있었다.

「도둑놈이 따로 있는 게 아니야. 연약한 여자들 피나 빨아먹는 기생충 같은 놈들이야말로 진짜 도둑이야.」

그는 생수를 퍼마시는 듯한 기분으로 말을 쏟아 낸 다음 창가로 걸어갔다. 낡은 마룻장이 그의 발 밑에서 삐걱거렸다.

가로수의 앙상한 가지들이 비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길 건너 벽 위에 붙은 지 얼마 안되는 벽보가 길게 찢어져 펄럭거리고 있었는데, 마침 안경 낀 청년 하나가 그 곁을 지나치면서 그것을 홱 나꿔채 가는 것이 보였다. 오 형사는 그 벽보 내용을 며칠 전에 읽은 적이 있었다. 그것은 서울 시장(市長) 명의로 발표된 것으로서, 종로 3가 일대의 모든 사창가는 일체의 불법적인 매음행위를 중지하고 1개월 이내에 완전 철수하라는, 매우 강력한 내용의 공고문이었다.

오 형사는 돌아서서 사내를 바라보았다. 포주는 턱을 괸 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춘이가 도망쳤다고 어떻게 단정할 수가 있어?」

사내는 그를 흘끗 보고 나서 말했다.

「그건 분명해요.」

「그렇다면 춘이는 죽으려고 도망친 건가?」

오 형사는 사내 쪽으로 다가가 책상 위에 사진을 내던졌다. 사진을 들여다본 포주는 움찔하고 놀라는 기색이었다.

「이게 춘이 사진입니까?」

「그래, 잘 보라구. 춘이 시체니까.」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사내는 숨을 크게 들이쉬면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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